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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비평│최석운 / 화려한 풍경, 화려한 외출

김성호

화려한 풍경, 화려한 외출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화가 최석운이 근 4년 만에 개인전을 선보인다. 그는 그동안 ‘뼈 있는 농담’으로 일상을 풍자하고 우리에게 해학을 선사하던 그림을 밀치고 ‘같은 듯 다른’ 새로운 그림을 선보인다. 그가 십 년 전부터 부산, 제주, 북경 등 국내외 레지던시를 두루 다니며 가진 변화의 진폭은 크다. 양평의 익숙했던 아틀리에를 떨치고 나가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맞닥뜨린 심경의 변화였으리라. 현재 그는 해남행촌문화재단의 ‘이마도 스튜디오’에 둥지를 틀고 제2의 고향인 양평을 오가면서 양평 아닌 곳에서 맞닥뜨리는 ‘새로운 세계’를 지속적으로 대면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라니 그게 무엇인가? 그리고 그의 신작이 어떻게 같은 듯 다르단 말인가?
그의 이번 전시의 주제는 ‘화려한 풍경(Splendid scene)’이다. “정말 좋은, 훌륭한, 아주 인상적인”이라는 뜻을 지닌 스플렌디드라는 영문 번역어처럼 최근작들은 모두 멋지고도 인상적인 장면들을 의도한다. 그의 최근작은 ‘화려함’과 ‘정말 좋음’ 사이에 이전과 ‘같은 듯 다른’ 새로운 인물들을 사뿐히 올려놓는다. 그들은 여전히 이전 작품들에 등장했던 평범한 소시민들이지만, 그들의 얼굴은 이전 작품보다 재현의 언어에 더 가까이 들어왔고 이전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던 표정은 어느덧 감정을 살피기 쉽지 않은 중성성(neutralité)의 표정으로 변해 있다. 동작을 정지한 듯 정면성을 두드러지게 드러낸 인물의 자세도 그러하지만, 일자의 형상으로 굳게 다문 입술, 동공이 풀린 듯한 멍한 시선과 표정은 그의 다수의 최근작에서 쉬이 발견된다. 
특히 이전 작품을 해학적으로 만들었던 등장인물의 곁눈질, 훔쳐보기와 같은 관음증적 시선은 최근작에서는 많은 부분 사라지고 정면을 향한 중성성의 표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인물들을 정숙과 침잠 그리고 안위의 분위기 속에 거주하게 만들면서도 두 눈의 시선 방향을 미세하게 다르게 처리함으로써 안위 속 불안한 기운을 공존하게 만든다. 


도착1, 97X130.3cm, Acrylic on canvas, 2018. 

그림 속 등장인물은 어디론가 떠나는 중이거나 떠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정면의 가족상을 담은 〈도착〉 연작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출발지로부터 떠났던 여정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장소에 도착한 가족상을 담았다. 바닷가에 정착한 나룻배를 배경으로 한 가족이 서로 끌어안고 정면을 응시한 채 서 있는 모습,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 서 있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최근 급속히 대두된 난민을 주제화한 것이거나, 자신의 가족을 반영하는 작가의 자화상일 수도 있겠다.  
한편,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봄 풍경과 노을 진 바닷가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데 여념이 없는 연인들, 한껏 외출복으로 치장하고 어디론가 떠나는 여인들, 지하철을 기다리는 한 쌍의 연인, 어디론가 떠나기 전 머리를 손질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여인 등 최석운의 개인전이 담고 있는 ‘화려한 풍경’은 이처럼 ‘화려하다고 표현하기는 어색한 화려한 외출’에 기인한다.  


대흥사 가는 길, 130X97cm, Acrylic on canvas, 2019. 
외출, 145X89cm, Acrylic on canvas, 2019. 


진달래, 112X145cm, Acrylic on canvas, 2020.


빈자(貧者)의 삶에서 체험했던 세상의 불의와 협잡을 우악스러운 풍자와 어눌한 냉소로 비판하던 초기의 그림을 거쳐, 현대인의 소소한 일상을 따뜻한 유머와 애정으로 바라보았던 시대를 지나면서 화가 최석운의 그림이 도달한 변화의 진폭은 크다. 이전까지 선보여 왔던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 청소년의 예민하고 까칠한 감정은 뒤섞인 채로 잔존하되, 아이의 더듬거리고 어눌한 말투는 어느덧 중년의 과묵과 노년의 침잠으로 자리 이동했다. 이전의 작품이 순연(純然)한 아동화나 익살스러운 카툰처럼 그려졌던 인물을 통해 세계를 향한 메시지를 발화(發話)시키는 것이었다면,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소설 속 삽화처럼 그려진 ‘관조와 침묵 속 인물’을 통해서 세상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청취하는 그림처럼 보인다. 그런 탓일까? 이번 전시는 마치 말을 줄이고 귀를 열어 관객과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려한 풍경’이라는 전시명은 그러한 차원에서 하나의 역설이다. ●


출전/
김성호, 「화려한 풍경, 화려한 외출」, 『아트인컬쳐』, 2020. 4월호.  
(최석운 전-화려한 풍경, 2020. 3. 10-3. 30, 갤러리 나우) 

김성호
파리1대학 미학 전공 미학예술학 박사. 모란미술관 큐레이터, 『미술세계』 편집장, 쿤스트독미술연구소장, 중앙대 겸임교수, ‘2014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전시총감독, ‘2015바다미술제’ 전시감독, ‘2016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총감독, ‘2018다카르비엔날레 한국특별전’ 예술감독, UNIST 박사후연구원 역임. 현재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여주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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