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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2018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 인간과 자연을 위한 숲 속 은신처

김성호

인간과 자연을 위한 숲 속 은신처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올해로 8회를 맞이한 2018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자연-사적 공간-셸터(Nature-Private Space-Shelter)’라는 주제 아래 《숲 속의 은신처(Shelter in the Forest)》라는 이름의 ‘자연미술전’을 선보인다. 또한 울산과학기술원이 협력한 특별기획전 《사이언스월든-자본》과 특별기획전인 영상전 《바람》이 함께 열린다. 부대행사로는 자연미술 심포지엄, 자연미술 체험 및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펼쳐진다. 






I. 자연 - 사적 공간 - 셸터
올해 비엔날레의 화두는 셸터이다. 셸터란 사전적 의미에서 “비바람의 위험이나 악천후의 공격으로부터 피신한 인간을 위한 은신처”를 지칭한다. ‘셸터’란 사회학에서 언급하듯이,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중에 ‘주’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거주를 위한 ’집’이라는 개념을 함유한다. 따라서 셸터라는 주제의식은 그동안 자연미술이 견지해 온 ‘탈인간중심주의’ 혹은 ‘자연환경중심주의’와는 다른 관점에서 올해의 자연미술비엔날레를 이끌어간다. 셸터의 의미 자체가 ‘인간을 위한’이라는 의미를 내재함으로써 인간중심주의적인 사유의 일단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제는 일견, 자연미술비엔날레가 지향해 온 생태학, 생태미학적 관점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생태학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지키려는 ‘자연환경중심주의’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생태학은 ‘자연뿐 아니라 문화의 상호 침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연과 더불어 인간, 인간의 거주지와 같은 문화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것들이 관계하는  다양한 시스템들과 무한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용어의 어원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생태학(ecology, ecologie)은 출발부터 이러한 문화의 영역을 함유한다. 생태학은 ‘집, 서식시, 생활 환경’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ïkos)'와 ‘학문, 담론’을 의미하는 로고스(logos)의 합성어로, “살아있는 존재와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즉 생태학은 “인간과 생물물리학적, 사회학적 환경과의 관계”를 처음부터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의 생태미학은 생태적 자연뿐 아니라 사회학적 테마를 연구하는 미학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목표는 무엇인가? 기획자가 언급하고 있듯이, “자연 - 사적 공간 - 셸터를 주제로 하는 이번 비엔날레의 목표는 건축과 미술이라는 두 영역을 분석하고, 이 둘 사이의 연결 관계를 경험해보는 것”이다. 즉 ‘자연(자연/인간을 위한) - 사적 공간(건축+미술로서의 자연환경미술) - 셸터(인간/자연을 위한)’를 중심으로 서로의 생태학적 연결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확장된 자연미술을 만나는 것”이다. 



프레드 마틴 (프랑스) Fred Martin (France)


II. 자연의 셸터와 인간의 셸터 
생각해 보자. 셸터는 정주의 사회 이후 인간에게 본격적으로 등장한 개념이지만, 근본적으로 자연의 일부분이었다. 보라! 적으로부터 연약한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단한 조개껍질, 고슴도치의 날카로운 가시, 혹한에도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는 북극곰의 풍성한 털과 차가운 바다 속과 빙판을 오가도 물을 얼지 않게 하는 펭귄의 깃털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자연체 안에서 형성된 셸터’이다. 주위 환경에 맞추어 몸의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의 변신술 또한 그 자체로 ‘셸터’가 된다. 다만 인간만이 이러한 셸터를 특별히 자신의 몸에 갖고 있지 않았기에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피신해서 자신을 보호할 셸터를 구축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의식주를 해결했던 유목주의 시대의 원시인에게 셸터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 입은 가죽옷, 털옷이거나, 동굴이나 숲속의 그늘과 같은 것이었다. 
유목주의를 마친 정주의 문명 시대에 인간은 비로소 셸터를 건축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한다. 즉 정주를 위해서, 순수 자연인 ‘매끈한 공간(espace lisse)’ 위에 공동체를 위한 벽을 쌓고 수로를 파서 인공화된 ‘홈이 팬 공간(espace strié)'을 만들면서 오늘날 호명되는 ’집‘이라는 건축적 셸터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들뢰즈(Gilles Deleuze)에 따르면, ‘매끈한 공간’은 비식민화된 공간, 열린 공간, 유목의 공간인 반면, ‘홈이 팬 공간’은 매끈한 공간에 반대하는 질서와 계층의 공간이다. 
그렇다. 전자가 자연의 수평적 세계라고 한다면, 후자는 집단의 위계와 계열을 만드는 인공의 수직적 세계로 대별된다. 이 인공의 세계, 즉 문명 시대에는 인간이 의식주를 자연으로부터 취하기보다 직조, 재배. 축산, 건축을 통해 해결하면서, 셸터의 개념은 변모된다. 즉 피난과 안식을 제공하는 나무 틈이나 동굴과 같은 자연 공간으로부터 ’집(住)‘ 또는 ’성(城)‘과 같은 다분히 ‘인간을 위한 건축적 공간’이라는 인공의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올해의 비엔날레는 여기에 의문을 던진다. 셸터는 인간 정주 시대 이래로 인공의 존재가 되었으나 원래 자연의 것이 아니었는가?  



박봉기 (한국) Park Bong-gi (Korea)


III. ‘인간 - 자연’ 공동체의 셸터
2018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화두로 던진 ‘셸터’라는 주제 의식은 결국 인간을 위한 존재만이 아니라 자연을 위한 존재였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숲 속’에 셸터를 짓기로 한다. 지으면서 ‘자연 - 인간’의 관계를 되묻고자 하는 것이다. 이 주제 의식은 ‘건축 - 미술’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자연미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연구하는 것이지만 그 심층에는 ‘자연으로부터 기인한 셸터’, ‘인간으로부터 기인한 셸터’와 같은 양자 사이의 고민을 풀어보려는 생태학적 탐구가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생태학자 캐롤린 머천트(Carolyn Merchant)는 자신의 '근본생태학(Radical ecology)'을 심층생태학(Deep ecology), 정신생태학(Spiritual ecology),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의 세 범주가 함께 연계되는 통섭(consilience)의 생태학으로 살피고 있다. 그녀는 생태학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의 생태학을 '사회생태학' 위에 방점을 찍고 있기는 하나, 세 범주의 생태학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그 생태운동의 지속가능성이 실천되는 것으로 살피고 있다. 심층생태학, 정신생태학이 ‘인간의 이성 중심주의’, ‘인간 중심의 환경결정론(anthropocentric environmentalism)’를 거부하면서 생물권 평등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라 할 때, 사회생태학은 그것의 반대 관점에 서는 것이다. 즉 생태학에서 폐기되었던 ‘인간 중심적 접근(homocentric approach)’과 ‘인간 이성’을 다시 회복시키고, 생태의 위기 자체를 ‘자연 생태의 위기’로부터 ‘인간 사회 생태의 위기’로 살펴보는 것이다. 
그녀는 사회 속의 위계적 질서와 계급적 불균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한 사회생태학을 작동시킴으로서 자연의 생태적 불균형도 바로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녀는 진정한 생태학의 실현을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 작용’에 대한 고찰은 물론이며,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 대한 비판적 성찰’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청한다. 이처럼 사회생태학에서는 자연 생태뿐 아니라 ‘환경과 사회를 삶의 살아있는 맥락’으로 주요하게 간주한다. 
올해의 비엔날레가 제안하는 ‘셸터’라는 주제어의 맥락은 바로 여기서 작동한다. 숲 속에 짓는 셸터가 자연에 대한 훼손이 아니며, 더욱이 그것이 인간만을 위한 안식처가 아니라는 결론이 그것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셸터’가 품고 있는 본질적 의미는 ‘인간과 자연 모두를 위한 안식처’였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심층생태학, 정신생태학의 입장에서 인간 중심주의는 적대시의 대상이었지만, 사회생태학의 입장에서 '인간을 위한 무엇‘이라는 담론을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지점에서 이번 비엔날레의 셸터라는 개념은 다분히 사회생태학적 입장을 견지한다. 사회생태학에서는 인간을 위한 입장이 곧 자연 생태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외려 인간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할 생태 보호의 과제를 떠안기 때문이다. 양자는 진화(evolution)라는 담론 속에서 번영해야 할 하나의 ’인간 - 자연‘이라는 공동체인 것이다. 


애니 시니만, PC 얀서 반 렌즈버그 (남아프리카공화국)
Anni Snyman, PC Janse van Rensburg (South Africa)


조셉 타스나디, 게르게이 타스나디 (헝가리)
Joseph Tasnadi, Gergely Tasnadi (Hungary)


위스누 아지타마 (인도네시아)
Wisnu Ajitama (Indonesia)


로저 리고스 (독일) Roger Rigorth (Germany)

아마르사이칸 남스라이야브 (몽골)
Amarsaikhan Namsraijav (Mongolia)


IV. 통섭의 생태학과 생태미술운동  
이번 행사에서 셸터라는 주제어가 목적하고 있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자연(자연/인간을 위한) - 사적 공간(건축+미술로서의 자연환경미술) - 셸터(인간/자연을 위한)’를 중심으로 서로의 생태학적 연결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확장된 자연미술을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만남의 관계에 대한 탐구는 오늘날 생태학이 견지하는 '통섭' 지향의 생태학의 담론을 이끌어 온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다른 것들과의 만남’과 이질적 학문의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ity)와 교차 학문성(transdisciplinarity)을 거론하는 것이다. ‘생태미학에 근거한 최근의 아트프로젝트의 전형적인 특성은 ‘학제간 연구와 교차 학문성’으로 거론된다. 이론가들에 따르면, 생태학은 “다양성의 복합적 연관성(a complex interrelationship of diversities)”으로서의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다양성의 생태학적 가치를 주목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생태미학은 미술뿐 아니라, 도시 디자인에서도 예술가의 상상력을 받아들이고 환경을 생태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 학제적 만남을 도모한다. 
그룹 야투의 자연미술을 중심으로 한 생태미술운동을 필자는 다음처럼 분석한다: 1981년부터 시작된 야투(Yatoo)의 사계절연구회 중심의 ‘자연미술’은 정주형 미술과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의 관점으로, 2014년부터 시작된 글로벌노마딕아트프로젝트(Global Nomadic Art Project)는 다중심의 오프라인 유목주의와 정신생태학(Spiritual ecology)의 관점으로, 그리고 2011년부터 시작된 야투아이프로젝트(Yatoo-I Project)는 온라인 유목주의와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의 관점으로 분석된다. 또한 2004년부터 시작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이전의 자연미술운동의 국제화 시도로 정주형 미술로서 미술의 덩치를 키우면서 ‘자연미술(Nature Art)’보다 ‘자연환경미술(Nature environment art)’의 방향성을 견지해오고 있는데, 심층생태학의 입장으로부터 출발해서 점차 사회생태학적 입장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3가지 프로젝트는 자연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트라이앵글 구조를 지닌 채, 최근의 생태학, 생태미학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생태미술(Eco-art), 생태미술운동(Eco-art mouvement)으로 확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올해의 비엔날레에서 병행하고 있는 다양한 부대 행사 역시 이러한 통섭의 생태학을 위해서 마련된 것이다. ‘숲 속에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였음을 확인하는 이번 비엔날레’는 셸터 안에서 관객들이 자연을 유람하던 가쁜 숨을 멈추고 자연과 동화되는 체험에 빠져 보게 만든다. 그들이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 숲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그 셸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자연의 미물들과 자연 생명체들을 위한 것이자, 동시에 그들과 지속적으로 공생해야 할 인간을 위한 것임을 이번 비엔날레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아타나스 아타나소스키 (마케도니아)
Atanas Atanasoski (Macedonia)


팀 노리스 (영국) Tim Norris (UK)


이응우 (한국) Ri Eung-woo (Korea)



V. 셸터 - 숲 속의 은신처 
이번 비엔날레의 자연미술전 출품작들은 '숲 속의 은신처’로서의 셸터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을 선보인다. 
첫째, 자연의 형상을 통해서 셸터를 구축한 경우이다. 대지의 등고선(바롤 토팍, 터키)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셸터는 대표적이다. 또한 잎(애니 시니만, PC 얀서 반 렌즈버그, 남아프리카공화국), 새(아르비다스 알리상카, 리투아니아)와 같은 숲 속 자연물로부터 형상을 빌려온 작품뿐 아니라 파도의 모습을 형상화한 셸터(팀 노리스, 영국)의 작품이나 조개(로저 리고스, 독일)의 형상을 통해서 셸터를 구축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프레드 마틴, 프랑스)의 형상을 통해서 셸터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러한 양상은 이번 비엔날레의 셸터 개념이 ‘자연 - 인간’의 공동체를 위한 것임을 반증한다. 
둘째, ‘자연, 인간’의 형상을 빌려 셸터를 구축하려는 관심보다 ‘거처의 공간’에 대한 재해석에 집중하는 경우 역시 많다. 이러한 양상은 숲 속 새들의 거처인 둥지(아타나스 아타나소스키, 마케도니아)와 인간의 거처인 한국식 대나무 브로흐(처버 여커브, 헝가리), 몽골식 전통 가옥인 게르(아마르사이칸 남스라이야브, 몽골)의 대비적 구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또한 인간의 명상을 위한 공간(허버트 V. 파커, 미국 & 고승현, 김가빈, 한국), 그리고 인간을 위한 조망용 창을 지닌 건축적 구조물(피터 팔, 루마니아)을 셸터로 구축한 경우에서도 ‘거처의 공간에 대한 재해석’은 발견된다. 아도비 조형물로 인간의 형태(오누르 픈드크, 터키)과 유사한 셸터로 구축한 경우는 또 어떠한가? 이 모든 것은 셸터의 거주자의 형상을 변용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셸터의 다양한 구조적 유형들을 조형적으로 연구한 경우로 꼽을 수 있겠다. 
셋째, 작가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셸터가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관점으로 분류되는 것들이다. 인간 관람자를 위한 휴식의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 다수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이 자연의 동식물과 인간이 공동의 거주 주체로 혼재된 경우도 있다. 고슴도치 통이라는 이름의 구조물(조셉 타스나디, 게르게이 타스나디, 헝가리)과 인간이 쉬기에는 비좁은 듯하고 자연물이 쉬기에는 넓은 듯한 투과형 구조물(김도현, 한국)은 ‘숲 속 은신처’라는 것이 ‘자연 - 인간’이 공동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넷째, 인간의 과거적 기억과 미래적 상상력으로 빚어진 셸터의 예이다. 한국의 원두막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 셸터(이응우, 한국),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과 미래적 상상이 맞물려 구축한 자신만을 위한 은신처(고요한, 한국 & 배수영, 한국)가 대표적인 예들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셸터의 예들이다. 처음부터 숲 속 작은 동물들의 놀이터로 계획된 셸터(박봉기, 한국)나 커다란 나무둥치의 형상을 빌려왔으나 안전을 위하여 지극히 인공적 소재로 설계된 셸터(피오트르 베솔로슈키, 폴란드)와 선박의 형상을 빌려온 셸터(도날드 버글라스, 뉴질랜드)도 특이한 사례들이다. 
그뿐인가? ‘파괴를 통한 재생’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폭탄 형상의 셸터(위스누 아지타마, 인도네시아)와 기하학적 형상의 셸터(그룹 프로젝트, 헝가리)도 발견된다. FRP와이어를 통해 구의 형상을 만든 셸터(카즈야 이와키, 일본) 그리고 무지개 희망을 찾는 셸터(심경보, 한국)가 소개되기도 한다. 
이처럼 한 달 동안의 기간으로 구축한 올해의 비엔날레 출품작들은 앞서 언급한 생태학적 담론들과 맞물려 ‘자연 - 미술 - 인간’ 사이의 관계를 부단히 모색하면서 비엔날레의 미래를 발전적으로 전개할 여지를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 



출전/

김성호, 인간과 자연을 위한 숲 속 은신처, 2018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숲 속의 은신처, 자연, 사적 공간, 셀터, 카탈로그 서문, (2018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2018. 8. 28 -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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