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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포항시립미술관 / 메타픽션과 예술 존재의 사회적 역할

김성호

메타픽션과 예술 존재의 사회적 역할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포항시립미술관의 2022년 기획전《메타픽션(meta-fiction): 현실 그 너머》는 기획자가 리플릿에서 밝히고 있듯이, “창작물이 허구(픽션)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알려, 허구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며 아이러니와 자아 성찰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이번 기획전은 메타픽션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오늘날 ‘영화 같은 허구적인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포스트 팬데믹(post-pandemic)의 상황 속에서 예술(픽션)이 제기하는 현실(팩트)에 대한 문제의식을 성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허구와 현실이, 픽션과 팩트가 뒤섞이고 있는 ‘예술과 현실의 변형되어 가고 있는 관계’가 무엇인지를 해설한다.  
그렇다면 메타픽션이라는 과연 무엇이고 그것이 전시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석되고 소개되고 있는가? 찬찬히 살펴보자. 



 
II. 메타픽션 - 픽션에 대한 진술 
메타픽션이 무엇인가? 전시명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 메타픽션은 원래 “작가가 자신의 글을 되돌아보며 의심하고, 환상이나 상상을 가하는 등 글쓰기 행위에 대한 자의식이 드러나는 서술”을 지칭하는 문학적 개념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오늘날 허구적 문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즉 메타픽션은 예술 창작자 혹은 문화 생산자가 만든 결과물이 실재가 아닌 허구임을 수용자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경향이나 과정적 현상’을 강조한다. 
풀어 말하면, 독자가 소설을 통해 마치 실제 이야기를 접하는 것처럼 독서에 몰입하는 상황을 방해하고 소설가의 자의식을 소설 속에 지속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허구로서의 소설’을 끊임없이 자각하게 하면서 ‘예술품으로서의 소설’을 대하게 하는 방식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문학 속 메타픽션의 경향은 독자가 소설을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라는 차원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물리치고 온전히 작가의 ‘자의식과 상상으로 만든 순연한 창작’이라는 예술 작품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즉 메타픽션은 ‘소설의 원전이 현실’이라는 오랜 신념을 밀치고 독자가 소설을 ‘현실처럼 읽어내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자, 소설을 ‘자율적 예술 작품’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허구와 현실을 조합하는 창작 과정이자 그것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여기서 ‘메타픽션’이라는 용어에서 접두사 ‘메타’가 의미하는 바를 보다 명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메타는 ‘~에 관한 어떠한 진술’을 전제한다. ‘~보다 더 높은, 초월한, 그 이상의 어떠한 진술’이란 뜻을 지닌 까닭에 ‘위치, 상태의 변화’와 관련된다. 즉 픽션의 위상에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메타언어(meta-language), 메타비평(meta-criticism)이 언어나 비평에 관한 한 단계 다른 차원의 위상을 제시하는 것이듯이, 메타픽션은 ‘픽션에 관한 어떠한 진술이되, 픽션보다 더 높은, 초월한, 그 이상의 픽션’이 된다. ‘픽션 이상의 픽션’이란 무엇인가? 풀어 보면 ‘현실의 반영으로서의 픽션 이상의 무엇’이자 ‘현실의 반영을 넘어서는 픽션 이상의 픽션’인 까닭에 그것은 ‘현실이자 동시에 픽션이기도 한 무엇’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번 기획전의 메타픽션이라는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1960년대 실화 소설(nonfiction novel) 혹은 ‘사실-허구(fact-fiction)’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개념인 팩션(faction)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팩션은 주로 현실과 허구, 사실과 거짓을 뒤섞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혼합체 같은 장르의 문학을 지칭해 왔다. 이러한 팩션은 서구에서 실제 사건을 소설화시킨 포티(Truman Capote)의 『냉혈한(in cold blood)』(1965)이나 메일러(Norman Mailer)의 소설인 『밤의 군대들(The Armies of the Night)』(1968)과 『사형집행인의 노래(The Executioner’s Song)』(1979) 등이 창작의 장에서 유행을 지속하다가 1990년대에는 이전보다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댄 브라운(Dan Brown)의 소설인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2003)가 출간되면서 서구 문학계 뿐 아니라 전 세계적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와 같은 팩션은 오늘날 국내외 문학계는 물론이고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장에서도 활발히 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메타픽션은 오늘날 미술의 장에서도 그 개념이 여전한가? 앞서의 개념을 적용한다면, 미술에서 메타픽션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미술(픽션)보다 더 높은 그 이상의 미술(메타픽션)’을 의미한다. 즉 ‘현실을 반영한 허구(fiction)’로만 종결되지 않고 ‘허구 안에 사실적 내용(factual contents)이나 현실(reality)과 사실(fact)을 혼성하는 메타픽션’으로서의 미술을 그려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미술에서 이러한 메타픽션을 찾아볼 수 있는가? 고전적인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 등에서 보듯이, ‘미술이 현실의 반영’이라는 인식은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 안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부터 ‘현실의 반영’이라는 재현 개념은 표현(expression), 제시(presentation), 추상(abstraction), 개념(concept), 융합(fusion)과 같은 개념으로 변형되어 온 지 오래다. 즉 오늘날 미술에서 메타픽션의 상황은 도처에 있다. ‘현실의 반영이라는 픽션을 넘어서서 픽션보다 더 높은 차원의 어떠한 진술’은 오랜 조형 방법론인 ‘재현’을 탈주하는 다양한 흐름 속에서 잉태한다. ‘내면의 표현’, 즉 마티스(H. Matisse)나 루오(G. Rouault)의 야수파(fauvisme), 키르히너(E. L. Kirchner), 코코슈카(O. Kokoshka)의 표현주의(Expressionism), 그리고 키퍼(A. Kiefer), 바젤리츠(G, Baselitz), 슈나벨(J. Schnabel)의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는 이러한 비재현, 탈재현의 흐름 속에 등장한 메타픽션이라 할 만하다. 그뿐만 아니라 ‘무형의 개념’(개념미술), ‘탈장르의 융합’(퍼포먼스 아트, 설치 미술, 디지털아트 등)과 같은 1960년대 이후 미술사의 흐름은 미술을 비재현, 탈재현의 흐름 속 메타픽션으로 이해하게 만든 사례라 할 것이다.
메타픽션의 개념을 성취하는 현대미술의 조형 방법은 그 외에도 해석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기획자는 메타픽션의 범주와 그것에 해당하는 작가를 다음과 같은 개념으로 제시한다: “무의식(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환영(쿠사마 야요이), 결합(변종곤), 증식(이미주), 우연(김미진), 내재(쑨지), 이면(이병찬).” 이러한 구분은 타당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전시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팽배해 있는 포스트 팬데믹의 상황으로 인해 ‘현실’마저 영화나 공상과학소설에 등장했던 ‘픽션’처럼 변해 있는 상황에 주목하면서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 맞닥뜨린 픽션의 상황은 예술의 장에서 논의되었던 메타픽션의 담론을 이제 현실로 이동하게 만든다.   
생각해 보자. 특정하기 어려운 한 ‘우연한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낯선 환경과 결합해서 무한 ‘증식’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나갈 때 인간에게 끼친 피해는 막대한 것이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지인들의 만남을 멀리 하고 공동체로부터 이탈한 채 자발적인 소외의 삶을 선택하면서 세계는 픽션의 환영을 만든다. 현실계 속 은밀하게 거주하고 있던 ‘이면’의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해 심연의 내부로터 폭발해서 현실화되어 쏟아져 나온 격이라 하겠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번 기획전의 주제인 ‘메타픽션: 현실 그 너머’는 하나의 역설을 품어 안는다. 즉 원론적으로는 ‘메타픽션: 허구 그 너머’가 되어야 할 제목을 ‘픽션에 대한 진술  너머’와 ‘현실에 대한 진술 너머’를 동질시하면서 예술의 메타픽션을 현실의 상황과 맞물려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획자의 다음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팬데믹으로 인해 이성적인 사고나 축척된 데이터가 힘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예술가들의 다면적인 시각과 무한한 가능성이 투영된 작품을 통해 새로운 사고의 메커니즘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획되었다.” 즉 현실 속 영화와 같은 허구적 상황이 야기한 삶의 총체적 변화를 예술의 메타픽션에 관한 실험들을 통해서 반추하고 삶을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품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 메타픽션으로서의 예술을 통해서 갑자기 맞닥뜨린 삶에서의 ‘메타픽션’ 혹은 ‘팩션’의 상황을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III. 메타픽션으로서의 미술 - 예술 작품의 존재론과 출품작 해설   
이번 기획전은 말한다. 미술이 현실과 다른 존재이면서도, 현실과 뒤섞인 무엇, 즉 메타픽션이라는 것을 말이다. “작품 안에서 사실과 픽션을 넘나드는 메타픽션은 작품의 내재적 존재를 탐색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장치가 된다”라고 기획자가 언급하고 있듯이, 메타픽션은 ‘작품의 내재적 존재’라고 하는 예술 작품의 존재론에 관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작품의 내재적 존재? 아니, ‘존재론’이라는 것이 스스로 자각하는 인간의 사유적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인간 존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던가? 이런 질문의 배경에는 인간 존재론과 달리 예술작품의 존재론은 형이상학적 본성을 다루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특히 미술에서는 원본성(originality)이라는 오랜 전통인 작품의 가치를 복제 기술로 인해 상실하게 되면서 ‘물리적 존재로서의 작품 존재론’은 논의의 대상에 온전히 포섭되지 않는다. 어쩌면 마골리스(Joseph margolis)의 주장처럼 다양한 예술의 유형만이 작품의 존재를 다룰 수 있는 논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날은 쉽지 않다. 아이디어만 남는 개념미술이나 가상현실 속 작품처럼 물리적 본성 자체가 없는 미술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미술 작품의 존재론은 인간의 문화 속 존재, 수용자들이 용인하는 제도권 속의 수용물로서의 존재와 관계되는 것으로 고찰하는 것만이 유효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차원에서 미술은 한편으로 종교처럼 ‘신앙’의 대상으로 존재하거나 또 한편으로는 수용자를 소비자로 간주하기 위해 미술의 무가치를 위장하는 ‘사기’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핍진(乏盡)한 영혼으로 동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여전히 신뢰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노에마(noema, 지향하는 의식 작용의 대상)인 세상을 대면하는 예술가 주체의 노에시스(noesis, 지향하는 의식 작용)와 아이스테시스(aisthesis,감각적 지각)를 통해서 예술 작품이 성취된다는 과정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해하기 쉬운 미술이든, 어려운 미술이든, 배설과 같은 미술이든, 고상한 미술이든, 작품에는 이러한 예술가의 보편적 미학의 세계관이 담기는 까닭이다.  
오늘날 메타픽션으로서의 미술은 어떠한가? 특히 이번 기획전에 선보이고 있는 메타픽션이라는 주제로 한데 묶이는 참여 작품들에서 우리는 예술가의 어떠한 세계관을 읽어낼 수 있을까? 총 49점이 참여하고 있는 전시는 총 7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는데, 섹션과 쌍을 이룬 7개의 메타픽션과 관계하는 키워드(무의식, 환영, 결합, 증식, 우연, 내재, 이면)가 출품작을 범주화하고 있다. 전시실별로 살펴보면 1층의 1전시실은 평면 위주의 작품으로 무의식(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10점), 환영(쿠사마 야요이, 7점), 결합(변종곤, 5점), 증식(이미주, 9점)으로 구성했으며, 2층의 2전시실은 설치 작품들로, 내재(쑨지, 14점), 이면(이병찬 1점)로 구성했다. 또한 2층의 로비와 함께 독립된 전시장은 도자 설치와 긴 두루마리 페인팅으로 1전시장과 2전시장을 연계하는데, 우연(김미진, 3점)이 그것이다. 
기획자는 모든 출품작을 픽션의 7개 범주 안에 이야기를 묶어내었지만, 개별 작품마다 다양한 메타픽션의 이야기로 확장되도록 관람자의 입장에서 수평적, 수직적, 사선, 방사형 시선이 모두 가능하도록 다양한 설치적 언어를 구사했다. 그것이 어떤 것들인지 함께 살펴보자. 

무의식(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객이 맞이하게 되는 초현실주의(surrealism) 계열 작가들의 출품작이다. 특히 쉬르레알리슴에서 쉬르(sur)는 메타(meta)의 용례와 비슷한 것으로, 흔히 넘어선다는 의미의 ‘초(超)’로 번역되듯이 “~에 관한 것이되 그것의 위를 지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메타픽션의 범주 안에 포섭된다. 흥미롭게도 메타픽션이 픽션에 위치하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상태로 현실과 만나고 있다면, 초현실주의는 현실에 위치하면서 그것으로부터 탈주하는 픽션을 만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종국에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이번에 참여한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판화 작품 3점은 1차 세계대전 후 암울했던 상황을 탈주하려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탈현실 경향을 드러내되 다른 작가들과 달리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그만의 후기적 화풍을 선보인다. 고향인 러시아 비테프스크에서의 어린 시절 경험과 평생의 반려자였던 벨라 로젠펠트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자양분으로 한 그의 그림은 허공에 부유하는 인물상만큼이나 초현실적이지만, 그에게 그것은 마치 행복으로 가득한 현실처럼 보인다. 호안 미로(Joan Miró, 1893~1983)의 2점의 석판화도 자유분방하다. ‘페루의 마네킹 방패’, ‘위대한 마법사’와 같은 흥미로운 작품명처럼, 그의 작품에는 상징적인 기호와 유머 그리고 밝은 분위기의 형상들로 가득하다. 야수파, 입체파에 영향 받은 그의 작품은 클레의 영향으로 초현실주의적이면서도 순수 형태, 유려한 곡선, 율동적 구성으로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한편 초현실주의라는 제명을 달고 있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의 다수의 에칭 판화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편집증적 무의식과 정신 분열적 다중성의 기괴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자동기술법과 데포르마시옹은 현실을 과장하고 비틀어 상상 가득한 초현실의 세계를 탐구하는 그의 회화에서 발견하는 대표적 특징이다. 

환영(쿠사마 야요이): 전시 주제인 메타픽션의 세계는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1929~ )의 작품에 이르러 극에 이른다.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정신병적 강박으로 시달렸던 폴카점(Polka Dot)이라는 물방울무늬와 그물망 패턴을 오히려 ‘구원을 위한 환각’이라는 차원에서 무한 그물(infinity nets)이라고 부를 만큼, 골몰했던 ‘허구적 환영’을 적극적으로 작품 안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쿠사마는 가히 우리가 픽션이라 여겼던 예술을 현실이라 믿으며 자신의 예술 안에서만 살았던 메타픽션의 영매라고 할 만하다. 
 
결합(변종곤) : 변종곤의 출품작들은 오브제의 만남과 ‘결합’을 주선하면서 메타픽션을 선보인다. 대부분의 출품작 제목도 ‘메타픽션’이다. 바이올린, 철판, 조각상, 인형, 시계, 기계 등 폐오브제를 아상블라주(assemblage)의 방식으로 자신의 예술 안으로 끌어들여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도모하는 그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 전략은 다다와 초현실주의 조형 언어를 계승하면서 메타픽션의 세계를 넉넉히 구현한다. 해학과 비판의 정신으로 ‘아무 것도 아닌 오브제들’ 위에 예술의 생명을 덧입히는 까닭이다. 




증식(이미주): 모서리를 끼고 있는 1전시장 한 측에 모여 있는 작가 이미주의 출품작들은 작은 캔버스들이 병치되거나 산포(散布)된 채 마치 디자인의 패턴처럼 군집의 장을 만든다. 입체 회화 혹은 회화적 설치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차라리 ‘증식의 회화’ 혹은 ‘자라는 회화’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현실 속 낯익은 풍경, 식물, 인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원근법을 고의로 방기한 잔망한 이미지와 그것의 멀티 배합으로 더욱 낯설어지는 풍경은 하나의 메타픽션이다. 




우연(김미진): 2층에 올라서니 1전시장과 2전시장 사이를 잇는 공간이 있다. 복도와 그 사이의 작은 공간, 그곳에는 커다란 두루마리 드로잉과 도자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먼저 복도 벽에 걸린 장대한 두루마리 드로잉은 식물 혹은 곤충이거나 그것을 품은 풍경 같기도 한 검은색 표현주의 이미지들이 때론 휘갈기듯 때론 어루만지듯 그렇게 종이 위에 올라서 있다. ‘나비효과’라고 하는 작품명처럼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으로 된 우연의 효과들이 한데 모여 지구 반대편 어디에서 태풍을 일으킬 것만 같은 심상치 않은 변화를 예고한다. 또 한편에 세라믹으로 만든 곤충을 마치 트로피처럼 박제화해서 모아 놓은 작품은 곤충의 시메트리(Symmetry) 형상으로 인해 기묘한 불안감을 선사한다. 또 다른 곳에서 나뭇가지 형상으로 천장에 매달린 도자 설치 작품은 어떠한가?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형상들로 매달린 도자 설치 작품은 굉음과 같은 사운드를 동반하면서 붉은 조명 아래 불안하고도 기이한 초현실적인 세계를 창출한다. 가히 메타픽션의 세계라 할 것이다. 




내재(쑨지): 우리의 잔잔한 일상이 메타픽션일 수 있는가? 그렇다. 작가 쑨지의 출품작들은 일상에 ‘내재’한 판타지와 메타픽션을 한껏 끌어낸다. 팝아트의 관심처럼 흔하디흔한 일상의 이미지를 화폭 안에 활달한 필치로 되살리면서 군데군데 형광 물감을 덧바른 화면과 전시장 전체를 도포한 형광도료, 그리고 그것을 돋보이게 만드는 자외선 조명은 전시장 전체를 울트라 마린 블루가 점유하는 바다로 변주한다. 그 속에서 각자의 소소한 내러티브를 선보이는 화면은 일상이 벌이는 마술과 같은 메타픽션의 세계를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그렇다. 판타지는 언제나 현실 안에 잠자고 있는 '내재성(inmanencia)의 존재'라는 것! 



이면(이병찬): 전시장을 휘황하게 만드는 스펙터클의 질료는 무엇인가? 허름한 검은 비닐과 버려진 오브제들 그리고 거칠게 잘린 홀로그램 페브릭으로 된 커튼이 만드는 스펙터클의 ‘이면’에는 작가 이병찬의 무서운 비판 의식이 가득하다. 바로 스펙터클의 ‘이면’에는 인간의 소비 욕망이 낳은 폐해가 키운 괴물이 자라고 있다는 것! 버려진 비닐을 라이터불로 지져서 서로를 이어붙이고 송풍기로 바람을 주입하고 LED 조명과 키네틱 장치를 통해 살아난 괴생물체 앞에서 우리는 한 연금술사가 만든 공포와 종말의 분위기를 감지한다. 현실계 속 메타픽션 역시 신비롭지만, 이처럼 공포스러운 것이 아닐까? 





IV. 에필로그
이번 기획전 《메타픽션: 현실 그 너머》는 미술가들이 생산하는 ‘픽션이되 그것을 넘어선 차원의 또 다른 픽션’이라는 메타픽션을 선보이면서 우리에게 묻는다. 미술가들의 창작이 만든 세계가 오늘의 현실의 상황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끊임없이 현실을 반영하는 픽션의 세계에 천착하던 미술은 미술사에서 보듯이, 표현, 제시, 추상, 개념, 융합과 같은 개념으로 변형되어 오거나, 기획전이 범주화했듯이, 무의식, 환영, 결합, 증식, 우연, 내재, 이면과 같은 개념으로 메타픽션의 세계를 창출하는 것으로 탈주해 왔다. 그것은 정의하기 쉽지 않은 오늘날 미술의 다원화를 촉발시키면서 미술의 언어를 풍요롭게 만들어 왔다. 
현실은 이제 이러한 동시대 예술의 세계를 흉내 내는 지점에 이르렀다. 다만 풍요로운 다원화의 세계보다 세계를 하나의 공포로 몰아넣은 팬데믹의 상황이 이러한 초현실적 풍경과 메타픽션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그것은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 다다른 불운한 종착지!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현실은 이미 메타픽션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이 기획전이 선보이고 있는 현대 미술을 거울처럼 마주한 채 질문한다. 우리가 메타픽션의 세계를 품어 안은 현대 미술로부터 현실의 난국을 타계할 수 있는 영감을 받을 수 있을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답은 전시를 보는 관람자의 마음속에 있다. 기획자는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답을 내리지 않은 채, 오늘날 유효한 질문을 단지 던질 따름이다. 이제 메타픽션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현실에 대한 진술 너머’, 즉 ‘메타-팩트’ 혹은 ‘메타-리얼리티’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는 인식을 가지고서 말이다. 기획자가 대면하고 있는 ‘예술 존재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여전한 믿음은 있다. 예술은 분명 우리에게 저마다의 답에 이르게 도와주는 최선의 안내서이기도 하다는 것 말이다. ● 




출전/ 
김성호, 「메타픽션과 예술 존재의 사회적 역할」, 카탈로그 서문, 『메타픽션(meta-fiction): 현실 그 너머』, 포항시립미술관, 2022. 

《 메타픽션 : 현실 그 너머 》(2022. 1. 25~5. 8, 포항시립미술관)
* 참여작가 :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쿠사마 야요이, 변종곤, 이미주, 김미진, 쑨지, 이병찬(총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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