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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일반│인공지능 예술가 ‘포스트-이브’의 등장 이후

김성호

인공지능 예술가 ‘포스트-이브’의 등장 이후


김성호(미술평론가)

2029년 전 세계가 들썩였다. 한 다국적 기업이 만든 ‘포스트-아담’이라는 이름의 ‘범용 인공지능’1)이 등장한 것이다. 모든 일상에서 인간을 대신할 인공지능의 등장은 현대인이 염원하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분산 저장하는 ‘클라우드 컴퓨팅'2)시스템을 통해서 이것을 전 세계에 무료에 가까운 저가로 임대를 시작했던 것이 혼란의 발단이었다. 잘 나가던 몇몇 인공지능 개발 회사가 경쟁력을 상실하고 도미노처럼 파산했고, 관련 업계에서 일하던 많은 기술자가 실직했다. 기술 시장에 대혼란이 야기된 것이다. 






2030년 올해 초부터, 또 한 차례의 획기적인 사건이 세계를 들끓게 하고 있다. 인간 예술가를 대치할 만한 ‘포스트-이브’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이 등장한 것! 이것은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을 통합시켜 만든 ‘인공지능 예술가’로서, 음악가나 미술가의 존립을 위협할 만한 괴물로 평가된다. 이 기계는 당분간 예술 애호가에게는 대환영을 받겠지만, 많은 전문 예술가에게 패배감을 안겨 줄 것이다. 이것과의 경쟁에서 뒤처진 그들이 종국에 예술 창작을 포기하고 전업하게 된다면? 예술가들은 두렵다. 인공지능 ‘포스트-이브’가 그간의 여러 인공지능이 도모했던 ‘가짜 예술가’의 모습을 완전히 벗은 채 로봇 공학과 결합하여 ‘진짜 예술가’처럼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개발자는 ‘포스트-이브’를 ‘유네스코 인공지능 예술가 1호’로 등재를 마쳤고, 예술 창작 방식에 대한 국제 특허 출원과 더불어 최근 일 년간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 등록도 모두 마쳤다. 앞으로 또 다른 인공지능 예술가가 등장해서 자기네들끼리 예술 창작의 세계를 좌지우지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휴~~.” 성호는 한숨을 길게 내쉰다. 그도 그럴 것이 ‘포스트-이브’의 등장으로 인해, 성호가 뒤늦게 시작했던 예술가로서의 직업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성호는 십 년 전만 해도 미술평론가였다. 이곳저곳의 청탁을 받아 분주히 오가며 미술 작품에 대한 비평을 업으로 삼고 지냈는데, 오 년 전, ‘인공지능 크리티컬’이 등장해서 비평가가 하던 일을 잠식하더니 몇 년 전부터는 성호에게 오던 비평 청탁이 아예 끊겼다. 이참에 그는 평소부터 염원하던 예술가로 전업했다. 인터넷 은행으로부터 ‘사후 뇌 기증’을 담보로 한 연금이 매번 나오고 있으니, 생계의 문제에서 앞으로도 큰 걸림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연봉은 없지만 자유로운 예술가’로서 살고자 하는 성호의 마지막 꿈을 인공지능 예술가가 뺏는 날이 올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인공지능 ‘포스트-이브’는, 1973년 그림 그리기 흉내를 냈던 인공지능 로봇 아론(Aaron)과는 격세지감의 존재이다. ‘포스트-이브’는 2010년대의 심층신경망3) 기반의 딥러닝4)을 실험해 왔던 다양한 인공지능을 획기적인 모습으로 발전시켰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2016년 인셉셔니즘(Inceptionism)이라는 이름의 ‘이미지 합성 알고리즘’을 통해 특정 화가의 스타일을 학습하여 주어진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구글의 ‘딥드림(Deep dream)’ 그리고 같은 해 렘브란트 스타일의 회화를 선보였던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를 그저 ‘이미지 모방꾼’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녔다. 인공지능 ‘포스트-이브’는 2018년 유사 이미지를 생성하는 ‘갠(GANs)’이나, 자가 학습으로 기존 예술 작품과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캔(CAN)보다 월등히 진보된 그야말로 괴물이다. 
인공지능 ‘포스트-이브’는 20~21세기에 이르는 거의 모든 예술 작품을 빅데이터로 삼아 분석하는 딥러닝의 과정을 이미 거쳤다. 그뿐만 아니라, 차세대 3D 프린터로 매번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회화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미술사에서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조각, 설치 미술의 범위를 수시로 넘나든다. 올해 봄에는 소더비 경매에서 이것이 만든 작품이 1,500만 달러(약 173억6,550만 원)에 팔리면서 인공지능 예술가의 작품 판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달인 5월에는 이 ‘포스트-이브’의 다중 로봇이 ‘통일 코리아 우주정거장’ 주변의 우주 쓰레기를 거둬들이고 활용하여 작품을 만든 후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에 전시한 ‘포스트-이브 설치 개인전’이 해외 토픽에 오르기도 했다. 아뿔싸!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 괴물의 개인전’이라니!
누군가 말했다. ‘포스트-이브’가 “세상의 아이디어를 종합하고 그것들 사이의 빈틈을 찾아내기 위해 연산만 계속하는 차가운 인공지능 예술가”라고 말이다. 성호도 고개를 끄덕인다. 인공지능이 스포츠 기사를 작성하고, 시를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뜀박질하는 심장의 고동 소리와 영혼을 담아 창작하는 인간의 예술과 비견할 만한 것이 되겠는가? 그러니 생각하라! 인공지능이 무엇보다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예술적 영감을 주었는지를 말이다. 사진의 등장이 그랬듯이, 앞으로 인공지능은 새로운 예술 시스템에서 더 많은 예술가와 함께 의미 있는 자리를 할 것이다. 2030년대를 사는 세상의 예술가들이여! 좌절하지 말자. 인공지능이란 ‘인간을 위해 세상에 태어났고 앞으로도 인류와 함께 지낼 유용한 존재’이지 않던가? ●

미주)
1) 범용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특정 분야를 넘어선 모든 분야에서 인간처럼 생각, 학습, 창작하는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의 이상적 모델.
2)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정보를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에 저장, 공유, 처리하는 분산 컴퓨팅.
3)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 입력층, 출력층, 은닉층 등 신경망의 층을 여러 개로 늘려 만든 비선형적인 인공신경망.
4)  딥러닝(Deep Learning): 심층신경망에 기초하여 다량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머신러닝의 한 분야. 



*이 글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뒤섞은 팩션(Faction)이다. 


출전 /
김성호, 「인공지능 예술가 ‘포스트-이브’의 등장 이후」, 『문화가 있는 날 블로그』, 문체부 산하 지역문화진흥원 주관, 2019.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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