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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유현경展 / 저의 비극이 당신에게 위로를

김성호

저의 비극이 당신에게 위로를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1. ‘몸 말’ - 허위를 입은 타자 혹은 타아  
유현경의 이번 개인전의 부제는 “저의 비극이 당신에게 위로를”이라는 마침표 없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정적 의미를 연기하고 또 다른 의미를 열어 두고 있는 이 제목은 관객으로 하여금 어절들을 잇는 새로운 어절을 삽입하면서 문장을 마무리할 욕망을 추동한다. 전시명 자체가 곱씹어 볼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이어서 말한다. “드립니다.” “드립니까?” “받습니다.” “받을까요?” 새로운 어절의 삽입 유형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관객은 대략 ‘능동형’과 ‘피동형 혹은 간접 수동’ 그리고 마침표와 물음표 사이를 나누는 위와 같은 말들이 생략되었을 가능성을 기대한다. 일단 문법상 뒤의 두 어절은 추상 개념의 주어가 간접 수동의 서술어를 잇게 되는 ‘문장 성분’의 구성 차원에서 어색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의미 전달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두 어절은 의미 전달의 일반론 차원에서, ‘받다’라는 간접 수동형으로 시작하는 문장 구성 자체가 보다 더 효율적일 가능성마저 배태한다.  
그러나 답은 없다. 다만 가능성들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저의 비극이 당신에게 위로를”에서 우리는 “저”와 “당신” 대신에 주체와 타자를 구분하는 여러 용어들로 치환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들을 상정해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녀의 이번 개인전의 부제를 다음처럼 분석한다. “나/우리/너/당신들/그/그녀들” 등 주어와 목적어를 상호 간에 치환해 보자. 여전한 가능태이다. “철수 엄마/옆집 여자/우리 선생님/그 놈의 남편/그 회사 사장/노영순 씨/제 며느리/그 년...” 이 역시 여전한 가능태이다. 그녀의 비워 둔 문장과 행간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또 다른 나’ 혹은 ‘또 다른 주체’를 찾는 단어들은 무한대이자 모두가 가능태이다. 
‘또 다른 나’는 흔히 ‘타아(他我, other self)’라는 말로 불린다. 이것은 ‘타자가 지닌 자아’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즉 타아는 나의 분신을 한 ‘타자의 자아’로 이해된다. 결국 너, 그, 그녀, 그들이라는 타자들은 나의 투영에 다름 아니며, 거꾸로 나는 타자들의 투영이다. 타자들의 시선으로 매개되는 나 말이다. 주체와 타자를 오가는 서로의 정체성으로 치환이 가능한 오늘날의 현대인은 혼돈의 주체이다. 그것은 들뢰즈의 언급처럼 정신분열증의 주체와 다를 바 없다.  
필자는 작가 유현경의 전시명을 ‘몸 말’이라고 작명하고 풀이한다. 즉 ‘몸의 말’, ‘몸에 대한 말’을 줄여 표기한 이 말은 ‘몸으로 대별되는 인간 정체성의 위상’을 지칭한다. 그것은 주체가 처한 위치와 상황적 맥락에 따라 달리 호칭되는 허구의 몸을 지칭한다. 그래서 그것은 언제나 실제의 몸을 지닌 해당 주체를 왜곡하고 ‘거추장한 거짓으로 치장’하기 십상이다. 





2. ‘몸’ - 허위를 벗은 주체 
작가 유현경은 이번 전시에서 작품 속 인물들의 옷을 벗겼다. 간혹 속옷을 입고 있거나 히잡(hijab)을 뒤집어 쓴 인물이 있기도 하나 대개 그녀의 작품 속 등장인물은 나신이다. ‘옷’이란 우리가 작명한 ‘몸 말’처럼 ‘치장된 허위’의 속성을 공유한다. 주체의 기호, 감성, 심지어 경제적 자본의 위상까지 드러내는 ‘옷’이라는 사물은, 주체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극도의 장애물이다. 
유현경의 작품 속 인물은 허위의 ‘몸 말’을 벗고 거짓의 ‘옷’을 벗었다. 벗긴 주체는 물론 그녀이다. 모델의 옷을 벗김으로써 그녀 또한 스스로 옷을 벗는 효력이 발현된다. ‘세계를 대면하는 가장 순수한 순간’이라는 예술 창작의 이름 앞에서 대상이라는 타자와 화가라는 주체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순간이다. 창작을 하는 시간 동안 모델은 화가에게 몸과 마음을 주고 화가는 그것을 받는다. 또한 모델과 화가 사이의 주고받음을 치환하면서 양자 간의 상호 작용의 순간들을 이어 가는 것이다. 이 표현은 ‘인간 대 인간의 만남’과 ‘상호 작용’을 의미하는 은유임은 물론이다. 작가는 말한다.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자신과 모델이 서로를 관찰하고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야기하는 진솔한 순간이라고. 우리는 질문한다. “꼭 그렇게 해야만 그림이 되는 것인가?” 우리는 자답한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림은 되지만, 그럴 필요는 충분해 보인다”고 말이다.       
그렇다.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리고자 하는 인물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화가에게 다르게 다가선다. 화가 유현경은 자신의 인물화 탐구를 위해서 모델의 벗은 몸을 통해서 ‘허위를 벗은 주체’를 보길 원한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전이나 그리는 중이거나 그린 후에도 대화를 지속한다. 그녀가 모델의 외피를 그리고자 누드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허위를 벗은 인물을 그리고자 한 까닭에 이러한 진솔한 순간은 필요하다. 모델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그것을 육안(肉眼)이 아닌 심안(心眼)으로 포착하려는 화가의 의지는 의연함에도 불구하고 대상에 따라 그 의지의 양태가 매 순간 달라진다. 그래서 인물에 따라 그리기의 방식마저 달라지는 것이다. 때로는 스케치풍의 간결한 색드로잉으로, 때로는 표현주의 계열의 거친 붓질로, 때로는 리얼리즘 형식의 데생으로 회화의 재료와 표현이 바뀌기도 한다. 
이렇듯, 소소한 변화이지만, 그녀의 다르게 표현되는 인물화에도 공통적인 특징은 있다. ‘미완성인 듯한 그림, 못 그린 듯한 그림’이라는 특성이 그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아! 미완성 아니예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완성”이라고 말이다. 작가는 덧붙인다. “남들보다 조형 능력이 떨어져서 이러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고 말이다. 물론 겸손의 표현이다. 미메시스(mimesis)를 신봉하지도 대상의 외피에 대한 재현을 추구하지도 않는 그녀의 작품 세계가 낳은 당연한 귀결일 터이지만, 그녀는 완성의 시점을 자신의 지각적 감성에 맡긴다. ‘지각(perception)이란 ‘인식(cognition)’에 구체적으로 도달하기 이전의 ‘이미지와 한데 얽혀 있는 거친 메시지 덩어리'이다. 시각, 청각 등의 감각이 야기한 ’명료하고도 확실한 메시지의 묵직한 덩어리‘이지만, 언어로 정교하게 풀기에는 꼬인 실타래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메시지‘의 덩어리이다. 완성의 단계를 결정지으며 붓을 놓는 그 순간을 작가는 지각의 상태에서 결정한다. 꼬인 실타래를 가진 상태라 모호한 듯하지만, 적어도 작가 유현경에게는 명료하고도 확실한 순간이다. 
허위를 벗은 타자를 통해서 결국 허위를 벗은 주체를 드러내려는 화가 유현경에게 있어서, 때로는 ‘에스키스 같은 미완성’, 더러는 재현 능력을 일부러 방기한 듯한 ‘못 그린 듯한 그림’을 그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3. 다시 ‘몸 말’ - 연수와 현경 
글을 마무리한다. 화가 유현경의 이번 개인전은 '연수'라는 실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연수라는 실명은 여전히 관객에게 인물 본연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허위의 위상’일 따름이다. 화가 유현경이 아무리 ‘나의 분신을 한 타자의 자아’ 즉 ‘타아’로 그녀를 인식했다고 할지라도, 관객에게는 영원한 타자일 따름이다. 필자는 연수를 모른다. 화가의 마음에 들어가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수는 필자에게 영원한 타자이다. 유현경에겐? 그녀에게 적어도 창작의 순간에서 연수는 우리의 표현으로 말하면, ‘허위를 입은 몸 말’로서의 ‘타자’가 더 이상 아니다. 그녀에겐 ‘허위를 벗은 몸’으로서의 ‘주체’이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벗은 몸의 세계’에 관객을 초청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인간을 대상화시키는 관음증의 세계’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외설적이지도 않다. 작가와 모델이 상호 작용의 교감을 나누었던 ‘누드를 둘러싼 순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허위를 입은 몸 말’로부터 벗어나 도달하(려)는 ‘허위를 벗은 몸’의 세계이다. 작가가 만든 작품들이 대신 말한다. “여러분이 서로 한 몸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면, 서로를 ‘대상화시킨 타자’로 대면하기보다 ‘허위의 위상을 벗은 타아’로서 서로의 모습을 보자”고 말이다. '연수'라고 하는 실명의 ‘몸 말’이 ‘벗은 몸’ 위에 함께 있어도 그녀의 개인전을 향한 우리의 기대가 결코 난망하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출전/

김성호, 「저의 비극이 당신에게 위로를」 , 개인전 서문, (유현경展, 2018, 11. 5-11. 17, 갤러리 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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