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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김미소 / 우리의 삶을 시각화하는 상상의 내러티브

김성호

우리의 삶을 시각화하는 상상의 내러티브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김미소의 최근작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인간 공동체 속의 개별 주체로서의 삶’이라고 하는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존재’와 ‘삶 속 이야기’라는 ‘인간 실존’에 관한 다양한 관심으로 전개된다. 작가 자신의 개인사적 과거 경험을 녹인 다양한 이야기와 더불어, 집단과 공동체의  내러티브도 이러한 관심 속에서 자란다. 조형적으로는 상상이 유영하는 표현주의적 구상과 반구상적 형상, 그리고 낙서나 서체를 닮은 표현주의적 추상이 맞물리는 작업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그녀의 개별 작품이 담은 조형 언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 작품들이 전달하는 의미론적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 찬찬히 살펴본다. 


축배


II. 우리, 공동 주체
김미소는 이번 개인전에서 <우리(us)>라는 제목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한 작품은 바둑판 같은 격자무늬 틀 속에 그려진 기하학적 추상 회화이고, 또 한 작품은 자유로운 붓질의 욕망이 분출하는 표현주의 추상 회화다. 두 작품은 회화의 조형 언어만 다를 뿐, 개체들을 군집화시키는 멀티플 아트(multiple art)의 구조를 동일하게 함유한다. 전자의 작품에는 색색으로 된 격자 안에 어떤 형상으로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도형이나 입방체들이 담겨 있고, 후자의 작품에는 커다란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들이 거칠게 표현된 채 무수하게 집적되어 있다. 양자 모두 형상적 요소들을 모듈화해서 집적함으로써 구상적 이미지를 추상 회화로 변환시키는 작품의 구조를 지닌다. 작가는 이러한 ‘우리’ 연작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녀의 작가 노트를 들여다보자. 

“우리 중의 하나인 나는, / 반복의 틀에 긍정하며, / 시곗바늘처럼 영원히 멈추지 않는 / 작은 움직임들을 화폭에 담아 보았다. / 공통된 삶의 모습... / 어쩌면 정말 비슷하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선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가 / 시간 속의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 / 홀로 방랑자가 된 듯, 때로는 씁쓸함이 있어 / 남몰래 눈물을 흘려도 / 우리는 처음부터 혼자가 아닌 함께였고, / 그 사실은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하는 / 고마운 에너지로 존재해 왔다. / 오늘도 다수 속에 발맞추어 더불어 살아가는 / 우리의 비슷하고도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을... / 작품으로 줄지어 모아놓고,/ 보석이 빛을 발하듯 ..../ 그 반짝임을 전하려 고개 들어 웃어본다.”

‘처음부터 혼자가 아닌 함께였던 존재로서의 우리’라는 작가 김미소의 ‘우리’에 대한 개념 정의와 더불어, ‘반복의 틀을 지닌 일상을 사는 다수의 사람 속에서 우리라는 정서적 공감대를 가지고 사는 것이 시간 속의 진정한 승자’라는 취지의 언급은 그녀의 작품에 담긴 ‘사회적 인간’이라는 세계관과 메시지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사회적 인간’이란 “인간을 애정, 우정, 귀속과 같은 사회적 욕구를 지닌 존재로 파악하는 인간관”을 가리킨다. 이러한 인간관 속에서 인간은, 학교, 정당, 단체 등 여러 집단에 소속된 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사회적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살아가는 까닭에,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작가 김미소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이러한 ‘사회적 인간’을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객관화된 개념으로 해설하기보다 ‘우리’라는 정서적 개념 속에서 모색한다. 흔히 주체를 “실재하는 객관에 대립하는 의식하는 주관”으로 정의하듯이, ‘우리’라는 이름을 허용하는 공동 주체란 이러한 단독자 인간 주체가 다른 주체와 상호 작용하면서 구성한 ‘집단 주체’가 된다. 이 공동 주체는 개별 주체가 지닌 각기 다른 성격과 행동을 한데 아우르는 ‘총화로서의 인격체’인 셈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작품 <비 오는 정글(Rainy Jungle)>에는 이러한 ‘총화로서의 인격체’인 ‘우리’가 효과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비가 후드득 떨어지듯이 표현된 선묘에 가까운 붓질과 더불어 정글 속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생물체는 원숭이와 같은 포유류뿐 아니라, 조류, 파충류, 곤충류는 물론이고 절지동물처럼 보이는 무척추동물이 함께 비를 피한다. 심지어 비를 피할 이유가 없는 어류까지 그림 속에 등장한다. 이종(異種)의 생물체를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 한데 모아 놓은 김미소의 이 작품은 다인종과 다국적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인간 현실계를 은유한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에서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인격체로 간주되어야 할 ‘총화로서의 인격체’ 혹은 존재의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 주체’로 그려진다.  


Who Messed Up My Champagne? 


Sugar Dream 



III. 꿈을 나누는 우리, 만남의 관계 지평, 
작가 김미소의 작업에서 ‘우리’란 일반적으로 ‘모두 함께’를 아우르는 정감의 인간관계를 내세우지만, ‘분쟁 없는 모두 함께’라는 것이 현실계에서 과연 가능하단 말인가? 공감과 유대가 없지는 않지만, 시기, 질투, 배신과 암투가 난무하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에 관한 바람직한 ‘총화로서의 인격체’란 요원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우리’란 그룹에서 밀쳐져 ‘그(녀)들’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녀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우리’란 일반적인 삶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이면서도 더 구체적으로는 공통된 꿈을 꾸고 그 꿈을 나누는 소통의 주체들을 가리킨다. ‘자신의 꿈과 유사한 꿈꾸기’를 지속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정진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많은 부분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나의 복수’인 ‘우리’가 어렵지 않게 되어 주기 때문이다. 한 인간 주체가 타자를 3인칭으로 내몰지 않고 ‘우리’라고 하는 복수의 주체로 묶는 일은 혈연, 학연, 지연과 같은 만남의 관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이 상황 속에서, 피동적인 만남으로 기인한 ‘우리’보다 능동적인 만남으로 형성된 ‘우리’에게 애정을 더 기울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타자의 마음과 과거 시간을 내 안에 기억하면서 ‘그(녀), 그(녀)들’이라는 이름으로 내치지 않고 언제나 ‘우리’라는 범주 안에서 나와 동일시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사한 꿈꾸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 속에서의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이러한 유사한 꿈꾸기를 도모하는 사람들을 ‘우리’로 따로 묶어 범주화하는 작품들이 있다. 작품 <왼쪽으로>와 <오른쪽으로>를 보자. 마치 기계 부속의 파편들처럼 사람들이 뒤섞여 덩어리를 만든 그룹은 ‘좌측으로 이동하는 우리’와 ‘우측으로 이동하는 우리’를 변별화한다. 또한 이 두 그룹이 작품 속에서 좌측과 우측을 점유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 <SAME, SAME>은 공동의 가치를 위해 끼리끼리 그루핑한 그룹이라는 ‘우리’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피아노 건반, 드럼과 같은 타악기, 트럼펫과 같은 관악기 등 다양한 악기가 춤추는 사람들과 한 덩어리로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음악 없이는 못 살아!(I Can’t Live without Music!)> 연작은 ‘음악 애호가들’이라는 ‘우리’에 관한 구체적인 특성을 강화한다. 특정 장르의 음악에 대한 공통의 기호와 가치를 공유하는 ‘우리’는 친밀한 그룹을 지향한다. 작품 〈슬럼버 파티(slumber party)〉를 보자. 일명 ‘파자마 파티’라고 불리기도 하는 ‘슬럼버 파티’란 또래 청소년들로 구성된 친밀한 그룹이 한 집에 모여 즐기는 밤샘 파티를 지칭한다. 작품 안에는 하얀 파자마를 입은 인물과 동료들이 왁자지껄하며 한바탕 소란스러운 파티를 벌이고 있는 모습으로 가득하다. 
그렇다. 작가 김미소가 그리는 ‘우리’란 개념적으로는 ‘모두, 함께’라고 하는 ‘사회적 인간’의 일반적인 개념을 드러내면서도, 구체적으로는 ‘공동의 가치’와 ‘친밀성’으로 ‘유사한 꿈꾸기’를 실천하는 그룹으로 특정화된다. 그녀의 작가 노트에 나타난 진술을 보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한다. 같은 공동체에 살다 보면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거나 비슷한 행복을 추구하거나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모두 각각 개인의 ‘자유’를 갈망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더욱 발달하고 예민해진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작가 노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작가는 인간의 ‘만남의 관계 지평’이 낳은 ‘꿈을 나누는 우리’라고 하는 공통분모를 중시하면서도 그 속에서의 ‘개인의 자유’를 갈망한다. 


음악 없이는 못살아 


비 오는 정글



IV. 에필로그 – 삶에 관한 따스한 내러티브  
작가 김미소는 다음처럼 말한다: “공장에서 막 찍어 나온 따끈한 퍼즐 조각조차도 때로는 맞지 않을 때가 있다. 세상에 ‘신’ 외에는 완벽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느 곳에도 완벽하게 맞는 배우자, 친구,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불협화음 속에서도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라는 것이 신이 우리에게 준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가 찾는 ‘우리 속 개인의 자유’란 ‘우리의 불협화음 속 조화’와 다를 바 없다. 어찌 공동체가 공동의 선(善)만을 지향해 나갈 수 있겠는가? 거기에는 배신과 협잡 그리고 편 가르기가 함께 한다. 그것이 ‘인간 삶’의 변할 수 없는 지형도다. 다만 ‘자각 있는 이들의 불협화음 속 조화 찾기’의 노력이 지속되고 있을 따름이다. 작품 〈누가 내 샴페인을 망쳐 놨어?(Who Messed Up My Champagne?)〉에서 작가는 샴페인을 미리 따서 파티를 망친 친구에 대한 미움보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는 친구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불협화음 속 조화란 갈등의 국면을 화해의 지평으로 옮겨 놓지만, 그 화해는 갈등에 대한 묵은 앙금마저 다 치유하려 들지 않는다. 사건 자체를 비트는 풍자와 해학 그리고 사건을 바라보는 위트와 상상이 화면 속에 빛날 따름이다. 자살 혹은 타살의 분위기를 블랙 유머처럼 풀어낸 작품 〈탕!〉이나, 여자를 클로즈업한 화면으로 사건의 일부를 드러내지만, 그것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게 하는 작품, 〈남과 여-지금 몇 시지?〉, 〈남과 여-무거워 죽겠네!〉는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하다. 등장인물들이 기괴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작품 〈천사들의 수다〉, 화려한 관을 쓴 두 사람이 알 수 없는 얼굴 표정으로 대면하고 있는 작품 〈축배〉 그리고 울고 있는 한 여인을 그린 작품 〈나비부인의 진실을 알고 흘리는 눈물〉 등 그녀의 작품에는 ‘알 듯하지만 모호한 내러티브’로 가득하다. 관련하여 작가는 다음처럼 말한다: “나는 작품에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명확한 답을 주는 작업을 하는 친절한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에서 작동하는 상상력을 표현한 이번 전시를 통해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이들을 위해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작가 김미소는 이번 개인전의 주제를 ‘삶의 순환(Rotation of Life)’으로 내세웠다. 각자의 위치에 따라 변동되는 ‘나, 우리, 그(녀), 그(녀)들’이라는 호칭은 그녀의 이번 개인전을 푸는 키워드가 된다. ‘삶’이란 이 호칭의 주체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내는 순환의 협주곡이기 때문이다.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삶의 공간에서 작가 김미소는 자신을 둘러싼 ‘우리’의 범주 안에서 자신을 찾아 나서는 길을 나선다. 자신의 과거를 더듬어 소환하는 유년기의 기억으로부터 ‘간접 경험으로 목도하지만, 끝내 알 수 없는 죽음’에 관한 단상에 이르기까지 그는 삶 속 이야기들을 그려나간다. 때로는 명상과 성찰로, 때론 행복과 즐거움으로, 때론 분노와 슬픔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의 삶을 이야기하고, 숨겨진 열망과 상상으로 행복해야 할 미래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 메시지란 명징하지 않지만 미묘한 감정들을 품은 따스한 메시지가 된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작품을 ‘우리의 삶을 시각화하는 상상의 내러티브’라고 할 만하다. 그녀가 ‘삶과 죽음 사이에 머무는 인생의 순간’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을 포착하고 솔직담백한 상상의 내레이션으로 표현하는 까닭이다. ●


출전/
김성호, 「우리의 삶을 시각화하는 상상의 내러티브」, 『Meeso Kim』, 카탈로그, 2021
(Meeso Kim - Rotation of Life, Lee & Lee Gallery, LA,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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