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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남유리 /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환하는 촉각적 기억

김성호

남유리 작품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환하는 촉각적 기억

김성호(미술평론가) 

화가 남유리는 세계에 대한 기억, 특히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여명을 밝히는 청명한 새벽녘 대기, 안개 자욱한 강가의 아침 공기, 뺨 위에 닿는 따뜻한 정오의 햇볕, 후덥지근한 한낮의 열기, 이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그녀가 몸과 마음으로 본 것들이다. 즉 ‘보이지 않는 것들’이란 그녀의 작품에서 몸과 마음이 소환하는 촉각의 기억이자, 촉지(觸知)적 흔적이다. 그것은 메를로 퐁티의 언급처럼 ‘살(chair)’이 기억하는 세계이다. 그것들은 망각의 이름으로 묻혀 있다가 이젤 앞에 선 그녀에게 불현듯 솟아나는 무엇이거나 스멀스멀 기억 속을 비집고 서서히 올라오는 무엇이다. 


남유리, 〈파도로부터 Ⅰ〉, 90.9x72.7cm,장지에 채색, 2016

“어떻게 공기를 몽글몽글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남유리는 엉뚱한 상상력에 몸을 싣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몸과 마음이 보았던 것들을 하나둘 소환하여 화폭 위에 올린다. 투명한 공기와 따스한 빛이 화면 위에서 색점과 면으로 펼쳐지고 그 화려한 색점의 군무 사이로 호분이 지나거나 그것들을 뒤덮는다. ‘반투명한 호분’은 모필이 지나는 궤적을 따라 안료의 층을 불균형하게 만들면서 어떤 부분은 불투명하게 색점을 가리고, 어떤 부분은 투명하게 그것을 드러내면서 불균질의 ‘겹’을 만든다. 그래서 ‘반투명하고 하얀 호분’은 보색들 사이의 다툼을 어루만지고 서로의 대화를 견인하는 화해의 중재자이다. 전체의 화면을 때론 잔잔하고 때론 역동적인 조형의 선율로 이끄는 주체가 된다. 호분이 만드는 불균질의 ‘겹’이 색점과 어울려 균질적인 ‘결’이 만드는 파동의 운동성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녀의 ‘반투명한 회화’가 담고 있는 ‘반투명한 피부’는 ‘겹과 결’에 대한 ‘동양철학의 존재론적 사유’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 출발하고 있는 그녀의 회화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정작 ‘보이는 것들’ 사이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마치 꽃봉오리 속에 겹겹이 숨겨져 있던 ‘보이지 않는 꽃들’이 보이는 세상 속으로 ‘현실화(actualization)'되는 한 떨기 식물의 생장학(auxanology)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여름 바닷가의 뙤약볕 아래, 비 내리는 우울한 도시 풍경 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눈 쌓인 계곡 위에, 음악이 흐르는 창문 너머 어디에 그리고 일상적으로 자리하는 그녀의 화실 어디에 언제나 있다. 남유리는 오늘도 그것을 찾아가며 존재론과 인식론에 관한 철학적인 담론을 간결한 추상의 언어로 시각화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

출전 / 
김성호,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환하는 촉각적 기억」, (남유리 작가론, 성신여대 대학원 동양화과 비평 매칭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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