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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브이센터 / 내 안의 또 다른 나

김성호


내 안의 또 다른 나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브이센터의 2022년 하반기 기획전인 ‘내 안의 또 다른 나(another me in me)’는 김은경, 정충일, 정덕용, 백종기, 성태진 5인의 작가의 출품작들로 구성된다. 이 기획전은 통용되는 'another me inside me'라는 쓰임보다 ‘me’를 반복 사용한 만큼, ‘나’의 의미를 강조한다. 5인의 작가는 출품작을 통해서 각기 다른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관객에게 선보인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라니 그것이 무엇인지, 전시의 주제 해석과 더불어 출품작들의 대표적 특징과 그것이 지닌 의미를 살펴본다.  


김은경



II. 또 다른 나 - 피아적 주체 혹은 알터 에고 
누구에게나 ‘또 다른 나’는 존재한다. 때로는 일상의 상황 속에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혼돈스럽게 만드는 ‘두렵거나 무서운 또 다른 나’를 만나기도 하지만, 이성과 감성이 맞부딪히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지혜롭고 대견한 또 다른 나’를 만나기도 한다. 그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익숙한 내가 아닌 ‘낯선 나’로 등장한다. 
우리는 또한 의인화의 옷을 입은 동식물의 모습을 한 ‘또 다른 나’를 만나기도 한다. 마치 십이지(十二支)의 동물이 내 운명을 이끌고 내 미래를 예견하게 만들 듯이, 내 분신처럼 등장한 동물 혹은 식물의 모습은 유아기뿐 아니라 성인이 된 우리의 정체성을 금빛 희망의 미래로 가꾸어 나가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타자(他者) 혹은 대상을 대면하면서, 동심(童心)처럼 순연한 마음으로 맞닥뜨리는 ‘또 다른 나’인 셈이다. 현실을 탈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타자/대상을 맞이하게 되는 또 다른 나!
그뿐인가? 우리는 아이의 나이를 넘어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인격이 투사된 ‘또 다른 나’를 만기도 한다. 그것은 대개 자연 속에서 혹은 우주 속에서 발견해 내는 무한한 생명 존재로서의 ‘또 다른 나’이기도 하다. 대우주의 신비함 속에서 만나는 내 몸이 연장되고 내 정신이 확장되는 소우주로서의 ‘또 다른 나’! 그것은 평소의 내 모습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나’이자,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새로운 나’이기도 하다. 그것은 대개 일상을 벗어난 명상과 구도의 길에서 만나는 깨우침의 결과이기도 하고, 불현 듯 낯선 곳에서 갑작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새로운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여기서 ‘또 다른 나’란 다른 차원의 나인 셈이다. 
‘또 다른 차원의 나’란 무엇인가? 그것은 ‘피아(彼我)’로, “그와 나 또는 저편과 이편”을 아울러 지칭하는 존재가 된다. 여기서 ‘피아적 주체’는 타자 혹은 대상이 나를 바라보는 새로운 주체로 등극하는 차원을 노정한다. 예를 들어 내가 바라보는 자연과 우주는 더는 나의 대상이 아니라, 피아적 주체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내가 탈대상화된 주체로서의 자연과 우주 속에서 ‘대화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아이처럼 순연한 마음이든, 선인의 경지에 이른 어른의 마음이든, 전혀 새로운 정체성으로서 맞닥뜨리게 되는 ‘또 다른 차원의 나’와의 만남은 소망과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로 나를 이끌어 나간다. 익숙한 ‘나’와는 ‘또 다른 나’로서 그리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다른 정체성으로서의 나’라는 화두는 본질적으로 프로이트가 ‘에고(ego)’라는 주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만든 ‘또 다른 나’의 개념인 이드(id)와 슈퍼에고(superego)와 연동된다. 나의 에고가 품은 본능과 초자아! 생각해 보자. 어떠한 난관 속에서 나의 이성적 자아인 ‘에고’는 동물적 본능인 ‘이드’와 초자아적 ‘슈퍼에고’ 속에서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해나가면서 그 갈등을 조율해 나가는지를 말이다. 이드가 지향하는 악(惡)과 슈퍼에고가 지향하는 선(善) 사이의 갈등은 대표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또 다른 나’를 흔히 ‘알터 에고(alter ego)’로 부른다. “본래의 나의 모습과 다른 또 다른 자아”인 알터 에고는 해리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설명할 때 종종 사용되곤 하지만, 그것을 병적 주체라고 규정하기보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또 다른 나’로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즉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나’, 혹은 ‘나의 분신’ 또는 ‘잠재성의 또 다른 나’로 이해된다.

정충일


III. 내 안의 또 다른 나 - 심안으로 만나는 페르소나 
기획전,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자연과 우주 속에서, 그리고 유소년의 과거를 소환해서 현재에서 만나는 ‘피아적 주체 혹은 알터 에고’라는 ‘또 다른 나’를 탐구하는 작가들의 예술을 ‘지금, 여기’에 초대한다. 미처 알지 못하는 ‘숨겨진 나’ 혹은 ‘잠재성의 또 다른 나’를 서로 이해해 보자고 청유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전시가 ‘또 다른 나’라고 표기되지 않고 ‘내 안의 또 다른 나’로 표기된 것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런 면에서 기획전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참여 작가들이 ‘또 다른 나’를 자기 작업을 통해서 찾아가는 과정과 관객 스스로 나이면서 내가 아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자기 안’에서 함께 살펴보자고 청유한다. 가히 우리 각자의 심안(心眼)으로 각자의 페르소나(persona)를 만나보자고 청유하는 것이라 하겠다. 페르소나라는 용어 자체가 고대 그리스 연극배우들이 역할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썼던 가면을 지칭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당시 배우들이 배역과의 일체화를 위해서 얼마나 자신의 내면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을까를 떠올려보게 된다. 이러한 ‘내 안에서의 일체화’란 나와 너를 잇는 심리적 메타포에 포섭된다. 배역에게 투사한 ‘또 다른 나’라는 정체성은 결국 원래부터 내 안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알지 못했던 잠재된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 페르소나가 타자에게 보이기 위한 거짓된 나 혹은 사회적 역할에 부합하는 위장된 외적 인격을 지칭하는 부정적 면모가 강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글은 이 기획전이 품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는 과정을 ‘심안으로 만나는 페르소나’로 풀이한다. 성찰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부정적 의미의 페르소나가 아닌 긍정적 의미로서의 페르소나라고 하는 메타포를 성취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번 기획전은 내가 너무나 익숙하게 알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선보인다. 타자가 익히 알지 못하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낯익은 나’를 말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대개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온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밀쳐내지 못하고 세월의 켜를 안고 함께 살아온 소중한 ‘과거의 기억’ 말이다. 그것은 타자들이 저마다 망각 속에서 이미 떠나온 것임에도, 오랫동안 내가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온 과거의 유산인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의 애장품이었던 장난감에 대한 소중한 추억, 당시 영웅이었던 만화영화 속 주인공을 흠모해 왔던 기억의 시간과 같은 것 말이다. 따라서 피터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이나 키덜트(kidult)가 불리는 ‘어른이되 아이 같은 어른’으로 자리한 성인이 대면하는 ‘또 다른 나’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현재를 살며 만나는 피아적 주체이자 알터 에고’라고 할 것이다.  
이처럼, 이번 기획전은 의인화된 자연과 대우주를 향한 자아 투사와 같은 방식으로 피아적 주체와 알테 에고를 탐구하는 두 작가뿐만 아니라 로버트 태권브이라고 하는 유소년기의 추억을 소환해서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를 심안으로 추적하고 있는 세 작가의 작품을 초대해서 선보인다.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정덕용




IV. 출품작 분석 
김은경_의인화된 자연: 김은경은 이번 전시에서 ‘The frog’이라고 하는 제명의 단순한 선묘와 효과음으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을 선보인다. 작품에서는 하나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이내 나무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는다. 이어서 나무 둥지에서 자라난 한 마리의 개구리가 땅에 떨어져 가루가 되고 다시 그 가루가 땅에 흩뿌려지고 비가 와서 새로운 싹을 잉태하면서 나무로 자라는 과정을 선보인다. 생명-자연-우주로 이어지는 거대 서사를 개구리와 나무의 상호성이라는 미시적 서사 속에서 품어 안는 이 작품은 자연의 생성소멸과 순환 그리고 상호 작용이라는 풍부한 이야기를 짧은 영상으로 함축한다. 여기서 떨어지면서도 다시 나무의 분신이 되기를 갈망하는 개구리는 끊임없이 변화를 갈망하는 인간을 ‘내 안의 또 다른 나’로 은유하는 하나의 메타포라고 하겠다.  
정충일_순환하는 만물: 정충일은 무기물-유기물-인간-우주-신에 이르는 거시적 서사를 존재와 부재 그리고 추상과 구상을 오가는 다양한 조형 언어로 탐구한다. 사물과 유기적 생명체가 그리고 신과 인간의 형상이 맞물리는 그의 작품은 ‘순환, 길, 에너지’라는 각기 다른 제목들로 인간과 인간에 내재한 복잡 미묘한 자아의 정체성을 성찰한다. 그것은 때로는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때로는 신의 은총에 감격하며 드리는 기도와 명상을 시각화하면서 ‘내 안의 또 다른 나’에 대해서 성찰한다. 이러한 인간 탐구는 결국 들숨과 날숨이 맞물리는 그의 작품 속 미학이 선보이듯이, 생로병사하는 인간 실존을 넉넉히 품어 안는 신의 은총을 동시에 품어 안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내 안의 또 다른 나’란 진정 무엇인지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정덕용_자연을 향한 동화(同化): 정덕용은 ‘Overwrite’라고 하는 제명의 애니메이션 형식의 영상 작품 속에서, ‘내’가 무엇이며 ‘내 안의 또 다른 나’란 무엇인지를 찾아 나선다. 영상은 한 사람이 롤러를 들고 색칠을 해나가는 한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롤러로 허공에 물감을 칠하니 하얀 여백은 어느새 푸른 숲으로 변화한다. 그 위를 다시 지나는 롤러에 의해 푸른 숲은 다시 회색의 시멘트벽을 만들고 이내 다시 물감을 칠하니 광활한 우주 풍경이 펼쳐진다. 그 위를 지속해서 덧칠하는 롤러, 그리고 뜻밖에 등장한 로봇 태권 브이와 다시 등장한 시멘트 벽, 그리고 다시 변화한 하얀 여백, 마지막으로 그 위를 유영하듯이 유유히 날아가는 로봇 태권 브이와 같은 순차적이면서 예측 불가능한 내러티브는, 자연을 정복하면서 자연과 별리되어 오는 길을 걸었던 인간이 끝내 그리는 것이 ‘자연을 향한 동화’라는 것을 방증한다. 
백종기_꿈꾸는 로봇: 백종기는 유소년기 로봇 태권브이와 연관된 추억의 시간을 현재에 소환해서 로봇을 통한 꿈꾸기를 선보인다. 그는 로봇을 통해서 가수, 모델, 아빠, 장군, 임금과 같은 과거-현재-미래를 오가는 희망의 현시화를 대리 체험한다. 한국 전통의 초상화 형식을 빌려서 단순한 팝아트의 특징을 버무린 그의 로봇 초상은 정교한 손의 기술을 통해서 꿈을 대리 현시화한다. 수묵의 배경을 바탕으로 한 채 로봇이 신사복을 입은 현대 초상이나 전통 의복을 입은 과거 초상이 연작으로 선보이는 그의 작업은 작가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아나서는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백종기


성태진_현실을 사는 로봇: 성태진은 어린 시절 영웅이었던 로봇 태권브이를 자신이 성인이 된 현재에 불러 함께 살아가는 ‘삶의 동료’로 맞이한다. 줄무늬 트레이닝복을 입고 백수의 모습으로 일상 속에 비루하게 자리한 채, 소소한 삶의 표정으로 살아가는 로봇에 관한 상상은 관객으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 전통 한국화, 팝아트, 표현주의, 그리고 판화 형식이 뒤섞인 그의 회화는 영화, 오락, 공상과 B급 상상이 어우러진 채 날 것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선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라는 것이 정교하게 언어로 다듬어지지 않은 채 불쑥불쑥 우리 밖으로 튀어나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V. 에필로그  
5인의 참여 작가가 펼치는 기획전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의인화된 자연과 대우주에 투사한 자아의 형상과 더불어 어린 시절 로봇 애니메이션의 추억과 꿈을 소환하여 지금, 여기에 되살리는 작품들을 통해서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다양하게 표출된다. 때론 피아적 주체 혹은 알터 에고와 같은 묵직한 철학적 담론뿐만 아니라, 심안으로 추적하는 페르소나와 같은 담담한 사회적 현안이 함께 표출되는 출품작들은 우리에게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성찰하고 미래를 향한 사회적 인간의 초상이 마땅하게 지녀야할 면모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거나 시니컬하게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가볍게 되묻는다. ●


출전 /
김성호, 「내 안의 또 다른 나」, 『Another me in me』, 카탈로그 서문, 브이센터, 2022.
(Another me in me展, 2022. 10. 05 ~ 12. 18, 브이센터 더 라이브 뮤지엄 2층 기획전시실) / 참여작가 : 정충일, 백종기, 성태진, 정덕용,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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