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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윤수경 / ‘현재를 사는 과거’에 대한 연민

김성호

윤수경 - ‘현재를 사는 과거’에 대한 연민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윤수경, 흔적_장지에 혼합재료_52x118cm_2019.

나만이 알고 있는 공간이 있다. 실제로 타인도 알고 있는 공간일 수 있으나 적어도 내겐 나만의 공간이다. 남들이 별일 없다는 듯이 스치고 가는 곳이지만 내겐 그곳이 내가 예전에 몸담고 있던 그곳과 너무 닮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거 속 기억이 그러할진대, 다가올 미래에 현재가 과거가 되고 말 공간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떠할까? 
작가 윤수경은 조만간에 떠날 공간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했던 그곳은 작가의 거주지이다. 특히 세월의 흔적을 입은 퇴락한 듯한 후미진 공간은 그러한 연민의 대상이다. 창고로 보이는 한쪽 벽에 녹슬어 있는 라디에이터, 화장실 혹은 욕실의 어디쯤으로 보이는 구석 공간에 자리한 환풍기와 거울, 현관문을 무수히 여닫았던 개폐 장치와 문손잡이, 의자가 놓인 바닥 등 그녀가 지내왔고 지내고 있는 그곳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기억 속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될 ‘떠나야 할 공간’이다. 이별을 예감하는 만남과 연애는 얼마나 슬픈가? 
작가 윤수경은 이별을 고하고 떠나야 할 특정 장소를 애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더듬는다. 그녀의 작품은 일반 종이가 아닌 겹겹이 쌓은 판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된다. 호분을 여러 번 쌓아 올려 두꺼운 마티에르를 지닌 견고한 회화의 장을 만들고 그 위에 먹물을 입히고 선을 긋고 다시 지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투박하면서도 질료감이 가득한 화면은 회화의 밀도를 높이면서 그 속에 담긴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각인하는 동시에 그 세월 동안 함께 했던 작가의 연민과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물에 시간의 지층을 만들고 그곳에 감성의 옷을 입히면서 작가는 ‘사물의 공간’이 기억하는 과거를 소환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저장한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하게 될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움을 혼재시키고 과거 속 상처에 대한 치유와 더불어 현재의 또 다른 상처를 덧씌운다.   
누구나 한 번씩은 그려 보았을 일상의 후미진 공간을 주목하면서, 작가 윤수경은 붓질의 반복적 집적으로 화면 위에 두꺼운 마티에르를 만들고 세월의 흔적을 입히면서, 일상적인 것 혹은 흔한 것이었으나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주요한 존재였음을 되뇌고 성찰한다. 훗날 그것은 ‘너무 익숙한 존재에 대한 낯선 만남’을 촉발할 것이다. 작가는 마치 회화의 언어를 통해서 그러한 순간을 예비하는 것처럼, 화면이 질박해질 정도로 자신의 ‘과거가 될 현재의 공간’을 쓰다듬고 어루만진다. 언젠가는 ‘현재 속에 과거를 소환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그녀의 작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차원에서 훗날 그녀의 작업은 ‘현재를 사는 과거’, 즉 ‘과거가 현재에 연장되는 것’에 대한 경험이 뭉쳐진 ‘윤수경만의 사유의 장’으로 남을 것이다.    
윤수경의 회화가 지니는 강점은 상투적인 소재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지난한 창작의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회화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 지를 미리 곱씹으면서 성찰한다는 점이다. 밀도가 높은 성실한 화면 구성과 회화성 넘치는 붓질도 강점이다. 다만 상투적인 화면을 지금의 조형 방식으로 극대화하는 것이 노정하는 한계도 명징하다. ‘회화적 언어’를 정공법으로 실험하는 윤수경의 작품에 있어서, 사물과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흘러내리는 표현주의적 언어는 ‘현대 한국화’에서 곧잘 발견되는 상투적인 표현 방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앞으로 이러한 점을 어떻게 개선할지는 작가의 몫이다. ●


윤수경, 703으로 부터Ⅱ, 72.7x90.9cm, 장지에 혼합재료, 2019.


출전/
김성호,  「윤수경 - ‘현재를 사는 과거’에 대한 연민」, 성신여대 대학원 동양화과 비평 매칭, 카탈로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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