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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변선영 / 또 다른 인물화로서의 캐리커처 - 패밀리 스토리와 만남의 관계 지평

김성호

또 다른 인물화로서의 캐리커처 - 패밀리 스토리와 만남의 관계 지평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구상, 추상은 물론 오브제 및 설치까지 다양한 작업을 실험해 온 작가 변선영의 30회째 개인전은 ‘패밀리 스토리(family story)’라는 주제로 캐리커처(caricature)를 선보인다. 전업 화가인 작가가 왜 캐리커처를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는 오늘날 캐리커처가 순수 예술이 아니라는 우리의 ‘편견 아닌 편견’이 작동한다. 캐리커처라는 장르가 주로 카툰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대중문화나, 대중적 시각예술의 장에서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와 같이 펼쳐지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캐리커처가 지향하는 심한 왜곡과 변형 그리고 인물을 과도하게 희화화하는 전략으로 인해, 순수 미술의 ‘비판적 풍자화’로 바라보기에도 난감한 지점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실상 ‘편견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편견’과 다를 바 없다. 21세기 미술은 이미 20세기 중반의 팝아트 이래로 순수와 대중 그리고 예술과 일상의 벽을 허물어뜨리며, 탈장르와 매체의 혼성 실험을 끊임없이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에는 순수 미술이 아닌 제재나 장르 자체가 없다. 모든 테마가 예술이자 모든 장르가 예술이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변선영의 30년이 넘는 화업을 중간 점검하는 이번 캐리커처 전시가 그녀의 전체 작업에서 어떠한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지를 천천히 살펴보자.       



II. ‘또 다른 인물화’로서의 캐리커처
변선영은 최근에 오브제를 사용해서 구상과 비구상을 횡단하는 다양한 작업을 생산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인물화에 천착해 왔다. 파스텔 작업을 통한 누드 작업, 두 여인을 고전풍으로 형상화한 ‘자매들의 이야기’ 연작, 먹, 붓, 채색으로 크로키와 데생 사이에서 그리기의 다양한 실험을 감행한 크로키전, 유화와 금분을 사용해서 인체의 형상과 동세 사이를 탐구한 발레 연작, 손자의 성장 과정을 유화 작품으로 기록해 간 세민이의 하루가 그것이다. 
그 외에도 전시 주제와 재료 형식은 다르지만, 목조각들의 비대칭적 만남을 통해서 오브제와 콜라주를 실험했던 ‘우연한 만남, 필연적 동행’ 전(한전아트센터, 2017)에서는 인간의 만남을 은유했고, 캔버스 혹은 패널 위에 올린 노끈 콜라주를 통해서 선의 미를 탐구한 작업(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19) 역시 추상과 반추상 속에서 자연과 인간을 은유했다. 그러한 점에서 변선영의 지금까지의 모든 작업은 인간에 대한 조형적 관심과 은유로 귀결되는 것이라 하겠다. 
특히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작업의 이면에서 매일 같이 캐리커처를 통해 인간의 형상을 탐구했던 결과물을 한자리에 모은 이번 개인전은 ‘또 다른 인물화’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또 다른 인물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미술사의 이면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나 미술사의 전면에 떠오르지 못한 채 다방면으로 모색되던 캐리커처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 작업이라고 하겠다. 
‘캐리커처’는 원래 미술사에서 전통적인 인물화의 영역에 자리한 것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캐리커처는 이탈리아어 ‘까리카투라(caricatura)’에서 유래했다. '과장된 것, 왜곡된 것'이라는 의미의 이 말은 훗날 영어권에서 캐리커처라는 말로 대중화되었는데, 여기에는 ‘풍자, 우의(寓意, 해학’ 등의 의미를 함유한다. 대개 인물의 특징을 과장하고 익살스럽게 표현하여 관객에게 웃음과 조소의 메시지를 전한다. 17~18세기 이래로 정치적 인물이나 유명 인사 등을 대상으로 풍자한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즐거움을 목표로 한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강조한 캐리커처가 보편화되어 있기도 하다. 
미술사적 기원은 멀리 이집트의 다양한 신화적 인물이나 동물 형상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나 15세기 이전의 중세 시대의 풍자 그림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하고,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기이한 인물 탐구 연작이나 홀바인(H. Holbein)의 독일어판 성서 연작의 목판화 작업인 ‘죽음의 춤(Totentanz)’ 연작을 시발점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캐리커처는 대개 17~18세기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17세기는 유럽 전체가 지난한 ‘30년 전쟁’을 거쳤고, 청교도 혁명과 과학 혁명이 뒤따르는 가운데 유럽 전역에 천연두 전염병이 확산되고 신비주의와 점성술도 함께 발달했던 시기로 혼돈 그 자체였다. 당시의 미술은 인물의 왜곡과 풍자가 극대화된 바로크(Baroque) 풍의 그로테스크 미술이 유행처럼 번졌다. 프랑스 판화가 카로 (Jacques Callot)가 그린 노년의 광대는 왜곡과 그로테스크 미학이 넘치는 캐리커처의 정신을 고스란히 전한다. 또한, 18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W. Hogarth)와 롤랜드슨(T. Rowlandson)의 시대 병폐를 풍자한 인물화나, 18세기 말 스페인 화가 고야(F. J. Goya)의 환상적인 우의화 그리고 19세기 프랑스의 도미에(H. Daumier)와 같은 석판 인물화는 또 어떠한가? 그곳에는 캐리커처의 왜곡, 변형의 형식미와 더불어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하는 풍자적 비판 정신으로 가득하다. 
18~19세기 캐리커처는 서구의 많은 화가가 대개 생업을 위해서 신문이나 잡지, 포스터에 만평의 형식으로 그리던 ‘순수 예술 너머의 장르’였으나, 도미에의 경우에서 보듯이, 풍자적 리얼리즘의 본격적인 화풍으로 자리 잡은 ‘미술 안의 언어’이기도 했다. 고전기의 초상화가 ‘대상과 빼닮음’이라는 이상과 재현의 미학으로 그 가치를 칭송받았다고 한다면, 18~19세기에는 표현주의 인물화나 바로크풍의 캐리커처는 왜곡과 과장을 통해서 ‘기이한 닮음’을 실현하는 마술적 효과를 실현하면서 당시의 정치, 사회상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사회적 미술의 가능성을 선보였다. 그런 면에서 미술사 속 캐리커처는 근대기에 이르는 변혁의 시대에 많은 화가가 인물의 외양보다 인물의 속성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실험했던 ‘또 다른 인물화’라고 평가할 만하다. 
작가 변선영은, 오늘날 팝적 경향의 디자이너나 길거리 화가들이나 유희나 재미로 푼돈을 받고 그리기 재능을 풀어내는 장르로 변형되어 온 캐리커처라는 장르를 통해서 ‘21세기 또 다른 인물화’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작가 변선영의 캐리커처가 근대 이전의 미술사가 천착했던 캐리커처풍의 인물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풍자적이고 부정적인 비판보다 선묘의 변형을 통한 미적 조형 실험과 더불어 ‘만남의 관계 지평을 기록하는 따뜻한 애정’ 그리고 ‘긍정적인 웃음의 메시지’를 담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III. 만남의 관계 지평에 대한 기록 - 패밀리 스토리  
작가 변선영의 캐리커처가 드러내는 ‘또 다른 인물화’로서의 가능성은 ‘인간 만남의 관계 지평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그것을 기억하는 ‘시각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작동한다. 즉 그녀가 이제껏 만났던 많은 사람을 화가로서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캐리커처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변선영의 작가 노트에는 이러한 ‘인간 만남’에 대한 단상이 기록되어 있다.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인생을 살면서 몇 사람이나 만났으며 그중에 몇 사람을 떠올리며 누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과거 짧은 인연으로 하여 표현할 수 없거나 연락이 끊겨 인물의 자료가 없는 연유로 알고 지냈던 사람을 모두 그려낼 순 없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과거 희미해진 기억의 인물들까지도 포함하여 현재 내 주변의 사람들을 거의 떠올리게 되었다.” 
 
캐리커처는 ‘변선영에게 화가로서 사람을 기억하는 효율적인 방식’인 셈이다. 그녀는 빛바랜 오래된 사진 속에서 찾은 학창 시절 동기나, 은사 그리고 친구들의 과거 사진 속 얼굴을 ‘지금, 여기’에 변형하여 가져오는 방식으로 기억을 더듬는다. 또한,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달리 보는 방식으로 ‘만남의 관계 지평’을 기록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옛 친구의 애잔한 그리움이 묻어 있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대중 연예인의 모습이 있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매일같이 만나는 형제, 자매, 조카들의 낯익은 모습이 자리하기도 한다. 
“친함에는 경중이 있지만, 그려낼 인물들의 선택은 경중을 가릴 필요가 없었고 아는 모든 사람은 다 그리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족히 수백 명은 되는 것 같다”고 작가가 말하듯이, 그녀의 이번 개인전에는 수많은 지인의 얼굴로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작가 변선영은 A4 크기의 종이 위에 지인의 얼굴을 크게 그려 넣는다. 더러는 사진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캐리커처에는 작은 인물 사진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실제의 얼굴 사진과 그것을 재해석한 작가의 캐리커처를 비교해서 볼 수 있도록 관객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다. 그곳에는 여성과 남성, 어린이로부터 청소년, 성인,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대부분은 작가의 지인으로, 관객에게 낯선 인물이지만, 작가도 알고 다수의 관객도 알고 있는 유명 연예인의 캐리커처도 전시되어 있다. 따라서 지인 관객은 전시장에서 그림 속 또 다른 지인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한다. 
변선영의 캐리커처에 등장하는 인물은 공통적으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 중에서 ‘희락’의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그녀의 작품 속에서 웃음은 긍정으로 생을 이끄는 원동력이자 모든 감정을 다 포용하는 대표 상징으로 기능한다. ‘슬픔을 안은 웃음’은 그런 것이리라. 작품을 보자. 그녀의 작품에는 활짝 웃는 얼굴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장난스럽게 얼굴을 찌푸리거나 앙증맞은 표정을 선보이는 얼굴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잇몸과 목젖이 보일 만큼 입을 크게 벌려 신나고 즐거운 표정을 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입술을 쫑긋 내밀어 귀여운 표정을 한 소녀도 있다. 
작가는 사진 속 얼굴이 지닌 이목구비의 비례를 왜곡하거나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인물 표정을 생동감 있게 담아낸다. 이처럼 희미하거나 어두운 사진 속에서 인물의 표정을 감쪽같이 포착해서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모습으로 옮겨 놓는 작가의 솜씨에 관객은 감탄한다. 어찌 이리 실감 나는 표정으로 사진을 새롭게 살려놓았는지 궁금해하면서 관객은 사진과 캐리커처를 흥미롭게 번갈아 가며 살펴본다.
변선영의 캐리커처 속 인물의 개성 가득한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짧은 머리, 긴 머리, 파마머리, 8대 2 가르마를 한 머리처럼 헤어스타일도 제각각이지만, 개성 가득한 헤어 소품도 다양하다. 중절모를 쓴 중년의 남자, 야구 모자를 삐딱하게 쓴 어린이, 헤어밴드를 한 여인, 머리 위에 리본을 올린 소녀, 차광 모자를 쓴 여성, 둘둘 감아올린 머리카락에 ‘커다란 비녀’를 끼운 여인 그리고 선글라스를 쓴 남성과 그것을 머리 위로 올려 쓴 여성의 모습처럼, 그녀의 캐리커처에는 제각기 다른 헤어 소품이 함께 자리를 잡는다. 게다가 오늘날 코로나 19 바이러스 침투를 방지하기 위해 착용한 다양한 마스크는 마치 패션 액세서리처럼 자리를 함께하지 않는가? 이처럼 그녀의 캐리커처는 ‘지금, 여기’를 사는 현대인의 초상임을 명확히 한다.     
변선영의 캐리커처에서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은, 많은 캐리커처가 그렇듯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얼굴 아래 인물의 개성을 듬뿍 담은 ‘몸의 표정’을 작게 그려 넣어 인물에 생기를 더하고 있다는 것이다. ‘몸의 표정’이라니? 캐리커처에서 작게 표현되는 몸은 얼굴에 부수적인 장치이지만, 인물 대상의 표정을 통합적으로 선보이는 주요한 기제가 된다. 중후한 얼굴 표정을 잇는 단정한 넥타이를 맨 상체는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멜빵바지에 손을 찔러 놓은 꼬마는 장난꾸러기처럼 보이고, 가죽 롱코트를 입은 남성은 패셔니스타처럼 보인다. 정장 차림의 복장은 조금은 경직된 샐러리맨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밝은색의 캐주얼 복장은 인물을 편안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데 일조한다. 
‘몸의 표정’은 그뿐만이 아니다. 작가는 커다란 얼굴 아래 전체 몸을 작게 다 그려 넣거나, 상반신만 그려 넣는 방식으로 인물의 특성에 부합하는 ‘몸의 표정’을 만든다. 몸의 제스처와 행동이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몸의 표정도 그러하지만, 얼굴 주변에서 펼쳐지는 ‘손동작’과 ‘손의 제스처’는 이러한 ‘몸의 표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손은 제2의 얼굴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엄지를 치켜 올린 인물에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양손을 활짝 편 인물에서 포용력 가득한 표정을 그리고 손가락 하트를 만드는 인물에서는 따뜻한 애정이 가득한 표정을 읽는다. 이러한 손의 표정은 사진 속 인물이 직접 포즈를 취한 것이 아니라 작가 변선영이 얼굴 표정에 어울리도록 만든 ‘제2의 표정’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인물에 대한 해석을 효율적으로 드러낸다.   
작가 변선영이 그린 수많은 인물의 캐리커처는 우리에게 그녀가 간직한 ‘인간 만남의 관계 지평’을 전한다. 전시 주제 ‘패밀리 스토리’처럼 그들은 실제의 가족이 아니지만 그녀에게 또 다른 가족인 셈이다. 물론 전시 주제가 유추하게 하듯이,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실제 자신의 가족을 기록한 캐리커처를 따로 선보인다. 전시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부부와 자녀, 손주로 이어지는 3대의 초상은 그런 면에서 ‘캐리커처로 접근한 가계도’라 할 것이다. 핵가족이 일상화된 오늘날 시대에 대가족과 함께 지내온 작가의 입장에서 가족의 의미는 남다르다. 
특히 자신의 DNA를 물려받은 10살의 어린 손자 ‘세민’이는 그녀에게 애정 가득한 관찰 대상이다. 요람 속의 모습에서부터 아장아장 걷는 모습, 자전거를 혼자 끌고 다니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세민이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10년 전부터 그려온 손자의 초상은 한 인물에 대한 시각적 기록이 된다. 그것은 캐리커처의 형식이 아닌 크로키나 스케치의 형식이기도 하고 실제의 작품을 위한 에스키스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아울러 스케치북이나 A4지에 볼펜으로 포착한 세민이의 초상은 먼 훗날 손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추억을 건져 올리게 만드는 할머니의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한편 손녀 ‘현지’의 초상은 어떠한가? 이러한 작업은 손자 세민이의 초상을 잇는 연작으로 자리하면서 작가 변선영에게 인간 만남의 관계 지평을 가족이라는 개념 속에서 확장한다. 그 인물이 실제의 가족이든 아니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개인전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은 그녀의 패밀리인 셈이다. 



IV. 만남의 지평과 선으로부터  
변선영의 캐리커처 작업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이미지를 관찰한 후 A4 크기의 흰 종이 면적을 3분의 2로 분할하고 얼굴 윤곽을 크고 흐리게 단순화하여 그린 연필 스케치, ② 인물의 세부를 관찰하면서 표정을 정확하게 수정한 세밀한 연필 드로잉, ③ 단순하고 절제된 선으로 연필 드로잉 위에 겹쳐 올린 붓펜 드로잉, ④ 입체감과 명암 효과를 낸 파스텔과 색연필 채색.” 
  
4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는 창작의 과정은 작가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순간이지만 몇 번의 실수로 인해서 작업을 망치게 될 때, 새로 작업을 시작해야만 하는 지난한 과정을 수반하기도 한다. 특히 3단계의 붓펜 드로잉 작업 과정에서 자칫 실수했다면 과감하게 작업을 새로 시작해야만 한다. 덧칠해서 인물의 표정을 실제 모델과는 다르게 무너뜨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목구비의 대칭 표현에 대한 세밀한 고려뿐 아니라 강한 색을 피하고 미묘한 혼색을 통해서 인물의 표정을 잡아나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변선영의 이러한 캐리커처 작업은 그간 선보여 온 작가의 작업 태도와 방식을 고스란히 계승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2019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선보인 개인전에서, 캔버스와 패널 위에 노끈을 콜라주해서 선의 미를 탐구했던 작업은 캐리커처에서 주요시하게 다루고 있는 ‘간결하고 단순한 선의 미 탐구’라는 표현 방식과 공유하는 것이다. 노끈이라는 오브제가 만든 선의 다양한 표현이 캐리커처에서 단순하고도 간결한 선의 미학과 만나는 셈이다. 아울러 2017년 한전아트센터 개인전에서 선보인 바 있는, 목조각들의 비대칭적 만남을 통해서 인간 만남의 관계 지평을 은유했던 ‘우연한 만남, 필연적 동행’ 전은 이번 캐리커처 전시와 ‘만남’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공유한다. 2017년 전시에서 선보였던 ‘만남’이라는 주제 의식을, 이번 전시에서는 ‘패밀리 스토리’라는 주제로, 변형하여 계승하는 셈이다.  
오늘날 유희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캐리커처는 그녀의 최근 작업에서 시도하는 새로운 실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변선영의 캐리커처는, 천연두가 창궐하던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그로테스크 미학이나 1차 세계 대전 중 흑사병이 전 세계를 휘몰아치던 1910년대 발생한 다다의 반문명, 반합리주의 미학에 기초한 채 유행했던 캐리커처와는 다른 성찰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7세기와 1910년대의 서구의 캐리커처가 사회 병리 현상에 날카로운 비판적 풍자를 덧입힌 것이었다면, 변선영의 캐리커처는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패닉에 빠트린 유사한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희망을 주는 캐리커처의 미학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덧칠 없는 간결한 선으로 친근함과 유쾌함을 나타냈고 얼굴의 표정과 손의 제스처를 동일시하면서 인물의 매력을 찾는 데 주력”한 변선영의 새로운 실험인 이번 캐리커처 작업은 이전 작업의 ‘선’의 형식 실험과 ‘인간 만남’의 주제 의식을 계승하면서도 즐거움 너머의 기쁨과 희망이라는 유의미한 메시지를 오늘에 전한다. 그녀의 작업이 오늘날 진퇴양난(進退兩難)과 풍전등화(風前燈火)의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전화위복(轉禍爲福)과 평안을 기원하는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기대하는 까닭이다. ●

 
출전/
김성호, 「또 다른 인물화로서의 캐리커처 - 패밀리 스토리와 만남의 관계 지평」, 『변선영』, 2020. 
(변선영 전, 2020. 8. 19-25, 갤러리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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