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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정풍성 / 에브리원’의 새로운 유형론

김성호

‘에브리원’의 새로운 유형론, 조형의 외면으로부터 질료의 내면으로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I. 에브리원의 새로운 유형 - 캐릭터의 원형과 전형 너머  
‘에브리원(Everyone)’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정풍성의 조각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그것은 마치 애니메이션이나 카툰에 등장하는 한결같이 ‘순수하고 귀여운 어린아이’의 캐릭터 이미지(character image)처럼 보인다. 작품을 보자. 작고 앙증스러운 몸집에 비해 과도하게 커다란 머리, 머리카락 하나 없는 민머리로 인해 넓어 보이는 이마, 불룩하고 커다란 누두덩이로 인해 마치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기다랗고 가느다랗게’ 뜬 실눈, 콩알처럼 동그랗고 자그마한 코, 팬티만 입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게 도드라진 배꼽과 배불뚝이 체형, 그리고 차려 자세로 부동(不動)의 정면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때로는 한쪽 팔을 들고 있거나 때로는 두 손으로 뒷짐을 지고 있는 식으로 개별 작품마다 미세하게 바꾼 포즈 등은 전형적인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이련 면에서 작가 정풍성이 만든 조각상은 가히 하나의 ‘캐릭터 디자인(character design)’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캐릭터 이미지와 캐릭터 디자인에서 주요한 것은 무엇보다 캐릭터의 원형(原型, archetype)을 잘 살리는 일이다. 내용이나 형식이 “같거나 비슷한 여러 개가 만들어져 나온 본바탕”을 원형이라고 할 때, 이 원형은 ‘전형(典型, prototype)’을 만들어 내는 일과 맞닿는다. “같은 종류의 사물 가운데서, 그것의 본질적이고 일반적인 특성을 가장 많이 지닌, 본보기로 삼을 만한 사물. 또한 제작물의 근본이 되는 본보기, 모범” 등으로 해석되는 ‘전형’이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백설공주 동화에 나타난 인물들의 연상되는 특징과 같은 것이다. 검은 머리의 백설공주, 큰 코를 지닌 일곱 난장이는 이러한 전형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원형과 전형은 그것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형식’에 의해서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는 존재이다. 여기서 그 새로운 형식은 ‘유형(類型, type)'이다. 유형의 사전적 의미가 “어떤 일군(一群)의 사물에 공통된 특징이 있다고 간주되는 형식”과 “보편적인 것을 모범적으로 표시하는 대표적인 그 무엇”을 지칭한다고 볼 때, 정풍성의 작품 속 ‘유형’은 어린아이에 대한 ‘원형 또는 전형’을 해체한 그 무엇이다. 그것은 원형이나 전형을 해체한 새로운 형식이었으나 언제든지 또 다른 원형이나 전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변형의 ‘잠재성(virtualité)’을 함유하고 있는 존재이다. 정풍성의 창출하는 ‘어린아이’ 조각은 ‘순수의 어린아이’라는 원형과 전형을 해체하여 재구성한 어떠한 유형을 갖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정풍성의 인물 조각은 ‘어린아이’에 관한 원형, 전형을 비트는 새로운 유형이다. 그의 언급에 따르면, 그의 어린아이 인물상은 무엇보다 “눈을 감고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머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모습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감성에 의지하는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깊은 생각에 빠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의 전형적 이미지를 비틀어 만든 정풍성의 새로운 ‘유형’이다. 
보라! 그의 작품 〈에브리원〉 시리즈에는 어린아이의 웃음은 온데간데없고 경직된 얼굴 표정과 부동자세로부터 오는 긴장감이 떠돈다. 어떤 면에서 얼굴 표정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의 조각상에는 입과 귀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관련하여 다음처럼 말한다: “입과 귀가 없는데 이것은 오로지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로 자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유아가 인간의 사회화를 성취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방한다는 프로이트(S. Freud) 식의 견해에 근거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관은 귀와 입이다. 귀로 수용하고 입으로 모방을 실천하는데 그것이 없다니! 그런 면에서 정풍성의 조각에 등장하는 ‘어린아이’는 ‘성인인 그가 창출하는 내적 자화상이자, 자신의 내적 성찰을 위해 전형을 비틀고 해체하여 현재화한 새로운 유형의 존재’라 할 것이다. 


정풍성, < everyone >, 40x37x70cm, bronze, 2017

정풍성, < everyone >, 15x20x30cm, bronze, 2018


II. 에브리원의 유형론 - ‘아무나’로부터 ‘누구나’로   
조각가 정풍성의 ‘현재화한 새로운 유형’이란 화두는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 제목 ‘에브리원(Everyone)’이 배태하고 있는 의미론으로 이동한다. 이 용어는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 모두’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용어는 ‘각자 모두, 누구든지’의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부정문에서는 ‘아무나, 아무라도’와 같은 의미의 노원(No one), 노바디(Nobody)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쓰임새를 변별하기 위해서 우리는,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Anyone can do something, but not everyone can do it)”라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여기서 ‘누구나’는 “특정한 사람이 아닌 막연한 사람을 가리키는 인칭 대명사”인 ‘누구’에 “어떤 대상이 최선의 자격 또는 조건이 됨을 뜻하는 보조사”인 ‘나’가 결합한 용어이다. ‘아무나’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결합된 용어이지만, 흔히 부정의 뜻을 가진 서술어와 호응한다. 그런 면에서 편차가 있기는 하나 ‘누구나’는 긍정적 의미를, ‘아무나’는 부정적 의미를 견인한다. 
정풍성의 작품 테마인 ‘에브리원’은 이러한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그의 〈에브리원〉은 ‘아무나’라는 부정으로부터 ‘누구나’라는 긍정의 의미로 전환되면서 발현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하겠다. 그의 작가노트에 나타난 다음과 같은 ‘체험적 진술’은 이러한 ‘부정으로부터 긍정으로’의 변환의 관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나의 심리적 불안감을 작품 속에 내제시켜 표현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예술가로서의 현실적 위치가 나를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하였으며, 자아 정체성의 혼란과 가치관의 상실로 이어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느낀 경험과 감정들을 작품 속에 내제시켜 표현하고자 하며, 불안한 심리를 해소하기 위해 캐릭터라는 요소를 통하여 유희적으로 표현해 내고자 한다.” 
그렇다. ‘어린아이’를 형상화한 〈에브리원〉이라는 그의 긍정의 아이콘인 ‘캐릭터 이미지’는 성인인 작가가 사회 속에서 체험하고 있는 심리적 불안감이라는 부정적 요소로부터 태어났다. 그것은 몸은 커가고 있는데, 마음은 유아기를 탈주하지 못한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찾아왔던 사춘기를 넘어선지 오래된 성인이 재차 겪고 있는 제 2의 사춘기의 심리 상태, 즉 키덜트(kidult)의 심리와도 연동된다. “나의 작품 형상은 아이의 신체를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현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가 바라는 기대에 만족감을 줄 수 없는 어른의 모습을 발견하였을 때 과거로의 귀소 본능을 자극하였고, 어린 시절 단지 놀이를 하며 행복해했던 기억은 작품에서 어린아이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나에게 아이의 모습은 순수함을 의미하며, 순수함을 간직하고 싶은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작가 정풍성의 작품 〈에브리원〉이 ‘새로운 유형’으로 정착된 ‘정풍성의 유형론(類型論, typology)’은 이처럼 ‘아무나’의 부정로부터 ‘누구나’의 긍정으로 이동하는 과정 속에서 창출된다.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때 문득 머리가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상상을 했던” 경험으로부터 촉발된 ‘머리가 과도하게 커다란 어린아이’의 형상이나 위의 언급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불안한 심리를 해소하기 위해 캐릭터라는 요소를 통하여 유희적으로 표현해 내고자” 했던 작품 계획은 모두 그의 조각의 ‘유형론’이 부정으로부터 긍정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창출된 것임을 반증한다. 


정풍성, < everyone >, 15x20x30cm, F.R.P에 우레탄도색, 실리콘, 2016


III. 에브리원의 작품 존재론 - 조형의 외면으로부터 질료의 내면으로
정풍성의 조각에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심성’과 ‘성인의 불안한 심리’가 병존한다. 팔다리의 비례가 짧은 어린아이의 배불뚝이 외모와 병합된, 사색하듯이 눈을 살포시 감은 기다란 눈매와 뒷짐을 지고 있는 포즈는 아이와 어른의 존재적 면모가 상치(相値)하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의도한 바이다. 캐릭터 이미지와 같은 조각의 형식 안에 작가가 감정 이입한 창작의 메시지를 드러내고자 한 까닭이다. 
그 메시지란 본질적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과 같은 무거운 사유이지만, 작가 정풍성은 그것을 ‘불안한 현대인의 심리에 대한 조형적 진술’ 정도로 가볍게 치환한다. 애초에 그의 〈에브리원〉 시리즈의 출발 자체가, 성인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의 혼란과 가치관의 상실”을 체감했던 ‘경험과 감정들을 단순히 캐릭터 이미지 안에 유희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생존의 문제 앞에서 작가로 살기를 결단하는 시점에서의 고민의 무게가 가볍지는 않았을 것이란 예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그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진중한 질문으로부터 “문득 머리가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가벼운 상상을 하게 된다. 이윽고 작가의 마음을 채운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절로 회귀하고 싶은 자신의 단순한 욕망을 ‘머리가 큰 어린아이’에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에브리원〉 시리즈를 출발시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의 작품 〈에브리원〉 은 피상적으로 ‘어른 같은 아이’, 즉 ‘어른 아이’와 같은 위트적 면모를 지니게 된다. 2015년 제작된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F.R.P에 우레탄 도색을 한 배불뚝이 소년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뒷짐을 지거나 한쪽 손을 가슴에 모으고 강연을 하거나 훈계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어른 흉내를 내고 있다. 광택의 분홍색이나 주황색의 표면을 지닌 그의 인물상들은 풍자적인 캐릭터 이미지들이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체 조각이 담은 위트와 유머는 쌍둥이 같은 동형동체가 한 명은 신랑 예복을 입고 한 명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결혼식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상황조각’에서 극대화된다. 동형의 한 쌍의 ‘어른 아이’ 커플을 통해서 현 세태를 꼬집고 있는 풍자 조각의 면모까지 선보인 셈이다. 
동형의 커플은 남성과 여성으로 치환되는 이러한 류의 작업 외에도 서로의 머리를 축으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듯한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유념할 것은 이 작업에서는 그가 우레탄 도색 위에 실리콘을 추가하면서 만들어진 ‘하다 만 듯한’ 미완의 효과를 통해서 재료적 차원의 새로운 성찰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동형의 인물상은 그대로인데, 조각의 표면 위에 실리콘이 반쯤 도포되면서 중력에 의해 조각의 표면과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실리콘의 흔적은 원래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발견이었다. 
이처럼, 의도적 창작 속에 개입한 우연성은 작가의 작품을 질료적 차원에서 여러 방법론을 모색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특히 그는 최근에 거푸집을 통해서 같은 형상의 F.R.P 인물상의 에디션을 무수히 만들어 내는 쉬운 방식을 포기하고, 동판 조각을 일일이 용접하는 방식을 통해서 매 작품을 수공의 노동력을 투여해서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난한 노동력은 섬세한 수공의 과정을 요구하면서 예측하지 못한 우연성의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삼각형의 형태로 만들어진 동판 조각을 용접한 후, 조각의 표면에 달라붙은 용접의 잔여물들을 그라인더로 제거하는 과정에서 창출되는 뜻밖의 효과나 조각 표면에 광택 효과를 내는 버핑 작업에서 우연하게 발견한 질료적 효과는 예견하지 못한 뜻밖의 조형적 수확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조형의 과정에 개입한 실수의 흔적이기도 했다. 
이러한 우연과 실수의 흔적들은 그의 작품에 있어서, 작품의 형식 안에 내재시킨 ‘인간 존재론에 관한 주제의식’보다 ‘작품 존재론에 관한 의미론’을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것은 조형의 외면을 탐구하는 태도에서부터 질료의 내면을 탐구하는 태도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되면서 맞닥뜨린 의외의 수확이기도 했다. 

정풍성, < everyone >, 각15x20x30cm, F.R.P에 우레탄도색, 2015


정풍성, < everyone >, 각15x20x30cm, F.R.P에 우레탄도색, 실리콘, 2016



IV. 정풍성의 에브리원의 미래적 전망
아직은 신진 작가인 정풍성의 작업이 어떻게 변모할지 예단하는 일은 무리일 수 있다. 끝없이 변모하는 미술 현장 속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찾기 위해서 부단히 실험과 연구를 거듭하면서 변모에 변모를 거듭해야 할 많은 시간을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가 자신의 작가적 정체성을 고민하다가 만난 작업의 방향성이 이제는 새로운 전환점에 들어서 있음을 말이다. 그가 ‘어린아이’ 캐릭터의 전형적 이미지를 해체하고 ‘어른 아이’의 새로운 유형으로 재구성하는 자신만의 유형론을 만났듯이, 그는 또 다른 새로운 조형 언어를 만나 자신만의 유형론을 구축해 나갈 것이다. 그가 자신의 〈에브리원〉 시리즈를 ‘아무나’로부터 ‘누구나’라는 긍정의 기호로 치환해 나갔듯이, 예측할 수 없는 작업상의 어려움마저도 긍정의 기호로 치환해 나갈 것을 안다. 
판박이 같이 만들어 내던 동형의 캐릭터 이미지는 처음부터 전환의 필요성을 요청했던 것이지만, 그것은 지금의 작업을 잉태케 한 주요한 자신임을 망각하지는 말 일이다. 자신의 작업에서 새로운 질료의 탐험을 하거나 우연성의 효과를 창출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러한 동형의 캐릭터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남겨진 관건은 있다. 새로운 전환의 지점을 마련한 ‘캐릭터 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성찰을 통한 ‘모종의 변주’가 절실해 보이는 까닭이다. 필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동판 용접 조각’이라는 작가에게는 새로운 조형 언어가 비로소 그 변주의 단초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 변주의 주체와 그 변화의 몫은 당연히 작가의 것이다.  ●

< everyone >, 각15x20x30cm, F.R.P에 우레탄도색, 약 6x8m 공간 내 가변설치, 2016.


출전/
김성호, 「‘에브리원’의 새로운 유형론, 조형의 외면으로부터 질료의 내면으로」, 정풍성 작가론,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차세대유망예술인 지원사업-비평가 컨설팅, 자료집,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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