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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임용현 / 미디어아트로 감행하는 초(超)미디어 현실에 대한 풍자적 비판

김성호

미디어아트로 감행하는 초(超)미디어 현실에 대한 풍자적 비판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미디어 아티스트 임용현은 미디어아트를 통해 미디어가 획책하는 오늘날 현실을 비판적으로 풍자하고 유희한다. 하나의 모듈 이미지를 응축과 확산의 대립적 언어로 반복 재생함으로써 미디어로 가득한 오늘날 현실의 삶 속에서 테크놀로지에 지배당하고 있는 현대인이 지향해야 할 삶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업은 우리에게 현대문명에 대한 마르쿠제(H. Marcuse)나 하버마스(J. Habermas)의 비판적 메시지를 지금 이 시대에 되새기게 만든다. 즉 기술적 진보가 야기한 고도 산업사회 및 현대 자본주의가 현대인을 일차원적 인간으로 몰아가는 현상을 비판했던 마르쿠제나, 매스미디어가 현대인을 기존의 능동적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부터 수동적인 커뮤니케이션 수용자로 전락시킨 현상을 비판했던 하버마스의 메시지는 작가 임용현의 미디어아트 영상 작업이 품은 내러티브와 무관하지 않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작가 임용현의 작업은 오늘날의 초(超)미디어 현실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던지고 있는가? 


II. 초미디어 현실을 비판하는 미디어아트 전략 : 응축, 확산, 반복
일상에 너무 많은 미(美)가 존재하는 ‘미의 과포화 상태’인 ‘초미의 세계’로 인해 현대예술이 무가치해졌다고 보는 비판적 회의론은 보드리야르(J. Baudrillard)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 임용현은 오늘날 현대 사회를 ‘미디어의 과포화 상태’인 ‘초미디어의 세계’로 이해한다. 현대 미디어는 이전의 분화되었던 다양한 미디어, 즉 멀티미디어를 스마트폰과 같은 하나의 작은 기기에 모으는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를 구현한다. 유선과 무선을 통합하고 통신과 방송뿐 아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융합하는 오늘날의 디지털 컨버전스는 이제 현실과 가상 사이를 언제나 자유롭게 접속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의 세계마저 열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임용현은 이러한 미디어의 과포화 상태를 작품 〈Digital Galaxy〉(2019)를 통해서 마치 만화경처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반도체 형상이 연접하는 다양한 프랙탈(fractal) 이미지를 화면 중앙으로 응집시키는 동시에 외곽으로 끝없이 확산하는 영상이다. 단순한 구조가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복잡하고 묘한 전체 구조를 형성하는 그의 작업은 임장감 있는 사운드를 배경으로 이 시대의 미디어 과포화 상태를 은유한다. 작품명처럼 디지털로 이루어진 갤럭시인 셈이다. 
상하좌우로 대비되는 시메트리 구조와 프랙탈 이미지들이 부단히 교차하고 오가는 양상은 그의 작품 〈Untitled〉(2016)에서도 나타난다. 작은 커피 알갱이들이 흩뿌려진 화면에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점차 프랙탈 구조를 갖추어 가면서 무한 증식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탐구한다. 또한 작품 〈Spread〉(2018)는 화면 중심에서 사방으로 확산하는 프랙탈 도형들이 점차 고래 형상으로 자라면서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반복적인 영상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유영하는 물고기 한 마리가 계속 변화하는 영상을 담은 작품 〈Journey〉(2018)의 프랙탈 버전이라 하겠다.  
그가 디지털 반도체와 커피 알갱이가 만드는 프랙탈 이미지뿐 아니라 자연물의 프랙탈 도형의 변형 그리고 콜라 캔 그리고 가면 위에 지속하는 이미지의 무한 변형을 통해 선보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말한다. “기계와 디지털 문명의 발전으로 인류는 비약적인 삶의 혁신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과도한 기술 의존으로 인하여 오히려 첨단 기술에 인간의 삶이 점령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러한 첨단 기술을 통해 인류는 가상현실을 창조하고 있으며 이것들은 때때로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실제로 인류의 삶을 유토피아를 향하게 하고 있는지 아니면 유토피아라고 꿈꾸며 이끄는 곳이 디스토피아인지 그 종착역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 나의 의문이고 질문이다.” 그러니까 임용현의 무한 반복 증식하는 디지털 가상 이미지에 대한 탐구는 위태로운 현실의 문제의식을 내포한다. 대조와 대비, 응축과 확산, 무한 증식과 소멸을 쉼 없이 반복하는 이미지는 멀티미디어 시대가 꿈꾸는 ‘장밋빛 미래’ 뒤에 미디어가 너무 많은 초미디어 현실이 가져올 ‘디스토피아’적 암울한 미래에 대해 경고한다. 그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와 기능적 미디어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현실을 넘어 이제는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지속해서 질문한다.  
       

Delight
3D projection Mapping / Empty can, Beam projector
1500x800mm, 3min 3sec, 1080p, 2018
https://youtu.be/99DfOFMihqQ



III. 허구의 미디어로 덧입히는 현실 변형의 전략 : 프로젝션 매핑
조지 오웰(G. Orwell)이 소설 『1984』(1949)에서 텔레 스크린을 통해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전체주의적 감시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경계하고 있다면, 작가 임용현은 자신의 미디어 아트를 통해 미디어가 과포화된 현실이 인간을 점령할 미래의 가능성을 경계한다. 임용현의 비판적 고찰은 이러한 차원에서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감시 체제인 텔레스크린을 변형한 디지털 멀티미디어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임용현의 조형 전략은 예술적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초미디어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즉 그는 가상과 허구의 뉴미디어아트로 멀티미디어가 팽배해 있는 오늘의 현실을 통렬히 경계한다. 인간을 위한 유용성의 목적으로 세상에 등장했던 아날로그 미디어뿐 아니라 디지털 미디어의 세계가 훗날 인간을 점령하는 ‘불확실한 미래’를 경계하는 것 말이다. 
작가 임용현은 이러한 초기 미디어 현실에 대한 경계와 비판적 메시지를 비틀어 ‘풍자적 비판’으로 치환한다. 그는 초미디어 현실에 대한 비판을 위해 멀티미디어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또는 미디어의 시뮬라크르적 속성을 현실 속에 구현하기 위해서 대상물 표면에 미디어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의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을 구사한다. 초미디어 현실을 더욱 극대화해서 선보이는 셈이다.  
작품 〈Delight〉(2018)를 보자. 이 작품은 실제로 흰색으로 도포된 빈 콜라 캔들을 수평선상에  나열하고 그 위에 변화하는 여러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매핑을 통해서 실제 사물과 가상 이미지를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복수의 흰 캔 표면 위에 투사되는 영상은 비행기가 지나는 푸른 하늘, 화려한 색상 띠와 달러 지폐, 그리고 콜라가 채워지거나 표면으로부터 녹아내리는 콜라 상표들이다. 작품 〈Culture Code. C〉(2017)는 흰색의 빈 콜라 캔들을 격자의 형식 안에 멀티플로 집적한 바탕 위에 화려한 그래픽 이미지와 다양한 감각적 영상을 투사시키는 프로젝션 매핑을 선보인다. 긴박한 사운드와 맞물려 혼종의 이미지들이 사물의 표면 위에 투사됨으로써 실재와 가상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그의 프로젝션 매핑은 미디어들로 가득한 오늘날의 초미디어 현실을 극대화하는 풍자적 비판이 된다. 
작품 〈Pencil = Weapon?〉(2017)은 또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총알을 연신 발사하는 기관총과 굵직한 세상의 사건들을 소개하는 뉴스의 화면이 실제의 스테인리스 스틸판에 프로젝션 매핑으로 오버랩되면서 오늘날 문력과 무력 사이의 문제의식에 대해 질문한다. 작품 〈Catch me if you can〉(2018)에서는 영상 앞에 선 관객이 소리로 반응할 때 작품 속 미국 달러 지폐가 계속 바뀌면서 지폐 속 인물이 살며시 미소 짓는 이미지를 투사함으로써 돈과 권력에 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익살스러운 해학으로 비틀어 선보인다. 임용현의 작업에 있어서 ‘프로젝션 매핑’의 방식은 허구의 미디어가 가득한 21세기 디지털 미디어의 현실인 초미디어의 상황을 지속해서 선보이면서도, 그것이 함유하는 문제의식을 풍자의 언어로 가시화하는 데 있어 제격이다. 실제의 사물과 가상의 시뮬라크르가 교차하면서 비틀어진 풍자로 긴장감이 가득한 흥미로운 영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Pencil = Weapon?
Pencil, Stainless steel, 3D Projection Mapping
1150x450mm, 1min 17sec, 2017
https://youtu.be/mMNr-zyvW2I


물론 이러한 풍자적 비판의 작품은 인간의 위태로운 존재론적 위상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 제기하기도 한다. 작품 〈Faces〉(2018)을 보자. 이 작품에서는 영상에 등장하는 하얀 마스크들이 점차 중국 경극(京劇)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가면 형상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이 작품은 인간의 개성화된 이미지와 개별적 인간 주체의 모습이 ‘페르소나(persona)’라는 위장된 가면 형상 아래 지속적으로 숨겨지고 있는 오늘날 현대인의 상황을 우리에게 되돌아보게 만든다. 
작품 〈Who is you〉(2018)은 또 어떠한가? 이 작품에서는 카메라에 포착한 관객의 모습을 시메트리 추상 이미지로 변형하여 선보이면서 인간의 존재론적 위상을 여러 방식으로 문제 제기한다. 인간 존재가 얼마나 허망한 이미지의 정보로 가볍게 치환될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러한 점에서 미디어아트 팀 빅풋(Bigfoot)과 협업한 작품 〈HAPPINESS〉(2016)는 오늘날 인간 위기의 시대에 조명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진지한 탐구처럼 보인다. 커다란 상반신 인물 형상에 다양한 영상 이미지를 ‘프로젝션 매핑’의 방식으로 투사하는 이 작품은 강건해 보이는 인물 형상과 맞물려 오늘날 21세기 현실에 요청되는 초인(超人)의 이미지로 은유된다.  


Faces
3D projection Mapping / Canvas, Mask, Beam projector, Mac computer
2300x1300mm, 3min 39sec, 1080p, 2018 
https://youtu.be/apt6ZwQACQE




IV. 에필로그 
글을 마무리하자. 미디어 아티스트 임용현은 오늘날의 초미디어 현실을 풍자적으로 비판한다.  프랙탈 이미지를 응축, 확산, 반복을 통해 극대화하는 멀티미디어 영상이나 실제의 사물 위에 가상의 시뮬라크르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매핑이라는 그의 조형 전략은 이러한 풍자적 비판을 실천하기에 유효해 보인다. 어떤 면에서 순수의 ‘날 것’과 같은 언어에 집중하기보다 현대 광고의 화려한 수사로 덧입힌 조형 언어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의 미디어아트 조형 전략은 일관적이다. 디지털 작업과 아날로그적 감성의 융합을 통해서 예술적 소통을 도모하면서, 때로는 은근한 풍자적 비판으로, 때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다가서는 전략 말이다. ●

출전/
김성호.  「미디어아트로 감행하는 초(超)미디어 현실에 대한 풍자적 비판」, 임용현 작가론, 광주문화재단 레지던시 비평 매칭, 자료집,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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