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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석수연 / 내 안의 우울을 치유하는 내 밖의 ‘닿는 것들’

김성호


석수연 - 내 안의 우울을 치유하는 내 밖의 ‘닿는 것들’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석수연, soothe, 45.5×53.0cm, 한지에 혼합재료, 2018

우울은 내 안에 있다. 그것은 분명 밖으로부터 온 것이다. 내 밖의 것들로 인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것들이다. 익명의 사건과 사고로부터, 주변의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내 안에서 자꾸 자라난다. 배출구 없는 내 안의 마음 한쪽, 심장 어디쯤 그것은 차곡차곡 쌓여 나를 알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석수연은, SNS의 가상 공간 속에서 발견되곤 하는, ‘행복’이란 이름 아래 과장과 위선이 뒤섞이는 다른 사람들의 메시지에 반문한다. 그들이 정말 행복한 것일까? 이러한 반문은 타당하다.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은 순간이고 일상의 대부분이 고통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수다하니까 말이다. 적어도 석수연에겐 그러한 반문들로 온통 자신을 물들이던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  
작가 석수연은 이러한 자신 안의 우울을 꺼내어 곱씹고 그것의 위압적인 힘을 떨치고 자유로워지고자 붓을 든다. 화판에 고정하지 않은 채 펼쳐 놓은 두텁고 질긴 장지 위에 목탄과 수묵으로 자신의 우울을 올리고 덧바른다. 가는 선묘와 담묵이 일필휘지의 거친 농묵과 뒤섞이고 휘몰아치니 그 순간만큼은 자신 안에 자라는 우울을 해부하고 자신 밖으로 던져 버린 느낌이다.   
이처럼 석수연은 자신 안의 우울을 버리는 과정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우울을 담는다. 그러나 분출하듯이 터져 나오는 표현주의적 언어로는 자신 안의 우울함이 소멸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작품 속에서 우울과 그것에 대한 표현이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일련의 삽화와 같은 더욱더 정갈하고 단순한 드로잉을 자신의 조형 언어로 실험하기도 했다. 차분하게 정돈된 단순한 화면 속에는 한쪽에 자리한 창문과 아이콘처럼 응축된 소외 가득한 분위기의 인물 형상이 동거하기도 하고, 늑대 혹은 개가 된 자신의 그림자를 보듬어 안으려는 인물의 을씨년스러운 고독이 자리하기도 한다. 
우울을 대신한 고독의 자리에 우울은 사라졌는가? 아서라! 우울은 언제나 종양처럼 자란다. 내 안으로부터 토악질해서 밖으로 던져 버려도 명상으로 내 안에서 소멸시켰다고 믿는다고 해도 우울은 어느새 내 안에서 또 자라는 것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당신 그리고 그와 그녀에게도 그 강도만 다를 뿐 같은 습성으로 자란다.  
석수연은 내 안의 우울을 떨치고자 홀로 분투하지 않기로 한다. 그것이 내 밖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결코 다시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니, 내 밖에 ‘손이 닿는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통한 위무(慰撫)와 치유는 작가의 주변의 타자, 즉 사물과 인간 모두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그(것)들의 접근을 허용하는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출현한다. 그것은 휘몰아치는 감정을 붓에 실어 거친 표현주의적 언어에 의탁하지 않아도, 마음을 비우겠다고 세필로 뒤엉킨 잡초를 편집증 환자처럼 꼼꼼하게 그리지 않아도, 가능한 길이 있다. 바로 ‘손이 닿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 내 안의 우울을 버리는 대신 내 안의 우울을 치유해 줄 누군가(무엇인가)를 찾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최근 인물과 인물이, 자연과 인물이, 사물과 인물이 만나는 관계의 미학을 모색 중이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자신만의 수묵의 조형 언어를 찾아가면서 말이다. 그것이 자신의 향후 작품 세계에서 잠깐 거쳐 가는 길일뿐일지라도 해도 작가 석수연은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찾은 조형의 길을 묵묵히 걷기로 한다. ●

석수연, 잔디 끌고 가기, 97.0×130.3cm, 장지에 채색, 2017


출전/
김성호,  「석수연 - 내 안의 우울을 치유하는 내 밖의 ‘닿는 것들’」, 성신여대 대학원 동양화과 비평 매칭, 카탈로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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