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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송신규 / 풍경의 뼈, 기억의 땅

김성호

풍경의 뼈, 기억의 땅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송신규의 작업은 회화, 조각, 설치의 영역을 넘나들며 풍경에 대한 자신의 체험적 기억을 작품 속에 투사한다. 그것은 풍경을 망막 속에 가둔 ‘이미지 기억’이기보다 상실의 땅이라는 실체에 대한 인식을 견인하는 ‘촉지적 기억’이라 하겠다. 우리는 안다. 기억이란 머리의 인지적 작용에 의한 것이지만, 가슴에 묻어 둔 무엇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작가는 유년 시절 맞닥뜨렸던 풍경의 기억을 가슴 속에서 소환한다. 그것은 ‘유년기의 공포’와 같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대개는 ‘변모하는 풍경’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소년기의 혼돈’과 처연하고도 가슴 아린 ‘청년기의 애착’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그것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빈터 abandoned spaces - 116 x 91 cm_oil on canvas_2017




II. 풍경의 뼈 
작가 송신규가 그간 선보여 왔던 개인전의 주제는 ‘끓어진 다리(The Disconnected Bridge, 2019)’, ‘자연으로 돌아가다(Back to Nature, 2020)’, ‘인간과 자연: 화해(Human and Nature: Reconcile, 2020)’를 거쳐 오늘날 '풍경의 뼈(Traces of nature, 2021)'에 이른다. 이러한 주제들은 그의 작품 세계 속에 ‘자연, 인간, 상실, 귀환, 화해, 본질’과 같은 개념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드러낸다.  
그는 이번 전시를 ‘풍경의 뼈’라는 이름으로 명명(命名)하고 호명(呼名)한다. 그가 영문을 ‘풍경의 뼈(bones of the landscape)’로 직역하지 않고, ‘자연의 흔적(Traces of nature)’으로 의역한 까닭을 알 만하다. 그것은 ‘지금은 사라진 옛 집터’처럼 살점을 잃고 앙상하게 뼈만을 남긴 풍경이기도 하지만, 상실을 거듭하지만‘ 결코 망각할 수 없는 ‘나의 뿌리’가 거주하는 ‘자연의 흔적’으로서의 풍경이기도 하다. ‘풍경의 뼈’는 그래서 ‘돌아갈 수 없는 집’. ‘빈터’, ‘흔적’과 같은 개념과 함께 그의 최근작을 이해하는 메타포가 된다: “돌아갈 곳 없는 집은 내게 '빈터'와도 같다. 나는 캔버스 위에서 나의 뿌리와 주거지를 찾는다.” 
돌아갈 곳 없는 집, 빈터는 그의 풍경 속에 잔해처럼 펼쳐진다. 벌판에 방치된 채 반쯤 허물어진 건물, 풍경 속에 외롭게 자리한 그물망 없는 축구 골대, 잡풀과 함께 앙상하게 뼈대만 남긴 비닐하우스, 휑하니 비워지고 사라진 옛터에는 이처럼 ‘풍경의 뼈’가 자리한다. 
이러한 풍경은 ‘안식처(shelter)’를 풍경 속에 키워나간 인간의 욕망이 낳은 귀결지다. 인간에게 자연은 애초부터 시원(始原)의 안식처였으나, 그 속에 홈을 파고 벽을 지어 ‘인공의 안식처’를 짓게 되면서부터 문명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 사실을 우리는 안다. 자연으로부터 추방되었던 인간이 다시 자연을 추방하면서 벌어진 사태는 자명하다. 환경오염과 기후 위기, 그리고 재난과 코로나와 같은 전 세계적 질병을 촉발하면서, “인간의 활동이 지구 환경을 바꾸는 지질 시대”를 지칭하는 ‘인류세(人類世)’라고 하는 오늘날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정복했던 자연에 대한 반성을 시작한다. 그것을 그리워하고 그들을 다시 찾아간다. 그래서 이제 자연은 번잡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일시적으로 숨통을 틔워주는 쉘터로 인식된다. 즉 임시적 안식처 혹은 도피처로서 말이다. 
작가 송신규는 이러한 ‘임시적 안식처’를 광활한 자연 속에서 찾기보다 ‘문명 속 자연’인 ‘오늘날의 풍경’ 속에서 모색한다. 그것은 문명이 생채기를 남긴 을씨년스러운 풍경 속에서 인간의 야만적 욕망에 대해서 반성하고 자본주의가 획책한 폐허의 풍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마음에 담았던 풍경을 꺼내어 ‘지금, 여기’의 흉흉한 풍경과 오버랩시키면서 변화하는 풍경이 낳은 상실을 담담한 필치로 이야기한다. 푸르른 빛의 애잔한 풍경과 함께 말이다. 


미군기지 CAMP PAGE_oil on canvas_72x60cm_2017


중도 선착장_oil on canvas_73x 50cm_2021


III. 기억의 땅 
땅은 자신 위에 벌어졌던 많은 사건을 기억한다. 이 땅에 들어서게 했던 미군 부대를 둘러싼 처연한 한국 현대사와 주민의 반대를 물리치고 들어섰던 송전탑이 야기한 문명의 이기와 함께 환경 파괴를 둘러싼 무수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댐의 등장으로 지역의 경제 발전을 약속했지만, 수몰 지역을 떠난 이주민의 허허로운 삶은 경제적인 보상과 상관없이 정신적 보상을 약속하지 못한다. 
송신규는 자신의 작업 속에 담긴 ‘마인드맵(mind map)’을 다음처럼 나열한다: “개발로 인해 점점 밖으로 쓸리는 자연물, 또는 기계로부터 적응해야 하는 삶과 생산자들로부터 쓸려나가는 한 개인의 말살되는 모습, 자연 순응을 거부하는 생산자의 파괴 표출, 부재 사이의 출몰하는 다른 계의 존재들. 버려지고 썩어가는 번영했던 과거 건물의 상징들, 상실, 소외, 정조, 여운, 가유 상태의 풍경” ‘가유 상태의 풍경’이라니? 가유(假有)란 ‘가짜 존재’라는 뜻풀이처럼, 불교에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연의 화합(和合)에 의하여 현실로 나타나 있는 세계”를 지칭한다. 즉 여러 상황의 작용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 자본과 문명 그리고 특정할 수 없는 빅 브러더(Big brother)가 만나 이룬 현재의 풍경은 미래의 이상적인 낙원을 건설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현재의 풍경이 작가 송신규에게 지속적인 절망을 낳는 것은 아니다. 그의 최근작이  ‘옛터에 대한 추억’과 ‘빈터에 대한 소회’가 맞부딪히듯이, 폐허의 을씨년스러운 풍경 속에서 ‘자조(自嘲) 섞인 낙망’과 자기반성적 자조(自照) 그리고 미래적 낙관을 포기하지 않는 ‘자조(自助)’가 한데 뒤섞인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에 세워졌으나 한국전쟁으로 끊어진 교각의 흔적과 소양2교의 복구된 다리를 보면서 느끼는 소회’와 같은 것이다. 그는 끊어진 다리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처연하고도 먹먹한 소외의 감정과 박탈감 속에서도 ‘서로와 서로를 잇는 관계 회복’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2021년 낯선 양구에 머물고 있던 시절에 만난 겨울밤의 풍경이 고향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듯이, 낯설게 변화하는 풍경이 모든 상실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추억을 끝자락을 잡고 재생과 회복을 꿈꾸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다. 


길을 만드는 사람Ⅱ_ oil on canvas__162 x 130.cm_2017


끓어진 다리- Migrating home_00:03:24_animation_2019


끓어진 다리 - the traces of the farm - 47x176cm _oil on canvas_2019


작가 송신규는 미술의 언어를 통해서 이러한 재생과 회복을 꿈꾼다. 빈 캔버스에 안료를 올려 산등성이 아래 물안개가 가득한 의암댐 주변, 눅눅한 습기를 먹은 달빛에 아스라하게 빛나는 강변, 지금은 운영하지 않은 중도선착장, 자연 속에 길을 만드는 사람들을 화폭에 담으면서 그는 ‘변화되는 풍경’과 ‘기억의 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캔버스의 표면을 문지르고 물감을 덧칠하고 다시 긁어내는 과정을 통해 변화되는 풍경에 대한 격렬한 저항의 내러티브를 표현하고, 이런 조형 언어와 더불어 재현에 기초한 리얼리즘적 회화, 초현실주의풍의 표현주의적 회화,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es)의 회화적 설치, 발견된 오브제와 자연물을 집적한 조각적 언어를 혼성하면서, 자신의 ‘기억의 땅’이 품은 ‘자연환경과 인간의 지속 가능한 희망’에 대해 성찰한다. ●


출전/
김성호, 「풍경의 뼈, 기억의 땅」, 『송신규』, 전시 카탈로그, 2021
(송신규 개인전 - 풍경의 뼈, 2021. 10. 12~10. 17,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갤러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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