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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장선아 / ‘가벼운 무거움’ - 인간 실존에 관한 조형적 성찰

김성호


‘가벼운 무거움’ - 인간 실존에 관한 조형적 성찰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조각가 장선아가 선보이는 최근작은 인간 실존에 관한 짙은 사유를 펼쳐 보인다. 그것은 전시명 ‘가벼운 무거움’만큼이나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지점에서 잉태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낚시하는 사람을 모티브로 한 그녀의 조각이 함유한 인간 실존에 관한 사유와 그것이 발현시킨 조형 언어를 찬찬히 살펴본다.  





II. 인간 존재의 성찰 - 차원의 경계 혹은 빗금의 공간    
장선아는 인체 조각 혹은 형상 조각의 언어를 통해서 인간 실존을 성찰한다. 그녀가 그간 국내외에서 개최했던 개인전의 영문 혹은 한문 타이틀을 보면 ‘존재(BEINGs)’와 같은 직접적 표현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와 실존에 관한 다양한 문제의식을 엿보게 한다. 예를 들어 ‘인간-풍선(Homo-Balloons)’, ‘단순히 인간(Simply Human)’, 하나의 얼굴(One Face)과 같은 인간 형상 탐구가 전제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뿐만 아니라 ‘2.5차원의 몽상가(Dreamers in 2.5 Dimension)’, ‘귀빈(貴賓)’ 혹은 ‘경계 허물기(Breaking the Boundary)’와 같은 전시 주제를 통해서 현실계 속 대립적 경계를 유연하게 오가는 인간 실존 가치에 관한 조형적 성찰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5차원의 몽상가’는 2차원 평면과 3차원 입체 사이에 걸터앉아 양자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하는, 즉 이것과 저것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사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전시명 ‘흐름(Flow)’이나 ‘시선은 욕망이다(Gaze is Desire)’와 같은 네이밍은 A와 B 사이를 오가는 시간적 흐름이나 A와 B 사이에 작용하는 일련의 인간 작용을 유추케 한다. 그것은 ‘귀한 손님’이라는 정성적(定性的) 가치가 표현된 주제처럼 ‘인간 실존 가치’에 대한 질문에 연동되기도 한다. 
이번 개인전 ‘가벼운 무거움’ 역시 A와 B의 경계를 오가는 시간적 흐름이나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간 작용을 함축하는 인간 실존을 조형적으로 성찰한다. 여기서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대별되는 A와 B는 빗금(/)의 영역으로 서로를 품어 ‘가벼운 무거움’이 된다. ‘무겁지만 가벼운 존재’와 ‘가볍지만 무거운 존재’는 곧 ‘무겁고도 가벼운 존재’이자 ‘가볍고도 무거운 존재’를 성취한다. 달리 말해 ‘무겁고(지만)/가벼운 존재’ 혹은 ‘가볍고(지만)/무거운 존재’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인식은 ‘없음/있음’, ‘부재/충만’, ‘선/악’ 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을 허물고 양자 사이에 위치한 경계의 범주를 빗금의 공유 영역으로 넓혀 현실 속 존재를 탐구하는 실존 인식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해 보자. 성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은 “신이 악을 만들지 않았다”는 ‘선(善)의 신학’을 고안하기 위해서 ‘빛(선)이 도달하지 못하는 희미한 곳에서 어둠(악)이 자라는 것’으로 비유한다. 빛이 어둠을 밀치고 어둠이 빛을 밀어내는 것처럼, 우리의 현실계의 이항 대립적 존재들은 많은 부분 경계의 영역을 이동하면서 변화를 지속한다. 인간 실존에 있어서도 결핍과 충만, 그리고 선과 악은 사실 반대항에 있는 상극이 아니라 경계를 서로 밀어내는 존재인 셈이다.  
장선아의 인간 실존에 관한 조형적 성찰로 돌아와 생각해 보자. 
직접 만든 웅크리고 있는 여인 형상의 조각을 철판 위에 프린트하고 인물의 일부를 배경으로부터 오려낸 작품 〈Through the space〉는 평면에 존재하는 회화의 영역에 위치하지만, 프레임의 일부가 제거됨으로써 회화의 안/밖의 문제를 비트는 작품이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평면의 철판을 휘어서 세워 놓은 작품 〈Wavy dreams〉나 아예 사각의 박스처럼 접어서 세워 놓은 작품 〈Through the curved space〉는 2차원의 평면 존재가 어떻게 변주하여 3차원의 조각과 같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조형적으로 성찰한다. 
장선아는 이러한 ‘차원의 변주’를 통해서 인간 실존에 내재한 대립적 속성 역시 결국 서로 다를 바 없는 것임을 성찰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장선아의 작업은 ‘부재/충만’, ‘있음/없음’, ‘무거움/가벼움’, ‘희망/절망’ 등 현실계에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 실존의 여러 가치적 속성 사이에 존재하는 ‘넓은 경계의 공유 지점’ 혹은 ‘빗금의 공간’을 발견하고 성찰하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III. ‘무겁고(지만)/가벼운’ 혹은 ‘가볍고(지만)/무거운’ 인간 욕망 
장선아의 작업에서 ‘가벼운 무거움’은 대비의 개념이 한 덩어리로 뭉친 역설 그 자체이지만, 그녀가 인간을 바라보는 실존적 사유로 자리한다. 그것은 마치 혼미한 채 주절거리는 독백처럼 보이지만, 관객을 겨냥한 분명한 어조의 방백(傍白)이자, 정치(精緻)한 철학적 아포리즘(aphorism)으로 자리한다. 
그녀의 전시 주제인, ‘가벼운 무거움’은 ‘외형적으로는 가벼워 보이는 것조차 그 심층에는 무거운 존재 의식이 함유되어 있음’을 강변한다. 작가 노트를 보자: “가벼움과 무거움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벼움 속에 무거움이 숨겨져 있고, 무거움 속에 가벼움이 깃들여 있다. 그러므로 가벼움이 비대해질수록 우리는 가벼움에 숨겨진 진중한 삶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이제 나에게 풍선은 더 이상 가볍지 않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솜털처럼 가벼운 삶의 모습도 가볍지 않은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한껏 부풀어 오른 풍선 위에서 ‘꿈을 낚시하는 소년, 소녀’를 등장시킨 장선아의 조각 연작은 재기발랄하고 가벼운 팝아트의 분위기와 동화적인 내러티브를 가득 담는다. 휘어진 낚싯대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막 미끼를 문 물고기를 온 힘을 다해 끌어 올리는 소년의 역동적인 포즈도 그러하고 조각 표면 위에 그러데이션을 이룬 변화 가득한 밝은 색상과 반짝이는 표면 효과도 이러한 팝아트의 분위기를 물씬 전한다. 아울러 두상에 다른 재료를 입히는 플로킹(Flocking) 기법을 통해서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표현한 조형 언어나 고래 이에 금니를 만들어 입히는 위트도 이러한 팝적 분위기를 전하기에 족하다. 쌍둥이 같은 인물들에 형과 동생으로 대별되는 스토리텔링을 입힌 캐릭터는 또 어떠한가? 
그러나 외형적으로 전하는 가벼운 팝적 분위기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연극적 장치를 통해서 변주되면서 전시를 둘러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부지 중 인간 실존이 품은 ‘가벼운 무거움’이라는 진중한 메시지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작가가 제시하는 ‘풍선’은 이러한 욕망을 담는 그릇이다. 욕망의 크기를 키울수록 기대하는 충만감은 끝내 오지 않고 ‘채워야 할 빈 곳이 더 커지는 상황에서 오는 허무’를 경험했던 이들은 안다. 프로이트(S. Freud)의 지적대로 욕망은 또 다른 결핍을 낳고 그 결핍은 끝없이 공허한 욕망을 키울 따름이다. 
작품을 보자. 각기 금, 은, 동으로 색을 입은 세 명의 소년을 형상화한 〈A small fish〉 연작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낚싯대를 던져서 저마다 꿈꾸는 욕망을 낚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전시장에서 각기 다른 벽으로 이어진 낚싯줄은 이러한 쌍둥이 같은 세 명의 소년이 품은 각기 다른 희망과 염원을 상징적으로 시각화한다. 가벼운 분위기의 팝적 인물상이 품은 무거운 실존 인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인사하는 사람’ 형상의 등신대 크기의 작품 〈Homo-Balloon〉은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인물이 허물을 벗고 있는 형상이다. 파란색 조각상 위에 특수 재료로 입힌 주황색 피부의 허물을 벗기는 일련의 퍼포먼스를 통해서 장선아는 ‘보이는 것’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이 지닌 ‘존재의 무게’를 가벼운 껍질과 단단한 속살을 대비시켜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가벼운 무거움’이라는 주제 의식이 빛을 발하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장선아가 선보이는 인물상들은 ‘가벼운 무거움’이라는 이번 전시의 주제처럼 인간 욕망을 화두로 ‘한없이 가벼운 조형 언어 안에서 한없이 무거운 인간 존재’를 전방위로 탐구한다. 가히 ‘무겁고(지만)/가벼운’ 혹은 ‘가볍고(지만)/무거운’ 인간 욕망이라고 할 만하다. 
 





IV. ‘말하는 나’와 ‘말해진 나’ - 빗금 쳐진 주체  
장선아의 작업에서 ‘가벼운 무거움’이라는 주제 의식은, 형식이 다른 몇 작품이 있지만, 주로 낚시하는 인물 형상을 소재로 삼아 욕망을 화두로 경계의 공유 지점을 오가는 오늘날 인간 실존에 관한 사유를 선보인다. 
그것은 대개 앞서 살펴본 것처럼 풍선 위에서 낚시하는 소년을 형상화한 작품 〈A small fish〉 연작이거나 풍선 위에 동그마니 앉아서 낚시하는 소녀의 이미지를 담은 작품 〈A fresh dream〉, 〈A purple dream〉, 〈A blue dream〉, 〈A dream girl〉과 같은 것들로 대별된다. 소년이 낚시를 하고 있는 또 다른 작품인 〈Fast and furious〉 연작과 소년을 등에 업고 바다를 가르면서 돌진하는 고래의 형상을 담은 〈Life goes on〉이라는 작품은 ‘미래에 대한 욕망’과 ‘현재의 소외’를 두루 다룬다. 또한 작품 속 소년, 소녀는 현재로부터 미래를 향해 꿈꾸는 작가의 심적 투사체이자 자기 분신이기도 하다. 
 장선아의 작업 속 욕망의 풍선들은 소년을 안고 혼돈의 바다를 표류한다. 아니 풍선은 혼돈의 바다와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물고기를 잡고자 한 커다란 욕망으로 힘껏 던진 낚싯바늘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몸을 실은 풍선을 물고 늘어져 소년이 표류하고 있는 상황을 더 위태롭게 만든다. 그렇다면 욕망의 풍선 위에 올라 고즈넉이 앉아 있는 소녀는 어떠한가? 낚시를 드리우고 있지만, 그 낚싯줄은 심연의 바다에서 건져 올릴 물고기 대신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내려간다. 타자가 아닌 주체의 심연, 그곳에는 고독과 대면하는 ‘날것의 자아’가 있다. 
‘날것의 자아’, 그리고 이 ‘고독한 주체’는 타자의 관계로부터 잉태한다. 라캉(J. Lacan)에 따르면, 인간 주체의 무의식은 대타자(Autre)의 말과 담론에 의해 형성되는 까닭에 대타자를 욕망한다. 여기서 언표된(énoncé)된 주어와 언표행위(énonciation)의 주어 사이에서 이격이 발생한다. 풀어 말해 ‘말해진 나’와 ‘말하는 나’는 언어 구조의 필연성 때문에 영원한 불일치가 야기된다. 이 불일치가 야기된 지점에서 주체는 분리되고 소외된다. 이 소외된 주체는 결핍, 빈자리,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대타자를 욕망하고 또 욕망한다. 즉 욕망은 끊임없는 미끄러짐을 낳으면서도 욕망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한다.  
따라서 라캉의 주체는 바로 ‘타자로서의 자아’와 ‘타자의 담론으로서 무의식’ 사이에서 ‘분열된 주체’, ‘분할된 주체’, 혹은 그의 언급대로 ‘빗금 쳐진 주체’가 된다. 여기서 빗금은 앞에서 살펴본 경계를 나누는 기표이기보다 ‘주체 위에 지움의 표시로 빗금 쳐진 기호’로 작동한다. 이때 라캉의 ‘빗금 쳐진 주체’는 능동적 자아이기보다 오히려 ‘고착과 나르시스적 애착의 자아’의 경향에 치우친다. 그도 그럴 것이 ‘말하는 나’라는 주체는 타자에 의해서 ‘말해진 나’에 의해서 언제나 분열되고 빗금이 쳐진 존재가 된다. 인간이란 대자타를 끊임없이 ‘욕망하는 소외의 주체’인 까닭이다. 
 



V. 에필로그    
글을 마무리한다. 장선아는 ‘가벼운 무거움’이라는 주제 아래 펼치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 실존의 가치적 속성에 주목한다. 선과 악, 출생과 사망, 있음과 없음, 부재와 충만과 같은 대립적 가치를 이분법의 차원으로 분절하지 않고 양자의 경계를 넓히는 방식으로 그 경계 사이에 넉넉히 거주하고자 한다. 차원의 경계 혹은 빗금의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무겁고(지만)/가벼운’ 혹은 ‘가볍고(지만)/무거운’ 인간 존재와 실존을 빗금의 공간에 거주하는 ‘가벼운 무거움’이라는 조형 언어를 통해 다각도로 성찰하고 시각화한다. ‘낚시하는 사람’을 소재, 제재화(題材化)한 가벼운 팝아트적 분위기와 더불어 욕망의 실현이라는 무거운 존재론적 인식이 맞물린 장선아의 작품은 오늘날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가 처한 삶의 맥락과 태도를 되돌아보게 이끈다. 
주지하듯이 인간 주체의 욕망이란 언제나 타자의 욕망을 재연하는 가운데서 발생하고 ‘말하는 나’와 ‘말해진 나’ 사이의 필연적인 어긋남과 괴리를 맞이한다. ‘타자로서의 자아’와 ‘타자의 담론으로서 무의식’ 사이에서 ‘분열된 주체’란 한마디로 ‘욕망하는 주체’와 ‘욕망으로부터의 소외’가 한데 맞물린 ‘빗금 쳐진 주체’이다. 
장선아는 한 인간 주체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소외의 국면을 빈번하게 맞이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욕망을 추동하는 사회적 인간이라는 정체적 위상을 다각도의 조형 언어를 통해서 인간 존재와 실존을 탐구한다. 여기서 풍선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공존하는 장’이 된다. 관객이 외형적으로 볼 수 없음에도, 욕망으로 팽만해진 풍선 안에 모래를 가득 채워 넣는 작업 방식과 더불어 조각의 표면 위에 도료를 여러 번 겹쳐 올려 마블링 효과를 낸 표면을 숙성 기간을 거쳐 갈아내는 조형 방식은 그 ‘가벼운 무거움’의 의미를 조형적으로 진지하게 성찰하는 대표적인 예가 된다. 
장선아의 개인전에 선보이는 ‘낚시하는 사람들’은 벽에 걸리거나 바닥의 조각대 위에 자리한 채 우리에게 다음처럼 질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은 어떠한 꿈과 욕망을 낚고 계시는가요?”   ●

출전/
김성호, ‘가벼운 무거움’ - 인간 실존에 관한 조형적 성찰 , 장선아, 전시 카탈로그, 2022
(장선아 개인전, 2022. 11 05~2022. 11. 19, 갤러리반디트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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