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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구상희 / 세상을 보고 읽는 볼록의 ‘반사/투과’체

김성호

 
세상을 보고 읽는 볼록의 '반사/투과'체


김성호 (Sung-Ho KIM, 미술평론가)



화가 구상희는 작품의 화제(畵題)인 미적 대상을 일련의 매개체를 통해서 바라본다. 그 매개체는 이미지를 미술로 만드는 구조의 틀인 프레임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유리의 투명함과 거울의 불투명을 오가는 반투명의 존재로 다가온다. 이 반투명의 매개체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지각(perception)의 프레임’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주요한 진입로이자 ‘인식(cognition)의 시작점’이다. 또한 이 프레임은 관객들이 한 화가의 작품 세계를 즉각적으로 지각하고 판단하는 '첫인상(first impression)'이자 ’인식의 첫 발자국‘이며, 화가가 보는 방식을 따라 세상을 읽어내는 ’의미(meaning)의 지평‘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프레임은 창작자에게나 관람자 사이에서 ’지각론(perception theory) → 인식론(epistemology) → 의미론(semantics)‘으로 이어지는 예술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Convex Memory-Hommage to Gogh,75X75cm,Acrylic on Acylic,2017.2



I. 변화하는 반투명의 프레임   
구상희에게 있어 첫 번째 프레임은 표현주의적 심미적 풍경화가 담고 있는 캔버스라는 단순한 사각의 틀이었지만, 이후에는 고흐와 같은 20세기 거장의 명화에 대한 오마주로 발전한다. 즉 고흐의 작품을 ‘지금, 여기’의 일상의 공간 속에서 재해석해 옮겨 놓는 패러디의 방식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이후 명화의 패러디를 효율적으로 도모하기 위해서 왜곡과 변형의 조형적 변주를 지속적으로 실험했던 그녀의 도로 반사경에 관한 탐구는 아나몰포시스(anamorphosis)라는 왜상(歪像)과 관련된 새로운 프레임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한편, 반사경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구상희의 회화 속 광학 장치는 TV 모니터, CC-TV와 같은 시뮬라크르의 감시 체계로 확장되었다. 더욱이 도로 반사경과 같은 볼록의 반사체 즉 볼록 거울(convex mirror)은 최근에는 아크릴 반구, 유리 반구, 유리 구 등 ‘볼록의 투과체 즉 볼록 렌즈(convex lens)’로 변형되면서 구상희의 회화에 담긴 프레임을 다방면으로 확장하기에 이른다. 
구상희의 회화는 그간 ‘1) 표현주의 풍경을 담고 있는 캔버스의 프레임 → 2) 명화의 현대적 재해석과 패러디의 프레임→ 3 )도로 반사경처럼 왜상을 드러내는 볼록의 반사체 프레임 → 4) 모니터와 같은 감시 체제의 시뮬라크르 프레임 → 5) 빛을 확대 굴절시키는 아크릴 반구, 유리 반구와 같은 볼록의 투과체 프레임’과 같은 형식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정리해 볼 수 있겠다. 
특히 구상희의 최근의 작품에 있어, 작품의 구조를 유지하는 프레임 그리고 세상을 보고 읽게 만드는 매개체는 ‘볼록의 반사/투과체’로 대표된다. 그것은 ‘볼록의 반사체/볼록의 투과체’로 풀이되며, 달리 말하면, ‘볼록의 거울/볼록의 유리’라 할 수 있겠다. 







II. '볼록 거울'과 긍정의 아나몰포시스
먼저 구상희의 회화에서 볼록 거울이라는 매개체는 ‘반사경’으로 구체화된다. 이것은 고흐의 명화를 현대의 일상 공간에 재해석하여 배치하는 일련의 시리즈 작업에서 등장했던 문손잡이와 같은 볼록의 반사체가 본격적으로 도로 반사경이라는 소재들로 변주된 것이다. 보라! 도시의 마천루나 해외의 관광지 관련 이미지들뿐 아니라 다양한 실내 풍경 이미지들은 그녀의 반사경이라는 볼록 거울 속에 가득하다. 이러한 볼록 거울 속 반영 이미지들은 왜곡과 변형을 드러내지만, 최대한의 가능한 전체상일 뿐만 아니라 여전한 실재의 다른 모습들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구상희의 회화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탐구되었던 아나몰포시스 즉 왜상이라는 광학적 담론들이 도로 반사경이란 소재를 통해서 다시금 현대적 의미로 조명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즉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매체 위에 효과적으로 얹어 놓고자 했던 르네상스의 투시도법(광학의 구조를 드러내기)에 따른 왜상과는 다른 차원의 왜상(광학의 구조를 비틀기) 연구를 통해서 구식의 광학 담론을 현대적으로 변주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주지하듯이, 반사경 속 세계란 현실을 닮은 의사체(擬似體)의 리얼리티면서도, 좌우가 뒤집힌 반사(反射)와 반영(反映)의 허구(fiction)이자, 외관이 비틀어진 변형과 왜곡의 시뮬라크르(simulacre)로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볼록의 거울은, 구상희의 언급대로, 현실과 그것에 대한 왜곡의 세계를 모두 포함하는 ‘이중 구조’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반사경은 현대를 비추는 이중 구조를 형상화한다. 반사경은 내 앞에 펼쳐진 세상과는 또 다른 왜곡된 형상들을 드러낸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곡된 진실은 한 줄기 실타래 끝과도 같이 거울 속 세계로 아련하게 이어진다. 거울에 비추어진 왜곡된 진실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 발견하고, 교차적인 세계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생각해 보라! 볼록 거울에 비친 모든 이미지들은 실물보다 축소된 크기로 나타나고 물체가 바로 선 형태의 정립허상(正立虛像)으로 나타난다. 볼록 거울이 빛을 반사하면서 넓게 퍼트리는 관계로 거울 뒤로 허초점(F)을 형성하는 까닭이다. 이 볼록 거울은 반사각이 넓기 때문에 전경을 보여주는 자동차 백미러,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커브 노선에 설치한 도로 반사경 등으로 사용된다. ‘실제로는 빛이 모이지 않고 생긴 허상’, ‘백미러에 보이는 것보다 실제로 가까이 있는 자동차의 실재’ 그리고 ‘도로 반사경이라는 가상의 화면에 보이기 시작한 코너 길의 자동차의 실재성’ 등은 구상희가 볼록 거울에 반영된 이미지를 통해서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리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이미지들에 관한 다양한 질문들이자 왜곡의 변형의 아나몰포시스 이미지들을 ‘긍정적인 무엇’으로 바라보려는 그녀의 답변들을 이끌어 낸다.   
작은 반사체로 넓은 면을 한꺼번에 본다는 볼록 거울의 위상은 18세기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고안한 원형 감옥인 팬옵티콘(panopticon)의 욕망을 재생산한다. 그것은 ‘한 권력자가 만인을 감시하는’ 체제이다. 이러한 감시의 욕망 체제는 현대에 들어와 CCTV 영상, 차량용 블랙박스 등으로 점차 상호 감시를 일상화하는 시놉티콘(synopticon)의 체제로 바뀌게 된지 이미 오래 되었다.  
구상희는 일상에 만연한 상호 감시를 꾀하는 시놉티콘의 억압 체제로부터 그것의 행간을 비워내고 긍정의 메시지를 읽어낸다. 마치 백남준이 최초의 인공위성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을 통해 조지 오웰(George Orwel)의 암울한 소설 『1984』(1949)의 ‘빅 브라더’의 세계를 비판했던 것처럼, 구상희도 자신의 볼록 거울을 메타포로 탐구하는 일련의 ‘볼록 기억(convex memory)’ 시리즈를 통해서 현대의 시놉티콘의 세계를 비판하고 그곳에 희망의 인공호흡을 통해 화해와 소통이 교차하는 세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한다. 보라! 구상희의 작품에서 볼록의 구면을 따르는 TV 모니터의 줄무늬는 블라인드가 드러내는 위장(감추기)과 감시(지켜보기) 그리고 이미지 경계의 모호함(흐리기)의 차원이 한데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Monitor-Big City, 60.6x60.6cm ,Acylic on Canvas, 2016 



III. '볼록 렌즈'가 탐색하는 '오목 거울'의 효과와 상호 작용
구상희의 최근 회화는 ‘볼록의 반사체’인 ‘볼록 거울’에 반영된 이미지로부터 ‘볼록의 투과체’에 투과되는 조형 세계로 이동한다. 구상희는 ‘평볼록 렌즈’라 불리는 다양한 크기의 투명한 반구(半球)를 고흐의 화집 위에 올려놓고 고흐에 대한 오마주를 선보인다. 반구는 마치 물이 담겨 찰랑이는 둥근 플라스크(flask)나, 화집 위에 내려앉은 투명한 이슬방울을 닮아 있다. 투명성의 볼록 렌즈는 그 아래 위치한 화집의 글씨나 그림을 크게 보이게 만드는 돋보기 효과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러한 ‘볼록 렌즈’의 효과는 '볼록 거울‘과는 상반되는 동시에, 흥미롭게도 ‘오목 거울(concave mirror)’의 그것과 닮아 있다. 오목 거울에서 반사면(P)에 맺히는 상은 물체의 위치에 따라 바른 상(정립상)과 거꾸로 된 상(도립상)으로 달리 나타난다. 늘 정립상을 만드는 볼록 거울과는 달리 오목 거울은 초점(F)과 구심(G)에 대한 물체가 놓인 위치에 따라 그 형상을 달리한다. 즉 물체가 초점보다 거울 가까이 놓이면 바른 허상(정립 허상)이 물체가 초점과 구심의 사이에 놓일 때는 거꾸로 된 실상(도립 실상)이 각각 확대되어 나타난다. 쉽게 말해 반사면에 물체가 근접하면 실물보다 큰 바른 상이 나타나고 멀리하면 실물보다 작은 거꾸로 된 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오목 거울은 반사된 빛을 구심점 앞에 모으기 때문에 모은 빛을 멀리 보내거나 빛에너지를 집중시키는 랜턴(lantern), 반사 망원경, 탐조등, 등대, 채화기, 자동차의 전조등, 치과용 거울 등으로 사용된다.







‘볼록 렌즈’는 빛을 반사하지 않고 투과시키는 것만 다른 뿐, 빛을 모으는 효과는 ‘오목 거울’의 상황과 유사하다. 게다가 ‘오목 거울’처럼 ‘볼록 렌즈’ 역시 ‘물체가 가까이 있을 때는 실물보다 크기를 크게 보여주고 물체가 멀리 있으면, 실물보다 작게 보여 준다. ’고흐의 자화상‘이나 ’꽃이 피는 아몬드 나무‘, 또는 고흐가 그린 ’고갱의 의자‘와 ’고흐의 의자‘ 위에 올린 볼록 반구는 특수한 텍스트나 이미지를 확대시키면서 마치 고흐의 눈물샘과 같은 양태로 서정적 심미감을 불러일으킨다. 더욱이 화면 위에 올린 레진(resin)의 광택 효과 또한 이러한 볼록 렌즈의 효과를 교차시키고 배가시킨다. 
구상희가 세상을 보고 읽는 볼록의 ‘반사/투과’체는 볼록의 반사체(볼록 거울)와 볼록의 투과체(볼록 렌즈)라는 상이한 세계가 만나 형성하는 메타포의 세계이다. 특히 ‘볼록 거울/볼록 렌즈’의 광학은 구상희의 작품 속에서, 왜상과 굴절 광학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이고 관성적인 인식을 탈주하고 희망에 관한 역전의 가능성을 더듬는다. 구상희의 ‘볼록 거울/오목 렌즈’는 ‘볼록 렌즈/오목 거울’의 효과를 서로 탐색하고 교차시키면서 저마다의 심미적인 작용마저 상호 교환한다. 마치 프리즘이 백색광의 광원(光源)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과 자외선이라는 파장이 극과 극인 존재들을 추출해 내었듯이, 구상희의 회화는 볼록 거울과 볼록 렌즈의 메타포를 탐구함으로써, 오늘도 부정으로부터 쉬이 보이지 않는 긍정의 아나몰포시스와 더불어 절망으로부터 찾기조차 쉽지 않은 희망의 소통 의지를 진지한 마음으로 길어 올린다. ●




출전 /

김성호, 「세상을 보고 읽는 볼록의 '반사/투과'체」, 『구상희 개인전』, 카탈로그 서문, (구상희 전,  2018. 3. 21-26, 갤러리 미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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