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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Since then- 그 이후展 / 예술 실험에 대한 회고, 'Since then- 그 이후'

김성호

'그 이후'의 비구상적 매체 실험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변혁의 아방가르드 이후  
시안미술관의 기획전 〈Since then- 그 이후〉는 대구를 기반으로 한 채 지역 미술과 중앙 미술을 넘나들면서 역량 있는 창작 활동과 더불어 유의미한 전시를 선보여 오고 있는 5인의 작가를 초대해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속 지역 미술의 현재의 위상과 미래의 비전’을 다각도로 탐색한다. 
5인의 참여 작가인, 김승현, 김현석, 노열, 박종규, 최상흠은 1959~1969년생으로 현재 50대 초반으로부터 60대 초반에 이르는 중진 작가들이다. 이들은 1970~80년대 군사 독재 시대의 엄중한 현실 속에서 20대를 맞이하면서 ‘미술에 대한 열망’을 펼쳐 왔던 이들이다. 또한 이들은 근대기 화가 이인성(1912~1950) 이래 구상 전통이 뿌리를 내린 대구의 미술 현장에서, 1970-80년대 모더니즘 추상 미술과 극사실 회화, 형상에 기초한 민중미술의 대립을 목도하고, 1980-90년대 밀려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그에 대립하는 한국적 미술에 대한 요청을 피부로 체감하면서 쳥년기를 보냈던 이들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기획전 〈Since then- 그 이후〉의 참여 작가 5인의 현재 작업이 비구상 혹은 추상의 영역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비구상에 대한 조형적 성찰은 일차적으로 1970년대 청년 작가를 주축으로 일어난 대구의 현대미술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대구의 1970년대 초중반은 제도권 미술과는 다른 아방가르드적 미술을 펼치는 시대였다. 상투적인 형식에 안착하고 있는 고루한 구상미술과 같은 기존 미술에 대한 반발과 더불어 서구의 추상표현주의나 모노크롬과 같은 추상미술에 대한 이식과 재해석뿐 아니라 퍼포먼스, 개념미술, 야외 현장 설치 미술을 아우르는 아방가르드적 예술 실천이 싹트는 시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4년 등장해서 1979년까지 이어진 《대구현대미술제》는 이와 같은 다양한 예술 실험을 시도하는 소그룹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아방가르드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대구 현대미술을 견인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까닭으로 대구현대미술제는 대구 현대미술의 통시적 고찰에서 ‘이전과 이후’를 가늠하는 주요한 척도가 된다. 이전의 개별적 소그룹 운동이 대구현대미술제의 출범으로 인해 집단적 미술 운동으로 현실화되었기 때문이다. 가히 ‘변혁의 아방가르드 시대’라 할 만하다. 
1980년대, 대구의 청년 작가들은 추상표현주의나 상징적 구상화, 개념주의나 미니멀아트 경향의 작업을 하면서 외부의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어느덧 중견 세대가 된 이들의 작품 세계가 어디에서 발원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의 한 참여 작가는 1980년대 당시 개념미술, 미니멀 형식의 색면 추상 및 설치 작업을 실험하면서 외부의 선배 작가들과 함께 논리실증주의, 현상학, 언어철학, 노장사상과 같은 공부에 힘썼던 당시의 상황을 증언한다. 당시 청년 작가들의 작업이 막연한 조형 실험에만 매몰된 것이 아니라 조형 이론에 관한 부단한 연구의 산물이었음을 알려 주는 한 사례라 할 것이다. 한편, 1980-90년대, 수화랑, 갤러리 댓, 대구 인공갤러리, 서울 대학로 인공갤러리 등의 전시 공간은 대구의 현대미술을 촉발하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II. 비구상적 매체 실험   
기획전 〈Since then- 그 이후〉의 참여 작가 5인은 ‘변혁의 아방가르드 시기’ 이후에 성인이 된 이들로, 1970~80년대 학업기를 거치고 1980~90년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시절을 거쳐 현재까지 작품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대구 화단의 2세대라 호칭할 만하다. 
이들의 작품 세계는 실로 다채롭다. 동양적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변주한 색면 추상 회화(김승현), 질료의 성장을 창작의 과정으로 개입시키고 시간의 의미를 시각화하는 개념적 미술(노열), 실이나 철선을 평면 위에 드리우는 유연한 부조적 회화(김현석), 픽셀을 확대하고 변주하는 방식으로 노이즈라는 화두에 천착하는 다장르의 미술(박종규), 건축적 재료를 창작에 도입하고 시간의 의미를 성찰하는 조형 실험(최상흠) 등 형식과 내용이 모두 다채롭다. 그럼에도 관객은 이들의 작품 속에서 어렵지 않게 떠올리는 ‘비구상적 매체 실험’이라는 공유 지점을 발견한다.   
물론, 참여 작가들이 모두 이와 같은 ‘비구상적 매체 실험’을 대학 졸업과 함께 곧바로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대학 졸업 후 진학이나 유학을 통해서 창작에 대한 수련과 현장에서의 활동을 병행해 가면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찾는 모색의 과정을 거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예술과 일상의 괴리 속에서 일정 기간 화업을 놓고 생계의 전선에서 부단히 뛰기도 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참여 작가 5인이 천착하고 있는 ‘비구상적 매체 실험’이라는 조형 주제는 작가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안착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이들의 이러한 매체 실험은 근간은 무엇인가? 이들 5인이 늘 창작의 세계에 들어와 고민했던 지점은 바로 실험 정신을 실천하는 ‘아방가르드’가 이 시대에 여전히 가능한지를 되묻는 조형적 성찰에 관한 것이었다. ‘아방가르드 예술론’을 펼쳤던 예술이론가 레나토 포지올리(Renato Poggioli)에 따르면, 아방가르드는 ‘행동주의, 적대주의와 허무주의, 투쟁주의와 미래주의, 반과거주의와 모더니즘, 모호성과 비대중성, 비인간화와 성상 파괴주의, 의지주의와 현학적 경향, 추상예술과 순수예술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참여 작가 5인의 ‘비구상적 매체 실험 혹은 추상적 예술’ 또한 포지올리의 말을 빌려, '자기 극복, 자기 부정, 자체의 부정’과 같은 자기반성의 논리로 가득한 ‘창조적 실험’으로 정의해 볼 수 있겠다.   
혹자는 오래된 과거로부터 출발해 현재에 이르고, 또 어떤 이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것을 새롭게 맞이하는 중이기도 할 테지만, 이들은 모두 아방가르드의 미학적 실험 정신에 기초한 채, 현재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일구는 중이다. 유념할 것은 이들 모두 대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토대로 삼고 있지만, 전국을 무대로 보폭을 넓히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 중 몇몇 작가는 벌써 글로벌 아트의 활동 보폭을 펼치는 중이기도 하다. 
기획자는 이들의 작업을 다음처럼 범주화했다. 제1전시실: 김승현, 노열, 제2전시실: 김현석, 제3전시실: 박종규, 최상흠. 이들의 작품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III. 참여 작가 5인의 조형적 성찰 
김승현(Kim, Seung Hyun)의 회화는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을 묻힌 넓은 붓으로 엷은 바탕칠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바탕색이 마른 후 또 다른 색의 아크릴 물감을 올려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붓질을 지속함으로써 화면 위에 엷은 두께의 색층을 만들어 간다. 작품의 기본적 색상은 최종적으로 화면 위에 올라간 색으로 균질화되는 것이지만, 화면을 자세히 관찰하는 관객에게 완성작은 쌓인 색층이 서로를 간섭하면서 만들어 내는 반복과 겹침의 효과에 기인하는 비균질적 화면을 선사한다. 
물감을 올려 칠하는 과정은 완전히 마른 밑층의 색을 드문드문 내비치는 얼룩의 효과와 더불어 미묘하게 겹쳐진 색층을 만들어 냄으로써, 한 번의 붓질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매혹적인 화면 효과를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20세기 서구 추상 미술이 시도했던 매체의 문제의식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는 신체의 예술 행위를 통해서 도달한 명상과 같은 정신적 수행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김승현, Untitled (gch 120-3), 2016, Acrylic on Canvas, 194x130(cm)


노열(No, YEOL)의 작업은 기존의 회화의 문법을 비튼다. 패널을 거꾸로 눕혀 안료와 바니시를 섞은 물질을 시간의 간극을 두고 30회 이상을 덧칠함으로써 중력을 향해 하강하는 매질의 성장을 지속해서 도모하기 때문이다. 아래로 삐죽하게 가시처럼 자라는 질료의 성장을 부추기는 작업은 덧칠한 질료가 마르길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작가에게 요청한다. 코합판 위에 우드락 보드를 바인더로 접착하거나 포맥스라는 날것의 건축 재료를 지지대로 삼고 그 위에(아니 더 정확히는 그 아래) 그만의 특수한 질료를 지속해서 붙여 나가는 행위를 통해서 작가 노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물질과 대면한다. 
수평으로 눕혀진 채 작가에게 수직적 시각을 요구하던 작품은 작가의 창작 행위가 끝난 후 전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수직으로 세워져 관객에게 여느 작품 감상과 다름없는 수평적 시각을 요청한다. 그런 면에서 전시란 작가의 지난한 창작으로부터 관객의 용이한 감상으로 이동하는 분기점이자, 추락하면서 성장하던 작품이 성장을 멈추고 새로운 장소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재활의 시점이 된다.  


노열, Flow - Spring.  mixed media on panel.  91x117x5cm.  2018.


김현석(Kim, Hyun Suk)의 작업은 회화와 회화 아님 사이에서 서성이거나 월경(越境)한다. 그것은 납작한 평면 위에 결속선이라 칭하는 얇은 굵기의 구운 철사를 휘어서 붙인 부조이거나 삼노끈에 먹물을 입혀 자유로운 곡선 드로잉을 실험하는 반입체 회화이기도 하다. 평면 위에 지점토로 연결된 채 사뿐히 자신의 몸을 띄우고 있는 결속선과 삼노끈의 얇은 몸체는 마치 연필 드로잉처럼 간결하고 먹선처럼 우아하다. 그 유연한 ‘오브제로 된 선묘’ 아래에는 조명을 받은 얇은 몸체 아래로 그림자가 가늘게 드리운 채 쉬고 있다. 
아니다. 자세히 본다면 그것은 실제의 그림자만이 아니다. 작가 김현석이 오브제의 그림자를 상상한 채 콘테나 먹물로 그려놓은 선묘 회화가 실제와 그림자와 뒤섞인 채 동거하고 있는 ‘실재와 가상의 혼합체’이다. 그것은 작가 폰타나(Lucio Fontana)가 캔버스 위에 면도칼로 그린 ‘선묘 아닌 선묘’가 캔버스의 장력에 의해서 벌어지면서 틈과 구멍을 만들면서 ‘네거티브의 공간적 개념’을 시각화하고 있듯이, 그의 얇은 오브제로 만들어진 ‘선묘 아닌 선묘’ 또한 캔버스의 표면과의 사이에서 ‘유연한 공간적 개념’을 시각화한다. 그렇다, 이러한 실제의 오브제와 그것의 가상인 그림자 사이에서 만들어 내는 ‘유연한 공간적 개념’은 그의 평면 작업을 ‘회화 아닌 회화’로 정초시키면서 관객에게 작품 향유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만든다.       


김현석, 2018-1099


박종규(J. PARK)의 회화는 노이즈를 시각화한다. 그는 컴퓨터의 오류로 인해 디지털 이미지가 깨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디지털 이미지를 이루는 최소 단위인 픽셀(Pixel)’을 크게 확대하고 변주하는 방식’으로 노이즈를 번안하여 캔버스 회화 속에 제시한다. 그것은 사각형의 점들로, 원형의 점들로, 때로는 파선(破線)의 연속체로 등장하면서 캔버스를, 패널을 그리고 전시 공간 자체를 횡단하고 점유한다. 납작한 이차원의 화면 안에 크기를 달리한 채, 자리한 원형과 사각의 점들, 그리고 그것의 무수한 변주가 가득한 화면은 마치 단색화처럼 조용하지만, 그곳에는 노이즈가 상기시키게 만드는 꿈틀거리는 미묘한 차이와 불안이 함께 자리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의 회화는 가히 ‘노이즈의 바다’라 칭할 만한다. 노이즈는 사운드(sound)처럼 ‘소리’라는 의미를 공유하면서도, “(듣기 싫은, 시끄러운) 소리” 즉 ‘소음’과 ‘잡음’을 가리킨다. 그것은 전자 공학과 기계 제어, 또는 통신과 같은 모든 분야에서 하등의 가치도 없는 불필요한 존재이자 방해꾼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작가 박종규에게 ‘노이즈’는 배제되고 폐기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술의 언어로 시각화해야 할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다. 현실계에서 배제된 비주류의 다양한 사회적 삶을 노이즈로 은유하는 그의 회화는 관객에게 빗소리, 파도 소리, 시냇물 소리처럼 심정적 편안함을 제공하는 좋은 소음 즉 ‘백색소음(white noise)’ 혹은 명확하게 구체화할 수 없는 ‘시각적 질료’로 관객에게 성큼 다가선다. 


박종규, EMBODIMENT 2017. Video on LED display mounted on wall in dark room; stereo sound, 1,495x57.5cm


최상흠(Choi, San Hm)의 작업은 레진 모르타르와 경화제 그리고 유성 페인트 조색제가 두루 혼합된 건축적 질료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이러한 질료가 공기 밖으로 노출되면서 굳어 가는 과정에 개입하여 점액성 강한 질료를 캔버스 천이 뒤덮인 나무 패널이나 목재 구조물 위에 펴 바르면서, 그 물질이 스스로 움직이는 시간을 기다린다. 작가는 물질 스스로 점성과 장력에 의해서 떠밀리고 몰려다니게 만들거나 굳어져 가는 과정을 지켜봄으로써 그가 만들어 놓은 ‘한바탕의 물질 놀이 혹은 물질 운동’을 부추기는 조력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작가 최상흠은 이러한 물질의 향연에 아침, 저녁으로 개입해서 30번 이상의 붓기와 휘젓기를 반복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을 조력자 혹은 방관자의 위치에서 작품이 완성되길 기다린다. 
한편 반투명의 유성 매질은 때로는 다양한 색의 물감과 뒤섞이면서 다양한 표면의 효과를 가시화한다. 그것은 반투명의 질료의 특성상 아래층의 색을 중첩해내거나 거친 건축 재료의 특성상 마티에르를 도드라지게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대개 코발트블루(cobalt blue), 울트라마린(ultramarine)과 같은 물감과 혼종된 채, 완성 단계에 이르러 작품의 표면 위에 ‘흑경(黑鏡)’과 같은 반영 효과를 극대화한 것들이다. 관객은 둥글거나 네모진 프레임을 가득 채운 질료의 공간 앞에서 또는 질료를 한가득 입은 직육면체 입체 패널을 쌓아 올린 건축적 구조물 앞에서 흑경을 바라보듯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게 된다.   


최상흠, 2018



IV.  에필로그  
시안미술관의 기획전 〈Since then- 그 이후〉에 참여하는 5인의 작가가 대구미술의 2세대 작가의 대표성을 견지하거나 2세대 작가의 면면을 모두 제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전시는 훗날 세월이 흘러 등장하게 될 새로운 해석과 비평적 시선을 활짝 열어 둔다. 다만 ‘지금, 여기’에서 참여 작가 5인이 지향하고 있는 변혁의 아방가르드 이후의 미학을 진단하고 점검함으로써 향후 대구를 중심으로 한 지역 미술의 미래적 비전을 미리 살펴보고자 하는 것에 자족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 전시는 대구 화단의 허리 세대를 ‘지금, 여기’에서 조명하는 과업을 실천함으로써 대구 화단에서의 다양한 담론들이 활성화되는 계기를 도모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


출전/
김성호,  「예술 실험에 대한 회고, 'Since then- 그 이후'」, 전시 카탈로그, 2019
(Since then- 그 이후展, 2019. 9. 5 ~ 2019. 11. 17, 시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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