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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공존_매체의 확장展 / 투명성으로부터의 공존과 매체 확장

김성호


투명성으로부터의 공존과 매체 확장 

김성호(Kim, Sung-Ho) 

유리섬미술관의 기획전 《공존_매체의 확장》전은 유리섬미술관이 처한 물리적, 비물리적 공간과 이 시대의 담론을 여실히 드러내는 유의미한 주제이다.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유리조형예술로 구성된 출품작들이 이러한 주제를 어떻게 발현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I. 공존과 공생 - 매체 확장의 관계학     
먼저 유리섬미술관의 물리적 공간이란,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안산시 그리고 미술관이 자리 잡은 시내로부터 이격된 자연 환경과 같은 것이다. 유리섬미술관의 이러한 공간적 위상은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의 소통과 조화로운 공존을 도모할 안산시의 역할, 안산/전국/세계, 도시/자연, 전문미술가/대중 사이의 소통과 공존을 도모할 미술관의 역할을 두루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덧붙여, 유리섬미술관이 처한 비물리적 공간이란 유리조형예술로 특화한 장르적 상황과 연동된다. 즉 유리조형예술의 특수성을 견지하면서도 현대미술과의 접점을 찾아 유리조형예술의 정체성을 확장해야만 하는 당위적 과제 역시 떠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일반적 의미에서의 ‘공존(coexistence)’이란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함께 존재함” 또는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이란 의미를 지닌다. 전자는 대개 동질성(homogeneity)보다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관계의 이질성(heterogeneity)이 함께 존재하는 양상을 가리킨다. 아울러 후자는 공존에 대한(을 위한) 화용론적 실천의 면모를 지칭한다. 
유리조형의 장에서 공존이란, 유리조형이 아닌 이질적 장르들과의 결합이자 상호 간 공생이며, 서로의 장르를 확장시키는 융복합이자, 창발성을 생성하는 상호 간 공생이라 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유리조형이 유리 아닌 이질성의 매체를 향해 자신의 몸을 확장하는 것이자, 유리 아닌 것들과 결합하고 융복합으로 ‘서로 도우며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공존의 개념은 달리 말해 ‘공생(共生, symbiosis)’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공생’이란 ‘서로 도우며 함께 삶’을 의미한다. ‘공존’이 전제가 되지만, ‘도우며 함께’라는 용어에 방점을 찍는 일련의 실천적 양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생물학에서 공생은 “종류가 다른 생물이 같은 곳에서 살며 서로에게 이익을 주며 함께 사는 일”을 말한다. 악어와 악어새, 충매화와 곤충, 콩과 식물과 뿌리혹박테리 등의 존재는 ‘공생’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유리섬미술관이 당면한 공존이란 안산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미술전문가를 포함한 대중, 그리고 유리조형을 포함한 현대미술 사이의 공생의 관계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유리조형예술이 당면한 공존이란 유리조형예술 자체의 특수적 존재와 더불어 현대미술을 향한 매체 확장과 공생의 관계학이 함께 작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II. 투명성으로부터 - 매체 확장에 관한 근원적 질문 
유리조형예술의 매체 확장을 탐구하기 위해서, 이번 전시는 유리조형예술의 가장 근본적 질문들로 되돌아가 출발한다. 우리가 유리를 “외형적으로는 고체이지만 고체 특유의 결정 구조를 가지지 않고, 일정한 녹는점도 가지고 있지 않은 까닭에, 물성론적으로는 극단적으로 점도가 높은 액체(과냉각 액체)”로 정의하는 것은 유리조형예술의 매체적 확장을 검토하는 근원적 지점이다. 따라서 “규사, 탄산석회 등의 원료를 용융된 상태에서 냉각하여 얻은 투명하며 단단하고 잘 깨지는 물질”이라는 유리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에 대해서 되묻는 일은 이러한 매체적 확장에 대한 구체적인 출발점이 된다. 달리 말해, ‘잘 깨지는 물질’이나 ‘투명성’이라는 두 개념은 이번 전시에서 유리조형예술이 언제나 새로운 매체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적 변주와 확장의 가장 기초적인 가능태가 된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유리조형 첫 단계에서부터 입으로 불어 공기를 주입하거나 굴리고 잘라내는 방식으로 유리 몸의 형태를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이아몬드 그라인더로 깎아내고 다듬어 형태를 만들거나 사포로 연마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의 유리 오브제를 깨뜨린 파편을 다시 녹여 새로운 유리조형예술로 변형시킬 수도 있다. 그 뿐인가? 유리에 금가루를 넣어 핑크빛 보라색으로, 은가루를 넣어 노란색을 만드는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색유리를 만들어 내면서 투명성을 투명한 색유리나 반투명, 불투명의 유리조형예술품으로 변주해낼 수 있다. 이렇듯, 유리조형예술의 변형과 변주의 무한한 가능성은 ‘깨짐’과 ‘투명성’의 특성들로부터 시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전시의 대부분의 출품작들이 유리조형예술의 ‘투명성’이라는 근본적 문제의식을 성찰하고 그것으로부터의 변주를 다양하게 시도한다는 것이다. 김수연(Kim, Su-Yeon)의 작업은, 유리조형예술이 이러한 투명성으로부터 출발하여 투명/불투명을 오가고 유리와 다른 매체를 결합함으로써 매체의 확장을 탐구하는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녀의 작품 〈7일 간(7 days)〉은 얇은 '합성유리(fused glass)' 위에 유화로 재봉실을 그려 넣어 실제의 투명 비닐 지갑처럼 보이도록 만들고 그 안에 실제로 7일 동안 수집한 영수증을 집어넣은 것이다. ‘유리조형예술/현대미술’, ‘시각예술/오브제’ 혹은 ‘만들어진 오브제/발견된 오브제’ 등 매체의 확장과 융복합은 물론 이질성의 존재들을 공존시키는 전략인 셈이다.  
김수연의 또 다른 작품 〈사적 잔여물(Personal Remains)〉은 파트 드 베르(pate de verre)라는 특수한 장식 유리를 종이처럼 불투명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벽에 걸어놓은 것이다. 이 유리는 “각종 색채 유리의 가루를 틀 속에서 혼합하고, 녹여서 성형한 장식 유리”로서 유리로부터 반투명성과 불투명성을 견인하기에 적합하다. 이 작품은 실제 영수증 크기로 만들어진 불투명한 유리 위 희미하고 흐릿한 글씨로 인해 마치 빛바랜 실제의 영수증처럼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작품은 시각이 지닌 우리의 관성적 인식을 배반시킴과 동시에, 유리라는 질료를 대면하는 우리의 편견을 허문다. 이 작품 역시 유리조형예술/현대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매체의 확장과 융복합의 존재로 서로를 공존시킨다고 할 만하다.  


(좌) 김수연, Personal Remains_paper receipts, various sizes, glass, pate de verre, 2015.
(우) 김수연, 7 days, 19x17x2cm, Fused glass, oil paint, paper receipts collected for 7 days, 2015.


III. 투명/반투명/불투명의 공존과 공생 - 매체 확장의 사례들   
이렇듯, 유리의 투명성으로부터 출발한 채, 매체의 확장과 융복합을 통해 드러내는 공존과 공생의 미학은 이번 출품작들 도처에서 발견된다. 가히 출품작 모두가 유리조형예술이 당면한 매체 확장의 사례라 할 것이다. 전체 작품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대별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그룹은, 유리의 투명성으로부터 매체 확장을 도모하는 작업들이다. 
김기라(Kim, Ki-Ra)는 유리 덩어리 외부에 블록 형상을 새기거나 기포들이 남겨진 투명한 유리 덩어리 내부에 오브제로 보이는 무엇인가를 가둠으로써 유리라는 질료의 내외부로부터 투명성의 의미를 재고한다. 


김기라, glass feather-wind, 2018

편종필(Pyun, Jong-Pil)은 마치 샹들리에와 같은 형태의 투명한 유리조형물에 부분적으로 색을 개입함으로써 투명과 반투명의 위상을 오가는 유리예술을 선보인다.  
박정란(Park, Jung-Ran)은 붕규산 유리(borosilicate glass)를 램프워킹(lampworking) 작업을 통해서 찌그러진 투명 유리조형을 만들고 그 표면 위에 푸른색의 유리 꽃잎을 올려놓는다. 그것은 한편으로 연장이나 도구의 형상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목을 빼고 움직이는 기묘한 동물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정란, 블루를 담다(온도와 색과 빛), borosilicate glass-lamp working, 2018.
 
선우용(Sunwoo, Yong)의 작업에서도 이러한 생명체의 모습이 엿보인다. 투명한 유리 입방체나 분할된 두꺼운 유리판 안에 마치 녹색의 수생 식물이나 검거나 붉은 촉수를 지닌 미확인 생명체가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우용, 구분하다. 32 x 31 x 8cm, Glass(Cast, Blown, Polished), 2014

유하나(Yoo, Ha-Na)의 작업에서도, 알 수 없는 생명체는 ‘나무 형상을 한 투명/반투명한 유리 표면 위에 자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시리즈처럼 보이는 동형의 ‘유리 나무’ 두 점은 ‘같아 보이나 결코 같지 않은 것’이라는 점에서 이 전시의 주제의식인 ‘공존’과 맞물린다.  
  
둘째 그룹으로, 유리의 투명성으로부터 반투명성과 불투명성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흐름들 속에서 매체 확장을 도모하는 작업들이다. 
먼저 김헌철(Kim. Hun-Chul)은 다양한 매체의 혼합을 통해 식물의 형태를 연상케 하는 유리조형의 몸체 전체를 은은하고도 신비로운 파스텔 톤의 반투명한 색유리로 전환시킨다. 게다가 다른 매체와의 만남과 확장을 시도하면서 유리/금속, 실용성의 기물/예술품 등 매체 사이의 차원의 경계를 탐구한다. 
반면에 장민호(Jang, Min-Ho)는 도계 지역의 석탄 폐석으로 특화된 도계유리(dogye glass)에 색의 강도를 높임으로써 전체의 유리조형을 초록빛으로 가득한 반투명의 색유리 추상 조각으로 변주한다. 


장민호, Draw a Circle, Dogye Glass, 350mmⅹ200mm(h), Blown, 2014.

조현성(Cho, Hyun-Sung)에게 있어 이러한 투명성과 반투명성은 유리조형이 지닌 레이어로 극대화된다. 투명한 유리 외피로 감싸인 불투명한 알처럼 형성된 이중의 레이어 장치와 유리 속 기포들은 작품 전체를 마치 ‘창을 통해서 보는 비 오는 풍경’처럼 반투명의 것으로 만든다.  유리, 에나멜, 철과 같은 매체의 복합과 확장이 돋보인다. 
이세린(Lee, Se-Rin)은 사진 작업을 선보인다. 마치 수많은 유리의 레이어를 집적한 프리즘 조각을 통해 산란하는 빛의 스펙트럼 효과를 탐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다. 투명과 반투명의 경계를 색의 빛으로 가득 채우는 그녀의 작업은 가히 ‘새겨진 빛’이라 할 만하며, 이러한 빛을 순간 정지시키는 마법을 선보이는 작가는 ‘빛을 짓는 목수’라 할 만하다. 


이세린, Carved light_빛을 짓는 목수, 40.6 x 60.9Cm, pigment print, 2017. 

이승정(Lee, Seung-Jung)은 쌍으로 된 두 기물을 통해 투명/반투명을 오가는 두 개의 시선을 선보인다. 또한 실버 블로운(silver blown) 기법을 통해서 불투명한 은빛과 초록빛 표면을 지닌 ‘알 수 없는 생명체’와 같은 기묘한 형상을 함께 선보인다.   
준gk(Jun.gk)의 작업은 유리로 된 타블로와 다를 바 없다. 기본적으로 틀을 만들어서 유리를 흘러내리게 하는 슬럼핑(slumping) 기법으로 만든 불투명한 유리판은 유리 회화의 출발점이다. 유리판 외곽에 두른 프레임도 그러하지만, 유리판 위에 달항아리, 의자 등의 형상과 이탈리아 화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의 오마주 작업을 드로잉처럼 올린 이미지는 유리조형과 현대 회화와의 접목을 성찰하게 만든다. 


준gk, 공간구성(시뮤라시옹, 달항아리), 60x90x15Cm, 소다유리, 슬럼핑, 2017
준gk, 공간구성(시뮬라시옹, 루시오 폰타나 오마주), 60x90x15Cm, 소다유리, 슬럼핑, 2017
준gk, 공간구성(시뮤라시옹, 의자),  60x90x15Cm, 소다유리, 슬럼핑, 2017.


김현정(Kim, Hyun-Jung)의 유리조형 또한 유리 회화라 할 만하다. 유리를 둘러싼 프레임은 이러한 정체성을 강화한다. 더욱이 반투명 혹은 불투명한 유리판은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의 먹빛 가득한 회화가 올라서는 훌륭한 지지대가 된다. 유리 위에 혼합 매체를 통해 구현한 회화는 그녀의 작업을 유리 매체의 확장을 시도하는 유리조형공예이자 동시에 유리 회화로 공존케 하기에 족하다. ●

출전 /
김성호, 「투명성으로부터의 공존과 매체 확장」, 카탈로그 서문, (공존, 매체의 확장전, 2018. 7. 10-10. 7, 유리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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