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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이선호 / 돌의 삶

김성호


돌의 삶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각자의 어깨를 비좁게 만들어 서로 이웃하고 있는 돌의 집단 초상! 작가 이선호의 돌들은 흑백의 깊이 속으로 들어와 앉는다. 돌의 회색 피부가 투영된 그것은 실재를 반영하는 돌의 초상임과 동시에 실재를 모노톤으로 변형하고 은유한 ‘사회적 인간’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냇물에서 강물로 이어지는 흐름을 타고 강 하류로 내려와 기나긴 여행을 마무리한 채 한 자리에 안착한 ‘돌 가족의 서식 풍경’이며, 또 어떤 경우에는 인간이 모서리를 다듬어 벽으로 쌓아 올려 만든 ‘사회적 인간의 은유적 풍경’이 되기도 한다. 
이선호가 장지에 먹을 엷게 쌓아 올려 그린 돌의 집단 초상에는 돌의 시간과 공간이 그리고 돌의 삶이 한데 포개져 있다. 커다란 돌로부터 자신의 몸을 물속에서 굴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면서 둥그렇게 다듬어진 강돌이 되기까지 돌이 데리고 온 '시간의 길이'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또한 성벽이나 건물 벽처럼 인간을 위한 쓸모 있는 존재로 선택받아 인간에 의해 다듬어지기까지 돌이 많은 것들과 함께 한 ‘시간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하나의 돌이 또 다른 돌과 이웃하고 ‘돌들’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군집이 되기까지 돌이 자신과 다른 무엇들과 함께 한 시간의 길이와 깊이는 길고도 깊다. 그것을 작품 속에 재현의 언어로 사뿐하게 되살리고 있는 작가 이선호의 현대 수묵화는 사각의 프레임 내부에 거주하고 있는 ‘집단화된 돌’의 초상을 통해 돌의 시간뿐 아니라 돌의 공간마저 새롭게 정초한다. 그것은 돌이 자신의 몸을 깎아나가면서 돌의 공동체로 전환해 가는 ‘깊이의 시간’이자, 돌의 집단 초상화를 가능케 하는 ‘함께의 공간’이다.  
그런데 돌의 삶이라니? 작가는 말한다: “돌 안에는 시간이 있고 자연이 있고 계절과 법칙이 있다. 밖에는 공생하는 자연의 여러 가지가 함께 한다. 그것은 자연물이 될 수도, 문명이 될 수도 있다. 결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닌 하늘을 마주하며 하나하나의 특별한 시간과 전체의 풍경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돌은 ‘여러 가지’와 부딪혀가며 자신을 다듬고 자신의 삶을 간다. 이러한 차원에서 작가 이선호의 작품은 돌의 삶을 ‘함께’라는 공존과 공생으로 바라보면서 ‘어울림’이라는 화(和))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작업에서, 강가에 밀려와 쌓여 군집을 이룬 돌의 풍경을 부감의 시점으로 포착한 작품 〈시(詩)의 색1, 2〉(2018)이나 성벽을 이룬 돌의 군집을 수평적 시선으로 관조하는 작품 〈시의 색_화성(華城)〉(2018)은 ‘돌의 삶’이라는 것이 ‘시적 내러티브(Poetic narrative)’와 다를 바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비논리, 운율, 감성 등 산문(Prosa)에 대립하는 많은 것들을 소환한다. 정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간 시의 세계에서 그는 다른 것들의 조화와 상생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소박한 파격(破格)’을 일깨운다.  

〈공간 1, 2〉(2014)


〈시(詩)의 색1, 2〉(2018)

〈일(一)〉(2014)


소박한 파격이라니? 그것은 일정한 격식을 깨뜨리는 것이되 잔잔한 흐름 속에서 도모하는 미세한 변화와 같은 것이다. 앞의 작품 속에서 몇 개의 돌에 옅은 색을 입힌 것을 생각해 보자. 또한 작품 〈일(一)〉(2014)에서 돌의 군집 초상 위에 올려놓은 나뭇가지의 그림자를 마치 모필의 일획처럼 처리하거나 작품 〈사유 1〉(2013)에서 실제로 일획의 붓질을 올려놓은 것은 이러한 변화를 견인한다. 가상(재현 이미지) 위에 올린 실재(붓질)의 대립으로 간주할 수 있는 파격은 그의 작품 안에서 ‘소박한 파격’으로 자리한다. 작품 〈위치의 소리 -일상〉(2015)에서 옷들이 걸려 있는 벽면 앞에 나뭇가지를 올려놓은 테이블은 어떠한가? 그것은 실상 여백으로 남겨진 허구의 것이다. 실재 위에 잠입하는 허구 역시 일상의 풍경 속에서 도모하는 ‘소박한 파격’이 되는 셈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 속 파격을 ‘소박한 파격’으로 해석하는 까닭은 이질적인 것들의 대조적 관계 속에서 조화와 공존 그리고 공생을 도모하는 ‘돌의 삶’을 언제나 화폭 속에 투영하고 있는 까닭이다. 가히 ‘돌의 삶’을 먹빛으로 명상하는 현대 수묵화라 할 만하다. 작품과 작가로서의 삶의 합일을 고심하는 작가에게 당면한 이러한 과제가 향후 어떻게 펼쳐질지 지켜보기로 하자. ●

출전 /
김성호, 「돌의 삶」, 『2019 작가발굴 프로젝트 - SIMA FARM』, 자료집, 이선호 작가 비평 매칭,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020.  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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