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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이천미술협회 / 장년의 꿈을 위한 이섭대첩

김성호


장년의 꿈을 위한 이섭대첩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한국미술협회의 이천 지부, 즉 이천미술협회의 정기회원전이 어느덧 30회에 이르렀다. 30년이라는 세월은 인생에 비하면 청년기를 넘어 장년기에 접어드는 시기라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이천 지역의 예술 활동을 가늠해 보는 바로미터가 되기에 족하다. 
비유하건대, 소년기에 간직했던 예술의 꿈과 희망을 30세에 이르기까지 지속하는 이들은 대개 직업으로서의 예술가의 삶을 선택한 이들이라고 하겠다. 그러한 점에서 30대를 넘는 세월을 지나고 있는 이천미술협회는, 예술가로서의 대외적 위상을 이미 넉넉하게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장년기 작가들처럼, 이제 성숙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하겠다.  




II. 30년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미래 전망 
이천미술협회는 지금까지 30년 장년의 역사를 써왔다. 이천미술협회의 지금까지의 역사가 삽십 년이라면 향후 남겨진 시간은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더 긴 세월이 덧붙여질 것이다. 다만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으나, 현재의 이 모습과는 매우 다르게 발전해 있을 것이다.
유념할 것이 있다. 역사를 발전적이라는 인식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우리는 역사주의(Historism)라 부른다. 즉 마르크스(K. H. Marx)의 물질적 변증법으로 발전하는 사관, 헤겔(G. W. H. Hegel)의 정신의 발전적 사관과 같은 것이 그 예가 되겠다. 양자는 역사를 풀이하는 방법론에서는 다르지만, 현재의 뿌리로부터 미래의 방향성을 지닌 발전론적 입장에서는 동일한 관점을 드러낸다. 즉 역사적 물질적 매개의 역사와 정신사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역사를 ‘시대에 따른 특유의 현상’이라고 진단하면서, 진보나 퇴보의 입장으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상대주의적 입장이 있지만, 이천미술협회의 30회를 맞이하는 정기전을 진단하는 이 글은 당연하게 역사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과거를 성찰하고 반성함으로써 미래 전망을 발전적으로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한국미술협회나 각 지부는 모두 영욕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미협의 수장을 뽑기 위한 선거를 둘러싸고 미협 내부 구성원들의 세력화된 집단 대립, 미협의 임원들 사이의 권력 쟁투, 오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현 미협과 이전 미협 지부장들의 잘잘못을 따져 묻는 소모적 논쟁, 각 분과 사이의 헤게모니 다툼, 신입 회원과 기존 회원 간의 알력, 극히 일부이긴 하나 미협 임원들의 부정에 따른 비판과 고소, 고발 사건, 그리고 회원들 사이의 불화 등, 미협 각 지부의 구체적 문제점들은 ‘결’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천미술협회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면에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토로보다, 긍정적 면모들을 이야기하고 그것의 가능성을 찾는 일이 보다 현실적일 수 있다. 물론 문제점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더불어 미협 내외에서 문제점들이 악순환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주요하다. 이천 미술인들의 화합과 결집을 도모하고 복지의 문제까지 고려해야 할 대표 단체인 이천미술협회의 30년 역사를 스스로 더듬어 보고, 역대 집행부의 공과를 모두 살피는 일은 그래서 필요하다. 이천미술협회의 향후 30년 아니 100년의 역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발전적 미래를 그리는 원론적인 과제’에 대한 논의가 요청되는 까닭이다. 


권지영, 사람아 아! 사람아 2022 | 도자기 공예, 가변설치, 무유소성 도자기




III. 미술협회 활동과 미술 소그룹 운동 사이 
미술협회와 미술 소그룹이 무슨 관계인가? 먼저 양자는 규모 차원에서 비교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한국미술협회가 중진 작가들의 주도로 1961년 시작되어 현재 수많은 지부와 위원회를 거느린 거대 단체로 성장한 반면에, 국내 최초 그룹이라고 간주되는 무동인(無同人)이 1962년 홍대와 서울대 재학생 9인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후발 주자 오리진(Origin)이 1963년 홍대 60학번 동기로부터 출발하고 이후 많은 미술 소그룹들이 태어났지만, 모두 단명했다는 점에서 양자는 규모 차원에서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다만, 한국미술협회의 활동을 상기해 볼 때, 긴 역사와 더불어 한국 미술 대표 단체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은 채 이권 단체의 수준에 머물러 생명을 연장해왔다는 비판이 있었다는 점에서, 소그룹 미술 운동이 문제 제기했던 질적 차원에서의 활동을 도입할 필요에 직면한다.    
특히 올해 61년에 육박하는 한국미술협회의 역사와 달리 30년 역사를 안은 ‘이천미술협회’의 활동을 조명하고, 평가하는 일에 있어서 이러한 양자의 이념과 활동을 오가며 비교하는 일은 오늘날 긴요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천미술협회는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세월이 많은 장년의 입장으로서 청년기의 열정과 꿈을 지속적으로 수혈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국내 소그룹 운동은 신진 작가들의 일시적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실험과 도전이라는 아방가르드의 이상을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1960-70년대 대표적인 소그룹이었던 ‘AG’와 ‘ ST’는 말할 것도 없고, 1980~199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무수한 소그룹 운동은 짧은 활동 기간을 뒤로한 채 오늘날에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지만, 그 아방가르드를 향한 목표와 지향점은 오늘날 커뮤니티 아트, 콜렉티브 아트 등 다양한 용어들로 대치되어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천미술협회는 한국미술협회가 거대 단체라는 이유로 시도하지 않았던(못했던) 다양한 미술 소그룹 운동을 잉태하는 산실과 같은 기능을 할 필요에 직면한다. 한국 미술계가 여전히 학맥과 인맥으로 맺어져 얼룩진 가운데 지역에서의 예술 진흥을 도맡고자 자리한 미술협회의 지부 활동은 그래서 활성화되어야 한다. 중앙으로부터 이격된 지역의 예술 활동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분야의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천미술협회 역시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지속적으로 도모해 왔고 또 지속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지부 산하 각 분과가 자체적으로 연합과 연대를 통해 유의미한 소그룹 미술 운동을 지속함으로써 이천미술협회만의 특장점을 견지해 나갈 필요가 요청된다.



보리윤, 편집 공간-21 | cut magazine pieces on canvas. acrylic plate, 53×40.9cm, 2020



IV. 창발성의 연대
30년을 맞이한 이천미술협회는 이러한 소그룹 미술운동이라는 ‘창작 인프라(infra)’를 생산하는 ‘창작 플랫폼(platform)’으로 거듭나야 한다. 인프라가 ‘생산의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구조물’을 가리키는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의 줄임말이듯이, 창작 인프라는 ‘예술가들이 오가는 집결지’ 또는 ‘예술 창작의 기반으로서의 플랫폼’과 연동된다. 이천미술협회라는 플랫폼으로부터 개별 회원들의 창작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 회원들의 창의적 예술 생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독려함으로써 이천 지역 더 나아가 국내 예술 창작 활동을 활성화하고 진작하는 목표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한 걸음씩 실천해 나갈 과제이다. 이천미술협회가 창의적 작가주의를 독려하고 지원하는 ‘창작 인프라’ 또는 ‘창작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다양한 세부 목표 또한 조만간 성취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물론 여기에는 회원-회원, 미술가-관객, 미술가-예술행정가, 미술가-미술 기관 사이의 만남의 네트워크로 확장될 과제마저 노정된다. 
상기한 산적한 과제들을 이천미술협회는 어떻게 풀어내야만 할까? 필자는 그것을 ‘창발성의 네트워크’가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예단한다. 창발성(emergent properties, 創發性)이란 용어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활동한 브로드(C. D. Broad)와 사무엘 알렉산더(Samuel Alexander)와 같은 창발론자들로부터 기인한다. ‘불시에 솟아나는 특성(emergent property)’으로 풀이되는 창발성이란 용어는 국내에선 1990년도 전후부터 생태학과 인지과학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사회학에 도입되면서 어떠한 모임이나 그룹의 위상을 규명하는 데 긴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창발성’이란 ‘원초적이고 높은 수준의 인과적 상호작용이 기초적 하위층위가 아닌 다른 층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즉 ‘하위 층위의 개별 요소에서는 특성이 별반 없던 것이 집단을 이루면서 상위 층위의 전체 구조에서 폭발적으로 어떠한 현상을 발생시키는 것’을 지칭한다. 이때 개별 요소들로 구성된 복잡한 전체 구조는 ‘개별 요소들의 합 이상의 존재’로 드러난다. 즉 폭발력 있는 힘을 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 근거할 때, 이천미술협회를 플랫폼으로 한 ‘네트워크’는 이러한 창발성을 기조로 한 채 작동된다. 하나가 아닌 여럿의 힘, 즉 네트워크로서의 힘이란 이러한 창발성을 견지하게 될 때, 전체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게 된다. 이천미술협회라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창발성의 네트워크가 형성될 때, 집단적 창의성 즉 ‘창발성’의 효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천미술협회 내, 외부에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여러 구성원의 부단한 노력이 힘을 합해 파급력 있는 ‘창발성’의 위력이 발현하기를 기대한다. 



강신영, 황금연못 | 스테인레스 스틸, 52×32×57(h)cm, 2021



V. 에필로그
글을 맺자. 이천미술협회는 이제 30년을 넘어서 100년을 향해 가는 중이다. 
역사는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성’을 특성으로 삼는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비가역적 과거를 ‘지금, 여기’에 부단히 소환해서 질곡과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지속할 뿐이다. 이천미술협회는 발전적 측면에서 더 이상 앞으로 진보하지 못하는 양상인 ‘퇴행적 역사’를 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천미술협회는 30년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더불어 미래 전망을 동시에 모색함으로써 단체의 이상을 발전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협회 내부 구성원들의 ‘창발적 연대’는 그래서 매우 긴요하다. 이러한 창발성의 네트워크를 성취하는 이천미술협회가 향후 백년사를 써나가는 일에 있어서 현 집행부와 차기 집행부 사이의 연속성을 계승하고 회원들의 창작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발전적 미래를 개척해 나가길 바란다. 아울러 회원들이 그간 일궈온 창작의 결과를 한 자리에서 나누는 이번 ‘정기회원전 이섭대첩’이 장년을 맞이한 이천미술협회의 미래 비전을 하나둘씩 구체화해나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20221021) ●



출전/
김성호, 「장년의 꿈을 위한 이섭대첩」, 『이섭대천전』, 이천미술협회, 2022. 
(30회 이천미술협회정기회원전, 2022. 11. 2~11. 6, 이천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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