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서문│조각의 모든 방법전_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 조각의 화용론적 성찰

김성호

조각의 화용론적 성찰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조각가 문신(1922~1995) 탄생 100주년 기념 기획전인 《조각의 모든 방법 : Carve, Cast, Crack》전은 1990년 문신이 방문, 교류했던 ‘이탈리아 카라라’ 지역 출신의 국내외 현대 조각가 60여 조각가의 110여 점의 출품작을 선보인다. 전시명처럼 이 기획전은 조각과 소조에 의한 주조 그리고 전통적 방식을 깨뜨리고 변형하는 오늘날의 다양한 유형의 조각 세계를 Carve, Cast, Crack이라고 하는 3개의 섹션을 통해 소개한다. 전시가 제시하는 ‘깎다, 주조하다, 깨뜨리다’로 번역 가능한 'Carve, Cast, Crack'이라고 하는 세 주제어는 조각 제작의  방법론을 지칭하거나 조각의 유형을 범주화하는 용어이기도 하지만 조각의 ‘존재론적 위상(ontological topology)’을 성찰하는 유의미한 단어이기도 하다. 
이 글은, 조각에 관한 가능한 모든 조형 언어를 대거 선보이는 이번 전시를 ‘조각의 화용론적 성찰(A pragmatic reflection on sculpture)’로 해설한다. 조각에 관한 존재론적 위상이나 화용론적 성찰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살펴보자.  

1990년 이태리 피사의 카라라 돌 공장을 방문 중인 문신과 조각가 박헌열




II. 조각의 존재론적 위상 - 깎다(Carve)
먼저 '깎다'라는 의미의 첫 주제어, ‘Carve’를 살펴보자. 
이 주제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조각의 어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각에 해당하는 영어 스컬프쳐(sculpture)의 라틴어 어원은 Carve의 의미를 지닌 스쿨페레(Sculpere)와 이것이 훗날 변형된 스쿨프투라(sculptura)이다. 한편 이 단어는 ‘나무 조각을 만드는 사람'을 의미하는 스칼프토레스(sculptores)라고 하는 용어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러니까 ‘돌 조각을 만드는 사람(statuarii)’, ‘철 조각을 만드는 사람(caleatores)’, ‘점토 조각을 만드는 사람(fictores)’, ‘밀랍 조각을 만드는 사람(encausti)’이라는 다양한 유형의 단어를 밀쳐 내고, ‘나무 조각을 만드는 사람(sculptores)’으로부터 오늘날 ‘조각’이라는 용어가 자리 잡은 셈이다. 
우리는 여기서 “재료를 새기거나 깎아서 입체 형상을 만드는 조형 미술”에 한해서 조각(彫刻)이라고 지칭하는데도 불구하고 “찰흙, 석고 따위를 빚거나 덧붙여서 만드는 조형 미술”이라고 하는 ‘소조(塑造)’를 포함하는 ‘조소(彫塑)’라는 말 대신 ‘조각’이라는 잘못된 용어를 대표적 용어로 관성적으로 사용해 왔던 것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겠다. 국내에선 일제강점기 ‘선전(鮮展)’으로 불리던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각부를 만들어 이러한 조각이란 이름을 고착화한 계기가 되었다. 엄밀히 말해, 조소 대신 조각이라는 용어의 잘못된 사용은 일제의 잔재인 셈이다. 
 한국 전통의 서화(書畵)를 ‘동양화’라는 용어로 오랫동안 사용하게 되었던 것도 이 선전에서의 ‘동양화부’라는 작명에서 기인한다. 1971년 김영기가 동양화라는 명칭 대신 한국화라는 명칭 사용을 주장했지만, 1982년에 이르러서야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한국화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한국화라는 용어 사용의 주장에서부터 실제 사용에 이르기까지 10년의 세월이 넘게 걸린 셈이다. 
이런 면에서 조소 대신 조각이라는 용어의 그릇된 사용은 이미 너무 보편화되어서 오늘날 ‘조각’이라는 용어는 ‘조소(조각+소조)’처럼 통용되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이 글에서의 관건은, 이러한 조각 용어의 관성적 오용을 지적하기보다, 서구에서 ‘깎다’는 의미의 ‘Carve’가 ‘조소라는 의미의 조각’을 대표하게 된 미학적 상황을 성찰하고 집중하는 데 있다. 나무와 돌을 깎아내어 특정한 형상이나 기물을 만든 ‘조각적 위상’은 국내에선 근대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던 전통의 영역이었다. 다만 그것이 조각이든, 소조이든 국내의 근대 조각의 시작은 ‘일본으로부터 이중으로 왜곡된 서구 인상주의 미술의 수용’이었다는 점에서 자기 비판적 역설이 존재한다. 이번 기획전의 주제어 ‘Carve’의 관점에 국한한다고 할지라도, 선전뿐 아니라 일본의 문전(文展)에서 활동하면서 일본 전통 목조각과 서구 미술의 영향이 뒤섞인 ‘왜색 짙은 여인상 조각’을 국내에 도입해 온 일제 강점기 조각가 윤효중의 작품처럼, 한국의 근대 조각은 이처럼 왜색으로 오염된 한국의 정체성 속에서 출발했다고 규정할 수 있다.  
물론 이번 기획전에서 ‘Carve’ 섹션에 소개된 다수의 출품 작가들은 이러한 문화 식민의 세월을 벗어난 이후의 세대일 뿐만 아니라 다원화 조각의 영향 속에서 실험적 조각에 매진해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이탈리아 작가, 한국 작가들이 ‘돌의 도시’라 불리는 카라라 출신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목조(木彫) 대신 사암, 대리석, 화강석 등 ‘돌에 대한 Carve’를 다채롭게 실천하는 석조(石彫) 작품들이 다수를 이룬다. 
석판에 이미지를 새겨 넣은 마시모 펠레그리네티의 작품이나 돌덩어리를 깎아 정겨운 풍경이나 인물, 동식물, 사물의 형상을 만든 지경수, 박정부, 박승완, 박수용, 최윤숙, 정봉기, 이경재, 양세훈, 심인자, 박종민, 김동우, 고수영, 최지환, 한진섭, 김경호의 작품, 그리고 유기적이거나 기하학적 추상 조각을 선보인 권석만, 김성일, 김종근, 김태호, 송현호, 백진기, 염시권, 정대교, 정회만, 정해덕의 작품들은 이 섹션의 대표적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특히 이 섹션은 검은 마천석을 깎고 표면을 매끈하게 마감한 문신의 시메트리 작품 무제를 선보이는데 Carve의 대표적 특징을 잘 살펴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상의 대리석을 깎고 잘라 조립품처럼 이어 붙여 인물 형상을 만든 ‘닐 바라브’의 작품이나 다른 재질의 돌들을 결합하여 형상을 만든 민성호의 작품, 대리석에 색상을 부여한 김민정의 작품들은 Carve의 변주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처럼 첫 섹션 Carve에서는 깎기의 조형 언어가 근간을 이루면서도, 결합, 병치, 투과 등의 다양한 특징들이 맞물린 작품들을 한꺼번에 선보임으로써 ‘가장 전통적인 조각’과 ‘다양한 변주의 조형 언어’를 다룸과 동시에 ‘조각의 예술 작품으로서의 존재론적 위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진섭, 꿈을 찾아서, 대리석



III. 조각의 존재론적 위상 - 주조하다(Cast)
둘째, '주조하다'라는 의미의 주제어, ‘Cast'를 살펴본다. 
이 주제어는 소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즉 첫 주제어 ‘Carve’가 ‘깎다’는 의미와 연동하면서 볼륨을 덜어내는 네거티브의 방식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주제어 ‘Cast’는 일차적으로 ‘빚다, 덧붙이다’라는 의미의 소조(modeling)로부터 기인하면서 주조(molding)가 합쳐져 볼륨을 덧붙이는 포지티브의 방식을 실현한다.   
‘조각의 예술 작품으로서의 존재론적 위상’에 있어서 Cast는 Carve와 함께 ‘볼륨과 매스의 더하기와 빼기’의 차원에서 주요한 축을 담당한다. Carve의 조형 방식이 주도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이 중세의 영향 아래 있던 로마네스크(Romanesque)와 고딕(Gothic) 시대의 건축물에 철저한 종속 차원이었던 조각물(특히 인체의 형상)을 건축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시작했던 것처럼, Cast의 방식이 주도하던 인상주의 시대의 조각은 완전히 신전과 광장을 떠나 독립된 공간 속에서 자족적으로 존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Cast는 전통적 조각의 조형인 Carve의 반대편 항에 자리하면서도 통시적으로는 Carve보다는 비교적 근대적 소산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다원화 조각의 원형을 이해하게 만든다. 즉 Cast는 캐스팅을 통한 무수한 에디션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미술 작품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기에 일품성(一品性), 원본성(原本性)을 담보한다”는 오랜 미술 작품의 존재론적 위상을 재편하는 후발(後發)의 조형 언어다. 르네상스 시대에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고 쪼고 갈아서 한 점의 작품씩을 세상에 남겼다고 한다면, 인상주의 이후의 시대에 로댕은 소조로 원형을 만들고 다시 주조로 에디션을 만들어 쌍둥이 같은 여러 복제품에 원본의 권위를 부여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주제어 Cast는 서구에서 교회와 같은 후원처에서 벗어난 근대기에 미술시장이 후원처로 등장하면서 벌어진 일련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Cast는 화랑과 컬렉터, 작가와의 담합에 의해서 “원작의 복제물인 에디션에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는 인증제도”로 정착한 조형 방식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국내의 상황은 어떠한가? 국내에서 이러한 Cast라는 주조 기법의 도입은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부터의 이중 왜곡된 서구 조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인 사건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소조 기법으로 잉태한 원본을 해체하고 틀 속에서 원본과 동일한 형태의 새로운 복제물들을 여럿 만들 수 있는 Cast는 당시 국내에서 건축과 공예와 한 덩어리로 간주되던 ‘조각의 위상’을 예술로 인식하게 만든 근본적 변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Cast의 복제 형식이 서구 조각의 영역에서 점차 대중화된 것은 1950년대부터였다.  1955년 아감과 팅글리가 파리의 화상, 드니즈 르네(Denise René)에게 다수의 복제물에 원작의 지위를 부여한 ‘멀티플 아트(multiple art)’ 제작을 의뢰했고, 다니엘 스포에리는 파리에서 에디션 M.A.T(Editions Multiplication Arts Transformable)를 설립하고 알렉산더 칼더, 마르셀 뒤샹, 만 레이, 장 팅글리, 빅토르 바자렐리 및 다른 미술가들의 작품을 1백 부 한정판으로 하여 Cast라는 조형 언어의 상업적 확산을 도모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Cast의 조형 방식은 에디션이라 이름 붙인 복제물에 원본의 가치를 부여해 판매하는 시장주의에 의지한 채 날개를 달게 되면서, 조각이 판화나 사진처럼 대중화에 성공하도록 만들었지만, 오리지널리티에 관한 조각의 존재론적 위상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로댕 이후 Cast 방식의 조형 언어는 벤야민의 지적처럼 일회적 현존에 대해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아우라의 상실’과 같은 비판적 시선에 조각을 직면하게 했다. 
그렇다면 Cast에 관한 매몰찬 비판을 먹고 자란 다음 세대의 현대 조각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Cast가 촉발한 복제 기술의 결과는 오히려 유일성을 거부하고 ‘에디션 아트’ 혹은 ‘멀티플 아트’를 등장시키면서 ‘복수(複數)로서의 예술’을 전개하는 여러 가능성을 실험하기에 이른다.     
다만, 이번 전시의 Cast 섹션에서는 렌티큘라 작품을 선보인 강태현을 제외하고는 에디션 아트와 같은 ‘복수형 예술’보다는 대개 전통적 주조 방식의 조각에 집중하면서 Cast의 조형 언어를 용접이나 도색과 같은 방식으로 변주하는 다수의 출품작을 선보인다. 고대 왁스 주조법을 계승한 발렌티나 루카리니의 작품이나 보편적인 방식의 브론즈로 캐스팅한 조용태, 한기늠의 인물상은 대표적이다. 아울러 추상 구조의 김형표의 브론즈 작품이나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 질감을 실험한 이본규의 추상적 인물이나 스테인리스 스틸에 도색의 방식으로 Cast를 실험한 안시현, 유리의 추상적 구조적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이 섹션에서 소개된 문신의 여러 청동 주조 작품은 Cast가 견인하는 조형 세계의 진수를 선보인다. 곤충이나 동식물의 형상을 연상시키는 그의 시메트리(symmetry) 유형의 작품은 기실 에이시메트리(asymmetry)라고 하는 미시적 세계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조용태, 시간 여행, 브론즈



IV. 조각의 화용론적 실천 - 깨뜨리다(Crack)
마지막으로 ‘깨뜨리다’라는 의미의 주제어 ‘Crack’을 살펴보자. 
주제어 Carve(깎다)와 Cast(주조하다)가 ‘조각’과 ‘캐스팅에 의한 소조’라고 하는 조각 유형의 범주적 언어에 해당된다고 한다면, 마지막 주제어 Crack(깨뜨리다)은 실상 특별한 조각 유형을 지칭하는 용어는 아니다. 이 글은 Crack을 ‘전통적 조각의 존재론적 위상’을 깨고 ‘동시대 조각의 화용론적 성찰’을 시작하는 단어로 규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Crack은 전통적 조각 매체가 지닌 존재론적 위상을 깨고 ‘재료뿐만 아니라 조형 방법론의 새로움(nouveauté)을 찾아 나선 모든 조각적 실험’을 아우르는 화용론적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즉 현대 조각 혹은 동시대 조각이란 질료 자체의 존재론(ontology) 연구나 조형 언어의 관계를 탐구하는 통사론(syntax) 연구에 집중하던 조각으로부터 탈주하여 조형 언어 사용자의 발화 맥락(context)에 대한 화용론적 연구로 이동한 조각이라는 점에서, 조형의 실천적 맥락이 무엇보다 주요해진다. 
20세기 미학자 수리오(Etienne Souriau, 1892~1979)의 예술 분석은 조각을 그저 존재론적 차원에 머물게 할 따름이었다. 그는 구체적으로 예술 전체를 물리적 존재(l'existence physique), 현상 존재(l'existence phénoménale), 실재 또는 사물 존재(l'existence réique ou chosale)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월적 존재(l'existence transcendante)과 같은 네 가지 존재의 장(plans existentiels) 속에 위치시키고 그 관계의 사슬을 꾀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는 예술의 ‘사물 존재’를 재현 예술(art représentative)과 비재현 예술(art abstraite)이라는 두 개의 대비적 차원으로 구별한 후 재현 예술 안에 ‘조각’을 위치시킨 후, ‘조각’이 ‘건축(architecture)’을 포함한 ‘볼륨(volume)’이 확장된 조형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제 조각은 더 이상 대상이 지닌 모상(模相)에 집착하는 재현(representation)이나 볼륨과 매스의 공간에 골몰하는 구성(construction)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제 현대 조각은, 미국 비평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 Krauss)의 1979년 「확장된 영역에서의 조각(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이라는 글에서의 분석처럼, 조각과는 이질적인 풍경(landscape)이나 건축(architecture)’을 만나는 복합(complex)을 성취하기 위해 비풍경(not-landscape)과 비건축(not-architecture)’을 끌어안는 중성화(neuter) 전략을 거치면서 종국 지점인 장소 구축(site-constrcution)을 향해 달려 나간다. 즉 현대 조각은 ‘영역 확장이라는 맥락 속 통합이라는 화용론적 실천’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제 현대 조각은 미니멀아트나 대지미술을 끌어안은 지 오래이며,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뿐 아니라 음악, 공연과 같은 비미술이나 철학, 과학, 수학과 같은 비예술과 융복합을 도모하면서 장르별 영역에 대한 ‘깨뜨리기’를 지속적으로 실천해 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평론가 이일이 1970년대 구상 조각과 추상 조각의 대립이나 그 둘 사이의 절충주의적 양상을 분석하면서 환원과 확산을 논했다는 것을 상기할 때, 국내에서 조각의 통합이나 융복합이라는 화두는, 존재론이나 통사론 수준에서 머물렀던 까닭에, 서구에 비해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국내 동시대 조각은 이미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장르적 혼성은 물론이고 조각에 관한 미적 이론과 실천에 있어 놀라운 화용론적 성찰과 실천을 이끌어 온 지 오래되었다고 할 것이다. 동시대 조각은 ‘재현(representation) - 구성(construction) - 제시(presentation)’의 단계를 지나 이제 해체(deconstruction)에까지 이르게 된 셈이다.
다만, 이번 기획전에서 섹션 ‘Crack’에 출품된 조각의 융복합적 실험의 면모는 그다지 광폭의 것이 아니다. 이 섹션에는 이질적인 재료의 복합을 도모하는 조각들이 대거 포진한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화강석의 만남을 시도한 전옥의 추상 조각, 소나무에 색상의 효과를 도입한 최성철의 구상 조각, 나무에 색을 입힌 한선현의 풍경 부조, 합성수지에 우레탄 도장을 한 김창기의 추상 조각, 레진에 도색한 김정미의 추상 조각, 그리고 합성수지에 캔디 도장을 한 이용철의 구상 조각, 공예적 재료로 간주되곤 하는 유리를 도입한 조각을 선보인 차현주의 얼굴 조각이나 세라믹을 도입한 고재춘의 작업, 그리고 대리석에 크리스털을 결합한 이진희의 작업과 같은 복합 언어는 최근에는 보편적이라 할 만한 ‘기본적인 혼성 언어’로 자리한다. 
아울러 폐플라스틱을 도입한 김성헌의 작업이나, 시멘트, 나무, 대리석을 혼성한 문웅선의 작업, 그리고 종이, 레진, 알루미늄 주물을 혼성한 조은희의 구상 조각은 이질적인 재료의 만남을 통해서 조각의 전형을 탈주하고 혼성적 실험을 도모한다. 김수현의 도판 회화, 박민정의 테라코타 회화나 박선영의 혼합재료를 통한 회화는 어떠한가? 이들의 작품은 ‘조각의 회화’화를 실험하는 영역의 작품으로 자리한다. 그뿐인가? 조각의 볼륨과 매스를 줄이고 시도한 선묘 조각(김근배, 전용환, 정의정, 한창규, 박신애) 또한 조각의 전형을 탈주하는 ‘깨뜨리다’의 의미를 지닌 Crack을 다양하게 실험한다. 


최성철, 남쪽에서 부는 바람에, 소나무



V. 에필로그 
지금까지 이 글은 기획전 《조각의 모든 방법 : Carve, Cast, Crack》의 취지에 따라 제시된 세 주제어를 중심으로 조각의 전개를 염두에 둔 통시적(通時的) 관점과 더불어 조각의 다양한 범주화의 틀을 고려한 공시적(共時的) 관점을 통해서 출품작들을 살펴보았다. 
이 글은 되도록 많은 작가의 출품작들을 언급하면서 전시의 의미를 해설하고자 했으나 글에서 언급하지 못한 출품작들이 있을 수 있다. 글에 언급된 출품작들에 관해서도 세 주제어로 묶어서 설명한 까닭에 출품작들의 다양한 특성이나 주제 의식을 간과한 지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러한 세 주제어가 은유하는 조각사적 진술은 유의미하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이 기획전이,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전’인 만큼, 한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작가 문신이 생전에 이탈리아 카라라 지역 출신의 국내외 작가들과 교류했던 역사를 조명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문신은 1990년 동유럽 순회전 당시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기 위해 이탈리아 카라라를 방문해서, 당시 유학 중이던 박용남, 박헌열, 유영택을 만났고, 박헌열과 함께 돌 조각과 관련한 카라라의 다양한 시설들을 둘러보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면에서 이 전시는 ‘문신-카라라 지역 조각가 교류’가 낳은 결과물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당시 프랑스에 거주하던 문신은 이후에도 1991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역사박물관 초대전, 1992년 프랑스 파리시립현대미술관 초대전 등 괄목할 만한 전시를 펼쳐나갔던 만큼, 유럽에서의 다양한 미술 현장 방문 경험은 어떤 면에서 그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조형 실험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문신-카라라 지역 조각가 교류’라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할 때, 양 측이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조각의 다원화 예술기’에 접어들던 1990년대까지 활동했던 문신의 조각 세계와 더불어 이미 조각의 문법이 해체되고 재구축되어 가는 오늘날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카라라 출신 작가들의 조각 세계가 공유하는 지점은 ‘볼륨과 매스라는 조각의 고유한 전통 문법에 직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형태적 이미지(image formelle)’뿐 아니라 ‘질료적 이미지(image matérielle)’를 두루 성찰하고 조각의 기본 언어에 충실한 가운데 다양한 실험을 전개해 나가는 균형감 잡힌 조각 태도를 이끈다. 
달리 말해, 양 측의 작가들은 이 기획전이 제시하는 ‘Carve, Cast’라고 하는 ‘깎다, 주조하다’와 같은 오랜 조각의 언어를 끌어안고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Crack(깨뜨리다)’의 세계를 모색해 왔다는 것이다. 그 깨뜨림의 노력은 동시대 다원화 조각의 경향과 비교할 때, ‘덜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경지’에서 작동했고 또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기획전이 제시하는 ‘조각의 모든 방법’이란 이 글의 제목 ‘조각의 화용론적 성찰’처럼, 볼륨과 매스라는 ‘조각의 전통 문법’을 폐기하지 않은 채, 개별 조각가들이 세계를 대면하는 특수한 맥락 속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각을 변주하는 가운데 날마다 새롭게 창출되는 것이라 하겠다. ●




출전/
김성호, 「조각의 화용론적 성찰」, 『조각의 모든 방법』, 전시 카탈로그, 2022
(조각의 모든 방법展​, 2022.08.09 ~ 10.03,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