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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위영일展 / 프레임의 경계를 실험하는 ‘회화 아닌 회화’

김성호

프레임의 경계를 실험하는 ‘회화 아닌 회화’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1. 하나로부터 
작가 위영일의 이번 개인전은 'All in One'이라는 테마를 내세웠다. ‘모든 것이 하나 안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이 주제는 마치 “우주의 본체는 오직 하나”라는 의미의 일원론적 사유를 잇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관념론적 일원론’이든, ‘유물론적 일원론’이든 ‘세계를 오직 하나의 근본적 실체, 즉 일자(the One)로 보려는 사유’를 일원론이라 할 때, 작가 위영일에게서 일원론적 사유란 ‘회화라는 매체를 시각 예술의 근본적 실체로 간주’하는 태도와 연동된다. 즉 그는 미술의 다양한 조형적 언어를 회화 안에서 사유한다. 즉 모든 것을 회화로 번안하고 회화로 설명하며 회화로 간주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런 차원에서 위영일의 작품 세계에서 ‘일자’란 곧 ‘회화’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의 회화는 엄밀히 말해 ‘회화 아닌 회화’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전시 포스터




2. All in One - 어둠 속에서 월경하는 회화  
주지하듯이, 회화는 이차원의 평면성이라는 매체적 한계 안에서 용인되어 왔던 존재이다. 이십 세기 이래, 현대 미술은 이러한 회화의 매체적 한계를 탈주하는 무수한 실험을 거듭하면서, 개념, 퍼포먼스, 키네틱, 비디오, 미디어라는 접두어를 자신 앞에 지속적으로 갈아치우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왔다. 한편, 이러한 회화의 매체적 한계를 오히려 ‘회화를 회화답게 만드는 본성’으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던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회화 순혈주의’와 그 태도를 계승하는 일군의 미술 운동 역시 없지 않았다. 전자가 매체의 확장을 실험하는 ‘탈회화적 확산’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회화를 오염시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는 ‘회화의 내적 환원’이라고 하겠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 위영일이 전자의 모든 경향을 ‘탈회화적 확산’으로 간주하기보다 ‘회화적 확산 혹은 확장’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다매체와 다장르의 미술(All)’을 ‘회화(One)의 변주와 확산’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위영일의 회화 실험이란 “모든 것을 회화로 번안하고 회화로 설명하며 회화로 간주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특히 위영일의 이번 개인전은 모든 출품작을 어둠 속에서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회화 본연의 정체성은 물론 회화 관람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의식을 다각도로 실험한다. 어둠 속에서 보기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인공조명에 의해서이지만, 작가 위영일은 빛의 반사를 통해서 작품 자체를 고스란히 선보이는 이러한 일반적인 조명 방식으로부터 탈주한다. 흥미롭게도 그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야광 물감이나, 블랙 라이트 형광등 아래서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형광 물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발광(發光) 방식을 실험한다. 
이번 전시에서 주요 전시 작품인 냉무-선택되는 사물들 이러한 발광 방식을 통한 ‘어둠 속 시각화’는 물론이고 앞서 언급했던 ‘회화라는 매체를 시각 예술의 근본적 실체로 간주’하려는 태도를 동시에 드러낸다. 노란 형광 물감을 바른 투과체의 직육면체 프레임 안에 배치된 정물들이, 일상으로부터 ‘발견된 오브제(Objets trouvés)’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오브제(Objet créé)’는 물론이고 사물 자체의 색과 형형색색의 일반 물감 그리고 산뜻한 형광 물감으로 칠해진 색이 뒤섞인 채 구성됨으로써,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광하면서 어둠 속에서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전시장 속 여러 장비와 도구를 정물 안에 끌어들임으로써 ‘전시장의 맥락 자체를 회화화(繪畫化)’하거나 원래 공연용으로 사용되는 '문래예술공장 M30'의 어수선한 전시 장소를 투과체의 나무로 만든 펜스를 설치함으로써 ‘회화의 몸체를 전시장으로 맥락화(脈絡化)’하기도 한다. 달리 말해 ‘미술의 다양한 조형적 언어뿐 아니라 전시장 맥락을 회화의 변주와 확산으로 간주’하고 회화를 실천하는 것이다. 
위영일의 작품 〈냉무-선택되는 사물들〉은 오브제와 물감, 빛과 색 그리고 다양한 표현 기법과 조형적 언어가 어둠 속에서 한 덩어리로 뭉쳐진다. 작가는 그 속에서 ‘가변적인 특유의 회화의 장’을 구성한다. 엄밀하게 말해 그것은 삼차원 오브제들로 된 설치 미술(installation art)이지만, 정물들을 프레임 안에 가두었다는 점에서 ‘정물화’이며, 관람을 위해 관객의 움직임을 유발하게 만드는 실내의 풍경과 같은 규모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풍경화’이기도 하다. 또는 이 작품을 배경으로 누군가 사진을 찍는다면, ‘인물화’의 범주로 정초되기도 한다. 평면을 형성하는 프레임이 삼차원의 공간에서 가변적으로 작동하면서 경계를 넘나드는 변주가 발생하는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이 설치 작품 〈냉무-선택되는 사물들〉은 가히 ‘어둠 속에서 월경(越境)하는 회화’라 할 만하다.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은 이차원의 회화적 속성을 삼차원의 공간 속에서 다채롭게 실험하는 ‘회화 인식의 장이자, 회화 실천의 장’이 된다. 다만, 작가 위영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다매체 미술을 모두 회화라고 우기기보다 회화로 설명되고 번안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냉무(선택되는 사물들)_200x400x250cm_철,야광페인트,채택된 사물들_2019(문래예술공장M30)
(상 전경, 하 부분)



3. 샌드위치 외 - 회화 아닌 회화 
다매체와 삼차원 미술에서 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 위영일은,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형식적이고 교조적인 언명을 넘어선 곳에서 자신의 회화를 실험한다. 즉 그는 이차원 평면성으로 규정한 회화의 정체성을 삼차원 입체성 안에서 모색하는 다양한 시도를 실험한다. 그런 면에서 일반적인 정의에서 ‘다면성의 회화’를 추구하는 그의 미술은 ‘회화 아닌 회화’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작품 〈샌드위치7〉을 보자. 이 작품은 스프레이로 채색된 원형 철프레임을 공중에 매달아 회화의 경계를 만들고 그 안에 회화적 제스처를 남긴 입체물을 매달아 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텅 빈 곳에 일종의 막이 있을 것 같은 환영’을 부여하면서 관객에게 ‘이 작품은 회화가 아니지만, 회화로 충분히 인식될 수 있음’을 성찰하게 만든다. 


샌드위치7_120x120x22cm_철,스프레이,아이볼트,와이어,아이소 핑크,폴리퍼티_2019

나아가 이 작품은 작품 제명처럼 프레임과 입체물이 어둠 속 공간과 사물의 공간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겹쳐진 채 서로의 존재를 간섭하면서 기존의 회화가 견지한 평면성을 다면성으로 전환하는 ‘어둠 속 다면성의 회화’를 실천한다. 특히 공중에 매달린 원형의 철프레임이 빙글빙글 돌아갈 때, 이 작품이 지닌 다면성의 효과는 배가된다. 이 작품은 기존의 평면 회화가 지지대로 삼은 캔버스와 같은 매체를 ‘불투명한 표면’으로 간주하고, 공중에 매달린 ‘투과체의 원형 철프레임’을 통해서 ‘투명한 표면’으로서의 지지대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실험한다. 그것은 분명 회화가 아니면서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회화의 효과를 창출한다. ‘회화가 아닌 회화’를 실천하는 셈이다.   
그의 다른 작품 〈샌드위치2〉는 두 장의 반투명 아크릴판 사이에 기계 부속과 전선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끼워 넣고 반투명의 아크릴판의 일부 부분을 투명하게 만들어서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이다. 아크릴판 사이에 집적된 여러 재료는 붓질의 흔적과 물감의 다양한 마티에르를 은유함으로써, 이 작품이 엄연히 볼륨과 매스를 지닌 조각임에도 불구하고  ‘확장 가능한 회화의 여러 가능성’을 유추하게 만든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다보탑〉은 어떠한가? 그것은 층을 쌓아 올린 탑처럼 보이도록 어두운 공간 안에 여러 장의 형광 아크릴판을 순차적으로 공중에 매달아 놓은 작품이다. 이것은 땅 위에 직립하듯이 서 있는 탑의 형식이 아니다. 탑의 각 층을 가느다란 와이어로 연결해서 공중에 매단 조형물로 단지 다보탑의 이름과 형식을 차용했을 따름이다. 이 작품 역시 ‘다면성의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에서 언급했던 〈샌드위치〉 연작과 같은 의미를 공유한다.  


 (좌) 냉무21_115x30x30cm_아크릴파이프 안에,형광페인트,스프레이,아이볼트,와이어_2019
(우) 다보탑_110x60x60cm_아크릴 판,다보,와이어_2019




3. 냉무 외 - 아무것도 아닌 회화  
한편, 그의 또 다른 시리즈 작품 〈냉무〉는 이름만큼이나 매우 흥미롭다. ‘냉무’란 ‘내용 없음’이라는 말을 축약해서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상 신조어다. 미술 작품에 곧잘 사용되는 ‘무제(untitled)'라는 제명 대신에 그가 '냉무'를 사용한 까닭은 그의 회화 실험이 21세기 회화사를 개척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기를 자처하는 만용이 결코 아니며, 그저 ‘아무것도 아닌 회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천명하는 이유에서이다. 분명히 회화에 관한 가장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음에도 그의 회화 실험이 세계 미술의 현장에서 독창성의 영역을 점유하려는 치기(稚氣)를 의도하고 있지 않음을 선언하는 셈이다. 그것은 그의 회화 실험이 회화의 기초 언어를 다양하게 확장하려는 놀이이자, 향유이면 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커다란 총알 모양의 투명한 아크릴 파이프 안에 우레탄 폼과 다양한 질감의 오브제를 넣고 그 안팎에 스프레이, PVC 시트지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회화하기’를 실천한 작품 〈냉무 21〉을 보라! 그것은 ‘다면성의 회화’라는 가능성과 더불어 마치 조각 작품 주위를 빙빙 돌면서 관람하는 방식인 ‘주항(周航)의 시간(temps de cirumnavigation)’과 관련한 문제의식을 회화를 통해 실험하는 것이지만, 그는 이러한 태도들이 정작 ‘냉무’라는 작품 제목처럼 ‘별것 아님’을 천명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진중한 회화 실험이 골치 아픈 철학적 사유이기보다 즐거운 낭만적 유희이자 한바탕의 유쾌한 놀이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또 다른 작품 〈냉무20〉에서도 이러한 낭만적 유희와 유쾌한 놀이적 태도는 ‘주항의 시간’과 함께 여실히 나타난다. 이 작품은 전시장 바닥에 원형의 시트지를 붙여 놓고 현장에서 직접 아크릴과 스프레이 등으로 그린 회화 작품이다.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그것은 전시라는 제도적 영역에서 일정한 전시 기간 내에서만 온전한 임시적 회화로서, 전시 종료 후 깔끔한 상태로 반출할 수 없는 작품이다. 전시 종료 후 작품 반출을 시도할 때, 분명코 찢어지거나 구겨진 상태로 바닥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그것은 전통적인 회화와는 또 다른 회화의 정체성을 예고한다. 애초의 회화는 사라지지만, 구겨지거나 찢어진 다른 유형의 회화로 재탄생한다. 그는 말한다. “(내 작품은) 특정 장소와 기간에만 현존하고 물리적으로 부재의 상태가 되어 기록 또는 기억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재현을 배제하고 추상적인 제스처로만 처리된다.”  
‘물리적 부재의 상태, 기억을 통한 존재 확인, 비재현의 추상적 제스처’는 세상을 변혁하는데 있어서 하등이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그는 모색한다. 그의 회화 실험은 그 자신에게는 즐거운 놀이이자 실험이며 관객에게는 흥미로운 미술에 대한 향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냉무’라는 다소 냉소적인 작품명의 심층에서 그 가능성을 엿본다.  
마지막으로 그의 또 다른 작품인 〈Float〉는 일명 ‘바닥 회화’인 〈냉무20〉과 연동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조각가 이병호가 자신의 설치 작품에 사용하려고 만들어 놓은 일그러진 인물 두상을 위영일이 무상으로 가져와 자신의 작품으로 편입시킨 것이자, 전시 종료 후 자신의 작품 〈냉무20〉과 맞바꿀 예정이다. 또한 형광색으로 칠해진 이 작품은 프레임의 뼈대만으로 지탱하고 있는 비어 있는 직육면체의 조각대 위에 ‘떠 있는 형국’을 선보임으로써 바닥 회화인 〈냉무20〉와 대비되면서 마치 한 쌍(雙)의 작품처럼 연계된다. 
글을 마무리한다. 작가 위영일은 오늘도 그야말로 유쾌한 ‘아무것도 아닌 회화’를 지향한다. 그런데도 그 지향의 심층부에는 평면의 프레임과 경계를 넘고자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는 그의 ‘회화 아닌 회화’ 더 나아가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회화’가 뚝심 있게 자리한다. ●

 (전) 냉무20_190x190cm_바닥에 시트지,아크릴,스프레이,에나멜 페인트_2019(문래예술공장M30)
(후) 샌드위치2_68x137x15cm_아크릴판 사이에 여러 가지 재료_2017


 Float_163x23x25cm_우레탄폼(타인의 폐기된 오브제), 철,스프레이,와이어,아이볼트_2019



출전/ 
김성호, 「프레임의 경계를 실험하는 ‘회화 아닌 회화’」, 카탈로그 서문, 위영일展 
(위영일 개인전- All in One, 2019. 8. 17-29, 문래예술공장M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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