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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박지애 / 사이 공간의 경계를 확장하는 패턴의 변주

김성호

사이 공간의 경계를 확장하는 패턴의 변주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I. 프롤로그
작가 박지애의 회화 작품이나 회화적 설치 작업은 일상 속에서 흔하게 발견하는 패턴(pattern)들로부터 시작된다. 구불구불한 산능선이 겹쳐진 원근의 풍경, 둥글둥글한 형상의 숲의 풍경, 하나의 구심점에서 직선들이 사방으로 퍼져 가는 방사형 도로, 수평과 수직이 교차하는 격자형 문살무늬나 실내 가구의 구조, 꽃무늬가 반복적으로 배치된 벽지, 물방울무늬가 촘촘하게 자리한 셔츠와 치마, 욕조 바닥에 남겨진 거품들 그리고 바닥에 엎질러진 커피 얼룩 등 일상 어디에서나 우리는 쉽게 패턴을 발견한다. 박지애는 자신의 회화 안에 이처럼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패턴을 구축하고 그것을 동시에 해체한다. 어떻게? 이러한 패턴화와 탈패턴화를 오가는 그녀의 작업이 지니는 미학적 함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녀는 왜 이러한 작업에 천착하는 것일까? 


박지애, huick huick lump_ mixed media on canvas_ 135 x 135 cm_ 2021



II. 패턴 혹은 스와치 - 사이 공간에 대한 회화 실험 
패턴이란 대개 “일정한 형태로 정형화된 어떠한 양식 또는 유형”을 의미한다. 또한, 패턴은 ‘의복이나 양장 따위에 쓰이는 본’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패턴은 한편으로는 ‘양식’으로, 또 한편으로는 ‘견본’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박지애는 이번 개인전의 부제로 ‘회화적 스와치들 -기울이다 그리고 누비다(Swatches in motion_ Tilt and quilt)’를 내세웠다. 여기서 영어 발음 그대로 소개된 스와치란 ‘견본’이나 “무대 장치 제작에 쓰이는 재료의 조각들”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스와치는 패턴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 스와치나 패턴이 공히 ‘견본’을 암시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녀의 개인전 부제를 ‘회화적 견본’이나 ‘회화적 실험을 거듭하는 패턴’으로 해설해 볼 만하다. 
박지애의 작업이 지향하는 ‘패턴에 대한 회화적 실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패턴의 구축과 해체를 혼용함으로써 ‘사이 공간(In-between Spaces)’에 대한 실험을 거듭하는 것이다. ‘사이 공간’이 무엇이며 ‘사이 공간에 대한 실험’이 그녀의 회화 속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생각해 보자. 정형화된 직선이나 비정형화된 곡선과 상관없이 반복과 군집을 통해서 정형화된 규칙을 지닌 유형을 만들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패턴이 된다. 따라서 반복과 군집을 전제로 할 때, 세상의 모든 것은 ‘패턴을 위한 잠재적 모듈’이 될 수 있다. 우연한 얼룩이나 불규칙한 형상 또한 패턴을 위한 기초 모듈이 되기에 족하다. 
작가 박지애는 이러한 ‘세상의 모든 것’을 모듈로 삼아 자신의 회화 속으로 편입한다. 우연적인 얼룩이나 무질서한 파편들은 그녀의 작품 안에서 일정한 형식으로 구축되어 패턴을 형성한다. 이러한 패턴 안에는 ‘반복과 군집의 방식’으로 형상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까닭에 일련의 ‘사이 공간’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빗금과 빗금 사이, 점과 점 사이, 격자무늬 사이 형성된 틈의 공간과 같은 것 말이다. 뿐만 아니다. 패턴의 드로잉 표면에도 사이 공간은 있다. 낙서하듯이 일필휘지로 휘두르는 붓질로 인해 마치 갈필의 흔적처럼 ‘물감이 화면 위에 안착하지 못한’ 사이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또는 작가가 언급하듯이 사이 공간은 “다른 사이즈로 확대 출력된 레이어들이 컬러, 기법, 질료 등 서로 다른 성질의 결들과 충돌하고 침습, 중첩하면서” 만들어 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박지애가 창출하는 패턴의 사이 공간은 ‘중첩하는 다양한 결들’을 한데 아우르면서 좌우의 수평 공간뿐 아니라 상하의 수직 공간 사이에서도 발생된다. ‘결’이란 음과 양,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를 상호 충돌시키면서 만들어 낸 어떤 ‘평정에 이른 규칙적 상태’를 지칭하는데, 그것은 골과 마루의 간극을 크게 혹은 작게 만들면서 수직의 공간 사이에 거처한다. 그 결의 양태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것은 거칠고 어떤 것은 부드럽다. ‘곱거나 거친 마음결, 숨결’이란 언어에 내포된 존재 양태를 생각해 보라. 혹은 ‘잔잔하거나 힘찬 물결’이란 표현에서의 규칙적이고 정형적인 평정의 형식을 보라. 
박지애의 회화는 이러한 다양한 결들의 차이를 한데 품어 안으면서 사이 공간을 구축하고 또 다시 그 속으로 침투해서 사이 공간의 경계를 해체한다. 그녀의 작업은, 작가노트 속 진술처럼, 사이 공간의 “혼재된 정체성 가운데서 발생되는 생성하는 틈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평면적인 색면들이 대비와 융화를 반복하며 과정 중인 현재로서 임의의 변주를 꾀하고 있는 화면이다. 다양한 면들이 충돌, 패턴들이 결합, 유동하는 제스쳐들의 표현적, 기법적 변주들.” 
따라서 그녀의 회화는 패턴의 구축과 해체, 그것의 충돌과 변주를 통해서 패턴이 아우르는 ‘경계를 넘어서는 사이 공간에 대한 회화 실험’이라고 할 만하다. 






III 기울이다 혹은 누비다 - 회화적 상상력과 삶의 메타포
작품을 보자. 사이 공간에 대한 회화 실험을 위해서 박지애는 물감으로 무작정 뒤덮은 캔버스나 패널 위에 패턴을 만들어 간다. 줄무늬를 그려 패턴을 만들거나, 때로는 물감을 밀치고 끌어당기는 반복적인 붓질의 스트로크로만 이루어진 패턴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실크스크린으로 물방울무늬를 프린트한 패턴을 만들기도 한다. 혹은 비정형의 도형이나 자유로운 드로잉을 반복적으로 지속하면서 군집의 레이어 효과를 드러내는 패턴을 만들기도 한다. 패턴은 패턴이되 가히 ‘차이(difference)를 반복한 패턴’이자, ‘이질성(heterogeneity)을 가득 안은 패턴화’라고 할 만하다. 
이 차이와 이질성은 간섭무늬(interference fringe)를 만드는, ‘무아르(Moire)’ 효과에 의해서 증폭되고 가속화된다. 불어 무아르는 “고대 중국에서 수입된 비단 위에 새겨진 물결무늬(wave pattern)”를 칭하면서 우리에게 모아레, 무아레라는 용어로 전해졌는데 2개 이상의 주기적 패턴이 합쳐져 관자에게 시각적 일루전을 창출하는 옵티컬 효과를 의미한다. 우리 눈의 잔상 때문에 벌어지는 이러한 현상은 ‘패턴 내 사이 공간’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시도하는 박지애의 작업에서 유효한 조형 실험이 된다. 즉 그녀의 작품에서 무아르 효과는 작품의 결과물에 집중하는 창작 행위로부터 어떻게 작품을 선보일 것인지를 실험하는 전시 행위로 이행하는 과정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전시를 보자. 전시장에는 관람자의 시점을 고려한 작품 디스플레이, 빛의 파장을 응용하는 조명 연출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작은 창문으로 스며드는 밝은 채광은 전시장의 공간과 작품의 패턴 이미지를 변주하기에 족하다. 옵티컬 일루전과 이질성의 패턴을 가득 함유한 그녀의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퇴락하고 허름한 전시장 벽면이나 바닥에 하나의 연극무대처럼 자리한다. 작은 창문을 가진 외벽과 조화를 이룬 채 나란히 놓인 작은 그림의 배치도 눈여겨 볼 만하지만, 크고 작은 그림들이 대화를 나누듯 높낮이를 달리한 채 오래된 빨간색 벽돌 위나 얼룩덜룩한 때를 입은 날것의 시멘트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장면은 정겹기까지 하다. 
작가는 나무 패널로 짠 ‘빈 상자 같은 액자’ 사이에 관객이 건드리면 빙빙 돌아가게 작품을 설치했는데, 작품들은 캔버스나 투명 아크릴로 되어 있어서 관객의 참여나 창문을 통해서 유입하는 외부의 빛에 따라 매번 달리 보이게 된다. 전시가 만드는 패턴의 이질성이라 할 만하다. 작가는 이 작품들을 마룻바닥 위에 마치 허름한 가설무대처럼 이 층으로 쌓아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작가는 각목으로 뼈대를 만들어 투명 아크릴판과 색 아크릴판을 끼운 격자형의 병풍을 만들었는데 창문 앞에 설치함으로써, 외광을 다양한 색으로 실내에 유입시켜 전시장 공간을 다채롭게 변화시키는 실험을 감행했다.  
이번 개인전의 전시 부제처럼 ‘기울이다 그리고 누비다’와 같은 다른 동사의 의미를 한 전시장에서 실천한 셈이다. 즉 회화, 판화 패션, 회화적 설치가 횡단하는 이번 전시는 평면의 좌표 XY 위에서 각도를 ‘기울이거나’ 입체의 좌표 XYZ 위에서 앞뒤를 ‘누비는’ 패턴의 변주를 한꺼번에 실천한 것이라 하겠다. 박지애의 이번 개인전에서, 벽과 바닥 그리고 나무 액자와 아크릴 병풍 사이에 위치한 크고 작은 그림들은 작품 자체 내에 존재하는 패턴의 변화를 작품 밖으로 끌어내어 전시장 안으로 투사한다. 따라서 전시는, 형상의 외형을 구축하는 전개도처럼 펼쳐지기도 하고, 정형/비정형 경계의 ‘사이 공간’을 사뿐히 넘거나 어지럽게 해체하면서 펼쳐지기도 하는 작품의 ‘패턴화/탈패턴화’라고 하는 ‘패턴 변주’의 개념을 지속적으로 증폭하고 가속화한다.  
그녀는 왜 이러한 조형적 실험을 이번 전시에서 시도한 것일까? 세계 속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은유하고 투사하기 위한 까닭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회화적 상상력으로 펼친 한 편의 인생 메타포’라고 할 만하다. 세계를 대면하고 발언하는 예술의 세계라는 것이 예술가 주체의 삶과 연동된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녀는 패션과 순수 미술의 전공을 외국과 한국에서 지속하면서 대면하게 된 ‘예술은 삶과 환경과 세계의 반영’이라는 체험화된 메시지를 다음처럼 풀어 놓는다.    

“다양한 면들이 충돌, 패턴들이 결합, 유동하는 제스쳐들의 표현적, 기법적 변주들. 이것들은 부딪치고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를 살아가는 나, 우리,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다. 전체로 확장하고 있는 화면의 순간, 어느 조각, 한 부분인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소재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유동하고 있는 과정 중인 지금, 그 표면에서 회화적 상상력으로 삶의 매 순간을 바라보고자 한다.”







IV. 에필로그 
박지애의 최근 작품은 여전히 세계와 대면한 한 예술가의 자기 발언이지만, 자신의 회화적 상상력을 타자와 세계로 투사한 무엇이기도 하다. 특히 전시라는 제도권의 공적 발표 행위를 통해서 내밀한 자신의 창작을 선보이고 대화를 시도하는데 있어서 더욱더 적극적인 행보를 선보이는 까닭이다. 작가 박지애는 이번 개인전에서 관객 참여에 따라 작품이 함유한 패턴의 변주를 극대화하는 실험을 공간 연출을 통해서 도모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 상황으로 흡족할 만큼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관객과 협업하는 프로그램도 전시장 한 편에 설치했다. 회화적 모듈의 확장을 시도하는 그녀의 조형 실험이 보다 심층 속으로 잠입하는 한편, 또 다른 문제의식으로, ‘낯설면서도 친숙한’ 새로운 모습으로 펼쳐지길 기대한다. ●


출전/
김성호, 「사이 공간의 경계를 확장하는 패턴의 변주」, 『박지애』, 카탈로그 서문, 2021. 
(박지애 개인전-회화적 스위치들, 기울이다 그리고 누비다, 2021. 09. 23~10. 03. 옹노(Ong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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