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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일반│아티스트 네트워크 포럼 / 팝아트의 변용과 유혹 - 일본과 중국의 현대미술

김성호

팝아트의 변용과 유혹 - 일본과 중국의 현대미술

김성호(미술평론가) 


영국의 리차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의 콜라주 작품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1956)로 시작된 영국의 팝아트가 미국으로 건너가 1960년대 앤디 워홀(A. Warhol), 제임스 로젠퀴스트(J. Rosenquist), 로이 리히텐슈타인(R. Lichtenstein),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등의 작가를 통해 전성기를 구사했던 미국 팝아트의 기간은 고작 1970년대까지였다. 당시 팝아트가 대중문화의 지원을 한 몸에 받은 채, 추상표현주의로 대표되는 주류의 미술 현장에 멋지게 도전장을 내밀면서 각광을 받았던 것에 비하면 그 생명력은 매우 짧았던 셈이다. 
미국의 팝아트를 물려받은 곳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아시아, 특히 일본과 중국의 현대미술이었다. '우키요에(うきよえ, Ukiyo-e)'라는 목판화 전통을 물려받은 일본팝(Japanese pop art)과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 realism)에 기초한 중국팝(Chinese pop art)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팝아트에 관한 한, 이들은 후발주자였다. 

일본의 팝아트는 외형적으로는 1980년대 만화, 애니메이션, 프라모델, SF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와 오타쿠(オタク, Otaku)로 대별되는 하위문화의 반영에 의해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의 팝아트는 '우키요에'라는 목판화가 성행했던 무로마치(室町)시대부터 에도(江戶)시대 말기(14~19세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가 일본의 대중문화 전통의 뿌리를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세계에서 모던아트의 출발을 알린 유럽의 인상주의가 이 우키요에의 영향을 흠뻑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이것은 역설적이다. 일본의 팝아트는 미국 팝아트의 영향으로부터 출발했던 모던적 소산임에도 불구하고, 이 독특한 현대미술의 심층에는 세계적으로 현대미술을 시작을 알리는데 깊은 영향을 주었던 일본의 깊은 전통 문화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팝아트는 1960년대부터 전조를 보이기는 했으나 공식적인 미술사적 출발은 1960년대 출생 작가들을 중심으로 1990년대 이후 등장한 네오팝(Neo-Pop)이었다. 우키요에의 특징인 평면성을 강화한 슈퍼플랫(Superflat)을 형식적 특징으로 하고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오타쿠 문화의 내용을 담았다. 이후 1970년대 출생 작가들을 중심으로 2000년대 이후의 일본 현대미술을 이끌로 있는 마이크로 팝(Micro-Pop)이 뒤를 잇는다. 집단적인 대중문화를 반영하면서도 신진 세대의 특유의 개인적 문화를 반영하는 매우 다양하고도 미시적인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번 강의에서 일본 팝의 선구자적 성격을 지닌 네오다다이스트로 평가받는 우시오 시노하라(Ushio Shinohara, 1932~ )와 현재 일본 팝의 대모로 간주되는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1929~ )를 필두로 네오팝의 대표 작가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 1962~ )와 요시토모 나라(Yoshitomo Nara, 1959~ )를 중심적으로 살펴보고 이후 치오 아오시마(Chiho Aoshima, 1974~ ), 아야 타카노(Aya Takano, 1976~  ), 아카네 코이다(Akane Koide, 1992~ ) 등 다양한 마이크로 팝 세대의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두루 살펴볼 것이다.  


Yayoi Kusama, Horse Play in Woodstock, a happening, 1967 

 


In the studio with Takashi Murakami ahead of his Moscow show, 2017


Aya Takano, The Ocean Inside, 2015



중국의 팝아트는 일본의 팝아트가 대중문화와 전통문화의 변용을 화두로 출발했던 것과 달리 다분히 정치적 상황과 연동되어 등장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부터 문화대혁명 종식까지 중국의 현대미술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마우쩌둥(毛澤東, Mao Zedong) 시기에 전개되었던 이러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화풍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거치면서 1990년대 초 ‘정치적 팝아트(Political Pop Art)’를 출현시킨다. 오랫동안 사회주의 국가의 억압적 정치 현실에서 전개되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계승하면서도 변용한 중국팝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빠른 경제 성장, 이상주의에 대한 실망이 겹쳐진 1990년대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병립은 1990년대의 중국 현대미술에 정치적 팝아트를 도래케 한 원인이 되었다. 정치적 팝아트는 두 유형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도상과 기호를 다른 계통의 도상과 기호를 병치하는 방식으로, 또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래의 방식으로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를 재건하려는 엇갈린 태도가 그것이다. 기존의 정치적 포스터를 역으로 이용하여 서구 자본주의의 기업의 로고 등을 병치한 회화에 천착하거나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복수 제작한 왕광이(王廣義, Wang Guangyi, 1957~ )의 작품은 대표적이라 하겠다. 


Wang Guangyi, Great Crtiticism - Gillette, 1997


1990년대에 또 다른 유형의 예술이 중국의 팝아트를 이끌었다. 생태사실주의가 그것으로 이것은 흔히 ‘냉소적 사실주의(Cynical Realism)’, ‘신생대’, ‘후상태 사실주의’라는 세 범주로 분류된다. 특히 냉소적 사실주의는 오늘날 정치적 팝아트와 거의 동시에 출현한 것으로 두 양상이 흔히 중국팝의 대표적 작품 특성으로 손꼽힌다. 가족상을 통해 기호화된 인물의 냉소적 표정과 정서를 표현했던 장샤오강(张晓刚, Zhang Xiaogang, 1958~ )이나, 자신의 모습과 주변인의 모습들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팡리준(方力钧, Fang Lijun, 1963~ )의 작품 그리고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웃고 있는 자화상을 반복, 복제하여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을 희화화시킨 웨민쥔(岳敏君, Yue Minjun, 1962~ )의 작품은 이러한 ‘냉소적 사실주의’의 대표작들이다. 이들은 중국 현대미술의 2세대 대표작가로 거론된다. 
우리는 이번 강의에서 앞서의 작가들과 더불어 쩡판즈(曾梵志, Zeng Fanzhi, 1964~ )와 지다춘(季大純, Ji Dachun, 1968~ ) 등 중국 현대미술 3세대로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일명 염속미술(Kitsch Art)로 평가받고 있는 젊은 군의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살펴보면서 변모하는 중국 팝아트의 변용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


Yue Minjun, The Execution, 1995


Zeng Fanzhi, Last supper, 2001


출전/

김성호, 「팝아트의 변용과 유혹 - 일본과 중국의 현대미술」, 『미술인 인문학 강좌 - 아티스트 네트워크 포럼」』, 행사 후 자료집, (강의, 20190320, 전북도립미술관 세미나실,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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