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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김화정 / 삶이 맞닥뜨린 상실의 순간과 자기 성찰의 시간

김성호

 삶이 맞닥뜨린 상실의 순간과 자기 성찰의 시간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누구에게나 왈칵 눈물을 쏟는 시간이 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고 있고 나만 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상실의 감정을 느낄 때, 더더욱 그러하다. 군중 속의 소외! 현대인이 감기처럼 달고 사는 병이다. 
김화정의 전시 ‘The moment of life'는 자신이 느끼는 상실의 순간과 소외의 감정을 다수의 타자에게 투사한다. 그들 역시 자신과 같은 사회적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곱씹는 작가 김화정은 주체적 자아를 망각하거나 상실한 채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에 짙은 연민을 드리우면서도 그들의 ’탈주체적 삶‘에 대한 통렬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잊지 않는다. 특히 현대인으로 상징되는 도시인의 삶을 ’횡단보도 위의 풍경‘으로 끌어들여 은유하면서 인생이라는 거시적 담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성찰한다.    
작품을 보자! 작가가 그리는 횡단보도의 풍경은 검은 아스팔트 위에 흰색으로 선명하게 각인된다. 도로 한가운데 피아노 건반처럼 하얗게 빛나는 횡단보도 위에는 고개를 숙이고 굽은 어깨를 한 채 어디론가 향해 걷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자동차는 ‘차도 위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신호등조차 없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커다란 중앙 도로와 횡단보도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사거리, 오거리에서 길을 건널 수 있는 것일까? 차와 신호등이 하나도 없는 김화정의 횡단보도 위에서 신호는 타자로부터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누구에서부터 시작된 지 알 길 없는 ‘횡단의 움직임’을 좇아 사람들은 길을 건넌다. 자신의 행동을 타자에 의탁하는 셈이다. 

김화정, Reality. 50x50cm. Oil and Magazine on panel. 2019

김화정.The repetition of life. 60.6x72.7cm. Oil and Magazine on canvas. 2019


정처 없이 떠도는 부유의 삶! 현대인이 저마다 추구하고 있는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타자들이 품고 있는 욕망에 기대거나 비추어 보면서 그저 따라가고 있는 ‘맹목적인 것’이 아닐까? 돈 혹은 명예? 그것은 한 세대를 먼저 살다간 타자들이 내게 물려준 유산이자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타자들이 오염시킨 ‘비틀린 욕망’의 대상이다. 
세상을 알아가는 20대, 30대의 삶은 그렇게 타자들이 오염시킨 타자의 욕망을 좇아 나의 욕망의 크기를 맞추며 살아온 무엇이었다. 작가가 처연하게 회상하듯이 그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삶’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어디에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마흔을 거쳐,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知天命)의 오십에 이른다면 상실감은 덜하겠지? 그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들으면 이해가 된다는 이순(耳順)의 시기 예순에는 분명히 상실의 주체를 바로 세울 수 있겠지? 
아서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사는 이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나이가 든다고 모두가 그것을 찾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누구도 하이데거(M. Heidegger)의 ‘시간에 구속된 불안한 세계-내-존재’라는 철학적 단상과 키르케고르(S. Kierkegaard)의 ‘불안한 인간 주체’란 철학적 개념어에 밑줄을 그으면서 삶의 철학을 곱씹어 보지는 않겠지. 
김화정이 그리는 횡단보도 위의 사람들은 매 순간 선택에 대한 ‘의지의 지향성’을 타자라는 군중에 내맡긴 채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사람들로 표상된다. 이처럼 나약한 이들은 그녀의 회화 속에서 거리의 크기에 비해 아주 작은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획일화된 방향성을 그저 관성처럼 좇는 사람들, 작가에 의해서 ‘N.po’라 작명된 작품 속 그들은 어떤 면에서 “죽어있는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작가 김화정이 자유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김화정, Which one is right.50.0x50.0cm.Oil and Magazine on canvas, 2020

이러한 점에서 그녀의 회화는 탈주체의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삶을 살아왔던 작가 자신에 대한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의 일기이자, 죽어있는 삶으로부터 탈주하고자 시도하는 한 편의 기도문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그녀의 그림 속 비워진 그림자를 지닌 ‘죽은 자’로부터 채워진 그림자를 지닌 ‘산 자’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유념할 것이 있다. 작가 김화정은 횡단보도를 배경으로 한 현대인의 우울한 집단 초상 속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잡지를 콜라주한 인물들의 다양한 색상은 ‘죽은 자’로 대별되는 고개 숙인 형태와 대비되게 ‘산 자’의 자아 정체성과 주체적 의식을 품는다. 좌절과 우울 옆에는 늘 희망과 기쁨이 살지 않던가? 개성이라는 이름의 각자의 정체성은 군중 속에서 꿈틀거린다. 지금 당장은 자신의 주체성을 망각하고 휩쓸려 살고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플라톤의 동굴’로부터 탈주를 감행했던 ‘산 자’가 나오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삶이 맞닥뜨린 상실의 순간’은 주검의 깊은 골짜기로 모두를 함몰시키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가 각성했듯이, 누군가에게 좌절과 우울은 주체적 삶을 위한 전환점을 기약한다. 그것이 결코 장밋빛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김화정, Where am I going.45.5x53.0cm.Mixed media on canvas, 2020

여기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죽은 자’로 대별되나 ‘산 자’의 희망을 간직한 이들도 있다. 자아 정체성을 품에 안고 죽음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들 앞에는 빌딩 전면의 어둡거나 화려한 입구가 그들을 맞이한다. 때로 그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기도 하지만, 때로는 끝 간 데 없는 막연한 희망을 품게 만들기도 한다. 그녀의 그림 속에서, 후설(E. Husserl)의 현상학이 탐구했던 의식의 지향성이 일깨우는 노에마(Noema, 의식의 대상)를 확고히 한 노에시스(Noesis, 의식의 작용)를 통해 흔들림 없이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는 니체의 초인(超人, Übermensch)이 살고 있는 것일까? 희망은 체념을 넘어서 있는 ‘생의 의지’를 일깨우면서 세속의 입구를 봉쇄하고 하늘로 이르는 찬란한 입구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 김화정은 캔버스 회화의 자유로운 배치와 더불어 횡단보도 모양의 투명한 시트지를 붙여서 회화적 설치를 감행하는 전시 연출을 통해서 어두움 속 ‘희망 의지’의 가시화를 다양하게 시도한다. 이렇듯, 횡단보도 위 사람들을 그린 김화정의 그림은 ‘삶이 맞닥뜨린 상실의 순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궁극적으로 불안한 인간 주체를 흔들어 깨우는 희망의 메시지를 건넨다. “왈칵 쏟는 눈물을 거두고 이제 모두 함께 잘 살아가자”고 말하면서 말이다.   ●


출전 / 
김성호, 「삶이 맞닥뜨린 상실의 순간과 자기 성찰의 시간」, 『김화정-The moment of Life』, 카탈로그, 2020, (김화정 개인전, 경주문화재단_경주작가릴레이전, 2020. 6. 30~8. 9,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갤러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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