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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이두환 / 타자의 초상 혹은 은유의 자화상

김성호



타자의 초상 혹은 은유의 자화상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이두환의 이번 개인전은 ‘관계와 인식 그리고 변화’라는 주제 아래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여기서 ‘관계’는 인간관계를 가리키며 ‘변화’는 그 속에서 정초되는 주체와 타자의 정체성과 위상이 변화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것은 개인이 사회적 인간으로 거주하면서 겪게 되는 필연적 결과일 테지만, 그는 예술가로 살고 있는 현재적 상황에서 직면한 일반인과는 다른 삶의 양태에 대한 불안과 고민을 작품 속에 잘 녹여내면서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꿈꾸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결단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러한 양면성은 작품 속에서 동물 형상으로 의인화된 일군의 인물들을 통해서 발현된다. 이러한 의인화된 주체는 작가 자신을 표현한 자화상이거나 사회적 인간으로 살고 있는 타자의 집단 초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여러 동물 형상은 실상 작가의 내면의 의식을 표상하는 메타포가 된다. 어떻게? 자세히 작품을 살펴보자. 








II. 식물과 풍경 - 의인화의 전략과 은유의 초상  
이두환의 작품에서 화면 전면에 드러난 선인장, 매화와 같은 식물이나 두꺼비, 비둘기, 토끼와 같은 동물은 인간으로 비유된다. 척박한 기후 환경과 같은 사회적 현실 속에서 자리한 선인장, 매화를 떠올려 보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양식 중절모나 넥타이 혹은 나비넥타이와 같은 인격을 드러내는 소품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비유의 단상이다. 

이러한 의인화, 의인법은 주로 문학 장르에서 “사람이 아닌 것, 즉 인간 이외의 무생물, 동식물, 사물 등을 사람에 비기어 사람처럼 표현하는 수사법”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의인법, 의인화의 전략은 무생물을 생명이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활유법(活喩法)과 함께 인격이 없는 동식물이라는 대상을 인격체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의인법은 고대의 활물론(活物論) 및 범신적(凡神的) 자연관에서 비롯된 까닭에 대개 신화, 전설, 민담 등에 전승되어 오거나 계몽과 계도의 목적으로 우화, 동화 등에 인간 존재론에 대한 은유의 방식으로 등장해 왔다. 

이두환의 시각예술 작품에서도 이러한 의인법, 의인화의 전략은 도처에 등장한다. 그의 작품에서 의인화의 전략으로 선인장이나 매화는 그 출발점이다. 선인장 화분이 모여 있는 풍경은 사회 속 인간 군상을 떠올리게 하고, 사람 모양의 거대 선인장과 그 옆에 덩그마니 놓인 작은 의자가 있는 풍경은 고단한 사회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초인과 같은 인물을 떠올리게 만든다. 푸르른 밤하늘을 배경으로 가지를 뻗어나간 매화는 혼돈의 상황 속에서도 순결과 절개를 다짐하는 인간을 은유하기에 족하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드러나는 밤과 낮의 대비는 이러한 식물과 풍경이 은유하는 의인화의 회화 전략을 가늠하게 만든다. 달과 해가 떠 있는 거대한 지구 모양은 시민군을 독려하던 시민들의 자발적으로 만들어 건네던 주먹밥이다. 그 위에 직립하고 있는 인간 군상은 시민군을 자처했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을 은유한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달과 해의 병존은 일상의 수많은 시간의 점철을 통한 역사의 시간을 은유한다. 달과 해가 병존하고 있는 무등산을 배경으로 한 푸른빛 풍경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정부군의 헬기 총기 난사가 있었던 역사적 현장인 전일 빌딩으로 중심으로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져 1980년의 역사와 2020년대에 이른 오늘의 역사적 현장을 대비시킨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사물, 식물, 풍경이 만든 의인화의 전략과 은유의 초상인 셈이다. 







III. 의인화의 동물 캐릭터 - 피아적 주체   
무엇보다 이두환의 회화에서 이러한 의인화, 은유의 전략은 최근작에 등장하는 친근한 외형의 동물을 통해 극대화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에서 염소, 양, 두꺼비, 비둘기, 토끼, 강아지, 오리와 같은 각종 동물은 인간으로 비유된 것임을 방증하려는 듯, 중절모를 쓰고 있거나, 나비넥타이 또는 넥타이를 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치는 백발이 노인을 의미하는 제유적 장치마저 끌어안으면서 그의 의인화라고 하는 은유의 전략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그는 중절모, 나비넥타이와 같은 남성의 사물을 부가함으로써 의인화된 동물 형상을 통해 예술가 가장으로 살아가는 고단한 현실을 빗대어 볼 수 있게 만든다. 

중절모를 쓴 올빼미나 호랑이처럼 의인화된 동물 주변에도 해와 달은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맥락화 장치는 동물들이 사회라고 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인간 주체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조형 장치는 세대와 세대가 이어지는 거시적 인간 역사 속에 살고 있는 한 개인의 미시적 내러티브가 복합적으로 전개되게 만든다. 보라! 커다란 비둘기는 어버이 세대로 그리고 비둘기가 쓰고 있는 모자 위에 올라서 있는 작은 비둘기들은 자녀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모자를 쓰고 있는 커다란 두꺼비는 또 어떠한가? 그것은 어버이 세대의 한 가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위에 올라서 있는 토끼나 오리와 같은 형상은 두꺼비로 은유된 가장이 보살펴야 할 자녀 세대를 은유한다.

장지에 채색 혼합이 주를 이룬 채 형성하는 이두환의 코리안 팝의 양상은 풍자적이고도 비판적인 시선과 함께 잔잔한 자아 성찰의 메시지를 한데 아우른다. 화면 중앙에 배치된 인물과 그 주변에 맥락화된 여러 장치, 즉 해와 달의 병존, 어버이 세대와 자녀 세대의 공존, 중앙 집중식 화면 구도, 중간 색조의 단색 화면들이 이루는 다색 판화와 같은 이미지는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를 현대인의 초상으로 은유하기에 족하다. 

이두환의 작업에서 현대인의 초상으로 은유된 ‘의인화의 주체인 동물 캐릭터’를 한마디로 지칭하면 어떠한 말이 어울릴까? 필자는 그것을 피아(彼我)’적 주체로 호명한다. 여기서 ‘피아’는  “그와 나 또는 저편과 이편”을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듯이, ‘피아적 주체’는 나라는 주체가 타자 혹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타자 혹은 사물이 나를 바라보는 새로운 주체로 등극하는 차원을 노정한다. 이두환의 작업에서 이러한 피아적 주체는 선인장, 매화와 같은 식물은 물론이고, 각종 동물 캐릭터로 대별된다. 그것은 은유화된 타자의 초상이자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타자와 주체가 서로 오버랩되는 이러한 피아적 주체는 더 이상 타자와 사물을 대상화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주체의 영역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존재다. 즉 타자가 어느덧 나라는 주체와 육박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또 다른 차원의 나’로서의 존재가 된다. 

이두환의 작품에서, 각종 동물 캐릭터는 타자의 초상임과 동시에, 작가의 ‘또 다른 차원의 나’로서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피아적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관계 맺음을 통해 나라는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은 결국 타자를 통한 자신에 대한 사유의 결과로 현재의 작업은 나 자신과 타인의 이해, 즉 이 둘의 지양을 통한 즉자대자적 상태를 모색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작가 노트에서 언급하고 있는 ‘즉자대자적(卽自對自的, an und für sich)’ 상태는 관계 맺음을 통해 귀결되는 인간 존재론을 풀이하는 주요한 화두이다. 달리 말해, 헤겔의 변증법에서 설파되고 있듯이, 모든 인간 존재는 “모순이 아직 드러나지 않거나 자각되지 않은 단계”인 즉자적(卽自的, an sich) 상태로부터, “모순이 드러나거나 자각된 단계”인 대자적(對自的, für sich) 상태를 거쳐, 모순이 '지양(Aufheben)'되어 통일되는 단계인, ‘즉자대자적’ 상태를 거쳐 정반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즉자가 다른 존재와의 연관에 따라 규정되는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한 미발전, 미성숙한 상태를 가리키는 잠재태로서의 존재라고 한다면, 대자는 즉자가 다른 것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전환을 의미한다. 따라서 즉자가 직접적 긍정에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면, 대자적 관계는 부정의 단계에 이른 것이며, 즉자대자적 관계는 변증법의 정반합에 도달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두환의 작품을 해설하는 이 글에서의 피아적 주체란 이러한 즉자대자적 상태를 도모하면서 찾고자 하는 이두환의 자화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IV. 상처를 치유하는 현대인의 내면 초상   
이두환의 작업에서 즉자대자적 상태로 모색하는 작가의 피아적 주체는 타자와 주체를 뒤섞는다. 즉 그의 언급대로, “타인을 통해 비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작업과 나 자신에게 비춰지는 타인의 또 다른 내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업”이 혼재하는 것이다. 주체의 대상인 타자와 작가 자신인 주체를 연동하는 방법론에서의 관건은 “외적으로 보이는 형상보다 감춰진 내면의 모습”을 탐색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내면이란 통상 형상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기에 대상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여러 이미지로 조합하는 방식으로 그는 내면의 초상을 형상화한다. 그것은 그 속의 존재를 알 수 없는 마술사의 중절모일 수도 있고, 넥타이, 목걸이로 대별되는 은유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헤겔의 변증법적 미학이 그러하듯이, 이두환의 작품에서도 예술 창작이란 이러한 즉자대자적 인식 전환의 끝없는 변증법적 과정임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두 캔버스로 이루어진 대형 작품은 화면 중앙에 취한 중절모를 왼쪽의 물총이 쏜 물줄기에 의해서 오른쪽의 꽃다발과 비둘기 등 여러 이미지를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일련의 사건이 작가의 내면에서 즉자적, 대자적, 즉자대자적 관계를 추동하면서 전개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내면적 성찰의 과정을 엿보게 만든다. 

이러한 내면 성찰의 과정이 어찌 평탄하고 순조로울 수 있을까? 이 과정에는 가시밭길처럼 험난한 노정과 더불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다기한 상황들을 동반한다. 짧은 행복과 기나긴 고난의 길이 병존한다. 잠시 기쁜 일들이 있지만 무수한 어려움이 도처에서 자라는 과정을 전제한다. 배신과 소외 그리고 절망과 같은 타자로부터 야기된 극단의 심적 고통마저 동반한다. 고향 인천에서 이격된 광주에서의 힘겨운 정착 과정이 그러했듯이, 그는 이러한 고단했던 이방인으로서의 일상의 경험을 되새기면서 작품 속에 천천히 풀어놓는다. 따라서 그가 경험했던 이야기와 누군가로부터 보고들은 이야기를 의인화된 은유의 도상으로 풀어내는 그의 작품은 비언어임에도 다수의 관객에게 공감되는 언어적 메시지를 전한다. 이두환이라는 주체와 관람자라는 타자가 ‘현대인’이라는 키워드로 공유되는 까닭이다. 

그렇다. 그의 작업은 삶의 언저리에서 만난 무수한 상처를 품은 다수의 현대인이 직면한 무수한 공유 지대를 거치면서 작가 이두환의 자화상이자 현대인의 집단 초상으로 자리한다. 즉자대자적 상태에 대한 내면적 성찰을 거쳐 상처를 긍정적 힘으로 견인하는 시각적 변증법을 거쳐 관객과 공감의 지대를 넓히는 까닭이다. 가히 ‘상처를 치유하는 현대인의 내면 초상’이라고 할 만하다. 

그가 관객과 공유 지점을 넓히는 방식은 대중에게 익숙한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를 내세우는 것도 그러하지만, 조형적으로 작품 안에서 여러 층의 반투명한 레이어를 만들고 투영과 반영의 시각을 견인하는 가운데서 드러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투명 아크릴 판에 색 아크릴판을 겹치거나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덧입힌 토끼 형상으로 된 〈Artist〉 연작을 선보이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은 색색의 레이어를 통해 현대인의 반복되는 만남의 관계학과 현대인이 맺고 있는 내외부의 다층적인 인간관계를 유추하도록 만들기에 족하다. 특히 겹친 색 아크릴판이 만드는 교차 투영의 효과가 만드는 색 그림자의 환영과 ‘겹과 결’ 이미지는 그사이에 ‘틈’과 같은 조형 언어를 만들면서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 자리한 현대인의 위상을 어김없이 드러낸다. 조형적으로 무수한 변주를 시도하는 그의 이 연작은 ‘같은 듯 다른 토끼’ 이미지를 통해서 작가 이두환과 다수의 관객이 현대인이라는 접점에서 공유하는 다양한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성공적으로 공유한다. 












V. 에필로그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서 비롯된 이두환의 작업은 최근에 이르러 작가 주체와 타자의 무수한 만남의 관계학과 인간관계에서 유발된 다층적 감성을 시각화한다. 동식물을 의인화하는 전략으로 현대인에 대한 은유의 초상을 선보이는 그의 작업은 주체와 타자가 상호 작용하는 피아적 주체의 담론을 함유한다. 그것은 친근한 동물 캐릭터를 담은 최근작에서 투명 아크릴판의 집적을 통해 형성되는 레이어를 통해서 현대인이 당면한 복잡다기한 인간관계를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의 작업은 현대인이 맞닥뜨린 버거운 현실과 동행하는 타자와의 관계 지평 속에서 얻게 되는 상처를 치유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이두환의 ‘은유의 자화상이자 타자의 초상’이다. 그의 내면 자화상이자 현대인에 관한 은유의 집단 초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





출전/
김성호 「타자의 초상 혹은 은유의 자화상」,  『이두환』, 카탈로그, 2022.
(이두환展, 2022. 12. 21~12. 30, 배다리 아트스테이1930 – 잇다스페이스 작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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