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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임정은展 / 깊이의 단서, 비가시성을 가시화하는 조형 실험

김성호

깊이의 단서(Clue of profondeur), 비가시성을 가시화하는 조형 실험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I. 깊이의 단서 
작가 임정은의 작업은 그동안 ‘사각형의 변주’, ‘상상속의 공간‘, ‘사각형의 흔적’, ‘빛과 유리 그리고 사각형의 변주’ 또는 ‘통제된 우연’이란 주제에 천착해 왔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이전과 달리 새로운 주제인, ‘깊이의 단서’를 선보인다. 여기서 ‘깊이의 단서’란 무엇인가? 그는 다음처럼 답한다. “깊이의 단서라는 단어가 사색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깊이란 피상적으로 그의 작업에서 조형예술이 견지하는 ‘물리적 속성(physical properties)’과 관계한다. 즉 임정은이 사용하는 ‘깊이의 단서’에서 ‘깊이’란 시각예술에서 ‘가상의 깊이’를 만드는 일루전과 관계하고, ‘단서(clue)’란 이 일루전 창출과 긴밀히 관계하는 점, 선, 면, 형, 색, 질감, 양감과 같은 조형 요소를 지칭한다. 물론 이것은 1차원으로부터 4차원에 이르는 조형예술의 ‘물리적 차원(physical dimension)’을 만드는 단서이기도 하다. 
유념할 것은, 여기서 가상의 일루전은 데카르트(R. Descartes)이래 많은 이들이 찾고자 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보이는 것들’ 속에서 ‘깊이의 단서’를 찾는 그의 작업은 결국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궁극적 관심으로 향한다.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의 철학에서, ‘깊이(profondeur)’는 ‘보이지 않는 것’의 본질이다. 물론 이것은 보이는 것으로부터 모색되는 ‘보이는 것 이면의 세계’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임정은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한다. 
따라서 작가 임정은의 이번 개인전은 ‘조형의 외부 세계로 형식적 확장’을 도모하기보다 ‘조형의 내부 세계의 심층으로 침투’해 들어온 셈이 된다. 그가 방형(方形)을 변주하고 입방체로 확장하면서 색의 파노라마와 조형의 형식을 실험하던 이전 작업으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는 ‘선, 면, 색’과 같은 가시성의 가장 기초적인 조형 요소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성찰하면서 비가시성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 작품 / 임정은, 통제된 우연, 사각형의 변주♡ 2017Nov, 
20 x 20 x 0.5cm(each),  serigraphy &  fused on plate glass, mirror, 2005-2017


II. 깊이의 단서 - 선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와 같은 재현의 언어 속에서 시점과 소실점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선(線)’은 3차원 이미지를 2차원 평면 위에 멋지게 올려 낸다. 납작한 종이나 캔버스와 같은 2차원 평면 위에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처럼 창출하는 일루전’이라는 마술적 효과 때문이다. 시점과 소실점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이나 형상의 외곽선처럼 ‘보이는 선’은 모두 이 조형예술의 일루전을 창출하는 주역이다. ‘선’은 ‘점’과 같은 ‘위치’만을 지닌 0차원의 존재를 ‘위치와 방향’을 지닌 1차원으로 연장하는 최초의 존재이자, 비로소 일루전을 창출하게 만드는 시발점이 된다. 생각해 보라. 그의 주제어를 빌려 말하면, 선은 ‘형(形)을 존재케 하는 단서’임과 동시에 ‘선의 길이, 굵기, 방향, 밝기, 농도, 선들 사이의 간격’ 등에 따라 리듬과 감정을 전달하는 ‘선의 다양한 표현의 단서’가 된다. 
특히 작가 임정은은 이러한 ‘깊이의 단서로서의 선’을 자신의 작품 안에서 ‘벡터(vector)’의 개념으로 수렴한다. 벡터는 ‘방향과 크기를 가지는 양’을 지칭한다. 즉 벡터는, ‘크기의 양(거리, 길이, 질량, 넓이)’을 지칭하는‘ 스칼라(scalar)’와 달리, ‘크기의 양’과 더불어 ‘방향의 양(방향, 속도, 가속도, 힘)’을 함께 지닌다. 벡터는 크기와 방향이라는 두 가지 정보를 모두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칼라와 구별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화살표로 나타낸다. 
임정은의 신작 중에서 흔히 입방체(cube)라 불리는 ‘정육면체(regular hexahedron) 이미지 2개를 겹쳐 놓은 렌티큘러(lenticular) 작품은 이러한 벡터의 개념을 잘 드러낸다. 그 하나는 같은 굵기의 선으로 그려진 입방체 이미지이고 다른 시점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하나는 선의 일부가 굵은 선으로 그려진 입방체 이미지이다. 자세히 보면, 이 굵은 선이 있는 이미지에는 화살표가 두 군데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마치 벡터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index)처럼 보인다. 그가 선의 일부를 굵은 선으로 표시한 까닭은 ‘가는 선’보다 ‘굵은 선’이 진출해 보인다는 조형 원리 혹은 시각 원리를 이용해 보기의 전환을 시도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그는 정육면체의 뒤쪽 면(面, face)을 표시하는 몇 개의 변(邊, side)을 굵은 선으로 표시하거나, 앞면과 뒷면의 몇 개의 변을 동시에 굵은 선으로 표시해서 보기의 전복과 전환을 선보인다. 투시 상 뒷면의 선이 두께 때문에 진출해 보이도록 함으로써, 입방체를 마치 ‘사각뿔대(truncated pyramid)’처럼 보이게 하거나, 혹은 뒤틀린 ‘직육면체(rectangular parallelepiped)’처럼 보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 개의 화살표(처럼 보이는 선)가 개입함으로써 두꺼운 선의 끝부분과 화살표를 꼭지 점 삼아 연결하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면’을 입방체의 공간 안에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면’이란 일루전의 변주가 성취한 또 다른 시각적 효과로 작가 임정은이 언급하는 ‘깊이’의 구체적 사례가 된다. 
이처럼, 선을 ‘깊이의 단서’로서 탐구하는 작품은 커다란 철판을 레이저로 커팅하여 마치 드로잉처럼 만든 ‘투과 체의 철판 작업’에서도 잘 드러난다. 렌티큘러 작품에서 의도했던 일루전이 ‘부조 형 철 조각’으로 혹은 ‘철판 드로잉’으로 변주하여 나타난 셈이라 하겠다. 


임정은, “깊이의 단서-선201812, Clue of profondeur-Line2018Dec”, 
81x81x05cm, Powder coating on plate iron , 2018



III. 깊이의 단서 - 색 
임정은의 작품에서 ‘색(色)’은 어떠한가? 이것 또한 그녀가 언급하는 ‘깊이의 단서’가 된다. 색이란 한마디로 “빛의 파장에 대한 눈의 반응”이다. 풀어 말하면,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결과에 따라 나타나는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색상뿐 아니라, 밝음과 어둠의 상태’를 함께 지칭한다. 즉 ‘색상뿐 아니라 명도, 채도의 속성을 함께 가지는 물리적 현상’인 것이다. 
조형 원리(또는 시각 원리)에 따르면 난색은 한색보다 진출되어 보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임정은은 이러한 색의 속성을 마치 검증하듯이 간략한 실험적 제스처를 통해서 자신의 작품 메시지를 명료하게 시각화한다. 한 장의 플렉시글라스(plexiglass) 위에 다수의 빨간색 입방체를 그리고, 또 다른 플렉시글라스 위에는 똑같은 모양의 다수의 파란색의 입방체를 그린 후, 빨간색 입방체가 있는 판을 파란색 입방체가 있는 판 뒤에 중첩시킨 작품이 그것이다. 빨간색 입방체는 뒤판에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파란색 입방체보다 돌출해 보인다. 또 다른 작품은 이러한 조형 실험을 보다 더 극대화한다. 한 판에는 빨간색의 입방체를 파란색의 것보다 작고 두껍게 그린 후, 파란색이 있는 플렉시글라스의 뒤에 중첩시켰음에도 빨간색의 입방체는 파란색의 것보다 훨씬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임정은의 최근작에서, 선의 굵기는 물론이고 색의 대비를 통해서 크기와 방향을 함께 아우르는 이와 같은 ‘벡터’의 개념은 도처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굵은 선 위에서, 그리고 가시성의 선과 화살표를 잇는 비가시적 면 위에서 드러나는 것이자, 난색과 한색의 대비를 통해서 현현(顯現)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선과 색이 함께 드러내는 통합의 결과물이다. 
보라! 또 한 작품은 앞서 플렉시글라스 위에 올라선 빨간 입방체와 파란 입방체가 만드는 ‘선과 색의 통합’을 극대화한다. 앞판에 새겨진 파란색의 불완전한 입방체와 뒤판에 새겨진 빨간색의 불완전한 입방체가 겹쳐져 ‘하나의 완전한 입방체’를 만드는 방식으로 무수한 입방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빨간색은 파란색의 선보다 두꺼운 굵기(이거나 넒은 면)로 표현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이 ‘두꺼운 붉은 선’은 하나의 입방체 안에서 선의 꼭짓점들을 연결하여 ‘보이지 않는 사각의 면’을 형성하는 단서가 된다. 
또 다른 작품은 ‘깊이의 단서로서의 색’의 차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33 x 23cm의 플렉시글라스 판에 한 개씩의 입방체 이미지를 그려 넣은 5개의 개별 작품이 모여 ‘하나의 시리즈 작품’처럼 구성된 이것은 〈통제된 우연, 사각형의 변주201705(Controlled Coincidence, Variation of cube2017May)〉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에는 ‘빨간색이나 파란색의 선이 아닌 두꺼운 흰색선’을 인그레이빙(Laser engraving) 기법으로 새겨 넣고 그 두꺼운 선들의 꼭짓점을 연결하는 사각의 색 면을 입방체 안에서 마치 마술처럼 선보인다. 앞서 언급했던 작품에서 선보였던 ‘보이지 않는 사각의 면’이, 이 작품에서 비로소 ‘보이는 사각의 색 면’으로 구체화된 셈이라 하겠다. 
사각의 색 면은 입방체 이미지의 내부의 공간을 횡단하면서 입방체 내부를 다양한 방식( -, |, /, )으로 분절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각의 색면’은 실제로는 입방체 이미지를 구성하는 평면의 사각형 내부를 횡단(잇다)하면서 그것을 분절(나누다)하는 것이지만, 마치 입방체의 내부의 공간을 분절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여기서 횡단은 ‘잇다’라는 동사를 분절은 ‘나누다’라는 동사를 소환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플렉시글라스의 표면을 인그레이빙의 기법으로 오목하게 만들어낸 ‘두꺼운 흰색 선’과 표면에 착색된 ‘사각의 색면’은 선과 색의 상호 통합의 결과이자, 임정은이 말하는 ‘깊이의 단서’가 된다.   
한편, 두 장의 유리판에 각각 난색과 한색의 ‘불완전한 입방체 색면’을 그린 후, 두 장을 겹쳐 ‘완전한 입방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나, 한 장의 유리판의 앞뒤로 각각 ‘불완전한 입방체 색면’을 그린 후 앞뒤가 겹쳐져 ‘완전한 입방체’를 만들어내는 작업 또한 색을 통해 ‘깊이의 단서’를 실험하는 대표적인 작업이라 하겠다. 


임정은, “깊이의 단서-색201901-3, Clue of profondeur-color2019Jan-3”, 
68x93x4cm, UV print on Plexiglass, 2019


참고 작품 / 임정은, variation of cube201408, 유리에 혼합재료 67x57cm, 2014.



IV. 깊이의 단서 - 투영과 반영  
임정은의 작품에서 ‘농도(濃度)’는 선과 색의 상호 통합, 그리고 빛을 통과시키는 ‘투영(透映)’과 빛을 반사하여 비추는 ‘반영(反映)’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깊이의 단서’가 된다. 특히 그가 플렉시글라스 위에 물감 색을 겹쳐 올리거나 다른 물감색이 올라간 유리판을 서로 엇갈리게 겹쳐놓음으로써 물감 혼색으로 인해 명도가 낮아지는 ‘감산혼합(減算混合, subtractive mixture)’의 효과를 시도하거나, 반대로 유리나 플렉시글라스 위에 새겨진 물감의 색이 유리를 투영하는 빛에 의해 벽이나 바닥에 색 그림자를 중첩시킬 때 명도가 높아지는 ‘빛의 가산혼합(加算混合, additive color mixture)’의 효과를 시도하는 것은 이러한 ‘농도를 통한 깊이의 단서’를 창출하게 되는 대표적인 예가 된다. 최근에는 유리나 플렉시글라스 앞뒤에서 벌어지는 물감색의 감산혼합을 일부러 경계해 오면서 색 빛의 투영 효과에 보다 더 집중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깊이의 단서’에서 ‘환영의 깊이’란 시점/소실점 같은 대립의 지점들이 오묘하게 맞물려 벌어지는 것이라 할 때, 향후 언젠가는 감산혼합이 그의 새로운 작업 안에 다시 주요하게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관건은, 임정은의 작업에는 시점/소실점 또는 가산혼합/감산혼합의 ‘대립 쌍’뿐 아니라, 볼록/오목, 한색/난색, 투영/반영이 지속적으로 맞물리면서 총체적인 통합의 효과가 늘 변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투영과 반영은 유리의 매체적 특성이 함유하는 다양한 효과들 중에서 대표적 속성이다. 유리는 기본적으로 투영의 매체이지만, 유리가 놓이는 배경의 색에 따라 반영의 효과가 달리 발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투영과 반영의 효과가 맞물리는 매체가 된다. 
보라! 특수 유리판을 덧댄 채 실외의 풍경 이미지를 촬영한 그녀의 사진 작품은 이러한 투영과 반영에 관한 우리의 논의를 매우 현실적인 장 안에서 길어 올린다. 그가 촬영한 연출 사진은 실상 우리가 현실 속에서 자주 목도하던 이미지의 편린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도로를 달리는 고속버스의 차창에 반영된 당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본 적이 있는가? 온통 유리창으로 가득한 빌딩의 표면 위에서 난반사된 거리의 풍경과 푸른 하늘을 본 적이 있는가? 그의 사진 작업은 ‘반영체의 유리를 투영체로 인식했던 우리의 생활 속 경험’을 한 장의 사진 위에서 상기하게 만든다. 그가 외부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 앵글 앞에 설치한 유리판은 입방체의 선묘가 클로즈업된 채 절단되어 있는 이미지가 인그레이빙 기법으로 인해 불투명한 상태로 새겨져 있다. 더불어 이 특수 유리판은 ‘물방울 패턴’과 같은 기포(氣泡)가 다수 생성되어 있는 특수 재질의 것이다. 이 특수 유리판을 통해서 보는 거리는 마치 비 오는 풍경처럼 서정적이다. 유리판 너머 도로에 정차되어 있는 을씨년스러운 오토바이와 주택의 풍경은 어두운 아스팔트 색깔로 인해 유리판 이쪽 면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는 촬영 장소인 고즈넉한 실내의 풍경을 함께 비춘다. 거기에 유리판 위에 새겨진 불투명하고도 굵은 입방체의 선묘! 
또 다른 시리즈 사진에도 이러한 투영과 반영의 효과는 중복된 레이어를 통해서 ‘복수의 피사체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뒤섞는다. 특수 유리판에 덧대고 유리창을 통해서 본 거리의 풍경 이미지, 특수 유리판을 투과하여 촬영한 거리의 유리창으로 가득한 건물의 표면 이미지! 이 모든 현실의 이미지에는 작가의 연출 의도에 따라 반영과 투영의 효과가 겹치고 빛을 굴절시켜 분산시키는 프리즘(prism)의 효과마저 동반하면서, 마치 유령이나 환영처럼 우리의 망막 위에서 일렁인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 임정은의 사진 작업은, ‘농도로서의 깊이의 단서’를 실험하고 복잡한 시각적 일루전을 창출하기 위해, 효율적인 촬영 각도를 고려하고 다양한 연출 효과를 실험한 ‘연출 사진(making photo)'이 된다.
투영과 반영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진 빛의 굴절과 분산 효과들은 크롬 도금으로 반사경의 효과를 만들어낸 둥근 좌대나 인공조명을 밝히는 크롬 도금의 철제 원기둥 작품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작은 사각의 유리판이 투영하는 색 빛의 효과는 크롬 도금이 된 둥근 좌대에 영롱하게 반영됨으로써 투영과 반영의 효과를 동시에 드러낸다. 또한 인공조명이 내장된 철제 원기둥 작업은 어떠한가? 원기둥의 둥근 윗면은 입방체의 선묘 이미지가 일부만 클로즈업된 상태로 레이저로 커팅되어 있다. 이 전체 원기둥은 크롬으로 도금이 되어 반영의 효과를 드러내고 그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인공조명은 투영의 효과를 만든다. 한편 인공조명의 덮개로 사용된 특수 유리는 기포가 생성된 재질이어서 투영되는 인공조명을 난반사시키는 굴절의 효과를 창출한다. 투영, 반영, 굴절의 효과가 하나의 작품 안에서 동시에 현현되는 셈이라 하겠다. 


임정은, “깊이의 단서-투영과 반영201901, Clue of profondeur-Mirror and Reflection
Ø37x9,Ø32x27,Ø32x13,Ø22x10,Ø17x13,Ø17x9(variable size), 
Plate iron on Chromium Plating and Glass, 2019 .



V. 비가시성을 가시화하는 깊이의 단서 - 빛과 움직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가 임정은의 작업은 유리 조각의 단위(unit)가 모여 군집의 조각체를 만들고 그것이 빛의 반영과 투영의 효과를 통해 환상적으로 선보이는 ‘빛의 조각’이었다. 그것은 마치, 선, 색, 투영, 반영과 같은 ‘깊이의 단서’가 무리를 지어 만들어 내는 통합의 결과였다. 최근에 이르는 그의 모든 작업에는 이러한 통합의 조형 언어가 자리한다. 시점/소실점, 가산혼합/감산혼합과 같은 ‘대립 쌍’뿐 아니라, 난색/한색, 투영/반영, 볼록/오목이 지속적으로 맞물리는 총체적인 통합의 효과들이 맞부딪힌다. 그것은 진출/후퇴, 통과/맺힘, 정형/착시, 그리고 보임과/숨김과 같은 쌍방향으로, ‘크기’와 ‘방향’을 동시에 수렴하는 ‘벡터(vector)’의 실천을 시각화한다. 보라! 판화, 사진, 컴퓨터 그래픽, 평면, 부조적 조각 그리고 환조를 만드는 설치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벽을 넘어서는 그의 작업은 이러한 다양한 조형 요소, ‘깊이의 다양한 단서’들이 모여 만든 통합체적 결과물이라 하겠다.   
그는 왜 이러한 통합적 결과물들을 만드는 일에 골몰하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려는 그의 조형의 지향점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된다. 즉 보이는 것들 속에서 ‘깊이의 단서’를 찾는 임정은의 작업은 결국 가시성 이면에 존재하는 비가시성의 것들을 가시화, 현시화 하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빛의 백색광은 대표적이다. 투영, 반영, 굴절의 효과를 통해서 다양한 색으로 분절되어 산포하는 빛은 그것이 원래 보이지 않는 백색광이었음을 증명한다. 또한 유리판을 투영하는 사각의 평면은 ‘색 그림자’를 통해서 입방체로 변신한다. 일루전이 만드는 허상과 착시! 여기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상관성이 작동한다. 색 그림자를 야기한 백색광으로서의 빛처럼 ‘보이는 것’의 원천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의 견해에 따르면, 가시성의 세계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가시성이 하나의 특정한 부재로 현존하게 하는 비가시성의 층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사물의 전체를 볼 수 없듯이, 가시성이란 언제나 비가시성을 전제한다. 그런데 이 비가시성은 가시성이 배제시킨 잔여물이기보다 원초적인 것이다. 
가시적인 것들 속에서 ‘깊이의 단서’를 찾는 임정은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비가시적인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퐁티가 언급하듯이, 깊이란 가시적인 것이 아니며, 비가시적인 것이다. 즉 ‘깊이’란 바로 ‘비가시적인 것의 본질’인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깊이의 세계는 보이는 것들로부터 단서가 찾아진다. “깊이란 내가 실재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든 것은 아니지만, 사물들이 순수하게 머물 수 있는, 즉 사물들이 사물들로 머물 수 있는 수단이다. 깊이가 없다면 하나의 세계 혹은 존재는 없을 것”이라는 퐁티의 언술을 곱씹어 보자. 미술이라는 가시성의 세계 속에서, 입방체가 평면 속에 머무는 형식, 아니 그것이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을 탐구하는 임정은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읽힌다.   
그가 찾고자 하는 ‘깊이의 단서’는 그러한 점에서 ‘보이는 세계’ 속에서 찾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이르는 열쇠와 같은 것이다. 그가 이러한 지점에 이르고자 탐구해 온 ‘빛’의 탐구 외에 ‘움직임’에 대한 탐구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이르는 주요한 열쇠가 된다. 생각해 보라. 퐁티에 따르면, 주체가 ‘깊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야 하고, 세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포기해야 하며, 자신을 동시에 도처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즉 ‘보는 것에 대한 관성적 인식’을 탈주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려는 노력이 요청되는 것이라 하겠다. 
임정은의 작업에서 이러한 ‘깊이의 단서’를 찾는 주요한 조형적 연구는 ‘빛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움직임에 대한 탐구’라 할 것이다. 그는 이전 전시에서 조명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유리 조각의 군집체의 색 그림자를 변화시키는 운동의 방식을 실험했다. 그는 현재 이 유리 조각의 유니트나 입방체가 움직이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그가 천착하는 ‘깊이의 단서’를 미술의 지각장(perceptual field) 안에서 구체화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생각해 보자. 움직임은 시간을 동반한다. 1차원에서부터 3차원에 이르는 공간상의 존재가 비로소 실존(實存 existence)’이라는 가치를 가지게 되는 계기는 ‘시간의 개입’으로부터 비롯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계가 비록 ‘3차원 공간’이지만, 인간 존재가 ‘실존적 가치’를 가지는 까닭은 바로 시간의 흐름이 결합한 ‘4차원 시공간’ 속에 살고 있는 ‘지속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퐁티가 “사물들이 사물들로 머물 수 있는 수단”을 ‘깊이’로 파악했듯이, 사물에게도 ‘실존’의 가치와 유사한 존재 방식을 부여할 수 있는 방식은 ‘움직임’이다. 시간성의 개입으로 한 사물이 다른 사물과 겹쳐져 나타날 때, ‘사물들의 보이지 않는 면’(작가 임정은의 주제로 말하면 깊이의 단서)을 발견하게 되듯이,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탐구는 ‘비가시성을 가시화하는 깊이의 단서’에 골몰하고 있는 그의 작업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임정은, “깊이의 단서-빛★201901, Clue of profondeur-Prism★2019Jan”
100x120x22cm, Laser engraving, mixed media on plexiglass and panel, 2019




임정은 林廷恩(Jeoungeun Lim)
미국 뉴욕 Rochester Institut of Technology대학원에서 판화전공으로 석사 및 성신여자대학교대학원 Multiple Art & Technology전공으로 박사 취득
2016년 “코리안 아티스트 프로젝트 선정 작가” 
2019년 세브란스 아트 스페이스(Severance Art Space), 기획:Artpark “깊이의 단서(Clue of profondeur), 비가시성을 가시화하는 조형 실험”, 2015년 스페이스 두루(Space duru) “사각형의 변주”, 2013년 GS타워의 더 스트레이트 갤러리(The Street Gallery) “빛과 유리 그리고 사각형의 변주”, 2011년 갤러리 그림손 “상상속의 공간”, 2009년 흰물결 아트센터 “상상속의 공간”, 2008년 갤러리 소소 “사각의 흔적”등 다수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했다. 임정은 작품은 부산시립미술관(2003), 부산, 서울시립미술관(2011, 2016), 서울,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2007,2010)”“정부미술은행(2013)”, 과천, 한글라스-파란네모(2005), 서울, 철강신문(2008), 서울, 


출전/
김성호, 「깊이의 단서(Clue of profondeur), 비가시성을 가시화하는 조형 실험」, 『임정은展』, 전시 카탈로그 서문, 2018, (임정은 전, 세브란스아트스페이스, 2019. 2. 1 -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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