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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김민기 / 선인장 아이 - 자기 성찰과 의지의 회화

김성호

선인장 아이 - 자기 성찰과 의지의 회화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김민기의 배다리 잇다스페이스에서의 최근 개인전은 '선인장 아이(CACTUS BOY)'라는 제목의 회화 작품들이 중심이 된 신작을 선보인다. 그간 개념미술 성향이 강한 회화, 조각, 설치 작품을 선보여 온 그의 작품이 캐릭터화된 형상들을 위시한 이른바 코리안 팝 계열의 조형으로 변모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급작스러운 변모이기보다는 작가가 품은 작가 정신이 여러 조형 실험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도달한 한 지점으로 읽힌다. 그러한 조형 실험들이 무엇이며, 최근의 팝 아트 계열의 조형 작품이 지향하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이러한 연작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천천히 작품을 분석해 본다. 




side face _ Automotive paint, Welding on Iron _ 130x 80x 30 [H](Cm) _2016


II. 숨바꼭질과 결 연작 - ‘사회적 인간의 삶’을 반추하고 은유하는 개념주의 조형 
김민기는 2012년 첫 개인전인 《D.N.A(Destiny Nothing Alive)》 전에서는 작가로서 살기로 결단한 어려운 현실을 개념적이고 은유적인 메시지를 함유한 회화, 조각, 설치의 언어로 표현한 바 있다. 2014년에는 작가가 몸담은 현실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익명과 은폐에 대한 욕망을 ‘술래잡기’, ‘숨다’라는 화두로 조각적 설치로 시각화하고, 2015년에는 지문, 혹은 등고선 유형의 집적된 선을 통해서 ‘결’이라는 주제를 회화와 조각의 언어로 가시화하는 등 김민기는 그간 자신의 개인전을 통해서 이질적이고 다양한 조형 언어를 실험해 왔다. 

개인전 및 기획전 등 지금까지의 작품 활동을 통해서 그가 천착해 온 연작은 ‘숨바꼭질(Hide and Seek)’, ‘결(Gyeol)’, ‘선인장(Cactus)’, ‘선인장 아이(Cactus boy)’로 대별된다. 특히 숨바꼭질과 결 연작은 그의 첫 개인전 ‘DNA’에서 퍼즐의 형식과 설치 작업으로 ‘목적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비판적으로 모색했던 연작을 잇는 후속작들로 같은 유형의 메시지를 성찰한다. 

먼저 2014년 작 ‘숨바꼭질(혹은 술래잡기)’ 연작은 술래를 피해, 자기 몸을 숨기고 있는 아이들 놀이를 형식으로 빌려와 조형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은폐를 시도하고  있지만 온전한 은폐에 실패한 형국을 제시한다. 반영체 필름으로 만든 커튼 형식의 연극적 장치는 오늘날 혼란스러운 사회와 그 속에서 부유하듯이 살아가는 왜곡된 현대인 상을 은유하기에 족하다. 그뿐인가? 꽃잎이나 미러 박스, 포대기 등으로 몸을 은폐하고 있음에도 얼굴이나 다리 등 몸의 일부를 드러내어 숨바꼭질에서 실패하고 있는 모습은 오늘날 사회로부터 상처받고 현실에서 도피하지만 온전한 도피에서 실패하고 마는 현대인의 삶을 어렵지 않게 은유한다. 

2015년 작 ‘결’ 연작은 이차원 선이 중첩되어 만든 패턴들이 미로, 지문, 등고선, 나이테 형상으로 얼굴을 가득 채워 익명성을 드러내면서도 자신만의 표정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러한 결 연작은 무수한 미로를 거쳐 가듯 알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아슬아슬하고도 복잡다기한 내면의 삶을 반추하듯이 전한다. 

인간이 맞닥뜨린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삶과 그 속에서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자기 내면을 동시에 응시하는 그의 작업은 가히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내면적 성찰 보고서’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결’ 연작에서의 드로잉과 같은 회화와 부조적 투과체 조각, 그리고 ‘숨바꼭질’ 연작에서의 연극적 상황의 조각적 설치 등 다채로운 조형 언어와 표현 방식을 통해 사회 비판적이고도 자기 성찰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작업은 가히 ‘사회적 인간의 삶을 반추하고 은유하는 개념주의 작업’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좌)서유나_91 x 116.7[H] (cm)_fabric, hot melt, acrylic paint _ 2017 
(우)심각한남자_91 x 116.7[H] _ fabric, hot melt, acrylic paint _ 2017



술래잡기 연작, 전시 전경, 2014 



III. 선인장 연작 - ‘개인이라는 소우주’를 성찰하는 의지의 회화
김민기는 이번 개인전에서 이전의 작업 메시지를 계승하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조형 언어인 ‘선인장’ 연작과 함께 그것을 심화한 ‘선인장 아이’ 연작을 새롭게 선보인다. 

그의 선인장 연작은 이전 작업이 선보였던 ‘사회적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과 함께 천착했던 ‘예술가 개인의 내면적 삶’에 더욱더 집중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회적 인간보다 개인이라는 소우주에 더욱더 집중하는 작품 세계로 서서히 이동하게 만든다. 달리 말하면 그의 선인장 연작은 ‘자기 애착과 자기 사랑’의 화두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무엇이라고 할 만하다.  
 
생각해 보라. 선인장이 열악한 생존 환경인 사막에서 수분을 축적하여 자기 몸을 아끼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듯이, 김민기에게 있어 선인장이란 ‘자아가 투사된 존재’로서의 ‘자기 은유’이며, 선인장을 표현한 회화는 자기표현의 결정체인 ‘자화상’과 같은 존재가 된다. 풀어 말하면 그에게 세상은 사막으로 은유되고 자기 자신은 선인장과 같은 자기 의지를 지닌 존재로 은유되지만, 이러한 은유 속에는 “내가 과연 선인장다운 선인장이 될 수 있을까”라고 끊임없이 의심을 가지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 불안한 정체성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러한 질문 속에서 ‘나’라는 주체 앞에 “사막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예술가로 살고 있는”과 같은 형용구가 붙게 된다면 우리는 그의 ‘의심을 담은 자기 반문’에 더욱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리는 안다. 21세기에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결단이 얼마나 무모하고 불안한 것인지를 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자기를 선인장으로 은유한 김민기의 선인장 연작은 ‘자기 의지를 시적 표현으로 시각화하면서도 노동 집약적인 세밀화로 일련의 명상을 꾀하는 작업’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김민기는 그동안 모은 수많은 영수증을 햇빛에 노출해 잉크를 날린 후 빛바랜 영수증을 만들어 회화의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펜으로 점, 선, 원과 같은 작고 가느다란 선묘를 반복적으로 집적시켜 정성을 들여 선인장을 그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수많은 영수증은 그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현실을 가리키고, 그것에 뿌리내린 그의 선인장 회화는 어려운 경제 자본 속에서 예술 활동을 이어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화상이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소소하지만 지난한 노동을 유발하는 그의 작업을, 사막과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마치 선인장과 같은 예술가로 당당히 살아가고자 예술 현장에 선포하는 ‘자기 선언과 자기 의지의 시적 표현’이자 그것을 다짐하는 ‘명상적 노동 회화’라고 부를 만하다. 특히 그의 이전 작업이었던 ‘숨바꼭질’과 ‘결’ 연작이 작가 자신의 내면의 삶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간의 삶 전반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었다고 한다면,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 ‘선인장’ 연작은 다분히 작가 김민기 개인의 소우주에 관심을 기울이고 성찰하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이번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인 ‘선인장 아이’ 연작은 이러한 ‘선인장’ 연작의 조형 세계와 메시지를 이어받으면서도 캐릭터화된 조형의 결과물을 통해서 이전의 작업과는 사뭇 다른 방향을 노정한다. 캐릭터화된 조형이라니? 초록색의 선인장 옷을 입은 아이의 형상이 그것이다. 선인장 옷을 입은 아이라는 특정화된 캐릭터는 선인장의 형상에게서 인간의 두상과 두 팔을 연상하면서 ‘선인장과 인간을 동질화하는 조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일 테지만, 그의 작업을 개념적 성향의 작업으로부터 팝아트적 속성으로 변모하게 만든 전환점을 이룬다. 이러한 변환 지점은 이전의 작업에서 선보였던 작가의 부정확한 독백의 메시지를 보다 친근하고 명료한 것으로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가 된다. 

게다가 이 선인장 아이는 ‘꿈꾸는 작가 김민기’의 분신처럼 간주되는 페르소나(persona)의 역할을 도맡게 됨으로써 작가의 작품을 스토리텔링이 있는 연작으로 변모하게 만든다. 주지하듯이, 페르소나란 그리스 고대극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점차 ‘이성적 본성, 즉 인격을 지닌 개별적 존재자’를 지칭하는 의미로 변환되어왔다. 융(C. G. Jung)에 의해서 ‘외적 자아’로 고찰된 이것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얻어진 자아’, 즉 ‘타인에 의해서 발견되는 자아’이다. 김민기의 작품에서 ‘선인장 아이’ 캐릭터는 열악한 현실에서 예술가로 살기를 결단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신을 투사한 ‘육화된 마스크’로 존재한다. 즉 그것은 자신을 은폐하는 위장막이 아니라 ‘꿈’을 가진 자신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현실과 작가의 내면 사이에 자리한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한다. 

김민기는 선인장 아이를 해설하는 작가 노트에서 꿈에 대해 언급한다. 몇 개의 구절을 발췌해서 살펴보면 요지는 다음과 같다.: “누구나가 꿈을 꿀 수 있지만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  꿈이라는 건 말이야 이루어도 / 실패해도 막다른 길이 아니야 / 여행하는 도중이지(...) / 나는 그저 꿈을 향해 갈 뿐이다.'



무제 ( 좌,우 동일 ) _ 40호 [109x79.5(cm)] _ 종이에 영수증 펜 드로잉 _ 2014



선인장 연작, 전시 전경, 2016



Peeking (빼꼼)_72.5x60.5cm_2022



My treasure (나의 보물)_91.5x41.5cm_2022






It stands out_80x65cm_2022

IV. 에필로그 
김민기의 작업에서 사회적 인간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함유한 개념주의적 다매체 언어는 최근 개인전에서 ‘선인장’ 연작과 캐릭터화된 조형을 등장시킨 ‘선인장 아이’ 연작을 통해서 ‘개인이라는 소우주’를 성찰하고 자신의 꿈을 재확인하는 ‘의지의 회화’를 선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선인장 아이’ 연작에 등장하는 ‘고양이’라는 또 다른 캐릭터에 관한 것이다. 선인장 아기가 작가 자신이라면 고양이는 타자이되, 이전의 타자와는 다른 특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새로운 타자란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바라보았던 ‘보편적인 타자’의 관점에서 벗어나 작가 자신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라는 이름의 구성원으로서의 ‘친밀한 타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사랑으로 맺어진 연인과 같은 ‘친밀한 타자’ 또는 ‘나와 가까운 타자’로서의 존재 말이다. 

화분 혹은 사막과 자연 풍경, 혹은 물속과 침대 등에서 함께 만나는 선인장 아이와 고양이 캐릭터는 이제 특별한 배경이 없는 화이트 큐브의 벽면에서도 독자적으로 살아나 함께 만나는 동반자로 자리한다. 코리안 팝이 드러낸 친밀한 캐릭터 형상, 원색의 화려한 색상과 단순한 배경, 등장인물이 벌이는 사건에서 연상되는 스토리텔링 등 김민기의 작업이 새롭게 천착하고 있는 새로운 방향성은 하나의 실험이다.

김민기의 작업에서 선인장 아이의 별처럼 초롱한 눈을 통해서 실천하는 세상 보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새로운 연작을 통해서 자기 성찰과 더불어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는 그의 조형 실험이 ‘선인장 아이’ 캐릭터와 더불어 ‘고양이’라는 또 다른 캐릭터를 통해서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심화될지 지켜볼 일이다. ●


출전/
김성호 「선인장 아이 - 자기 성찰과 의지의 회화」,  『김민기』, 카탈로그, 2022.
(김민기展, 2022. 12. 11~20, 배다리 아트스테이1930 – 잇다스페이스 작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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