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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김연우 / ‘어울리지 않는 것들 혹은 부조화’의 이면

김성호

김연우 - ‘어울리지 않는 것들 혹은 부조화’의 이면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김연우_Playground 67.8X66.8cm 종이에 채색 2019

파스텔이 물속에 퍼져 있는 듯한 김연우의 화사하고도 흐릿한 회화는 경계를 구분하기 모호한 형상들이 서로의 자리를 점유한다. 그것은 구륵법(鉤勒法)과 같은 한국화 특유의 검은 선묘를 결여한 흐물흐물한 형상들로 어디에선가 흘러나와 화면을 이리저리 유영한다. 어디에서일까? 위에서인가, 아래에서인가? 모퉁이 아니면 중심 어디? 화면의 형상들은 종이 배면 어디에서 수분을 머금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널따란 여백을 두고 한쪽에 집중해서 형상들이 몰려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거나, 흐릿한 배경 화면 전체를 부유하듯이 노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형상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작가 김연우가 과거의 시간 속에 망각이란 이름으로 잠들어 있던 기억을 깨우고 ‘지금, 여기’에 소환하는 몇 개의 사건들이 연결된 채 드문드문 펼쳐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 없었던 오래된 과거는 40명이 넘는 학급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홀로 단상 앞에 나와 전학생인 자신을 소개해야만 하는 불안하고도 당혹스러운 기억들과 맞물려 있다.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새로운 친구’라는 이름으로 끼어들어 무너진 어린 시절의 인간관계를 재구축하고 챙겨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 기존 질서와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는 부조화의 존재였음을 고백하는 것이자, 그 불협하음과 부조화의 시공간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 그녀가 그리 좋아했던 놀이터에서의 놀이를 하기에는 멋쩍은 시기를 맞이했던 청소년기의 애잔한 기억도 함께 뒤엉켜 있다. 몸과 마음이 훌쩍 자라 성인이 된 이후에 놀이터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다. “어울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 그것은 사회화된 인간이 그 이전의 비사회화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토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 기억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물끄러미 목도하는 놀이터 풍경은 과거, 현재가 뒤섞이고 미끄럼틀과 시소가 허물어지듯이 한데 뒤섞인 풍경을 선보인다. 
다른 그림을 보자. 신축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 공사장 한 구석이다. 이 곳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 한 떨기 이름 모를 꽃들과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것들은 언젠가는 주위의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거될 것이다. 부조화를 못견뎌했던 한 때의 과거이지만, 작가 김연우는 자신의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이 유약한 식물들에 투사하고 다수의 관객과 그 연민을 나누고자 한다.     
또 다른 그림을 보자. 화창한 햇볕 아래 커다란 화분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풍경 사이로 계절을 모르는 길고도 남루한 복장을 한 걸인이 걷고 있다. 역겨운 냄새가 풍겼을 것에 틀림없는 이 걸인의 주변에는 커다란 여백이 자리하고 아무도, 아무것도 그 주위에 함께 있지 않는다. 한 무명의 걸인이 남긴 맥락과 다른 부조화의 풍경인 셈이다. 작가는 이러한 풍경을 포착하고 초현실주의적이고도 을씨년스러운 장면으로 전환해 놓는다. 화분은 커다랗고 초라한 걸인은 작디작다. 걸인뿐 아니라 다수의 삶 속에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수다한 소수자의 삶도 그런 것이리라.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것들’에게서 생명력을 발견하고 감정이입을 한다. 꿈틀거리고 스멀스멀 자라는 그것이 곧 제거되고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작가 김연우는 계속 애정과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그것들을 자신의 조형 언어로 그려갈 것이다. ●


김연우_Underground 59.5 x 59.5cm 종이에 채색 2019


출전/

김성호,  「김연우 - ‘어울리지 않는 것들 혹은 부조화’의 이면」, 성신여대 대학원 동양화과 비평 매칭, 카탈로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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