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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보이는, 그 너머에 보이는展 /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 너머

김성호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 너머 : 물질과 정신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1. 프롤로그
포항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보이는, 그 너머에 보이는》전은 입체, 설치 등의 작품 속에 담겨진 미술사적 궤적을 미학의 담론으로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1960년대 미니멀리즘의 전통을 잇고 있는 20세기 서구 미술사의 대표 작가 4인의 작품들과 그것과 조응하고 있는 7명의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서 시각성으로 대표되는 ‘지각’의 문제의식으로부터 확장되어가는 현상학적 미학을 함께 읽어내는 것이다.

기획자가 언급하고 있듯이, 전시명으로 제시된 “보이는, 그 너머에 보이는(What you see is more than what you see)”은 프랭크 스텔라가 언급함으로써 미니멀리즘의 시작을 알렸던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What you see is what you see)”라는 아포리즘(aphorism)에 응대하는 기획자의 명제이다. 즉, ‘보이는 것’에 관한 우리의 ‘관성적인 인식’에 제동을 걸고 ‘보이는 것 너머의 존재’를 탐구하려는 것이다. 풀어 말하면, 1960년대 스텔라의 언명을 ‘지금, 여기’에 소환하여 다시 곱씹어 보고, 그것으로부터 출발한 당시의 미술사적 문맥을 더듬어 다시 살펴봄과 동시에, 그 언명을 넘어선 지점에서 ‘여전히 같은 맥락을 지닌 채 다른 모습으로 꿈틀대고 있는 오늘날의 미술’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1960년대 이래 서구사적 맥락에서 작동한 미니멀아트 유형의 설치 미술에 대한 한국 미술의 입장은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는 기획이기도 하다. 즉, 1960년대 이후의 미니멀리즘으로 대표되는 서구 미술과 그것이 1970년대 새로운 미학의 지평 속에서 이식된 한국 미술의 양상은 무엇이었는지를 탐구하면서 오늘날 ‘지금, 여기’에 여전히 남겨진 과제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탐구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필자는 이 글에서 이러한 과제와 문제의식을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 너머: 물질과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본다.


전시 전경

(중략)
II. 서구의 1960년대 미니멀아트 전후 : ‘새로운 것들’의 종착지, 대립과 통합
III. 한국의 1960년대 추상미술 전후 : ‘오래된 것’의 귀환, 한국적 추상과 다원주의
IV.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의 과제 : 예술가 주체의 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V. ‘미니멀리즘과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 : 물질과 정신
《보이는, 그 너머에 보이는》전은 앞서의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여러 가능성을 모색한다. 포항이라는 지역 특유의 정체성에 근거한 ‘스틸아트에 대한 규정’, ‘철을 재료로 한 조각과 스틸아트의 경계 설정의 문제’, ‘스틸아트의 확장의 가능성’ 등의 문제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전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섹션1), ‘매체의 확장’(섹션2) 그리고 ‘물질을 넘어선 정신의 발견’(섹션3)이라는 소주제로 구성되었다. 

섹션1에서는 모더니즘의 형식적 종착지인 미니멀아트가 마이클 프리드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연극성과 현전성에 대해 ‘특정한 오브제(specific object)’50)라는 저작에서 자신의 이론으로 대항했던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의 이념을 일정 부분 실천하는 당대의 동료 작가들의 작품이 참여한다. 칼 안드레(Carl Andre, 1935~ ), 댄 플레빈(Dan Flavin, 1933~1996), 야니스쿠넬리스(Jannis Kounellis, 1936-2017)가 그들이다.


칼 안드레의 작품 ‘Aluminum Square 9’(2006)은 미술사에 익히 알려진 그의 시메트리 구조의 수평 지향적 세계를 선보인다. 그는 미니멀아트의 비관계적 구성(non-relational composition)의 조형 방식을 “비대칭적 시메트리(anaxial symmetry)”51)라고 명명한 바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논의였던 보이는 것(대칭적)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미니멀아트 미학)에서 보이는 것(유닛의 미세한 변화와 그것이 야기한 미니멀아트 미학)을 곱씹어 성찰하게 만든다. 0.5cm의 얇은 두께를 지닌, 가로, 세로 40cm의 정사각형의 알루미늄판 유닛 81개가 모여 형성하는 그의 ‘거대하고 낮은’ 조각은 작품 주위를 빙빙 돌게 만드는 ‘주항(周航)의 시간(temps de cirumnavigation)’52)을 통해 관객의 참여를 독려한다. 거대한 크기와 흐릿한 반영성을 지닌 알루미늄 표면의 효과가 관객의 적극적인 관여를 도모함으로써, 즉각적인 관람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전성(presence)을 배태하면서 연극적인 호흡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댄 플레빈의 작품 ‘Untitled (fondly to Margo)’(1986)는 244cm에 이르는 형광등 여러 개를 흰빛과 노란빛으로 나뉘어 집적해서 서로가 대비되는 집합체로 세운 것이다. 그는 “가장 간단한 형태가 가장 미학적”이라는 타틀린(Tatline)의 원칙에 영감을 얻어53) 형광등, 네온 등의 산업 재료를 사용한 작품을 줄곧 선보여 왔는데 이번 출품작에서도 이러한 단순성의 미학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야니스 쿠넬리스의 작품 ‘Untitled’(2013)는 살을 편 부채와 같은 형상으로 철판을 중첩시키고 절단된 H빔과 자연석을 와이어와 쇠고리로 연결시킨 것이다. 이 작품은 미니멀아트의 정형화된 작품과는 궤를 달리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Arte Fovera)’의 중심 작가로서 ‘가장 단순한 형태’를 지향하기보다 흔한 자연 재료와 공업 재료 등 매우 보잘 것 없는 재료를 통한 ‘가난한 미학’을 선보이는데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특성은 그를 포함하여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 마리오 메르즈(Mario Merz), 루치아노 파브로(Luciano Fabro), 피노 파스칼리(Pino Pascali) 등과 같은 작가들은 미니멀아트뿐만 아니라, 퍼포먼스아트, 프로세스아트 등과 결속시키면서 상업 지향적 예술 세계에 대항했다.54)





리처드 롱의 작품 ‘Han River Circle’(1993)은 한강의 수다한 강돌들을 지름 560cm 크기의 커다란 원형으로 배열해 만든 것이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야외에서 대지미술을 실천하고, 이후 미니멀아트의 형식으로 실내의 공간에 구축된 것이다. “대지미술은 회화가 그러한 것처럼, 고단한 대규모적 노동과 더불어 상투성을 만들어내는 형식”55)이라는 주장처럼, 리차드 롱은 “땅에서 직접 행하고 그 땅과 함께”56) 일하는 문화지리학자 코스그로브(Denis E. Cosgrove)의 고단한 노동 철학을 명상처럼 수행한다. 커다란 서클 위에 자연의 강돌을 수평적으로 배치해 만드는 ‘자연 속의 환원적 도상’은 ‘자연의 근원적인 순환의 질서’를 상징한다. “만약 조각이 공간에 서 있게 된다면, 그것은 단지 조각 자체라는 사실보다 기호로서의 인공적인 구조물이 될 위험이 있다”57)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리처드 롱의 작업이 자연 본성의 질서에 순응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 태도는 한편으로는 미니멀아트를 반대하고 한편으로는 미니멀아트를 계승하는 또 다른 차원의 미학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섹션1)에서 선보이고 있는 미니멀아트의 범주에 속하는 해외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에 대한 하나의 단초를 마련한다. 특히 야니스 쿠넬리스의 ‘흔한 재료를 통해 구축된 가난한 미학’, 칼 안드레의 ‘비대칭적 시메트리’, 리처드 롱의 ‘자연의 순환 미학과 고단한 노동 예술’과 같은 특성은 한국의 포스트미니멀리즘이 지향하고 있는 물질을 대면하는 정신과 오래된 전통에 대한 담론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김희성은 이번 전시에 3점의 작품을 출품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외견상으로 얇은 두께의 철판을 바닥에 낮게 깔아놓은 칼 안드레의 ‘수평 지향적 조각’과 닮아 있다. 칼 안드레가 비교적 작은 크기의 모듈을 사방으로 이어 붙인 멀티플(multiple)의 방식으로 정방형 조각을 완성하는 것과 달리 그는 한쪽의 방향으로 이어 붙인 ‘길이의 조각’을 선보인다. 얇은 철판을 이어 붙이는 그의 작업은 “물질의 크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식”58)이자, 단순한 형태의 생명을 연장하는 방식이며, ‘물질과 공간을 함께 작품화’59)하는 방식이 된다. 고무판 위와 그 주변에 자연석을 드문드문 놓은 설치의 언어와 철판 위에 흔적처럼 칠해진 페인팅 등을 통해서 그는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흐리고 관객으로 하여금 ‘눈과 마음으로 작품에 다가서게 하는 비조각, 비회화’60)의 접점 지대에서 부단히 ‘인공-자연-작품에 대한 관계의 질서’를 탐구한다.





최인수는 이번에 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점토 덩어리를 바닥에 굴려 형상을 만들고 주물로 캐스팅된 작품 3점이 그것이다. 비교적 길이가 짧은 2점의 작품 ‘길’(1995, 1996)과 기다란 원기둥 형상의 작품 ‘먼 곳으로부터 오는 소리’(1992)를 통해서 그는 ‘프리드가 비판했던 연극성이 철저하게 배제된 상태에서 탈미니멀리즘적 입장에서의 물성 탐구’61)에 집중한다. 최인수는 완성과 거리를 둔 작품을 통해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표현의 포기 등에 의해 드러나는 비결정의 미학”62)을 꿈꾼다. 보라! 흙덩이가 굴려졌던 바닥의 공간과 시간을 기억하는 검붉게 녹슬어 가는 캐스팅된 쇳덩어리는 혹자의 평처럼 “지금도 굴러다니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물질”63)처럼 보인다. 그의 쇳덩이는 땅 위에서 펼치던 그의 어린 시절 그림 놀이처럼64), 목적지가 특별히 없는 무위(無爲)의 길을 찾아 떠난다.




원인종은 알루미늄 판 위에 철선을 용접하여 만든 작품 ‘산수’(2008)를 선보인다. 그것은 철선이라는 단위 요소들이 연접하여 만든 포스트미니멀의 재료학을 구현한다. 한때 “육중한 덩어리로 구워낸 테라코타의 피부에 박혀 있는 철조각과 초벌구이 된 흙의 붉은 지층”65)을 통해 문명 이전의 세월의 흔적을 질료 안에 각인시켜 왔던 그의 작업이 보다 명징하게 문명의 피부를 만난 셈이다. 그의 작업은 ‘이전의 구조 위주의 조형 언어’66)로부터 물질과 구조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짙은 피부를 가진 철선의 촘촘한 군집 사이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수직과 사선으로 된 ‘밝고도 좁은’ 공간을 보라! 이곳(것)은 ‘철선으로 채워진 공간 너머 비움의 공간’이다. 행하지 않음을 통해서 행함의 효과를 드러내는 그의 작품은 휘어지기 쉬운 유약한 재료를 견고하게 만드는 변성의 질료학을 선보이면서, 서구적 미니멀리즘의 빈틈을 비움의 철학으로 메운다.





심문섭은 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관계 77’(1970), ‘현전’(1979, 1992)이 그것이다. 특히 그의 1970년 작품은 ‘제1회 한국일보 대상전’에서 ‘조각 부문 우수상’ 수상작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청년 작가들의 조각적 관심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미니멀아트의 대표적 특성 중 하나인 ‘버핑(buffing)이 된 스텐리스 스틸’이 야기하는  ‘철의 표면이 지닌 반영성’을 계승하면서도, 3개의 다른 형상의 조각으로 병치하여, ‘미니멀아트가 가시화했던 비관계적 구성’을 고의적으로 해체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친미니멀리즘/탈미니멀리즘’을 조형적 의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 포스트미니멀아트로 분류되곤 했던 그의 작품은 줄곧 ‘서구적 미니멀아트의 양식을 변형함으로써 한국적 미감을 담고자 했던 것으로 평가’67)받는다. 그의 ‘목신’ 시리즈는 “농기구나 문짝 등의 전통적인 생활 용구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졸하지만 단순소박한 아름다움으로부터 비롯된 것”68)이다. 한편 이번 전시의 5m 길이의 대형 철조각인 〈현전〉시리즈는, 프리드가 미니멀아트를 비판하기 위해 ‘연극성’과 함께 사용했던 ‘현전’이란 용어를 긍정적 의미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한국의 전통 정신과 더불어 ‘미니멀리즘의 변형체’로서의 ‘포스트미니멀리즘’을 줄곧 시도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우환은 1점의 회화 시리즈 ‘조응’(2004)과 2점의 설치 작품인 ‘관계항’(1984, 2018)을 선보인다. 그는 미니멀아트에 대항하는 ‘모노하(物派)’의 주도적 비평가이자 작가로서 “우리나라 단색파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그의 물성과 장소 개념에 기초한 회화 작업이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형성에 이론과 방법적 근거를 제공했다”69)는 평가를 받았다. “나의 관심은 이미지나 물체의 존재성보다 만남의 관계에서 오는 현상학적인 지각의 세계에 있다”70)는 언급은 이우환의 작업이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과 동양 사상을 접목’하는 미학적 관점으로 실천되었음을 반증한다. 포항시립미술관 밖 ‘야외조각공원’에 설치한 대형 신작, ‘관계항’(2018)은 풍경 위에 직립한 두꺼운 철판을 사이에 두고 큰 자연석이 마주하는 형상으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이 작품은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석(원초적 자연)’과 ‘별 가공을 하지 않은 철판(원초적 문명)’이 이루는 만남의 관계학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71) “하나의 상황 속에서 타와 관련을 꾀하는 짓거리”로서 그의 작업은 결국 “고정된 물(物)이 아니라 가변적인 일(事)로 환치하는 일”인 것이다. 그것은 결국 “공간과 보는 자와도 관련짓게 하는 짓거리”이자, “직접성이 강한 대화를 시도해본 것”이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철판’과 ‘돌’이란 질료는 이우환을 거쳐서 “존재와 관계라는 매우 철학적이면서 또한 예술 지향적 성격을 드러내는 작품”72)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승택은 2점의 설치 작품 ‘무제’(1982, 2015)를 선보인다. 그의 작업은, 노끈, 조약돌과 같은 가볍고 보잘 것 없는 재료들이, 그의 창작 행위의 개입을 통해서, 역동성을 동반한 작품으로 변화하는 ‘변주의 미학’을 드러낸다. 하나의 작품은 여러 개의 강돌에 홈을 내고 그것들을 노끈으로 묶어 양 방향에서 들어 올린 것이다. ‘유약하고 느슨했던 노끈’들이 중력에 순응하는 ‘가벼운 돌’의 추락을 막게 되면서 ‘직면하게 되는 팽팽한 긴장감’은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중력을 매우 효율적으로 가시화해서 보여 주는 기제가 된다. 마치 그가 “비시각적인 공기를 시각화했고, 줄이며 헝겊, 원목, 한지, 백자, 책, 돌멩이를 등장시켜 재래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비조각적인 개념”73)에 천착해 왔던 것처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것은 하찮고 가벼운 재료들이다. 또 다른 작품은, 매듭 맺힌 노끈을 마치 월 드로잉(wall drawing)을 하듯이 설치한 작품이다. 그것은 화이트 큐브의 벽면을 캔버스로 삼은 회화이자, 부조 형식의 조각이며, 끈을 화두로 한 대형 설치작품이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작가에 의해 완료된 채 물질에 의해 지속되는’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그것은 ‘조각이 아니거나 조각으로 한정되지 않는’ '비(非)조각의 미학'을 선명히 드러낸다.





박종규는 ‘구현’(2017)라는 같은 제목의 여러 점의 캔버스 회화를 선보인다. 그것은 점들(dots)과 파선(破線)들의 변주로 가득한 무엇이다. ‘섹션2 매체의 확장’에 마련된 그의 작품들은 미니멀아트-포스트미니멀아트로 이어지는 ‘다원주의 추상’의 영역에 위치한다. 그의 작품은 컴퓨터의 장애가 야기한 디지털 찌꺼기, 즉 ‘배제된 노이즈(noise)’로부터 출발한다. “미니멀리즘적 측면에선 작업을 할 때, 선택을 제외한 나머지는 배제시킵니다. 그런데 저는 제거한 부분들, 혹은 오류 같은 것에 오히려 미술적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의 언급처럼 미니멀리즘이 버린 ‘배제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의 작업은  ‘컴퓨터의 오류 - 노이즈 - 암호화된 픽셀(pixel) 이미지 - 디지털 출력 - 캔버스 위 콜라주와 데콜라주 - 채색’ 등의 과정74)으로 펼쳐진다. 그런 의미에서 뒤집어 말하면, ‘평면, 판화, 사진, 미디어, 설치,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그의 다양한 작품에서, 미니멀식의 모듈은 픽셀이며 그 원천 소스는 노이즈가 된다. ‘보이는 것 너머에서 온 보이지 않는 노이즈’와 같은 비물질이 그의 작품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VI. 에필로그 :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 너머
글을 정리하자. 1960년대 중반으로 설정되는 20세기 중반까지의 서구의 현대미술은 이전의 이즘을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면서 ‘새로운 것’을 모색하면서 대립과 대조의 역사를 펼치던 ‘이데올로기의 시기’였다. 미니멀아트는 아서 단토의 입장에서 팝아트의 시기와 겹치면서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시기의 ‘끝/시작’의 지점에 겹쳐 있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개념미술과 과정미술을 등장시키면서 이제 현대미술은 통합을 거쳐 융복합예술에 이른지 오래이다.

1950-60년대 한국의 앵포르멜로 대변되는 서구적 추상이 도입된 이래, 한국의 미술계 또한 대립과 대조의 역사를 거쳐 왔다. 그것이 서구와 다르다면, 하나는 국내의 주류 미술계에 대한 대립과 더불어 또 하나는 서구의 미술계를 늘 설정해야만 했던 점이다. 1970년대를 전후하여 한국미술은 한국적 미술을 찾는 과정 속에 서구 미술을 대립의 위치에 놓고 한국의 원초적 전통이라는 ‘오래된 것’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것을 귀환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오늘날 다원주의 미술의 시대에도 그것은 여전히 유효한 과제가 되었다.

1970년대 단색화라는 이름으로 서구의 미니멀아트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한국의 추상미술은 오늘날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한국적 미술을 면밀히 살펴보는 방법으로 예술가 주체의 문제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현상학적 담론을 연구했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보이는, 그 너머에 보이는》전에 대한 비평적 안내를 통해서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을 검토하는 이 글은 ‘한국적 포스트니멀리즘’의 과제를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것은 획일화된 미술사적 이해와 관성적 인식의 오류들을 수정하고, 서구의 미니멀아트 전통과 그것을 수용했던 1970년대 전후 ‘한국적 미니멀아트’가 남겨놓은 과제들을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서구의 미니멀아티스트들의 몇몇 작품들은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에 대한 하나의 단초를 마련한다. 특히 야니스 쿠넬리스의 ‘흔한 재료를 통해 구축된 가난한 미학’, 칼 안드레의 ‘비대칭적 시메트리’, 리처드 롱의 ‘자연의 순환 미학과 고단한 노동 예술’과 같은 특성이 그것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추상미술이 과제로 안고 있는 물질을 대면하는 정신과 오래된 전통에 대한 담론들을 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획전에 참여하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은 대개 ‘보이는 것(물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을 보이게 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개념들로 정리될 수 있겠다. 1)김희성의 인공-자연-작품에 대한 관계, 비조각, 비회화와의 접점에 대한 연구, 2)최인수의 무위(無爲)의 길을 찾아 나서는 굴려진 점토 덩어리의 주물로의 변주, 3)원인종의 물질의 채움과 비움이 야기하는 비물질에 대한 담론, 4)심문섭의 한국 전통의 발견된 오브제로 탐구하는 미술과의 관계, 5)이우환의 서구적 형식과 동양의 정신, 철과 자연석,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 형성되는 만남의 현상학, 6)이승택의 ‘가볍고 하찮은 재료’를 통해서 ‘서구적 미니멀아트’가 방기한 비물질적인 무엇을 찾아가는 ‘비조각으로서의 위상’, 7)박종규의 보이지 않는 ‘배제된 노이즈’로부터 보이는 미술을 모색하는 탈미니멀리즘의 위상.

70년대 전후의 ‘한국적 미니멀아트’의 변주를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는 일군의 중견, 원로 작가들과 이들이 전수하는 한국적 미감을 새롭게 찾아가고 있는 중진 작가에 이르기까지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으로 포섭되는 작가들의 폭은 무척 넓다. 따라서 이러한 범주가 오히려 개별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곡해하는 틀이 될 위험 역시 없지 않다. 개별 작가들의 다양하고도 깊은 작품 세계를 한 두 범주로 묶어 몇 마디 키워드로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늘날 다원화된 미술 현장에서, ‘물질과 정신’이라는 비교적 오래된 미학 담론을 가지고 ‘지금, 여기’에서 창작을 지속하고 있는 변화의 주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 글은 1960년대의 서구적 미니멀아트가 1970년대 전후 한국적 미니멀아트로 수용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천된 미술사를 점검해 보고,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무엇을 보이게 한’ 작가들의 관심사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보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은 ‘물질과 정신’의 범주에서 포항시립미술관이 처해 있는 지역적 특수성이 유발하는 스틸아트와 철조각에 함유된 담론들을 따로 기술하지 못한 채, 향후의 과제로 남겨두었음을 밝혀 둔다. 



사진 제공 / 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출전/ 
김성호, 「한국적 포스트미니멀리즘 너머 : 물질과 정신」, 『보이는, 그 너머에 보이는』, 전시 카탈로그 서문, 포항시립미술관 기획전, 2018, pp. 28-49. 
(2018스틸아트 기획전 - 보이는, 그 너머에 보이는展, 포항시립미술관, 2018. 10. 4 ~ 2019. 1. 13)
*  글의 II, III, IV 단락과 주석은 생략했음. 카탈로그 원문을 참조하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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