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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론│박일순 / 모든 것을 주는 자연으로부터

김성호

모든 것을 주는 자연으로부터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생각하다 - 중성성의 나무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 살다가 기꺼이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나무. 작가 박일순의 작업 세계는 나무로부터 시작해서 나무로 되돌아간다. 

“베니어판을 마주하고 / 나무를 상상한다. / 거대한 숲에 / 나무로 살았을 / 그의 근본에 대하여....” 

작가의 발언처럼 나무는 베어지고 쪼개지거나 재조합되면서 자신의 형체를 잃는데도 자신의 가해자인 인간 옆을 말없이 지킨다. 밑동이 잘린 원목이면 원목인 채로, 베니어(veneer)판, MDF처럼 해체되고 재조합된 합성목이면 합성목인 채로 나무는 가구와 건축물의 일부로 문명계로 내려와 평생을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지낸다. 그것이 작가 박일순이 ‘나무의 근본’이라고 말하는 자연이리라.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나무! 주지하듯이, 그것은 자연의 대표적인 표상이자 자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한자어 자연(自然)이 상기하게 만드는 존재론적 본성이란 생성소멸과 순환의 우주 질서에 말없이 순응하는 소우주인 나무로 대표된다. 소우주이면서도 끊임없이 대우주를 욕망하는 인간과 달리 우리의 나무는 욕심이 없다. 모든 존재를 타자와 대상으로 구속하면서 내 것으로 취하는 인간과 달리 나무는 대자연의 순환 질서에 따라 그저 자신을 내어주고 버릴 뿐이다. 가히 중성성(neutralité)의 존재라 할 것이다. 중성성이란 “서로 반대되는 두 성질의 어느 쪽도 아닌 중간적 성질을 지닌 존재성”을 지칭한다. 치우침이 없는 중립과 중화의 상태! 이것은 구속함이 없이 자연의 순환 질서에 따라 그저 자신의 몸을 내맡긴 채 유영하는 자유의 존재이다. 
작가 박일순의 작업을 보라. 베니어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속살을 내어준 나무는 기꺼이 예술의 바탕이 된다. 나무의 중성성을 깊이 성찰하는 작가는 그 위에 초록이라는 중성의 자연 색을 올린다. 파랑과 노랑을 취해 만드는 것이 초록이지만, 박일순의 작업에서 초록은 거꾸로 파랑과 노랑에 자신의 색을 조금씩 내어주는 존재로 자리한다. 마치 농도가 짙은 용매에 자신을 내어 주는 물의 순연한 삼투(滲透) 작용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박일순의 초록은 남다르다. 작가에게 초록은 나무의 마음으로 들어가 세상에 그저 사심 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내어주는 색처럼 보인다. 그녀의 〈그린(Green)〉 연작은 마치 나무가 인간에게 이미 초록을 빼앗기고 생살을 도륙당한 피학적 존재임에도 가학자 인간을 원망조차 하지 않을 채 자신의 심층 어딘가에 남아있는 초록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박일순의 〈그린〉 연작은 중성성의 존재인 나무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 오래오래 거주한다. 그것은 그녀의 작품에서 보듯이, 마치 나무의 표면에 아프게 자리한 옹이에서 세상 밖으로 흐르는, 투명 폴리에스터로 표현된, 수액(樹液)과 같은 것이다. 또는 자신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농밀한데도 세상이 더 농밀하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그저 관성처럼 수액을 흘려 순연한 삼투를 행하는 착한 나무의 마음이기도 하다.     











물들이다. - 자연의 향과 색 
나무의 착한 마음과 자연의 오묘한 세계를 성찰하는 작가 박일순의 작업은 자연이 오래 품고 있었던 태생적인 예술 본성을 나무로부터 발견하고 그것을 세상에 소개하는데 집중한다. 자연의 향과 색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있는 나무의 순연한 예술 세계를 말이다.
      
“조각을 한답시고... / 벌채된 나무들이 / 켜켜이 누워서 / 다음 생을 꿈꾸는 / 왕십리 목재상에서 / 전봇대보다 / 긴 향나무를 골랐다. / 절단하던 체인 톱날에 / 살점을 날리며 / 향기를 토해내던 / 그 향나무의 처연함을.... / 아직 살아 있다는 듯이 / 물기 머금은 / 붉은 꽃을 내보이던 그때 그 섬뜩함, / 그리고 미안을 나는 오래 기억한다.”

작가 박일순은 조각 작품을 위한 재료를 구하는 과정에서 나무가 자연 자체로 품은 예술 세계를 만나는 경험을 한다. 작가 노트 속의 ‘물기 머금은 / 붉은 꽃’과 ‘향기’가 그것이다. 그것은 나이테를 만들며 자라고 있던 ‘나무줄기의 한가운데에 있는 부분’인 목심(木心)이자 그 안으로부터 밖으로 발현되는 향기! 전자는 ‘붉은색의 속살이자, 나무의 마음’이고 후자는 그것의 ‘후각적 색채’라 할 것이다. 작가는 나무의 피부를 매만지고 녹색으로 되살릴 뿐 나무 속 붉은 꽃을 그대로 둔 채 작품을 완성한다. 때론 벌건 목심이 기다랗게 드러나도록 나무줄기를 세로로 켜 놓은 원목을 초록의 캔버스 틈 사이에 배치하기도 한다. 자연이 지닌 원래의 색과 작가가 만든 자연을 상징하는 초록이 만나는 조형의 세계는 심오하다. 이처럼 박일순은 ‘김종영의 불각(不刻)의 미(美)’를 고스란히 계승하면서 자연으로부터 발견한 예술 세계를 돋보이게 드러내는 보조적 역할을 기꺼이 그리고 명상하듯이 수행한다. 
예술가는 어쩌면 거대한 자연에 숨겨진 모성(母性)의 자연미를 발견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모성의 자연미? 거대한 대지의 생명을 품고 살아있는 미물의 씨앗마저 보듬는 대자연의 모성은 박일순의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마치 베니어판이 자신의 몸 안에서 자연의 상징색인  초록을 토악질해서 뽑아내 자신의 피부 위에 올린 것처럼, 작가는 은은한 초록으로부터 짙은 초록에 이르는 색을 베니어판 표면 위에 그러데이션을 만들어 올려 바른다. 때론 베니어판 화면이나 캔버스 사이에 중재자처럼 위치시킨 나무의 표면 위에, 마치 스펀지가 머금은 초록처럼, 스며드는 효과를 선보이기도 한다. 
생성소멸, 생성순환을 이끄는 모성의 자연미는 나무의 자연색과 초록이 어우러진 부조적 회화 위 벽면에 설치한 어머니의 젖가슴과 같은 둥그런 조각에서 극대화된다. 나이테를 둘러싸고 깎은 이 유선형의 조각 끝에는 마치 유두처럼 볼록한 초록의 작은 덩어리가 눈길을 끈다. 어떠한가? 마치 초록의 회화에 생명을 준 근원의 모성체(母性體)처럼 보이지 않는가?      
초록의 회화에도 이러한 모성의 자연미는 가득하다. 거대한 캔버스를 덮은 흰색 위에 다시 초록색을 바른 후 스크래치를 내서 만든 하얀 보름달은 모든 가족의 염원을 기약하는 모성의 마음을 품는다. 나무판 위에 실패 형상으로 실을 감아올린 작품은 또 어떠한가? 실의 표면을 물들인 녹색이나 보라색은 풀꽃이나 제비꽃과 같은 모성으로서의 자연의 풍요로운 생성을 노래한다. 우리는 안다. 나뭇잎이 떨어져도 계절이 바뀌어 모성의 자연이 다시 싹을 틔우는 것을 말이다.  
이렇듯, 자연의 향과 색을 물들이는 작가 박일순의 작품 세계는 회화와 조각적 설치 혹은 설치적 조각을 아우르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자연’의 세계를 노래한다. 때론 조용하게 때론 명상처럼, 때론 격렬하게. ●









출전/
김성호, 「모든 것을 주는 자연으로부터」, 박일순 작가론,『미술과비평』, 겨울호(vol.6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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