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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안│경남도립미술관 특강/ 지역 문화와 비엔날레 현상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김성호

지역 문화와 비엔날레 현상 -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김성호(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I. 들어가는 말
이 글은《2020창원조각비엔날레》를 중심으로 지역 문화와 비엔날레 현상을 살펴본다. 
한국에서 짝수년도는 가히 '비엔날레의 해'라 할만하다. 인구 5100만의 작은 나라에서 국제아트이벤트를 지향하는 비엔날레는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등의 덩치 큰 비엔날레와 더불어 특정미술 장르를 특화시킨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그리고 오늘 우리의 주제가 된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이르기까지 글로벌을 지향하는 아트이벤트들이 넘쳐난다. 게다가 2013년에 열렸던 《광주디자인비엔날레》,《청주공예비엔날레》,《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등을 포함하면 한국의 국제미술행사는 가히 선도적이라 할만하다. 이들 비엔날레는 해를 번갈아가며 저마다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새로이 단장한 자신의 모습들을 야심차게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왜 이렇게 많은가? 한국의 선배 세대들이 벌여놓은 비엔날레들을 후배 세대들이 다듬어가야 할 무수한 과제들 앞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할 것이 무엇인가? 오늘날은 '서구 중심의 패권주의'를 벗어나는 '탈중심의 패권주의'이기보다는 그것을 나눠 갖는 '다중심 패권주의' 시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내년의《창원조각비엔날레》를 중심으로 지역 문화와 비엔날레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자. 


II. '다중심 패권주의' 시대의 창원조각비엔날레 
오늘날은 바야흐로, 비서구 국가들이, 오랫동안 문화권력의 중심이기를 자처해온 서구를 밀어내고, '우리도 중심이다'를 외치는 '다중심 패권주의'의 시대에 들어선 듯하다. 생각해보라, 서구에서 비엔날레 역사는 스스로가 언제나 중심임을 외치는 패권주의의 연속이었다. 최초의 국제아트이벤트인 《베니스비엔날레》가 그러하지 않은가? 이탈리아 국왕의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이웃나라들의 네트워크를 감행하는 《베니스비엔날레》를 출발시켰다고 하니, 서구 비엔날레의 첫출발은 패권주의에 대한 선언이나 다를 바 없었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베니스비엔날레》가 이탈리아의 관광수입의 물꼬를 트기 위해 기업인들을 대거 예술가 후원의 취지로 끌어들였다든가, 그 운영방식조차 당시의 ‘만국박람회’를 흉내 내었다는 것은, 당시 글로벌 문화권력을 통해 세계의 문화시장을 선점하려는 서구식 패권주의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는 반증이다. 이러한 초기의 《베니스비엔날레》나 《카셀도큐멘타》역시 유럽의 세력 규합에 집중하면서 자신들이 지켜온 문화중심의 위치를 끝까지 고수하려는 패권주의를 드러낸다. 1970년대 연이은 호주의 《시드니비엔날레》, 미국의 《휘트니비엔날레》, 독일의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당시의 유럽과 미국의 위상을 강화하는 기제로 사용되어 왔다. 지금은 사라진 파리비엔날레 역시 미국으로 빼앗긴 문화예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서구의 문화권력 중심의 지위를 차지하고자 '1951년 이른 시기에 출발 시동을 걸었던 브라질의 《상파울루비엔날레》나 이를 이어 1968년에 출발선에 자리를 잡았던 《인도트리엔날레》는 내내 우리들에게 회자되는 제3국의 모델이다. 그러나 전자는 다분히 유럽의 모더니즘 미술을 남아메리카 지역에 소개하는 창구 역할에 매몰되었거나 후자는 별다른 이슈를 생산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인도의 지역적 정신성에 탐닉하려는 태도를 보여 왔다는 비판을 벗을 길이 없어 보인다.' 물론 오랜 역사만큼이나 시행착오를 거친 《상파울루비엔날레》는 1990년대 이후로 브라질의 역사적 문맥 위에서 비엔날레를 운영하면서, 서구 중심의 문화구조를 일정부분 극복하고 있다고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이르러, 제3국인 아시아 태평양지대와 아프리카 지역의 ‘중심에 잠입하고픈 욕망’은 신생 국제아트이벤트의 확산에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기 시작한다. 제3국의 경제적 부상과 서구 지배이데올로기의 퇴조 현상이 맞물려 이들의 문화적 탈중심화 노력들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다분히 정치 전략적 취지로 잉태한 《방글라데시비엔날레》(1981~ )나 쿠바의 《아바나비엔날레》(1984~ )의 생성은 서구가 주도하는 문화권력을 탈중심화하기 시작하는 일련의 시도로서 간주되었다. 또한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상파울루비엔날레》의 최근 변모와 더불어 1990년대 이래 등장한 아시아 지역의 《광주비엔날레》,《상하이비엔날레》,《타이뻬이비엔날레》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기치를 비엔날레에 녹인 《요하네스버그비엔날레》의 약진은 괄목한 것이었다. 《요코하마트리엔날레》, 《후쿠오카트리엔날레》는 역시 차별성을 강조하는 국제아트이벤트로 거듭나기를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아시아 지역의 탈중심주의는 자국 내의 수도권 중심주의마저 이탈하면서 변방에서 글로벌을 도모하는 용기마저 가능하게 만들었다. 
내년에 5회 행사를 맞이하게 되는《창원조각비엔날레》는 얼추 역사가 10년이 되어 간다. 창원, 마산, 진해가 통합되어 동남권 거점 도시로 발돋움하게 된 것을 계기로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을 개최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10년을 넘어선다. 이러한 경험을 자산으로 삼아, 2012년 제1회 비엔날레를 개최한 이래, 어느덧 세월이 흘러 2020년에 제5회 행사를 맞이하여, 이제 명실상부한 주요 비엔날레에 자리를 함께 하기에 이르렀다.  
창원은 김종영(1915~1982), 문신(1923~1995), 박종배(1935~), 박석원(1942~), 김영원(1947~) 등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들을 배출한 조각의 도시이다. 이곳에 창원조각비엔날레의 국제적 위상을 만든 추진위원장과 감독들, 1회 김봉구/서성록(2012), 2회 김이순/최태만(2014), 3회 신용수/윤진섭(2016), 4회 신용수/윤범모(2018), 7인의 노력에 힘입어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어느덧 ’동시대 세계 현대조각의 장'으로 우뚝 섰다고 하겠다.  
창원에서의 비엔날레 시작은 여타의 비엔날레와 다른 조각 지향의 국제전이라는 뚜렷한 지향점이 있기는 하나, 본질적으로 '로컬'에의 관심으로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국가 안에서 다중심으로 분권화되는 일련의 문화적 결과물들, 즉 지방 도시 중심의 《광주비엔날레》, 《상하이 비엔날레》나 《후쿠오카 트리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등의 국제미술행사처럼, 《창원조각비엔날레》도 자국 내의 수도권 중심의 문화 위상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로컬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등장한 것이다. 물론 서구에 대한 비서구 혹은 제3국이라는 로컬의 위상으로 확장하면서 말이다. 
이제 1980년대 이후 비서구의 문화 탈중심주의는 1990년대에 이르러 문화 권력의 ‘서구 중심 패권주의’로부터 탈주하여 모두가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문화 권력의 ‘다중심 패권주의’를 정초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서구, 비서구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전지구적 다중심 패권주의’의 궤도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아직은 작지만《창원조각비엔날레》역시 이러한 '다중심 패권주의'의 주역이라 할 것이다. 


III. 제도 안에서 탈제도를 추구하는 비엔날레의 위상과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위치
주지하듯, 미술인들이 기대하는 비엔날레란 미술관, 갤러리 등 제도적 기관에서의 형식적이고 관행화된 전시시스템을 탈피하는 탈제도의 이상을 추구한다. 즉 제도 안에서 탈제도의 위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2014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 제시카 모건(Jessica Morgen)이 비엔날레의 역할을 '지배적인 문화정책과 전통과 유산을 중시하는 일반전시와 다르게 비엔날레는 유동적이고 유연하며 즉각적이고 동시대적이고 주제에 초점을 맞춰 창조적 표현의 스펙트럼 제공이 가능하다'라고 했던 발언은 이러한 비엔날레의 위상을 반증한다.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의 '비엔날레와 미술관 전시의 차이점은 뭔가. (중략).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 되는 것이 비엔날레 정신이다.'라는 언급 역시 비엔날레 본유의 정신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이것은 '전시의 커뮤니케이션과 미술관의 커뮤니케이션, 즉 문화적 커뮤니케이션과 제도적 커뮤니케이션(entre communication culturelle et communication institutionnelle) 논의의 구분'과 차별점이 분명히 존재함을 선언하는 것이다. 지금이야 꽤 지난 행사이지만, 2014년 로컬을 중심으로 글로벌을 도모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2개의 비엔날레의 주제는 대비적이다. 제시커 모건(Jessica Morgen)이 감독한 《광주비엔날레》는 창설 20주년을 맞는 해인만큼, '창조적 파괴와 새로운 출발'이라는 의미의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라는 주제를 제시했고, 올리비에 케플렝(Olivier Kaeppelin)이 감독을 맡은《부산비엔날레》는 '세계에 대해 반응하는 예술가의 의지가 표현되는 전시'를 꾸리기 위해서 '세상 속으로(Inhabiting the World)'라는 주제를 제시했다. 양자 모두 '세계를 대면하고 인식하는 미술가들의 시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는 하지만 전자는 다분히 파격적이고 혁명적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온건적이고 보수적이다. 비엔날레의 위상이 제도권을 탈주하는 전시의 패러다임 속에서 실현된다고 할 때, 전자는 비교적 이러한 본연의 위상을 잘 수렴했다고 한다면, 후자는 이미 제도화되어 버린 비엔날레의 전형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러 재난과 사회·생태학·재정학적 위기 등에 봉착했을 때 예술은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는 2014《부산비엔날레》의 기획 의도는 가장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예술에 대한 윤리적 미학을 제시하고 있지만, 늘 새로운 실험과 태도를 보려고 하는 미술인들의 눈에는 함량미달일 수 있다. 전시감독 선임의 문제로 불거진 일련의 소란스러운 비엔날레 보이콧 운동들을 거치면서 뒤늦게 감독이 선정되었던 사실을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준비기간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작년의 일이 되었지만, 2018년 비엔날레는 또 어떠했는가? 
 《2018광주비엔날레》는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라는 다소 진부한 주제를 화두로 국내외 11명의 큐레이터가 7개의 전시에서 43개국 165팀의 30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의 규모는 역대 최대이고, 참여 작가 수도 많다. 기존의 광주비엔날레전시관 외에도 덩치 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주제전의 무대로 삼아, 행사 전 미술인들의 기대와 우려를 키웠는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오래 묵은 거시 주제’를 풀이하는 큐레이터들의 섹션별 주제 해석은 나름 진지했고, 출품작들은 빛났음에도, ‘공간 따로 작품 따로’의 전시 현장이 수시로 발견된다. ‘원래 멋진 공간’을 더 멋지게 만들어야 할 ACC창조원에는 ‘공간도 작품도 모두 죽인 상황’이 수시로 목도된다. 총괄 수장이 있음에도, ‘있다고 말하기 어색한 조직 구성’ 때문일까? 큐레이팅에 나선 장군들은 많은데, 그 실제가 아쉽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비엔날레전시관은 예전처럼 볼만하고, 광주의 유무형 자산을 연구한 ‘GB커미션’의 장소특정적 전시는 신선하다. 더욱이 올해의 새로운 위성프로젝트 실험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광주를 문화적 거점 도시로 정초시키는 데 있어 매우 유효해 보인다.
제9회를 맞이한 《2018부산비엔날레》는 ‘비록 떨어져 있어도(Divided We Stand)’라는 주제 아래, 리쿠페로(Cristina RICU-PERO) 전시감독과 하이저(Jorg HEISER) 큐레이터에 의해서 34개국 66인(팀)의 125점의 작품들이 초대를 받았다. 주제는 릴레이로 광주를 이어받은 느낌이다. ‘광주’가 ‘국가, 민족, 영토의 경계’뿐 아니라 ‘상상의 경계’를 주제로 포섭하고 있듯이, 부산 역시 ‘물리적 분리’와 ‘심리적 분리’를 한데 아우른다. 전시 장소는 새롭다. ‘ 부산현대미술관’과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그곳! 전자에서 과거-현재를 소환해 탐구한다면, 후자에선 공상과학적 요소를 통해서 현재-미래를 조망한다. 올해 ‘ 부산’은 ‘탈메가비엔날레’를 선언하면서 참여 작가 수를 이전보다 확 줄였다. 그런 까닭은 실상 따로 있다. 작년 말, 전임 집행위원장이 비리, 전횡 의혹을 받고 자진 사퇴한 이래, 신임 집행위원장의 선임이 늦어진 만큼, 감독 선임도 늦어졌고, 촉박한 전시 준비 일정에 화답하듯, 규모가 축소된 것이다. 그런데 위기가 오히려 득이 되었다. 광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람의 집중도를 높였다는 평이다. 광주의 복잡함이 부산의 단순함을 살려 준 것일까? 아니면 감독을 도와 집행위원장과 게스트큐레이터가 발로 뛴 탓일까?

자 그렇다면 그간의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어떠했는가?《2020창원조각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은 이가 대외적으로 이전의 비엔날레를 품평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여기서는 과거의 창원조각비엔날레를 살펴보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정도로만 이 단락은 마무리해야만 하겠다.



(표) 2020 창원조각비엔날레 Pre 행사 중 학술컨퍼런스
 
청중께서는 위의 표에 나와 있듯이, 역대 비엔날레에 관한 모든 것을 해당 감독들의 발제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허락하시면 참여하셔서 보다 발전적인 의견들을 개진해 주시길 바란다. 
이번 강좌에서의 관건은 한해의 비엔날레 주제가 위의 경우처럼 위촉받은 외부의 감독의 전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차별화된 비엔날레의 장기적 방향성을 마련하는 일은 비엔날레 내부 즉 비엔날레재단, 조직위 혹은 운영위에서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창원조각비엔날레》를 주최하는 창원문화재단의 장기적 비전, 주관하는 추진위원회의 장기적인 실행 계획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과업은 위촉된 감독의 효율적인 디렉팅을 이끌어내는데 있어 매우 주요한 바탕이 된다고 하겠다.   

(후략 및 주석 생략)

출전/

김성호. 지역 문화와 비엔날레 현상 -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2019GAM 뮤지엄 렉처, 자료집, 2019. 11. 22() 14:00-17:00, 경남도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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