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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이른 봄나들이 - 예술가의 작업실

김성호

이른 봄나들이 - 예술가의 작업실

김성호(여주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겨울을 떠나보내는 / 아쉬움의 작별 의식인 듯 / 봄빛 담은 햇살 사이로 한바탕 함박눈이 뿌렸다. / 기나긴 겨울 한철 / 죽은 듯 말없이 있더니 / 어느새 파릇한 봄기운 / 살그머니 풍기는 저 여린 가지들. / 너희들 살아 있었구나. / 살아 봄을 잉태하고 있었구나. / 오! / 작은 생명의 신비한 힘이여. / 봄은 거짓말처럼 / 지금 눈앞에 와 있다.”  - 정연복(1957~ ), 「봄」




I. 시인의 마음 - ‘이른 봄나들이’ 
정연복 시인의 시심(詩心)을 빌려 말하면, 우리의 2월에는 ‘봄 햇살 사이로 함박눈이 뿌리는’ ‘겨울도 봄도 아닌 것’이 자리한다. 겨울과 봄 사이의 ‘늦은 겨울’ 혹은 ‘이른 봄’이 자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밤과 아침 사이에 모호하게 자리하고 있는 ‘미명(未明)의 새벽’처럼 짧은 순간이다. 그 순간은 어떤 이에게는 여전히 단잠을 자는 ‘늦은 새벽’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기지개를 켜면서 하루를 맞이하는 ‘이른 아침’과 같은 것이다.     
2020년 2월 여주미술관에도 이와 같은 ‘겨울도 봄도 아닌 것’이 또는 ‘늦은 겨울’이거나 ‘이른 봄’이라 할 것이 찾아왔다. ‘거짓말처럼 눈앞에 와 있는 그것’을 우리는 겨울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담아 ‘늦은 겨울’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아서라! 떠난 옛 연인이 그리워도 우리를 맞이하는 현재의 연인이 소중하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이른 봄’이라 부르기로 하자. 아직은 나들이를 나설 채비가 안 되었다고 이웃이 소매를 붙잡고 말리더라도 나설 채비를 해보자. ‘이른 봄나들이’를 말이다. 여주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그렇게 준비되었다. 
여주미술관 기획전 《이른 봄나들이 - 예술가의 작업실》은 봄이라고 부르기에도 섣부른 2월부터 꽃향기가 점점 진해지는 봄인 4월까지의 일정으로 펼쳐진다. 이월을 넘어 삼월을 지나고 사월을 맞이하는 동안 혹시 꽃샘추위가 여러 번 다가와 주위를 온통 겨울왕국처럼 만들어 우리의 봄나들이를 방해할지라도 우리는 절대 착각하지 않으리라. 그것이 겨울이라고 말이다. 그래! 언제 급습할지 모를 꽃샘추위에 대해 채비를 하고 이른 봄나들이를 떠나기로 하자.  
 

II. 관객의 마음 - ‘네 지역의 이른 봄나들이’
봄나들이를 어디로 갈 것인가? 지도를 펴보자. 경기도의 시군만 하더라도 31곳인데 어디를 갈까? 지도 위에 여주로부터 가까운 이천, 양평, 광주 순으로 줄을 그어 보니 숫자 ‘2’, 또는 한글 ‘ㄹ’자 모양이 된다. 그러니까 가장 아래 지역인 여주로부터 거꾸로 올라가는 모양이 되는 셈이다. 
봄나들이를 어디로 갈까? 여주에서는 ‘이포보-여주보-강천보’에 이르는 강변길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떠날지, 아니면 ‘명성황후 생가-세종대왕릉-신륵사에 이르는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찾아 여행할지 생각해 보자. 이천에서는 4월에 열리는 ‘백사 산수유꽃축제’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볼 만하다는 설봉공원과 설봉저수지로 냉큼 나들이를 가볼까? 양평에서는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 온 동양 최고 수령의 ‘용문사 은행나무’를 한 번 더 보러 갈까, 아니면 산과 강을 굽이쳐 주행한다는 환상의 레일바이크를 타러 갈까? 마지막으로 경기도 광주에서는 조선 도자의 기틀이 된 분원도요지나 백제의 숨결을 간직한 남한산성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거야. 
그런데 여주미술관에서 기획전을 한다니 여주부터 가야겠지. 여주미술관에 가서 자세히 물어보니, 여주-이천-양평-광주로 떠나는 여행은 맞는데, 유명 관광지를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 안에서 ‘예술가의 가상 작업실’을 방문하는 거라네. 이른 봄이라 추울지도 모르니까 그러는 것일까? 예술가의 따뜻한 작업실 구경을 하자는 거야. 예술가가 여주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여주, 이천, 양평, 광주에 이렇게 많은 예술가가 살고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 직장도 안 다니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단 말이야. 이 사람들은 뭘 먹고 살지? 예술? 갑자기 호기심이 확 생긴다. 


III. 작가의 마음 - ‘예술가의 작업실을 향한 이른 봄나들이’
여주미술관에서 연락이 왔다. 작년 5월에 개관하고 10월에 신임 관장이 오게 되면서 기획전을 새로 열었다는데, 궁금하기는 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술관이었는데 신임 관장이 두 번째 기획하는 이번 전시에 여주 작가로 참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작가면 작가지. 여주 작가는 뭔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썩 유쾌하지는 않았던 터라 시큰둥하게 답했다. 참여하겠다고. 사실 이번 전시에 여주미협 지부장이 추천하는 5인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라 이미 참여 사실을 알고 있었던 까닭에 별 토를 달지는 않았지만, 여주에 자리한 미술관이 왜 함께 하는 작가를 ‘지역 작가’라는 이름으로 묶으려고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주에 자리한 신생 미술관의 입장에서는 여주 작가들의 아카이브와 연구가 필요했을 터이고, 이웃하고 있는 이천, 양평, 광주의 미술가들과의 네트워크가 긴요했을 것이다. 우리도 양평이나 광주의 미술가들을 모두 알지는 못하는 까닭에 전시를 통한 만남에 기대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별히 여주에 10년 넘게 거주하고 열심히 활동하면서도 우리 미협이 전혀 알지 못했던 작가가 함께 참여한다는데 그 작가가 누군지 참으로 궁금하다. 이번에 4지역의 미협 지부장들이 5명씩 20인의 지역 작가를 추천하고 미술관이 4지역에서 1팀씩 작업실 재현하는 섹션을 포함하여 6명씩 선정하여 24인의 작가를 선정했단다. 하여 총 44인이 참여한다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대가 증폭된다. 어떤 면에서 ‘실제의 작업실을 미술관 안에 가상으로 꾸미는 작업실 재현’ 프로그램을 내가 맡지 못해서 아쉬운 측면도 없지 않지만, 열심히 응원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동료의 ‘빛남’이 나의 ‘빛남’이니까 말이다. 
《이른 봄나들이 - 예술가의 작업실》이라는 전시명은 어느 정도 마음에 들기는 한다. 작업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모여서 관객에게 예술가의 삶이 어떠한지를 선보이고, 매핑 작업을 통해서 각 지역에 어떠한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지를 소개한다니까 말이다. 다양한 관객 참여 프로그램과 교육 강좌도 있다고 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우리 동네 예술가들의 작업실 풍경이 어떠한지를 세밀하게는 아닐지라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예술가 되기’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잠시나마 실천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관객들을 위해서 예술 동료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번 전시를 정성스럽게 준비해야겠다. 꼭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난 오늘도 작업실로 간다.   
 

IV. 다시 시인의 마음으로  
여주미술관은 이번 기획전에 참여해 주신 작가 44인 외에도 여건상 초대 작가로 모시지 못한 지역의 많은 작가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안하게 온 세상을  엄습하는 있는 2020년 2월 현재, 미술관의 입장에서 무슨 특별한 다른 코멘트가 필요할까? 혹여 ‘코멘트 아닌 코멘트’가 필요하다면, 또 다른 한 시인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아름다운 시’를 여기에 옮겨 적는 것으로 ‘감사한 마음’을 대신한다.   

“사랑하는 이여 /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추운 겨울 다 지내고 /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김종해(1941~),  「그대 앞에 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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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44인(팀)


여주의 작업실 

노춘석(작업실 재현), 김호득, 박종문, 신건하, 엄시문, 이길래, 이상중, 이영선, 이영숙, 장식, 장태묵, 


이천의 작업실 

박장근(작업실 재현), 김영란, 류경원, 박병철, 박호창, 손미경, 안말환, 엄익훈, 인순옥, 장경옥, 정광식


양평의 작업실 

하태임(작업실 재현), 김근중, 김유준, 김한국, 박초승, 서용선, 이상찬, 임태규, 정충일, 조순호, 최용대 


광주의 작업실 

허문정/김병주(작업실 재현), 곽남신, 구태회, 김동숙, 김영원, 김은량, 김정희, 신한철, 이태현, 임영선, 장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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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김성호, 「이른 봄나들이 - 예술가의 작업실」, 전시 카탈로그 

(이른 봄나들이 - 예술가의 작업실展, 2020. 2. 7~4. 19, 여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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