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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정례브리핑 14시, 27일 / 예술이 팬데믹 너머의 삶을 묻다

김성호

예술이 팬데믹 너머의 삶을 묻다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기획전 〈정례브리핑 14시, 27일〉은 2019년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이래 현재까지 전 세계로 확산,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영증-19(Covid-19)의 ‘전 세계적 유행’ 상황에 주목한다. 기획자는, 2020년 ‘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이라는 의미의 팬데믹(pandemic)으로 규정되었던 코로나19가 일상을 뒤엎은 이래 한국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매일 14시에 실행했던 새롭고도 낯선 ‘정례브리핑’을 전시의 주제로 삼았다. 이들은 27일간(2022. 07. 30~08. 25)의 전시 기간 동안 시각예술로 풀이하는 정례브리핑을 개최한다는 의미에서 전시명을 ‘정례브리핑 14시, 27일’로 확정했다. 
기획자는 무슨 이유로, 일상을 뒤흔들고, 현재까지도 지속하고 있는 코로나19, 그것과 관련한 아픈 기억을 예술의 공간 안으로 가져와 선보이려고 했던 것일까? 이 전시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기획전 소개와 출품작에 대한 분석과 해설을 통해서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자. 





II.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일상      
혹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인의 삶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재편되었다고 한다. 가히 세계 형성적(world-formative)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이러한 명명은 세계 건설적(world-constrctive), 셰계 파괴적(world-destructive)의 양 갈래를 모두 포함한다. 미래를 향한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좀 더 두고보아야할 상황이다. 
코로나19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갑작스럽게 쓰나미처럼 밀려온 낯선 경험에 맞닥뜨려야만 했다. 모든 국민에게 부과된 의무적인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모임 제한 및 금지 그리고 백신 접종뿐만 아니라 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부여된 방역 의무화 조치와 영업 제한은 심각한 자율적 삶의 박탈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헌법적 권리까지 포기하면서 지켜야 할 사회 공동체를 위한 의무 조항이 날로 늘었고, 그 사이의 삶의 양상은 점점 변모해 갔다. 학교의 원격 수업 및 사회 속 비대면의 일상화, 그에 따른 언컨택트 문화의 비상과 같은 새로운 것의 사회 속 잠입이 가속화되었다. 
‘담장 없는 국경’이라는 세계화를 공공연하게 외치던 세계 강대국은 빗장을 걸고 자국민 보호에 앞장서면서 탈세계화와 초단절의 흐름을 이어 나갔다. 그 여파는 여행업계의 파산과 관광 산업의 도태를 불러오기에 족했다. 백신 접종과 치료제 개발을 통해서 이제 위드 코로나(with-corona)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섣부른 감이 없지 않지만 세계는 이미 포스트-팬데믹의 일상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국경과 지역의 봉쇄를 방역 대책으로 일관해 온 중국과 22개월간 국경을 봉쇄했던 호주 그리고 코로나 초기부터 집단 감염을 시도했던 스웨덴의 방역 체제처럼 각기 다른 방역 체제에 대한 호불호 평가는 이미 옛말이 될 정도로 2022년의 세계적인 감소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국내의 경우 마스크 대란은 옛말이 되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곧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전면 해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은 2022년 9월 25일 현재, ‘국가별 인구수 대비 확진율’이 47.54%를 기록하여 세계 7번째의 확진 비율을 보이고 있는 만큼, 이러한 확진율은 작금에는 방역의 문제 국가가 아닌 집단 감염을 성공시킨 지표로 평가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것은 역설처럼 들린다. 그만큼,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위력이 우리의 삶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체험적으로 목도했고 현재까지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III. 포스트-팬데믹 시대, 숫자 정보가 아닌 삶의 현장        
주지하듯이,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한 경우는 1968년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 2020년 코로나19 등 세 차례이다. ‘세계보건기구’가 1948년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늘날의 팬데믹과 같은 ‘세계 유행’의 단계는 구체적인 숫자 정보로 확인할 수 없었을 뿐, 그전에도 이미 있었던 것으로 파악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기원전 3세기 이집트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론되는 천연두(Smallpox)를 꼽을 수 있겠는데, 18세기 유럽의 사망자를 속출시킨 대유행을 거친 후 20세기 후반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14세기 수년간 중세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든 페스트(Plague, 흑사병), 1918년 전 세계에서 50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스페인 독감'도 꼽아볼 수 있겠다.  
기획전 〈정례브리핑 14시, 27일〉은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이 향후에도 다른 전염병으로 지속될 것을 예측하는 포스트-팬데믹 시대를 예감한다. 집단 면역을 향한 위드 코로나 시대를 천명한 세계의 흐름 속에서 국내에서도 정례 브리핑은 언젠가 중단되고 확실한 포스트 코로나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기획전은 한국에서 2020년부터 실행했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실행했던 대국민 정례브리핑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한국의 정례브리핑은 코로나19가 대유행의 단계로 넘어서기 전까지 논란이 되었던 해당 전염병에 대한 거짓 정보를 세계보건기구(WHO)가 ‘정보-팬데믹(infordemic)’으로 규정하고 경고했던 지점 그 언저리에서 출발한다. 즉 정례브리핑은 인터넷상에 떠도는 근거 없는 희망 정보나, 억측이 난무하는 페이크 뉴스를 미연에 차단하고 예측 가능한 방역 대책에 국민 모두가 동참하도록 돕는 안내서를 자처했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정보 소외를 막기 위해 수화 통역사를 대동하거나, 정확도를 높인 숫자 지표와 가감 없는 방역 실제 보고 그리고 질의응답을 통한 방역 의무 사항 공지 그리고 미래적 예측과 진단까지 동반한 정례브리핑은 모든 코로나 관련 뉴스의 원천으로 자리 잡았다. 
방역 초중반 단계에서 정례브리핑은 세계 최초로 진단 키트를 개발한 소식이나 신천지 집단 감염으로 촉발된 스마트폰을 통한 추적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가려내고 격리시키는 등 강력한 공중보건 체제를 구축한 소식 등을 전 방위로 전함으로써 한동안 K-방역을 홍보하는 최전선이 되기도 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방역 당국이 무료 진단이나 무료 백신 접종을 지속함으로써 빈부 격차에 따른 소외나 소수자 차별의 문제를 개선하려고 애썼던 지점 역시 높게 평가받기도 했다. 과도한 공동체 주의와 지나친 개인주의를 경계하면서 ‘모두를 위한 방역’ 지침을 내리는데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방역 당국은 민주적 결단을 실행해 나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방역 현장에서 타국에 비해 뒤처지는 백신 접종 현황이나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야기한 사회적 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례브리핑은 코로나 주간 및 일일 상황에 대한 세밀한 정보와 더불어 방역 당국의 방역 지침 등을 전함으로써 일정 부분 한국 국민에 대한 정부 신뢰를 이끌어 내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주역(周易)에서 종즉유시(終則有始)라고 했던가? 끝이 있으면 시작 또한 있는 법! 위드 코로나를 천명하는 포스-팬데믹 시대에 코로나는 언젠가 종말을 고할 것이다. 그때는 정례브리핑 역시 사라질 것이다. 이 끝남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릴 것이다. 코로나를 대신하는 또 다른 재난이, 정례브리핑을 대신하는 또 다른 공적인 정보 공유가 지속될 것임은 자명하다 
이 기획전은 궁극적으로 정례브리핑이 전하는 세세한 코로나19 관련 ‘정보 너머’에 ‘정보 아닌 무엇’이 있는지 자문하고 ‘정보 너머 삶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즉 전시는 포스트-팬데믹 시대를 단언하고, 정례브리핑에서 전달되는 코로나 관련 숫자 정보 대신 그 이면의 코로나 상황 속 구체적인 삶의 정황이 어떠한 것인지 또 어떠한 것이 되어야만 하는지에 관한 문제의식을 화두로 삼은 채 자문자답을 거듭한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에 관한 정례브리핑을 진행하며, 사망자 숫자를 연일 보도 중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우리는 당신은 잘 살고 있는지, 당신의 일상은 괜찮은지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려 한다. 예술가와 참여자들이 진행하는 정례브리핑은 숫자 이외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이미지를 통해 관객과 동시대를 생각해보려 한다.”
그러한 면에서 기획전 〈정례브리핑 14시, 27일〉는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는 포스트-팬데믹의 삶 속에서 코로나19 관련 숫자 정보가 아닌 삶의 현장에 대한 관심을 표방하는 ‘기획자의 27일간의 안부 인사’라고 할 것이다.


작가 아카이브 



IV. 팬데믹 너머의 삶 - 출품작 분석       
전시는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즉, 코로나19로 대별되는 팬데믹이 발발한 가운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정례브리핑의 의미를 시각예술을 통해 재성찰하는 〈Section 1 : 정례브리핑 14시, 27일〉,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 속 작가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Section 2 : On-팬데믹〉, 그리고 코로나19가 종료된 ‘팬데믹 시대 이후’를 상상하는 〈Section 3 : Off-펜데믹〉으로 구성된다. 총 3개의 섹션은 전시명 정례브리핑의 의미를 되묻거나 비틀고,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고, 곧 포스트-코로나의 시대를 살게 될 작가들의 체험적 사유와 상상의 면모를 회화, 영상, 조각, 설치, 커뮤니티 아트의 유형으로 다양하게 풀어 놓는다. 
기획전이 전하는 ‘당신에게 보내는 우리의 안부 인사’가 이제 전시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Section 1 : 정례브리핑 14시, 27일
섹션1은 전 세계 60여 곳에 있는 미술가, 작가, 연기자, 비평가, 전업 주부 등 미술 전문가부터 비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했다. 참여 조건은 한 가지로 기획자가 보내온 일회용 카메라를 가지고 27일간 매일 한국 시각으로 14시에 딱 한 장씩의 사진을 찍어 되돌려 보내는 것이다. 여기에 작가들이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느끼는 단상이나 메시지를 함께 첨부하면 참여 작가들의 과업은 완성된다. 
세계 각국에 있는 사람들을 참여 작가로 선정하고 촬영 시점을 한국 14시로 정해 놓은 까닭에, 사진 속 현지 시간은 아침, 낮, 저녁, 밤 등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작가들의 생활 관습에 따라 촬영된 이미지는 천차만별이다. 밤 풍경과 잔잔한 일상을 기록한 사진으로부터 빈 벽과 공간을 촬영한 고독한 사진, 혼자 하는 셀카 놀이와 작업 사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찍은 하늘과 다양한 풍경 사진, 반려견과 함께한 사진, 마스크를 쓴 채 벌이는 벗들과의 소소한 만남을 기록한 화기애애한 사진 등 다양하다. 흥미로운 것은, 매일 같은 시각에 촬영해야 하는 규칙을 일부 작가들이 못 지키고 촬영 시간을 놓친 경우가 있는데, 기획자는 전시장 벽면에 ‘이미지가 부재한 상태로 인화된 사진들’을 군데군데 배치한 채, 작가들의 이러한 상황을 거짓 없이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오늘날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일회용 카메라를 어렵게 구해서 번거로운 발송과 수신 과정을 거치는 아날로그 방식의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 프로젝트는 작가들이 보내온 일회용 카메라와 그것으로 찍은 27장의 사진을 전시장 벽면에 작가별, 시간별로 구성해서 선보임으로써 단절되다시피 한 대면 접촉에 대한 희망과 바람을 담는다. 아울러 참여 작가들이 보내온 카메라를 받은 날짜를 매번 점검하면서 분류했던 일정표를 함께 게시함으로써 이것이 ‘과정형 참여 프로젝트’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전시 연출 방식도 흥미롭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전시 개막 이후에 도착했던 미분류 카메라와 자료를 따로 선보이거나 코로나19 시대에 대한 작가들의 단상 및 메시지를 함께 선보임으로써 극대화된다.
한국의 방역 당국이 정례브리핑을 하는 14시에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전시는 코로나19에 대한 세밀한 정보 이면에서 그러한 정보에 따라 타율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제한된 일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일상을 지속해 나갔던 많은 사람들의 자율적인 면면들을 건져 올린다. 섹션1의 전시를, “우리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고 하는 질문과 그것에 대한 무수한 답이 맞부딪히는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해 볼 수 있겠다. 




섹션1 전경



○ Section 2 : On-펜데믹
섹션2는 코로나19의 상황을 살고 있는 작가들의 다양한 조형적 성찰을 선보인다. 
김서울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일상이 차단된 현실을 〈A Box〉 연작을 통해 박스 안의 홀로 일상 누리기를 전달한다. 또한 팬데믹 이전의 일상과 현재의 일상을 대비하는 방식으로 이전 판화 작품에서 인물을 지워내는 방식으로 판화의 복수성을 응용한 작업을 선보이기도 한다. 팬데믹으로 야기된 다종다양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새로운 인류의 모습을 형상화한 〈Homo masks〉 연작 또한 이러한 갑갑한 현실에 대한 위트 넘치는 작가적 발언이 된다. 
김영규는 정부의 코로나19에 대한 재난지원금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일괄되어 보이지 않는 지원금 정책과 부정 수급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 작품은 정부의 현금 나눠주기 방식의 복지 정책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전한다. 주사위 숫자를 통해 결과를 맞이하는 보드 게임판을 재난지원금을 총괄하는 고위 관료의 사무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이 작품은 게임의 결과인 양 공정하지 못한 재난지원금을 배분하고 있는 현 정부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리트레싱뷰로×장우석은 코로나 시대로 촉발한 거리두기와 비대면 방식으로 사회적 질서를 새로이 갖추려는 국가의 대중 통제 방식을 담담하게 네 점의 사진 작업으로 선보인다. 신체의 움직임을 통제 억압하는 화살표, 원형 마크, 1m 간격 유지 선 등 다양한 도상 기호로 이루어진 표지판은 오늘날, 비루한 삶의 양태로 전락한 현대인의 사회적 초상이자, 답답한 일상에 대한 가슴 시린 지표(index)로 작동한다.
김원진은 편지로 받은 타자들의 수집된 일기를 태운 재를 철프레임 테이블 위에 설치하고 밀랍, 파라핀 오브제 등으로 코로나 시대의 일상이 문학의 한 조각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타자의 내밀한 기록인 일기를 수집, 분류하는 사서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작가는 타자의 마이크로 내러티브를 소개하고 해설하면서도, 그것들을 한데 묶어 동시대의 사회적 초상인 마스터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그것은 가히, 그의 작품명처럼 자신을 쓰고 남을 읽는〈너와 나의 연대기〉라고 할 만하다. 
 신제현은 코로나 시대의 국내 확진자 수를 악보로 만들어 자동피아노로 연주하게 만든 작품 〈숨겨진 숫자들〉을 선보인다. 악보 속 저음이 연주될 때는 TV나 선풍기가 켜지고 악보 속 고음이 연주될 때는 가전제품들이 멈추게 한 이 작품은 코로나 확진 수에 따라 우리의 일상이 가동되거나 멈추는 상황을 은유한 것이다. 여기서 제목‘숨겨진 숫자들’이란 마치 정례 브리핑에서 전달되는 확진 수나 사망자 수 너머에 숨겨진 채 우리의 일상이 희생당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아포리즘처럼 작동한다. 
이부록은 코로나 시대를 해석하는 기호와 상징을 제시한다. 작가는〈워바타 스티커〉의 열 개의 버전과 자신만의 상징과 기호로 전시장을 빼곡하게 채운다. 이러한 디자인 개념의 시각 기호들을 배경으로 꾸며진 전시장 한 코너에 관객의 초상을 사진으로 촬영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둔 〈팬데믹 무브먼트_창백 얼굴 스티커 프로젝트〉는 의미심장하다. 코로나로 지친 관객의 초상이 후광으로 둘러싸인 성인의 도상처럼 촬영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서 커뮤니티 아트의 원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복원한다.   
이지훈은 코로나 시대에 활성화된 언택트 상황에 긴요해진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급작스러운 발전에 주목하면서 코로나 시대에 도래한 삶의 양식의 변화에 직면한 현대인의 일상을 미디어 조각적 설치 작업을 통해서 시각화한다. 구체적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Form. 1〉, 〈Ventilcade〉, 〈Fill the Void〉, 〈Paralysis〉 등, 팬(fan)과 모터로 작동하는 라이트 아트 기반의 다감각적 조각 설치를 통해서 오늘날 코로나 시대에 급활성화된 기술이 제시하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경각심에 대해 성찰하기를 권유한다.  
지나손은 코로나 시대에 대해 발언하는 퍼포먼스 영상 프로젝트 몇 작품을 두 섹션에서 동시에 선보인다. 이 섹션에서는 안동에 소재한 3만평 규모의 밀밭에서 연출한 작품〈허공을 드로잉하다_연기, 돌, 블루〉 프로젝트를 통해 지구의 암울한 현실을 비평적으로 고발한다. 
뿐만 아니라 유태오는 감독이라는 직업에 충실하게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도시민의 삶을 인터뷰를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한다. 지난한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에 대해 인터뷰와 영상으로 고찰한 유의미한 동시대 아카이브라고 할 만하다. 


섹션 2 김서울


섹션 2 신제현 



○ Section 3 : Off-펜데믹
명재범은 비디오 작업 REST를 통해서 코로나가 종식한 팬데믹 이후의 상황을 시각화한다. 우리의 삶에 작품 속 영상처럼 편안한 안식은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코로나 종식 이후의 삶이 모든 것이 결코 끝이 아닐 것이라는 예견마저 가능하게 만든다. 관객에게 이 작품은 ‘쉼’이라는 것이 멈춘 것인지, 흐르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권유한다.   
이명미는 자유로운 표현주의적 붓질의 회화를 통해서 팬데믹 종식 이후의 꿈과 희망을 상징적으로 시각화한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담은 간결하고도 쾌활한 작품의 분위기는 지난했던 팬데믹을 벗은 상황을 상상하기에 족하다. 대양과 우주처럼 거대한 세계를 향해 나서는 것처럼 표현한 색면 띠 회화는 너와 나의 자잘한 소망을 커다란 침묵의 기원으로 따스하게 품어 안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원은 코로나 종식 시점에서 코로나 이전의 행복했던 상황으로 돌아가는 염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바다나 들과 같은 드넓은 공원과 휴양지에서 평화로운 휴식과 행복한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부감 시점과 파노라마 시점으로 포착해서 익명화된 다수의 사람들의 희망을 보편적 가치로 길어 올린다.    
지나손은 섹션1과 섹션2 모두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섹션에서는 코로나에 대한 인류의 저항을 주제로 한국 서해안에 1천 개의 튜브를 띄운 퍼포먼스 영상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관객은 미미한 개별적 인간이 모인 공동체로서의 힘으로 난관을 타계해 나가길 소망하는 작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으로 진행되는 퍼포먼스와 더불어 드론 촬영과 특별 촬영 기법이 요청되는 영상이 한데 만나는 종합적인 프로젝트는 작가의 이러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찰리한은 커다란 천 위에 반짝이는 재질의 동그라미들을 모아서 ‘괜찮아’라는 텍스트를 조합하여 관객에게 위로와 행복을 선사한다. 간결한 형식의 이 작품은 코로나 시대에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위로의 메시지로, 코로나 종식을 상상하는 시대에는 그것이 큰 힘이 되어 끝내 코로나를 극복했다는 행복에 겨운 메시지로 관객에게 다가서리라는 예감을 관객으로 하여금 갖게 만든다.   
예이리는 짙은 어둠을 먹은 배경 속에서 형광빛으로 드러난 십자가 형상의 이미지와 그것을 바탕으로 앞에 선 다양한 색상의 인물 이미지를 겹쳐 놓은 평면 작업을 통해서 코로나 이후의 상황을 구원과 같은 종교적 차원의 메시지와 한데 혼성한다. 또 다른 편에는 두 손에 주술적 오브제처럼 보이는 기물을 손에 쥔 채 마치 영매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인물의 이미지를 선보임으로써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한 구원적 메시지를 하나의 메타포처럼 전한다. 
김영진은 코로나의 종식 뒤에 남겨진 인류에 대한 피해적 결과를 주목한다. 세계를 하나로 연결했던 이 사건이 남긴 상흔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사망이었던 사실을 망각하지 말 것을 작가는 설치 작품을 통해서 권유한다. 국경 없는 세계에 다시 국경을 세웠던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이 종료한 후 생각할 것은 과거를 잊고 미래의 행복만을 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 바닥에 도열해 있는 관들을 보면서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부처의 영원한 자비를 구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부다라는 문명의 한 현상을 빌려 명복을 기원하는 제례의식처럼 비장한 분위기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섹션 3 찰리한 


섹션 3 지나손




V. 에필로그
기획전 〈정례브리핑 14시, 27일〉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진행되었고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매일 14시에 실행했던 정례 브리핑에 주목하면서 그 형식을 예술의 언어로 가지고 왔다. 예술 활동이 멈춘 상황을 극복하는 취지로 세계 각지의 예술가와 사람들을 초대하여 일회용 카메라로 한국의 14시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리고 팬데믹과 그것의 종식을 상상하는 팬데믹 이후로 구별한 섹션들을 통해서 전시는 절망으로부터 희망으로 가는 순차적인 내러티브를 제시한다. 
일정 부분 섹션의 구분이 모호하게 설정된 부분도 팬데믹의 종식을 변별하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듯 보인 까닭에 더 효과적인 공간 연출이 된 점이 없지 않다. 기획서의 수정과 장소 변경 등 예기치 못한 큐레이팅의 현장에서 오늘날 시대에 유의미한 기획을 통해서 현실을 다시 성찰하는 힘을 얻는다는 것은 전시 보기의 기쁨일 것이다. 이 전시는 관객에게 이러한 기쁨을 재기발랄한 기획 개념을 통해서 선사한 것으로 평가해 볼 만하다.  ● 



출전 /
김성호, 「예술이 팬데믹 너머의 삶을 묻다」, 『정례브리핑 14시, 27일』, 대구예술발전소, 2022
(정례브리핑 14시, 27일, 대구예술발전소, 2022.07.3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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