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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평│이소명展 / 산뜻한 일상과 동화적 내러티브의 현대채색화

김성호

 산뜻한 일상과 동화적 내러티브의 현대채색화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이소명은 장지에 수간 안료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한국화의 기법을 고스란히 물려받으면서도 화법이나 제작 태도에 있어서 서구 미술의 형식을 접목한다. 그것은 현대 한국화의 장에서 고민하던 한국화의 재해석과 현대적 계승의 과제 속에서 모색한 자기화의 과정임에는 분명하다. 
그것이 무엇인가?

I. 전통의 재해석을 꾀하는 현대한국화, 자유로운 창작 태도의 현대미술 
작가 이소명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먹과 종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끌어안고 시작한 우리 한국화의 정체성을 ‘여기, 지금’의 상황에서 산뜻하게 변주한다.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현대 한국화의 장에 있어서 한국성이라는 독자적인 전통적 실체를 위해서 엄격한 잣대로 전통적 고수를 강화하던 일군의 작가들과 그것을 현대적 언어로 변용해 온 일군의 작가들이 있다. 이들의 작품을 제대로 논하기 위해서는 전통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것의 변용에 대한 바람직한 해설을 전제로 한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용어인 '한국화'의 전통과 기원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인이 그린(그렸다고 여겨지는) 최초의 미술시원을 거슬러 우리만의 전통이라고 고집하는 미술사학적 접근을 우리가 주저하는 까닭이기도 하며 반대로 한국인이 그린 모든 그림들(유화이든, 수묵화, 채색화이든)을 한국화라고 부르는 통합적이지만 막무가내 식, 탈사관적 주장에 우리가 고개를 흔드는 까닭이기도 하다. 
다수의 학자들이 인정하듯이, 자연주의적인 도교철학과 중용적인 유교철학을 바탕으로 화론을 전개하였던 중국의 전통과 달리, 한국은 문인화적 전통이나 17-18세기의 진경산수화나 풍속화 그리고 이를 이어 온 민화와 같은 독자적 화풍의 전통을 이어왔다. 이러한 미술사적 진술을 더 굵게 범주화하면 현대 한국화론은 문인화적 전통과 민화적 전통이 뒤섞인 무엇으로 전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는 안다. 문인화적 전통이 철학적 사유를 내세우는 전통에 기대고 있다고 한다면, 민화적 전통은 일반 서민의 삶을 모태로 하는 전통을 잇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소명은 둘의 전통 속에서 민화적 전통과 얼추 다리를 잇고 있으면서도, 그 형식이 많은 부분 서구 회화의 양식과 맞물려 있다. 즉 국내에 동양화, 한국화 현대한국화 그리고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계승과 발전적 모색에 있어서 창작 기법의 차원에서는 한국화의 장르적 속성을 줄곧 지켜오면서도 창작의 조형 태도에 있어서는 서구적 현대미술에 가까운 형식을 빌리고 있다. 어떤 차원에서는 현대미술이라는 큰 범주 속에서 자유로운 현대한국화의 기품을 독자화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즉 작가 이소명은 한국화의 장르적 속성, 즉 종이, 먹, 붓과 같은 한국화를 유지하는 '틀'과 같은 최소한의 범례를 준수하면서도 서양화와 한국화의 구분을 무색케 만드는 자유로운 현대미술의 창작 태도를 함께 견지한다. ‘현대한국화의 전통 재해석’ 그리고 ‘현대미술의 자유로운 창작 태도’에 대한 비교적 고찰은 우리가 작가 이소명의 작품을 분석하고 평가하기 위해 생각해 보아야 할 첫 관문인 셈이다.  


이소명, 목화소녀, 2017, 장지에 수간안료, 65x91


II. 산뜻한 일상과 동화적 내러티브의 현대채색화   
작가 이소명은 현대채색화가다. 현대채색화의 오늘날 역할은, 현대수묵화가 떠맡은 ‘전통 계승과 현대적 재해석의 막중한 역할’보다 가볍고 자유롭다. 한지와 같은 매체의 물리적 특성에 치중하는 서구적 조형모색이나 파격적인 실험에 기반한 수묵화 운동이 서구적 어법을 통한 ‘동양적 전통의 정신의 근원성’에 탐닉하는 ‘거시적 구조’의 미술이었다고 한다면 현대 한국의 채색화 운동은 ‘한국적 전통의 특수성’을 지향하는 ‘미시적 구조’의 미술이었기 때문이다. 수묵운동이 중국의 노, 장자 사상의 철학적 기반이 동양의 매체를 통해서 서구의 미술형식으로 귀결된 것이라고 본다면 채색화의 일련의 움직임들은 고구려벽화나 고려 불화와 같은 미술적 전통을 시도하거나 나아가 실학에 기초한 한국성이라는 고유전통의 특징을 민화와 같은 고유한 실체로부터 따 온 것이란 점에서 전자는 거시적 틀을 후자는 미시적 틀을 견지했다고 풀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 이해 속에서 작가 이소명이 천착하는 현대채색화는 민화적 전통을 일정 부분 계승하면서도 현대인의 일상을 동화적 내러티브로 주제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동화적 내러티브? 이소명의 작품에서 동화의 내러티브처럼 반복되어 나타나는 유형은 무엇인가? 
그것은 소소한 일상이다. 작품 〈목화소녀〉(2017)에서처럼 산뜻한 노란색의 옷을 입은 소녀가 목화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은 따뜻한 봄을 보내는 소녀의 소소한 일상을 드러낸다. 작품 〈꾸미의 꿈〉(2017)은 보다 더 동화적이다. 노란 구름 혹은 꽃송이처럼 보이는 배경 위에 팔을 베고 누워 있는 소녀의 모습은 더없이 정겹고 행복해 보인다.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의 내러티브가 동화의 ‘유형론(類型論, typology)’이라고 할 때, 작가 이소명의 작업은 후자의 유형론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 있다. ‘행복한 소녀’로 상정되는 캐릭터화된 인물을 일상의 풍경 사이에 개입시키는 그녀의 작업에는 초현실적 감성과 동화적 내러티브가 극대화되어 있다. 
동화적 내러티브에는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내면적 해석과 조형화 작업, 원형이미지로서의 자연 탐구 재해석 또한 한국화의 전통 화제(畵題)를 현대화하는 과제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경우 동화적 내러티브에는 인물보다는 자연물의 형상이 유독 크게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작가 이소명의 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소녀의 키를 훌쩍 넘는 해바라기를 고개를 쳐들어 올려다보고 있는 소녀를 그린 작품 〈물고기 구름〉(2018)이나 커다란 화분 밑을 산책하는 소녀와 강아지, 지나가는 앙증맞은 크기의 자동차가 만드는 동화적 풍경을 그린 작품 〈일상으로의 초대〉(2017)는 그러한 예라 할 것이다. 가히 산뜻한 일상을 동화적 내러티브로 담아낸 따뜻한 채색화라 할 만하다.  


이소명, 일상으로의 초대, 2017, 장지에 수간안료, 90x72


이소명, 꾸미의 꿈, 2017, 장지에 수간안료, 72x91



III. 현대채색화의 자기화 모색의 과제 
작가 이소명은 전통의 채색화를 현대화하는 ‘자기화 모색’의 과정을 선보인다. 그곳에는 장지와 같은 전통적 매체와 수간안료와 같은 표현 기법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민화적 전통을 현대의 동화적 내러티브로 산뜻하게 번안하는 이소명만의 채색화 양식이 있다. 분명 그것은 작가가 오랜 세월을 한국화의 재해석과 현대적 계승의 과제 속에서 모색한 자기화의 과정이자 그 결과라 할 것이다. 관건은 있다. 현대채색화의 자기화 모색의 과제 속에서 동화적 내러티브와 같은 미시적 서사가 강화되는 지점에서 오늘날 현대 사회가 당면한 맥락적 고찰 역시 병행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여기, 지금’에서의 현대채색화가 새롭게 모색해야 될 당면한 과제를 통시적, 공시적 성찰 속에서 늘 조형적으로 성찰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필자는 가늠할 길이 없다. 작가 이소명이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하나둘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

단평:  화가 이소명은 한국화의 매체와 표현 방식을 계승하면서도 현대미술의 조형 태도를 견지하면서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의 과제에 천착한다. 특히 산뜻한 일상을 표현하는 정겨운 동화적 내러티브는 주목할 만하다. 

출전/
김성호, 「산뜻한 일상과 동화적 내러티브의 현대채색화」, 전시평, 『한수원과 함께하는 지역예술인 지원사업』, 경주문화재단, 자료집, 2019
(이소명展, 2019. 5. 29~6. 3, 인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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