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서문│신재은展 / 현대 문명과 자연 본성에 대한 시각적 아포리즘

김성호

현대 문명과 자연 본성에 대한 시각적 아포리즘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이전 작업 
작가 신재은의 작업은 그간 인간 문명의 외피 속에 감추어진 자연의 본질과 근원적 질서를 드러내는 것에 골몰해 왔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관성으로 내달리는 비뚤어진 인간의 노력에 딴죽을 걸고 시비를 따져 보거나, 역사 속 ‘인간을 위한 인간’의 노력과 행위 속에서 은폐되거나 소외된 것은 없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인간 욕망의 이상과 그것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과정에서 낳은 병폐를 비판적 관점 속에서 성찰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신재은은 부적에 깃든 인간의 주술적 믿음과 허망한 욕망을 파헤치는 일련의 퍼포먼스 작업인 <호황프로젝트>(2014)나 인공의 화단에서 발견되는 네 잎 클로버를 채집하는 퍼포먼스 설치 작업인 <네 잎 클로버가 있는 언덕>(2016-17) 그리고 그것의 기형 종자를 집단으로 재배하는 설치 작품인 <안젤라 연구소>(2017-18)를 통해서 행운을 염원하는 인간의 허망한 욕망과 인간 문명을 냉소적으로 비판한다. 또한 작품 <맛 좋은 깐부치킨>(2011)에서 배달 치킨의 뼈를 해체하고 세척하여 무더기로 쌓아놓거나, 작품 <a week>(2018)에서 삼겹살의 표면을 파운데이션 크림으로 도포한 후 일주일 동안 부패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아울러 돼지의 사체를 뒤덮는 지층을 종(縱)적으로 구축하고 아스콘 층으로 표면을 장식하여 ‘살처분’의 상황을 재연한 작품 <침묵의 탑 pink>(2018)도 현대 문명 속 인간의 탐욕과 폭력성을 냉소적으로 고발하는 한편, 자연과 생명의 의미를 되묻는 작업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신재은의 작업에는 도시와 자연이, 은폐와 폭로가, 형식과 내용이 맞부딪히는 가운데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의 허상 그리고 위태롭고도 탐욕적인 인간 욕망을 고발하고 조롱하는 냉소적인 풍자, 해학, 비판적 성찰들로 가득하다. 


신재은, <침묵의 탑 pink>(2018)


신재은, <[fɔ:(r) li:vz]>, FHD video, 14m08s, 2017 : https://youtu.be/LWZlE0ygKuE
신재은, <안젤라연구소> 시리즈, 2017-2018.

자칭 네 잎 클로버 협회부장이라는 안젤라 박사가 '애완 네 잎 클로버'를 개발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흰 가운을 입은 권위자의 등장, 역사의 재배치, 거짓 수학 공식 등의 트릭을 사용하여 전혀 상관없는 개별적 역사와 자연 현상을 신비한 기운 혹은 네 잎 클로버 변이 방법과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며 신뢰도를 높인 페이크 시나리오다.(신재은)



II. 전시 풍경 - Sink, Sank, Sunk
작가 신재은의 풍자적 해학과 냉소적 비판의 문제의식은, 그녀의 이번 개인전에서 비교적 단순한 조형 언어로 세워진 뼈대 위에, 개념적이고 은유적인 화법으로 전개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몇 개의 백색 구조물들이 넓은 화이트큐브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원기둥, 원뿔, 구(球)와 같은 세 유형의 구조물이다. 전시장 초입 좌우에는 두 개의 기다란 ‘원기둥’이 천장에 닿을 듯이 서 있고, 전시장 중앙에는 커다란 ‘원뿔’이 천장으로부터 부유하듯이 매달려 있다. 그리고 전시장 끝부분에는 작은 ‘구’ 하나가 벽체에 가깝게 걸려 있다. 작가는 이러한 세 조형의 범주를, 차례대로 ‘기둥’, ‘방향’, ‘축’이라는 제목으로 제시한다. 거대한 크기와 작은 크기가 대조적으로 병치되고 있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세 구조물을 지칭하는 이 용어들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차례대로 살펴보자. 


 신재은 전- Sink, Sank, Sunk.  전시 전경, 2019
신재은,〈기둥〉, 2019 (앞의 두 원기둥 작품)

먼저 전시장 초입 양쪽에 마치 신전처럼 서 있는 두 개의 투명한 아크릴 원기둥으로 구성된 〈기둥〉이라는 작품! 이 기둥 내부에는 물이 95%가량 차 있고, 그 상단부에 휘발유가 5%의 비율로 담겨 있다. 상온에서 증발하는 특성으로 인해 휘발유는 전시 기간 내내 공중에 떠다니며 특유의 냄새를 전시장에 산포한다. 이 휘발유는 효율성 높은 연료로 현대 문명의 동력으로 간주되지만, 환경적 측면에서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오염성 물질이다. 이 작품은 인간 문명이 5%의 휘발유에 의해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인간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95%의 물이라는 사실을 은유한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깊다. 그것은 문명은 때때로 자연의 표면을 뒤덮고 스스로 현실의 주인인 양 가장하면서 인간에게 생명의 근원을 망각하게 만들지만, 현실의 심층부에는 여전히 물과 같은 자연의 본질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전시장 가운데 매달려 있는 커다란 원뿔 모양의 〈방향〉이라는 제목의 작품! 원뿔의 외피는 백시멘트로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다. 그것은 발전적 목표를 지향하는 인간 문명을 지시하는 지표(index)처럼, 날렵한 추상 이미지와 맞물려 한 치의 빈틈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원뿔의 내부는 찐득찐득한 바셀린 덩어리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내부 표면은 그것이 뭉텅뭉텅 거칠고도 비균질적으로 도포되어 있다. 원뿔 내부의 기름 덩어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력을 못 이기고 서서히 바닥으로 추락한다. 투두둑, 툭툭! 천천히 토악질하듯 내뱉어지는 기름 덩어리는 인공으로 결코 가둘 수 없는 자연의 본성이다. 그것은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무쌍한 무한 생성의 근원이지 않은가?  




신재은,〈방향〉, 2019

마지막으로 전시장 입구 맞은편 벽면에 거치된 와이어 좌대 위에 작은 ‘구’ 덩어리가 조심스럽게 앉아있는 〈축〉이라는 제명의 작품! 이것은 작은 크기답게 매우 응축된 메시지를 전한다. ‘문명이 떠나(버린)온 자연의 본질’에 관한 메시지! 투명 레진으로 ‘구’의 틀을 만들고 그 안에 글리세린을 가득 채운 후 죽은 바퀴벌레 한 마리를 넣어 만든 이 작품은 일종의 스노볼(Snowball) 또는 스노글로브(Snowglobe)의 효과를 만든다. ‘구’를 조심스럽게 돌리면, 그 안에 가득 찬 글리세린이 출렁거리며 움직이면서도 그 안에 떠 있는 바퀴벌레는 곤충이 지닌 부력으로 인해 ‘구’의 상단부에 지속해서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관객의 눈에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바퀴벌레! 그것은 3억 5천만 년의 생존의 역사를 지닌 원시 곤충으로서, 소멸하지 않는 자연의 야생성을 대변한다. 그것은 우리가 유용하고 쾌적한 삶을 위해 제거하고 은닉하려고 시도해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자연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문명의 얇은 층 밑에서 오늘도 스멀스멀 자라고 있는 질긴 야생의 생명력! 엄밀하게 말해 그것은 우리가 외피만 화려한 문명의 삶으로부터 복원하고 되돌아갈 근원적 자연, 즉 시원(始原)의 고향이다.   


신재은,〈축〉, 2019


위의 세 작품은 ‘휘발유 아래 물’, ‘매끈한 표면 내부의 질퍽한 바셀린’, ‘투명 레진 속의 바퀴벌레’ 등 인공적 환경의 심층에 자리한 자연을 드러냄으로써 한편으로는 현대 문명과 인간 욕망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면서도, 근원적 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메시지를 응축된 형식으로 선보인다. 자연이란 그 위에 막을 덮어씌워 박제화를 시도하더라도 절대로 포획되지 않는 존재이다. ‘자연’이란 대지의 ‘싱크홀(sinkhole)’처럼 인공의 피부에 구멍을 내는 방식으로, 획일화의 방향성과 구조적 틀로부터 언제나 탈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작가 신재은이 가라앉다(Sink)의 과거형, 과거 분사형의 조합으로 만든 ‘Sink, Sank, Sunk’를 이번 전시의 부제로 내세운 까닭을 이해할 만하다. 





III. 한 줄의 시각적 아포리즘
이번 전시에서 작가 신재은의 세 작품 〈기둥〉, 〈방향〉, 〈축〉은, 세잔(Paul Cézanne)이 자연 속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로 파악했던 원기둥, 원뿔, 구를 각각 새롭게 번안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세 범주를 시각 기호와 로마자 알파벳 그리고 한글의 자음과 모음 순으로 확장해서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원기둥(▮, I, ㅣ), 원뿔(▲, V, ㅅ), 구(●, O, ㅇ)와 같은 표기 방식이 그것이다. 이것은, 앞서 작품 분석에서 살펴보았듯이, ‘원뿔’을 자음(V, ㅅ)으로 중심에 두고 원기둥과 구를 각각 모음들( I, ㅣ& O, ㅇ)로 보좌하는 형식처럼 읽힌다. 그도 그럴 것이, 원뿔형 구조물을 설치한 작품 〈방향〉은 이번 전시에서 중심 작품이다. 이것은 그녀가 2018년 《인천아트플랫폼 결과 보고전》에 출품했던 작품 〈8m〉를, 또 다른 버전인, ‘세잔’의 회화론에 담긴 개념으로 확장한 대표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직접 밝히고 있듯이, “이전의 작업에서 경직된 도시 지표면과 아스팔트 아래 대지의 유동성을 아스팔트와 구리스(gurisu) 등의 층위로 표현하여 직접적으로 주제를 노출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표면과 내면의 충돌을 추상화하여 의미가 증폭될 수 있도록 시각화”한 것이다. 즉 세잔의 회화론을 재해석하고 번안하여 조각적 설치와 단순한 추상의 언어로 전시를 구현한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의 깊이에 있다'고 말한 세잔의 언명은 그녀의 전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주요한 논점을 제공한다. 즉 두 작가 모두 단순한 형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자연의 표면 아래 숨기고 있는 내적 생명과 그 본질에 보다 더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세잔이, 원기둥, 원뿔, 구와 같은 근본적인 ‘형식’ 아래 ‘자연의 형태가 숨기고 있는 내적 생명’과 같은 ‘내용’을 담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면, 신재은은 도시 문명 곳곳에서 발발하는 싱크홀과 같은 사건에 주목하면서 ‘견고하고 안전하다고 믿었던 문명의 시스템이 자연의 초월적인 힘에 의해 붕괴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문제 제기하고 이러한 상황에 담긴 자연의 본질이라는 ‘내용’을 단순한 조형의 ‘형식’을 빌려 성찰하는 것에 골몰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신재은의 이번 전시는 ‘현대 문명과 욕망에 대한 한 줄의 시각적 아포리즘(aphorism) 혹은 한 편의 비판적 이코노텍스트(iconotextes)’로 정의해 볼 만하다. 주지하듯이, 아포리즘은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글. 격언, 금언, 잠언, 경구’ 등을 가리키고, 이코노텍스트는 프랑스의 사진작가 겸 이론가인 미셸 네를리쉬(Michael Nerlich)가 창안한 용어로, “텍스트와 이미지가 분할될 수 없는 총체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작품'을 의미한다. '비언어적(non-verbal)' 시각 조형물로만 채워진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용어를 통한 ‘언어적(verbal)’ 소통이 어떻게 가능한가? 
작가 신재은은, 세잔으로부터 빌려온 ‘원기둥, 원뿔, 구’라는 ‘비언어적 조형 언어’(image) 안에 인간 욕망과 현대 문명의 허상을 비판하고 자연의 근원을 모색하자는 '언어적 메시지'(text)를 담아 우리에게 전함으로써 ‘한 편의 비판적 이코노텍스트’를 완성한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매우 무겁고도 진중한 것이다. 매우 단순한 비언어적 형식 안에 담아 전하는 경구와도 같은 철학적 메시지! 그런 면에서 그녀의 전시는 가히 ‘한 줄의 시각적 아포리즘’이라 정의할 만하다. 


신재은, <8m> 폐 아스팔트, 구리스, 바셀린, 600x140x80cm, 2018



IV. 에필로그 
작가 신재은이 그간 ‘일상으로부터 아이러니한 상황을 포착하여 블랙코미디와 같은 과장된 방식’으로 다시 구사함으로써 현대 문명을 재기발랄하게 비판하는 한편, 자연의 본성을 드러내는 작업에 집중해 왔다면, 이번 전시는 비교적 단순한 추상적 형식 안에 메시지가 한층 진중해진 개념적인 작업을 지향하고 있다고 평가해 볼 수 있겠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조형 언어로 끌어들여 ‘보이게 하는 조형 전략’은, 우리가 그녀의 작업을 읽는, 개념적이고도 ‘시각적인 아포리즘’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전시장 초입에서 맞닥뜨린 후각을 자극하는 휘발유 냄새도 그러하지만, 같은 장소 천장으로부터 맞이하게 되는 ‘백색소음(white noise)’은 청각을 통해서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것의 시각화’를 촉진한다. ‘유용한 좋은 소음’으로 지칭되기도 하는 이것은 비교적 넓은 음폭을 지닌 소음으로, 인간에게 심정적 편안함을 제공한다. 빗소리, 파도 소리, 시냇물 소리 등 많은 백색소음이 대개 자연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백색소음은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청각(백색소음/자연), 후각(휘발유 냄새/인공)의 감각뿐 아니라 촉각 및 시각(조각의 내부/자연 vs 조각의 외부/인공)의 공감각적 요소를 함께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현대 문명과 인간 욕망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연의 본성을 탐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명징한 시각 언어 속에 담아내는 ‘시각적 아포리즘’을 실천한다. 비물질성, 혹은 유연하거나 물컹이는 것과 같은 비조각적 재료를 미술의 전면에 내세우는 그녀의 작업이 지닌 덕목은 사회학적 고찰과 같은 미학 외부의 문제에 천착하면서도 미학 내부의 문제를 방기하지 않고 한데 아우른다는 점이다. 시각미술의 화두 중 하나인 ‘비언어의 언어화’를 절묘하게 실현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향후의 행보를 기대한다. ●



출전 /
김성호, 「현대 문명과 자연 본성에 대한 시각적 아포리즘」, 카탈로그 서문, (신재은展, 2019. 6. 28 ~ 10. 13,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