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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김보라 / 동심의 심안으로 모색하는 꿈의 메타포

김성호

동심의 심안으로 모색하는 꿈의 메타포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김보라의 최근 개인전은 오랫동안 꽃을 소재로 꿈의 세계를 탐구해 온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천착해 온 꿈, 꿈꾸기와 같은 주제 의식을 동심(童心)과 연계하는 특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녀가 내세운 전시명은 ‘꿈의 토대’로 번역함직한 ‘THE FOUNDATION OF DREAMS’이다. 이러한 전시명을 그녀는 ‘동심(童心) → 동심(動心) → 동심(同心)’으로 해설한다. 즉 이러한 해설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동심은 그녀의 작품이 탐구하는 꿈의 근거, 토대가 된다. 달리 말해 김보라가 탐구하는 이번 전시의 주제 의식은 ‘동심에서 발원하는 꿈’인 셈이다. 그것이 무엇이고 그녀의 작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안녕! 나의 꿈!’ 350x400(h)x360mm, 400x410(h)x360mm, 레진에 우레탄 도색, 2023



II. 꿈: 동심에서 발원하는 순수 상상 
‘꿈’이란 사전적 정의에서 드러나듯이, 두 가지 개념을 지닌다. 하나는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이며 또 하나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가리킨다. 물론 여기에는 상황에 따라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물론 김보라가 탐구하는 꿈이란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김보라는 기대, 희망, 이상이라는 대치어로 가능한 꿈을 동심에서 발원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성장을 다 이루진 못한 어린아이의 ‘몸’과 세상의 정보와 지식을 체득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발원하는 꿈은 순수 그 자체이다. 위계화된 질서 위에서 다음 단계의 발전된 상황을 도모하는 것을 꿈으로 간주하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세계를 대면하면서 싹트는 궁금증과 질문으로 가득한 ‘순수한 상상’을 꿈으로 이해한다. 
동심에서 발원하는 꿈은 대개 엉뚱한 것이다. 산타클로스의 방문에 대한 고대, 남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감추는 투명 인간, 과거로 되돌아가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로 가서 궁금증을 해결하는 타임머신 등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그렸던 상상은 허망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하늘을 날고, 달나라에 가고, 멀리서 사는 친구와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던 유년기의 엉뚱한 상상을 20세기에 현실화시키기에 이르렀던 역사를 직시한다면, 동심으로 발원하는 순수 상상인 꿈이란 현실화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면서 상상이 대개 허망한 것임을 알게 되고, 청소년이 청년이 되면서 상상이란 대개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지만, 우리는 모두 그 성장의 과정에서 ‘어떠한 상상’은 현실을 바꾸거나 현실의 삶에 활력을 준다는 것을 믿고 의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유년기의 순수 상상인 꿈의 세계로 자신을 잠입시키는 동심을 잠시나마 가져보곤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동심으로 불러오는 꿈이란,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언급하는 체험적 기억인 ‘순수기억’(mémoire purifiée)과 같은 것이다. 유년기의 기억이란 과거로 되돌아가는 가역적 시간이라고 하기보다 ‘지금, 여기’에 소환하는 ‘그때, 그곳’에 관한 체험의 유산(遺産)이다. 그것은 ‘머리로는 어렴풋하지만, 가슴으로 선명한’, 무엇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성인에게 유년의 과거를 연장하는 동심이란 오늘의 우리를 '지속'(durée)하게 하는 동력이자 ‘지금, 여기’를 성찰하게 만드는 발화체인 셈이다. 모든 어른에게 있어 ‘동심에서 발원하는 꿈’이란 우리의 심층 어딘가에 깊이 잠재하고 있던 상태에 있다가 일련의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현실계로 ‘현전하는/되는’ 존재다. 즉 성인에게 동심이란 ‘살아가는 기억’인 셈이다. 그것은 대개 강력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III. 꽃: 꿈의 메타포   
“나의 작업에서 무의식 또는 기억에서부터 시작되는 ‘꿈’은 ‘꽃으로 상징되고 은유된다”고 김보라가 작가 노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그녀의 작업에서 ‘꿈’은 ‘동심에서 발원하는 순수 상상’으로 풀이되고, ‘꽃’으로 은유되기에 족하다. 거꾸로 말해, 꽃은 꿈의 은유 이미지인 셈이다. 
작품 〈꿈! 피어나다〉라는 제명의 두 연작을 보자. 두 작품 모두 싱그러운 녹색과 화려한 붉은색으로 활짝 만개한 꽃잎 아래, 트럼펫으로 보이는 꽃봉오리를 지닌 채 서로 엇갈려 있거나 서로의 몸체를 잇고 있다. 작픔 〈안녕! 나의 꿈!〉에서는 같은 두 색상의 꽃잎 아래, 마치 물고기의 몸통을 닮은 꽃줄기와 지느러미를 닮은 꽃받침이 형상화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동심에서 발원한 꿈이 은유하는 꽃이 작가의 개입으로 순수 상상의 나래를 펴고 변신을 도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만개한 꽃의 발화 시기’를 꿈의 정점으로 인식하고, ‘꽃의 낙화 시기’를 꿈의 완성으로 제시한다. 즉 작가는 화려한 발화 시기를 거쳐 자기는 시들어 버리지만, 꽃가루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꽃이라는 존재’의 생명 순환 주기를 꿈의 발견과 생성 과정으로 빗대어 본다. 자연의 순환 원리처럼 꿈 역시 또 다음 세대의 꿈으로 전해져 순환을 지속하는 까닭이다. 
유념할 것은 성인이 망각한 유년의 꿈이라는 것이 어린아이에게는 지속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무의식의 심층 어딘가에 잠재태의 상태로 있다가 의식의 지평으로 현실화된다는 사실이다. 작가 김보라에게 있어서 이러한 현실화는 결혼과 출산 이후 갖게 된 육아의 시간 동안 자신이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다시 맞닥뜨리게 되면서 구체화된다. ‘예쁜, 왕관, 마법봉, 팡파르, 공주 드레스, 자동차, 열쇠 형상을 가진 장난감들’은 작가 김보라의 딸에게 있어 꿈의 대상이지만, 현재 성인이 된 작가가 여전히 꿈꾸는 것들이기도 하다. 다르다면, 그것들이 유년의 그녀에겐 동심이 견인하는 꿈과 순수 상상의 대상이었지만, 현재의 그녀에게 있어 그것들은 ‘현실화된 가치’로 변모해 있다는 정도의 차이일 따름이다. 따라서 김보라는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 꿈의 공유 지점과 괴리를 인식하면서 위로를 얻고 자기를 스스로 치유하고자 한다. 
작품을 보자. 〈Cheering fanfare〉 연작은 금색으로 만개한 꽃잎과 트럼펫 형상의 꽃봉오리가 맞물린 작품이다. 조각 작품일 따름이지만, 경쾌한 트럼펫 연주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활짝 핀 꽃의 형상을 왕관 위에 얹은 작품 〈꿈의 왕관〉이나 만화영화에 나오던 요술봉을 왕관 옆에 배치한 〈꿈의 왕관, 꿈 요술봉〉은 또한 어떠한가? 이 작품들은 작가 자신과 관객에게 잠시나마 순수 동심을 소환하고 꿈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사각의 캔버스 위에 오브제와 꽃잎처럼 보이는 자유로운 드로잉이 혼합된 작품 〈마음속 공간은 하나〉는 어린 시절 나만의 보물 상자를 간직하기 위한 열쇠 보관함을 선보인다. 성인이 된 작가에게 이러한 열쇠는 ‘가치 전이’만 있을 뿐 여전히 ‘꿈’처럼 기대를 가득 안은 유효한 무엇이 된다. 이러한 연작은 작가의 언급처럼 동심이 길어 올린 꿈과 성인이 된 작가가 염원하는 꿈이 교차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러한 시간은 같은 꿈의 대상을 현재의 시각으로 가치화, 현실화하여 변화된 꿈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내려두고, 새로운 꿈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는 시간이 된다.” 
이처럼 김보라의 작업에서 꽃은 ‘미, 아름다움, 화려함, 성숙’이라는 꽃과 관련한 익숙한 상징, 즉 ‘원형 상징(Archetypal Symbol)’이나 ‘부귀, 미, 하모니, 사랑, 재생’과 관련한 ‘관습적 상징(Conventional Symbol)’을 탈피하고 동심이 견인하는 순수 상상과 꿈의 메타포로 작동한다. 동심에서 얻어지는 위로와 치유를 늘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IV. 빛: 동심의 심안이 투영하는 이미지
김보라에게 있어 꿈을 은유하는 꽃이라는 이미지는 대개 조각적 볼륨과 매스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이지만, 빛의 반영(反映)과 투영(透映)을 고려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앞서 살펴보았던 꽃과 트럼펫 형상이 한 몸을 이룬 〈조각 꿈! 피어나다〉 연작이나 꽃과 물고기가 만난 〈안녕! 나의 꿈!〉 연작은 녹색이나 붉은색으로 도색된 까닭에 ‘빛이 반사하여 비치는 반영’의 효과를 드러낸 작품이다. 반면에, 꽃, 왕관, 요술봉 모양을 투명 레진으로 만든 〈꿈의 왕관〉, 〈Hello! my dream!〉, 〈꿈 요술봉〉과 같은 작품들은 빛을 투과시키는 투명의 조각체로 인해 ‘광선을 통과시켜 환히 속까지 비추어 보이게 만드는 투영’의 효과를 드러낸다. 즉 ‘색조각’은 빛을 도로 반사해서 우리 눈에 선명한 색을 각인하는 반영의 효과를, ‘색이 없는 투명 조각’은 빛을 투과시키는 투영의 효과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보라의 작업에 있어 ‘빛’은 ‘꿈’의 또 다른 메타포가 된다. 마치 ‘꽃’이 ‘꿈’의 메타포였던 것처럼 말이다. 꽃이 만개와 낙화를 통해 ‘자연의 순환 원리’를 드러내면서  꿈의 작동 원리와 겹쳐진다면, 조각의 표면 밖으로 튕겨 내거나 반대로 조각의 속살 안으로 끌어오는 빛이란 김보라의 조각에 있어서 또 다른 차원의 메타포가 된다. 생각해 보자. 빛은 반영과 투영을 통해 꿈의 ‘현실화된 현현(顯現)’과 ‘체화된 잠재태(潛在態)’를 오버랩시킨다. 이러한 차원에서 조각의 몸체 안으로 들어오는 투영은 부정적 메시지가 아니다. 투영은 비유적으로 말해 빛을 가슴에 품고 색으로 발현되는 꿈의 실현 순간을 갈망하는 ‘꿈꾸기의 지속’인 셈이다. 
생각해 볼 것은 조각의 몸체 안으로 “빛을 통과시키는” 투영(透映)이 만드는 또 다른 투영(投影)의 효과, 즉 “물체의 그림자를 어떤 물체 위에 비추는 일, 또는 그 비친 그림자”는 새로운 국면에서 빛을 해석하게 만든다. 그림자 혹은 색 그림자라는 투영(投影)이 바로 그것이다. 작품 〈드러내는 꿈〉 연작은 이러한 두 투영의 효과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연작은 볼륨과 매스를 줄인 평평한 투명 유리판에 앞서 살펴보았던 꽃의 여러 형상이 변주된 채 그려져 있고 빛을 통과시켜 벽면에 여러 형상의 색 그림자를 투영시키는 작품이다. 이 연작은 우리에게  어린 시절 작은 불 하나를 켜 놓고 손가락으로 이러저러한 동물 형상들을 만들어 보던 그림자놀이를 떠올리게 한다. 어두운 실루엣을 통해 여러 동물을 상상하게 했던 그림자놀이를 김보라는 ‘마음의 이야기를 덧씌운 대상’이자 ‘어둠을 극복하는 꿈의 대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이 연작은 ’드러내는 꿈‘이라고 하는 작품명처럼 ’체화된 잠재태‘에서 ’꿈의 현현’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 작품에서 마음, 꿈을 가능하게 만든 ’빛‘은 가히 ’꿈의 메타포‘라고 해설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작가가 언급하는 ‘마음’을 좀 더 풀이해 볼 필요가 있다. 그녀에게 그림자로부터 상상하는 빛의 꿈꾸기는 육안(肉眼)보다 심안(心眼)으로 가능해진다. 마음의 눈으로 풀이되는 심안은 조형적 완결미와 형식미라는 ‘외양(外樣)’을 부단히 좇는 육안과 달리, ‘내면과 범상한 것, 심지어 추한 것’에 이르기까지 ‘외양’ 너머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순수의 눈이다. 한마디로 ‘동심으로 대상을 보는 눈인 심안’이라고 할 것이다. 
또 다른 작품을 보자. 
전시장 벽면에 다양한 색상의 빛 드로잉을 선보이는 〈어둠에서 밝아지는 꿈〉, 〈빛으로 날아들어〉 두 연작은 PC 필름에 UV 인쇄된 드로잉을 투사한 것이다. 투사 혹은 투영으로 인한 또 다른 투영의 효과는 빛이 만드는 꿈의 현실화와 같은 분위기를 한껏 드러낸다. 투명 조각에서 라이팅 아트의 장르로 넘어서는 이 작품을 통해서 김보라는 ‘꿈-꽃-빛’과 같은 상호 관계 속의 메타포를 자연스럽게 형성한다. 



V. 에필로그 
글을 정리하자. 동심에서 발원하는 순수 상상으로 꿈을 찾아 나서는 김보라의 개인전은 ‘꿈-꽃-빛’으로 이어지는 삼원의 메타포를 형상화한다. 그녀는 이러한 은유를 색 조각, 투명 조각, 투명체를 통한 그림자 조각 등. 빛의 반영과 투영을 통해 다양한 시각적 변주를 시도한다. 그녀의 작업이 ‘잠재적 움직임(Mouvement virtuel)’이든 실제적 움직임(Mouvement réal)이든 ‘운동성’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바슐라르(G. Bachelard)가 저작 ‘물과 꿈(L'eau et les rêves)’에서 언급했던 몽상이 야기한 ‘시적 상상력(Imagination poétique)’ 혹은 ‘물질적 상상력(Imagination matérielle)’의 관점으로 그녀의 작품을 읽게 만든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대상의 표면에 머무르는 ‘형태적 상상력’(imagination formelle)이란 얼음의 외형처럼 고정화된 것일 뿐이고 대상의 표면과 내면이 함께 침투하는 ‘물질적 상상력’(imagination matérielle)이란 얼음, 물, 수증기처럼 변화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보라가 ‘동심의 심안으로 모색하는 꿈의 메타포’를 다양한 매체와 조형 방식을 통해 변주하는 이번 전시는 가히 물질적 상상력으로 빚어진 무엇으로 해설할 수 있겠다. ●

출전/ 
김성호, 「동심의 심안으로 모색하는 꿈의 메타포」, 전시 카탈로그, 『김보라』 , 2023
(김보라-THE FOUNDATION OF DREAMS展, 2023. 2. 1~2. 6, 갤러리 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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