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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론│출품작 해설 / 재생2 와동 (실내)

김성호


출품작 해설 -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1_재생2 와동 (실내)


김성호(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1 예술감독)



한국 작가 김도희의 작품, <살갗 아래의 해변_와동>
The Beach under the Skin_Wadong by Dohee KIM of Korea
와동분교 교사에 들어서니 현관 벽면에 추상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그린 것이 아니라 그라인더로 페인트칠 된 벽면을 갈아낸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색으로 덧칠되었던 페인트 물감 층을 천천히 갈아서 벗겨내다 보니 어떤 곳은 표피층만, 어떤 곳은 이중, 삼중의 페인트 층을, 어떤 곳은 물감 층이 완전히 맨 벽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감 층들을 드러냅니다. 와동분교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입니다. 미세하게 갈린 페인트 가루를 쓸어 모아 마치 모래 해변처럼 한쪽 바닥에 놓았습니다. 작품명의 의미를 이제야 알 듯합니다.




한국 작가 조영하의 작품,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We support your dreams by Youngha JO of Korea
와동분교 교사 현관문을 열자 맞은편에 보이는 벽면에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알고 보니 일명 추리닝이라 불리는 붉은색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을 작가가 촬영한 단체 사진입니다. 재건과 재활을 의미하는 추리닝을 입고 있는 이번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1의 큐레토리얼팀과 홍천군 관계자들입니다. 예술감독, 수석큐레이터, 큐레이터,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 매니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코디네이터와 홍천군 팀장, 학예사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은 사진 앞에 놓인 의자 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을 ‘잠재적 관객’을 응원하는 포즈를 취했습니다. 어떤 이는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고, 어떤 이는 손가락 하트를 표시합니다.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한국 작가 김명희의 작품, <결석한 수학여행>
The School Excursion that I Missed by Myounghi KIM of Korea
하얀 교실에 들어섭니다. 교실 맨 앞 칠판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와동분교를 다녔을 것만 같은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이 그림은 와동분교에 있던 칠판에 그린 그림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그린 ‘칠판 그림’을 옮겨온 것입니다. 작가가 한국의 춘천 내평리에 있던 한 학교가 폐교되자, 그곳에서 작업을 하면서 그리기 시작한 여러 그림 중 하나입니다. 작가가 아이들이 떠난 폐교에서 그들을 그리워하면서 그린 그림입니다. 마치 수학여행 단체 사진에서 ‘결석했던 누군가’를 손꼽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와동분교 역시 폐교가 되었으니 이곳에 이 칠판 그림을 두어도 좋겠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이 그림은 이곳과 딱 ‘안성맞춤’입니다.




한국 작가 김한규의 작품, <하얀 교실 (방과 후)>
White School (After School) by Hankyoo KIM of Korea
여긴 하얀 교실입니다. 와동분교의 한 교실을 통째로 하얗게 만들었네요. 책상도, 의자도, 벽도, 바닥도 모두 하얗습니다. 하루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막 청소를 시작하려는 듯 뒤편 책상들 위에는 의자가 줄줄이 올라가 있습니다. 곧이어 청소를 맡은 학생들이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친숙했던 이러한 ‘방과 후 장면’을 멋지게 연출했네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우리 사회를 판박이처럼 빼어 닮은 교실 안에서 공부했었던 실제 학생들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말입니다.




캐나다 작가 마이클 그랩의 작품, <중력 접착제 (스톤 밸런싱)>
Gravity Glue (Stone Balancing) by Michael GRAB of Canada
실내 전시장 안에 좌우로 기다란 영상이 투사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또는 벌판에서 골똘하게 어떤 행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돌을 하나하나 균형을 맞추면서 쌓아올리는 ‘스톤 밸런싱’이라고 불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입니다. 접착제도 없이, 삐뚤삐뚤하게 쌓아 놓았는데 어떻게 균형을 맞추었을까요? 돌의 모양과 쌓아올리는 위치 그리고 중력에 따른 효과를 파악하면서 하나씩 돌을 쌓아올려야만 가능한 고난이도의 기술이 놀랍습니다. 작품 제목처럼 마치 중력이 만든 접착제라고 할 만합니다.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물을 대하는 작가의 이러한 태도를 ‘자연 속 명상 수행’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한국 작가 홍나겸의 작품, <솔라스텔지아>
Solastalgia by Nakyum HONG of Korea
전시장 어둠 속에 느린 영상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있는데 뒤로 가고 있습니다. 작가가 촬영했던 영상을 편집해서 거꾸로 돌린 까닭입니다. 코로나와 대형 산불 그리고 여름 내내 비가 오던 이상 기후를 가까이서 피부로 체험했던 작가는 오늘날 위기에 닥친 포스트 펜데믹 시대를 상징하듯이, 마스크를 끼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을 붉은색의 필터로 겹쳐진 영상을 선보입니다. 열감지 카메라로 보는 듯한 이미지는 우리에게 통제와 은폐,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작가는 오늘날 재난과 그에 따른 극도의 위기의 상황들을 담은 영상을 통해서 포스트 펜데믹 시대를 사는 관객들에게 위로와 함께 재난 대처에 관한 연대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미국 작가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작품, <화성으로의 비행, 8>
Fly to Mars, 8 by Jennifer STEINKAMP of USA
실내 전시장 벽면에 가득하게 자리한 자연이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애니메이션 효과를 드러내는 시뮬라크르로서의 나무일 따름이지만, 관람자들은 이 가짜 나무가 선보이는 변화를 넋을 놓고 바라봅니다. 무성한 나뭇가지와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을 보면서 조바심을 내고, 꽃을 피우며 붉게 물들이는 화면 속에서 막연한 희망을 품고, 나뭇잎을 하나둘 잃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연민을 투사합니다. 가상의 영상에 감정이입하게 만든 작가의 탁월한 조형 능력이 그저 감탄스러울 정도입니다.




한국 작가 양순영의 작품, <생명 빛나는 흔적>
Traces of Life Shining by Soonyoung YANG of Korea
와동분교 교실의 복도에 줄줄이 꽃이 피었습니다. 구리선을 꼬아 만든 원기둥의 형상에 꽃을 피운 종이꽃들입니다. 그 안에 품은 커다란 전구는 어두운 복도의 공간을 은은하게 밝히면서 관객의 길을 안내합니다. 작가는 나무와 펄프로부터 온 종이꽃과 흙과 철로부터 온 구리선의 물질적 수명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언젠가는 빛이 바래고 수명을 다하게 될 ‘물질의 노화 시간’이라는 것이 그것의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한 ‘관객의 기억 시간’에 비할 바가 되지는 않습니다. 모든 물질의 생명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빛나는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스위스 작가 퀸 동의 작품, <바나나 숲에서>
Trong rừng chuối (In the Banana Forest) by QUYNH Dong of Switzerland
실내 전시 공간에 자연의 풍광과 소리가 한꺼번에 들어옵니다. 바나나 숲에서 7명의 안무가들이 추는 느릿하고 기묘한 춤동작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여기에 말라가는 바나나잎이 내는 소리, 그리고 음파 탐지기의 미세한 분절음이 함께 하면서, 한 화가의 옻칠 그림과 한 소설가의 바나나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이 작품은 영상과 사운드가 어우러진 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불안하고도 아름다운 한 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미국, 베트남 작가 작가 리차드 스트라잇매터-트랑의 작품, <헬멧 스투파 2021>
Helmet Stupa 2021 by RICHARD STREITMATTER-Tran of USA, Vietnam
실내 전시장에 커다란 구조물이 생겼습니다. 스투파라고 하는데 이게 뭔가요? 흔히 ‘사리탑’이라고 번역되는 이것은 동남아 지역에서 발견되는 불교의 탑으로 석가 사망 후 유골을 나누어 담아 각 지역에 분배한 것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하는데, 석가의 머리카락, 치아뿐 아니라 경문을 넣은 것도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스투파와 유사하게 닮은 헬멧의 형상을 결합해서 오늘날 포스트 펜데믹 시대에 필요한 영적 보호와 물리적 보호를 함께 기원합니다. 대나무, 볏짚, 점토, 이끼와 같은 생태적 재료로 만들어진 오늘날의 인간 보호구인 셈입니다. 





한국 작가 박종갑의 작품, <생명의 숲, 경계에 서다>
Forrest of Life, to Stand on the Border by Jonggab PARK of Korea
실내의 전시 공간에 수묵의 향이 물씬 풍기는 숲이 들어왔습니다. 장지에 수묵으로 된 현대식 산수 병풍이라 할 만한데요. 관람자의 시선을 에워싸는 이 작품은 안식처로서의 숲을 노래합니다. 인간이 태고부터 거주지로 삼았던 숲, 인간이 떠난 이후에 가끔씩 찾는 숲이란 다른 생물들에게는 태고부터 지금까지 영원한 안식처일 따름입니다. 수묵의 숲속에 빛을 발하듯 하얗게 남겨진 길이 눈길을 끕니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훼손하는 인간이 밉지만, 숲은 인간에게 자신의 몸을 비워 길을 내주고 그들을 오늘도 넉넉히 품어 안습니다.




스웨덴 작가 요하네스 헬덴의 작품, <천체 생태학>
Astroecology by Johannes HELDÉN of Sweden
에스트로에콜로지라는 우주와 생태학의 합성어는 ‘천체 생태학’으로 번역할 만한데요. 작가의 영상 작업은 제목처럼 신비롭기보다 무겁고 암울합니다. 그가 종말론의 사유를 작품 전반에 심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우주의 기원과 종말’에 관한 거시적 이야기를 ‘사적 공간 속 생태’라는 미시적 이야기로부터 풀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내용인지 그가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세요. 사적 경험과 맞물린 종말론, 우주론, 물리학, 미래학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한국 작가 윤영화의 작품, <유산-두 개의 사과>
Heritage – Two Apples by Younghwa YOON of Korea
전시장 안이 ‘진지한 난장판’입니다. 진지한 난장판? 인류의 유산이 그렇습니다. 남긴 것이 선과 아름다움만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간 욕망이 남긴 유산이라 다 그렇지 싶습니다. 유산이라는 영문의 텍스트가 네온으로 점멸하는 패널이 쌍으로 벽면에 걸려 있고, 바닥에는 두 개의 의자 위에 선악과를 연상하게 만드는 사과가 각각 하나씩 놓여 있습니다. 주위에 소금이 잔뜩 쌓여 있고 그 위에는 문명의 상징인 형광등의 깨진 파편들이 어지럽게 흩뿌려져 있습니다. 소금, 형광등, 네온으로 변해 온 인류의 물질적 유산으로는 선악과의 신화 이래 인류가 자초한 정신적 혼돈을 모두 담아내기가 버겁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그렇게 작품 속에서 오열했나 봅니다.




한국 작가 권용택의 작품, <돌의 표정-설악9 외 9점>
9 Artworks with Stone Face – Seorak 9 by YoungtaeK KWON of Korea
실내 전시장에 특별하게 마련된 진열대와 좌대에는 열 개의 돌이 사이좋게 놓여 있습니다. 모두 작가의 작업실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들입니다. 작가는 이 돌들이 가진 울퉁불퉁한 표정에서 특별한 형상을 읽어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립니다. 때로는 계곡에 피어 있는 꽃이, 때로는 기암절벽에서 낙하하는 폭포가, 때로는 백두대간의 산맥과 같은 자연의 모습이 돌 위에 드러납니다. 입체의 돌 위에 그린 그림이라는 점에서 ‘돌 그림’ 혹은 ‘3차원 회화’라 부를 만합니다. 작가는 ‘돌 그림’에 표현된 자연이 담고 있는 역사와 정신을 함께 소환해서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자연 생태의 회복을 소망합니다.




한국 작가 한홍수의 작품, <육의 결 >
Artworks with Gyeol(texture) of Flesh by Hongsu HAN of Korea
붉게 칠해진 삼면의 벽에 붉은 작품들이 걸렸습니다. 작가의 ‘육의 결’ 연작입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벌거벗은 채 웅크리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거꾸로 걸어 놓은 그림이거나, 나신들이 뒤엉켜 있거나 특정할 수 없는 신체 일부분이 크게 확대된 그림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산들의 겹쳐진 능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유화 물감을 엷게 펴서 바르길 수차례 반복해서 쌓은 물감 층으로 만들어 낸 ‘인간과 자연의 결’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작가의 붉은 살점들은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소망하고 재생을 염원하는 ‘상징적인 제의 공간’에 바쳐집니다. 




한국 작가 차기율의 작품, <삶의 고고학/와동리275번지>
Archaeology of Life/Wadong-ri 275 by Kiyoul CHA of Korea
와동분교의 교실 하나가 통째로 파헤쳐졌습니다. 교실 밑의 땅을 파헤쳐 벌이는 발굴 프로젝트입니다. 유물을 발견했나요? 네, 다만 고대 도자기나 귀금속이 아니라 1990년대 이전의 과자, 빵, 라면 봉지, 음료수병, 담배갑, 장난감 등 그저 소소한 것들뿐입니다. 그의 ‘삶의 고고학’을 ‘쓰레기 고고학’이라 칭해도 될 정도입니다. 고고학이란 유적이나 유물을 통해서 과거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학에 공동의 기억을 넘겨주는 것’으로 해설하곤 하는데, 작가의 발굴 프로젝트도 ‘와동분교가 자리했던 역사에 대한 기억학’이라고 할 만합니다. 작가는 발굴된 잡다한 물건들을 원래의 지표에 올려놓아 표식을 하고 정성스레 그것에 관한 발굴 일지를 작성해서 액자 속에 넣어 벽에 걸어둡니다. 관람자들에게 이것들에 관해 함께 기억하자고 청유의 손을 내밀면서 말입니다.




출전/
김성호, 「출품작 해설 - 재생2 와동(실내)」,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1_따스한 재생』, 전시카탈로그, 강원문화재단, 2021, pp. 222-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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