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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 / ‘다므기’와 ‘흩뿌림’의 실천

김성호

‘다므기’와 ‘흩뿌림’의 실천 :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의 행동주의 미술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 대장정의 막을 내리며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가 3년간의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이 프로젝트는 올해 계획된 일정을 마치고 종료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DMZ(韓半島 非武裝地帶, Korean Demilitarized Zone)의 모든 철책 선, 즉 경기도에서 강원도에 걸쳐 있는 동서 약 250km에 달하는 남북한 사이의 철조망을 걷어 내, 가운데 지점(강원도 철원 백마고지 및 승리전망대 일대)에 대규모 원형 구조물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 ‘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의 도래를 염원하고, 전 세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평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목표는 명확하지만, 목적은 이상적’인 까닭에 이 프로젝트는 ‘미완(未完)’을 처음부터 노정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 프로젝트는 매해 이름 앞에 년도를 표기해 왔듯이 향후 이 프로젝트가 언제든지 재출현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케 한다. 현실적으로는 올해 마감하지만, 이상적으로 ‘미완의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것은 왜 시작되었고,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향후의 전망은 어떠한 것인가? 이 글은 그것에 관한 종합적인 의미를 다각도로 탐구한다.





II. 온새미로, 무경계 그리고 예술정치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는 3년간의 현실적 성취를 거쳐 ‘통일과 평화’라는 이상적 목적을 지향하는 ‘영원한 미완의 장기 프로젝트’이다. 언제 이룰지 장담할 수 없는 남북통일과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세계의 평화!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염원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늘 가능태로 존재한다. 적어도 남북통일은 우리의 예견보다 더 일찍 성취되고 실현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이상의 목적지를 위해 달려 나가는 노력 자체가 가치 있음을 알고 있는 예술가들이 발 벗고 나서서, 서로의 손을 잡아 이끌고 서로를 밀어주는 ‘상호 협력’의 프로젝트이다.  
3년 동안의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는 총 7차 프로젝트로 구성되었는데, 2017, 2018, 2019와 같은 해당연도를 표기하고 하이픈으로 세부 전시명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다수의 기획을 하나의 이름 아래 모아 선보였다. 또한 전시명에 ‘온새미로’, ‘DMZ 국제’라는 용어들이 붙으면서 세부적인 이름을 달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무수한 전시와 아트 이벤트들의 본질은 하나이다. ‘예술정치를 통한 무경계 프로젝트의 실현’이라는 목적의식이 그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예술정치, 무경계 그리고 온새미로’로 명명되는 세 가지의 개념을 화두로 삼는다. 우리는 이것을 거꾸로 ‘온새미로, 무경계 그리고 예술정치’라는 순서대로 살펴본다.  
첫째, 온새미로! 이것은 ‘경계를 전제하는 사유’, ‘경계 이전의 시원(始原)에 대한 본원적 사유’로 정의된다. 순우리말인 ‘온새미로’란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김새 그대로,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라는 뜻을 지닌다. 즉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가 화두로 삼은 ‘온새미로’란 갈라지고, 쪼개진 ‘여기, 지금’의 시공간을 인식하고 그 이전의 시공간을 가리키는 용어이자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이 프로젝트에서 온새미로는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 이남의 쪼개진 좌우 이데올로기, 세계 각지로 흩어진 한민족의 이산(離散)을 비유하면서 그 ‘경계 짓기’ 이전의 시공간을 상정한다. 즉 “사물, 현상 따위가 시작되는 처음”이라는 의미의 ‘시원’이라는 개념을 공유하는 것이다. 
온새미로는 ‘경계 짓기 이전’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일견 통시적(通時的)으로 보이지만, 현실의 지평과 역사의 흐름을 초탈하는 시공간인 유토피아와 같은 ‘시원의 공간’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이념적이고 본질적이다. 그래서 이 온새미로는 경계 짓기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가역적(可逆的) 사유’이기보다 ‘여기, 지금’의 상황을 무경계의 상황으로 재수립하려는 ‘비가역적(非可逆的) 사유’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둘째, 무경계! 이것은 ‘경계를 전제하는 사유’, 즉 ‘경계에서의 사유’로 정의된다. 이 개념은  직접적으로 남과 북의 ‘경계 있음’의 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되묻는다. 한국 전쟁 직후 미국과 소련과 같은 열강의 제국들에 의해서 ‘경계 짓기’를 피동적으로 감수해야만 했던 약소국의 상황을 되뇔 뿐만 아니라 거꾸로 한민족의 기상이 만주까지 뻗었던 발해와 같은 당시의 상황을 되새기며 민족적 정기를 다잡는 것이기도 하다. 즉 식민 종주국으로부터 잃어버린 한반도 평화의 지대, 오염된 피식민의 땅, 변형되고 갈라진 영토를 회복하려는 사유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무경계의 개념은 통시적이다.  
또한, 이 ‘무경계’는 이분법적 사유에서 출발하는 모든 ‘경계 짓기’를 거부한다. 즉 민족, 국가와 같은 전 지구적 경계뿐 아니라, 이념,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는 사유와 실천을 요청하는 것이다. 즉 한 시기를 무경계라는 개념 아래에서 두루 성찰한다. 나아가 ‘여기, 지금’의 시공간에서 주체와 타자를 나누고 주체와 사물을 구조적 틀 속에 가두는 모든 사유를 거부하고 그것으로부터 탈주하는 일련의 ‘자유 지대’를 상상한다. 따라서 이런 차원에서 무경계의 개념은 공시적이기도 하다. 
이처럼 무경계는 경계를 전제하고 이 경계로부터 탈주하는 한민족의 과거 역사와 더불어 ‘여기, 지금’에서의 인류의 현재적 염원을 동시에 담는다. 즉 무경계란 통시적이자 공시적인 개념이다. 한편, 현실 지평에서 꿈꾸는 미래의 세계를 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계의 전제 - 경계의 넘나듦 - 경계의 봉합 - 경계의 탈주 - 무경계’와 같은 순차적인 노정들에 대한 실현을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꼭 성취하겠다는 열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무경계 프로젝트’에서 ‘무경계’의 의미란 ‘여기, 지금’에서 ‘경계를 전제하고 경계 위(혹은 언저리)에서 자유로운 월경(越境)’을 사유하는 것이자, 미래적 비전으로 ‘경계 없는 넘나듦’을 열망하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겠다.  
셋째, 예술정치! 이것은 ‘경계를 전제하는 실천’, 즉 ‘경계에서의 행동주의 미술’로 정의된다. 우리가 위에서 ‘온새미로=무경계’라는 등식이 개념적으로 성립되는 것으로 보았듯이, 여기서는 ‘무경계 프로젝트=예술정치’의 등식이 넉넉히 가능해진다. 또한 온새미로와 무경계의 개념이 ‘사유’를 진작(振作)하는 것이라면, 예술정치의 개념은 ‘실천’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즉 ‘변혁에 대한 사유 또는 변혁에 대한 정치적 열망’을 예술을 통해 실천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남북통일과 세계 평화’라는 이상적 목적을 아우르면서 ‘남북 사이의 철조망 제거와 원형 구조물 설치’라는 현실적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서 일련의 예술적 실천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들이 지향하는 ‘예술정치’는 그런 면에서 이데올로기의 전투적 실천을 의도하기보다 한반도에서 온새미로의 상황을 되찾으려는 근본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정치 미술’ 혹은 ‘행동주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예술정치란 온새미로와 무경계라는 근본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변혁의 사유를 같은 지침의 ‘행동주의 미술’로 실천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III. 무경계 프로젝트의 행동주의 미술 - ‘다므기’의 실천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의 첫째 해인 2017년 프로젝트의 예술정치 강령이 있었을까? 근본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예술정치를 지향하고 느슨한 행동주의 미술의 실천을 도모했던 까닭에 딱히 강령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당시 제시된 모토(motto)는 ‘연대, 공유, 동행’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세 가지 ‘강령 아닌 강령’을 ‘온새미로’처럼 국어사전에 있는 순우리말로 ‘다므기’라 부르기로 한다. ‘다므기’는 ‘더불어, 함께’라는 뜻이다. 이것은 위의 세 가지 개념뿐 아니라 공존과 공생 그리고 소통을 함유하는 용어라는 점에서 이 글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는 여러 장소에서의 다양한 아트 이벤트들이 ‘무경계 프로젝트’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모여 펼쳐졌기 때문이다.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는 3년 동안, 실험공간 UZ을 중심으로 한 화이트 큐브에서의 기획전과 개인전, 오픈에어 프로그램인 한반도 이남의 DMZ 답사와 그것에 따른 설치, 퍼포먼스 그리고 《2019 DMZ 국제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 온새미로》라는 이름의 국제전에 이르기까지 ‘총 7차’로 구성된 무경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름처럼 이 프로젝트는 그룹전과 개인전 그리고 국제전에 대한 특별한 구분보다 1차전, 2차전, 7차전과 같은 차수를 표기하면서 모든 프로젝트가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모이도록 한 것이다.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는 ‘예술정치-다므기 무경계 프로젝트’라 표현할 정도로 2018년 한 해만 하더라도, 다수의 전시와 프로그램이 더불어, 함께, ‘연대, 공유, 동행’했다. ‘무경계 4차전-손 그림’전(3~4월)을 시작으로 ‘Workshop’전(5월), ‘무경계 69 New Media’전(6월), ‘적응방산_適應放散’전(7월), ‘섭경-온새미로’전(9월), ‘무경계 5차전-온새미로’전(10월) 등 총 6차례의 기획전뿐 아니라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의 비무장 지대 답사와 관련한 일련의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한편 2019년에는 ‘무경계 6차전’으로 ‘온새미로-흔들리는 눈동자-김재연’전(3월), ‘온새미로-상고사(上古史)-하늘이 위에, 하늘이 밑에, 별들이 위에, 별들이 밑에’전(4월), ‘온새미로-빛 무늬-卽-박지현’전(5월), ‘온새미로-집宇집宙-경계에서-홍채원’전(6월), ‘온새미로-슈룹/파사 협업 프로젝트-중구난방-衆口難防’전(7월)이 펼쳐졌고, ‘무경계 7차전’으로 ‘온새미로-치유의 ㅂ ㅏ ㅇ___비.워.내.기-최세경’전(8~9월)과 ‘DMZ 국제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 온새미로’전(9~10월)이 열림으로써 3년간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위에 언급한 세부 전시들을 출발부터 한데 묶은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는 가히 ‘더불어 함께’라는 의미의 ‘다므기’의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개인전과 기획전이, 국내전과 국제전이, 회화, 조각, 설치, 영상, 사진, 퍼포먼스의 다원주의 장르가 그리고 미술과 비미술이 한데 어우러진 ‘다므기 프로젝트’인 것이다. 
또한 최종 목표 지점인 일명 ‘DMZ 철조망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서 진행하는 현장 답사와 사전 리서칭과 같은 준비 단계의 여러 과정을 결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위해서 그룹 내외의 여러 구성원의 협력을 도모하는 것도 ‘다므기’의 정신을 실천한다. 프로젝트의 최종적인 성취를 위해 DMZ의 공간들을 탐방하는 일련의 답사 활동은 이미 수십 차례에 이른다. 이러한 활동은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예술적 결과물을 축적해 나간다. 즉 답사 공간과 연관된 역사와 사회적 맥락의 정보를 담은 아카이브, 답사 현장을 기록한 사진, 영상물과 지역민과의 인터뷰, 답사의 노정에서 실현하는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이 그것이다. 이러한 결과물들을 전시의 형태로 재점검하고 논의하는 단계를 지속적으로 거치면서 프로젝트는 진행되어 나간다. 
그렇다. 긴 호흡의 순차적인 단계를 거치는 현장 답사를 위해서 팀원들과의 공유, 연대, 동행, 즉 ‘더불어, 함께’라는 ‘다므기’ 정신과 실천은 필수적이다.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선발대의 사전 계획, 프로젝트의 실행을 위한 역할 분담, 프로젝트의 참여를 독려하고 동행하길 요청하는 열린 연대, 답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에 대한 치밀한 기록과 자유로운 형식의 참여 예술의 실천 그리고 프로젝트의 개선을 위한 난상 토론과 답사 후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전시와 난장과 같은 축제는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 프로젝트의 연속적 프로그램들이기 때문이다. 




IV. 무경계 프로젝트의 행동주의 미술 - ‘흩뿌림’의 실천과 예술의 정치화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의 행동주의 미술은 ‘다므기’의 정신을 실천하는 한편, ‘흩뿌림’의 네트워킹을 도모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예술의 정치화’ 개념과 함께 살펴본다. 
우선 지난 2018년 무경계 프로젝트에 관한 필자의 글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예술의 정치화’란 용어는 원래 벤야민(Walter Benjamin)으로부터 온 개념이다. 그는 예술을 나치즘 이데올로기의 선동 도구로 활용하려는 히틀러의 ‘정치적 미학화’에 맞서기 위해 이 개념을 고안했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벤야민의 ‘예술의 정치화’라는 테제는 아우라(Aura)의 예술이 아닌 '비(非)아우라'의 예술로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비아우라의 예술? 그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의 일품성을 중시하는 순수 예술’을 반대하는 편의 모든 예술이다. 즉 아우라의 예술이 종국에는 나치즘과 같은 이데올로기의 도구화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비아우라의 예술로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즉 ‘예술의 정치화’인 것이다.
‘무경계의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예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프로젝트는 참여 구성원들의 독자적인 개인의 예술 작품을 버리고 공동의 예술을 통해서 정치를 실천한다. 개별 작가의 작품 세계가 형성한 아우라는 공동의 ‘예술 정치’에 있어서 외려 방해 요소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점을 자신의 논문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속에서 간파했다. 무수한 에디션과 복제를 통해 복수의 예술 작품이 가능해지는 시대에, 예술 작품은 아우라를 상실한다. 그것은 작품이 지닌 제의적 가치로부터 전시적 가치로 변동된다. 벤야민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예술의 ‘제의적 기능’은 ‘정치적 기능’으로 대체되고, 대체되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한다. 즉 그의 ‘예술의 정치화’란 예술 본연의 ‘제의적 기능’이 소멸한 자리에서 ‘정치적 기능’이 부활하면서 가시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벤야민이 진술하는 ‘변증법적 전회(Dialektische Umschlag)’이다. 
정권과 이데올로기의 시녀로 봉사를 일삼던 ‘아우라 가득한 제의적 예술’이 사라진 곳에서 ‘비아우라의 전시적 예술’이 자란다. 벤야민이 사진과 비디오 영상과 같은 복제 예술 속에서 현실 사회를 변혁하는 대중의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을 찾았던 것처럼, ‘무경계 프로젝트’ 역시 여러 차례의 현장 답사를 통해 프로젝트의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이 가능성을 실천한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다. ‘아우라가 탈각된 예술’을 통해 실천하는 벤야민의 ‘예술의 정치화’가 미디어를 통해 ‘시공간이 뒤섞이는 몽타주(montage)’를 주요 전략으로 삼듯이, 같은 방식을 실천하는 무경계 프로젝트의 ‘예술 정치’ 역시 몽타주의 철학과 전략을 공유한다. 필자는 그것을 이전 글에서 ‘산포(散布)적 행동주의 미술’로 정의한 바 있다. 여기서 필자는 ‘산포’란 말을 같은 의미의 순우리말인 ‘흩뿌림’으로 교정한다. 단선적인 노마드적 행보,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무작위적인 퍼포먼스, 특별한 주제 없이 벌어지는 난상 토론, 프로젝트 중간에 개입하는 예정되지 않는 일정, 전시와 프로젝트가 뒤섞이는 혼성의 프로그램, 특별한 중심과 경계가 없는 개방과 연합 등과 같은 양상이 바로 ‘흩뿌림’의 실천적 예라 할 것이다. 
이 ‘흩뿌림의 행동주의 미술’은 19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이 견지했던 걸개그림, 목판화, 회화 등에서 표현되었던 비판적 리얼리즘, 사회적 리얼리즘이 표방하는 ‘응집(凝集)적 행동주의’와는 사뭇 그 결이 다르다. 즉 하나의 거시적 목표와 하나의 이념과 같은 공유의 지점을 설정하는 일은 양자가 같을진대, 목표에 이르는 과정이 양자 간 확연히 다르다고 하겠다. 달리 말해 ‘민중미술’의 행동주의가 전복하고 혁파해야 할 대상을 늘 설정하는 경직된 실천인 것과 달리, 무경계 프로젝트에서는 전복할 대상이 특별히 없다. 다만 완수할 목표 설정과 그것에 이르는 자유로운 과정이 더욱 더 주요할 따름이다.  
이러한 흩뿌림의 행동주의 미술의 특성은 3년간의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를 마감하는 세부 프로그램이었던 《DMZ 국제 예술정치 - 무경계 프로젝트 온새미로》’전(9~10월)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지역과 인종의 정체성을 달리하는 해외 작가들과 국내 작가들이 뒤섞이고 프레젠테이션, 퍼포먼스, 실내 전시, 야외 설치가 혼합된 채, ‘DMZ 캠프그리브스 워크숍’과 현장 답사 그리고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함께 펼쳐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국제 프로젝트는 한편으로는 ‘연대, 공유, 동행’을 포함하는 ‘다므기’ 정신을 넉넉히 실천하고, 또 한편으로는 흩뿌림의 전략을 효율적으로 실천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것은 벤야민식으로 말하면 예술의 정치화를 실현하는 ‘몽타주의 전략’이자, 우리의 논의대로 말하면 예술의 정치화를 실현하는 ‘흩뿌림의 행동주의 미술’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는 노마디즘의 예술정치와 흩뿌림의 행동주의 미술을 실천한다. 마지막으로 그 결과보고전이 되는 전시를 실험공간 UZ, 예술공간 봄, 신풍초등학교 강당 그리고 야외의 공간들에 산포적 상태로 전시함으로써 ‘흩뿌림의 행동주의 미술’을 이념적, 실천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V. 에필로그 - 대장정의 막을 내린 후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가 3년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관객은 모두 떠났다. 또한 느슨한 네트워크로 만났던 이 프로젝트 그룹 중 다수의 참여 작가들은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긍심을 품고 하나둘 무대를 떠났다. 관건은 남겨진 이들이다. 연출자와 주요 배우 그리고 스텝이다. 누구라고 특정하지 않더라도 그 정체성이 자명한 이 프로젝트의 중심인물인 기획자와 참여 작가들 몇 명은 고민할 것이다. 향후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긴 휴지기의 시간 동안 그들은 여전히 바쁠 것이다. 3년간의 프로젝트를 곱씹으며 자기 비판적인 성찰을 거듭할 것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미래적 계획을 입안해 나갈 것이다. 회한도 있겠고 논쟁도 있을 것이다. 
관건이 있다면, 이들의 자발적 행동주의 미술을 지켜보는 관객의 기대를 과거 그대로의 모습으로 안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관객의 기대와 예측을 벗어나는 다음 단계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예술정치의 확장을 도모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물론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될지 필자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이 프로젝트의 출발 당시의 초심을 곱씹을 때 그 새로운 방향성이 구체화될 듯싶다. 
당시 기획자의 발언을 보자: “경계가 지어진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다시금 우리 눈으로 직시하게 한다. 이에 ‘예술 정치’라는 화두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는 경계 안의 제한된 선택을 넘어 모든 경계들을 다시 인식하고자 한다. 그 경계를 걷어 낼 수 있는 정치적 방법 모색과 실천 행위를 자유롭게 실험, 연구하고, 예술을 넘어 다방면의 관점과 소통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는 전 세계의 미(예)술계가 노골적인 부패와 ‘투기’의 장이 되어 버린 형국에서 새로운 예술 실천 방안이기도 하다.” 
그렇다. ‘실험, 연구, 예술을 넘어 다방면의 관점과 소통’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이 프로젝트 그룹이 예술정치를 선언한 만큼, ‘무언가를 가져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련의 행위’로 번역되는 전유(appropriation)와 그것을 다시(re)라는 접두어로 접속시켜 원전의 의미를 재고(再考)하는 재전유(re-appropriation)의 방식을 곰곰이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예술 정치란  ‘예술 활동을 도구로 일련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 그룹이 아무리 정치적 프로파간다(propaganda)와는 다른 지점에서 ‘예술 정치’ 혹은 ‘예술의 정치화’를 작동시킨다고 할지라도, 이들의 예술 정치는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현실적 이상을 공유하면서 ‘당연히 그래야 할 실천’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재전유의 실천 방식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 프로젝트 그룹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 실천가들에게 요청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미완성 속에서 1단계 완성’의 열매를 거둔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남겨진 과제를 곰곰이 성찰하고 면밀하게 연구하면서 향후의 프로젝트를 준비해 나가길 기대한다. 서구의 오랜 구전(욥기 8 : 7)이 이렇게 말했으니 힘을 내면서 말이다: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

출전/
김성호.  「‘다므기’와 ‘흩뿌림’의 실천 :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의 행동주의 미술」, 무경계프로젝트 2017-2019, 카탈로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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