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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이진희 / 사물에 부여한 상징과 인격

김성호

사물에 부여한 상징과 인격 - 이진희의 트로피 연작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이진희의 개인전은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왕들에 대한 보고서 -트로피(Report on Kings in 2022 - The trophy)’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왕 혹은 최고의 위상을 상징하는 ‘왕관’을 테마로 삼고 그 ‘왕관’을 값진 상(賞)을 상징하는 ‘트로피’로 해설하는 이진희의 이번 개인전은 한마디로 현대인에게 선사하는 위로와 격려의 선물이다. 그녀가 작업의 테마로 왕관을 설정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녀가 왕관과 트로피의 의미를 통합하는 조형 세계를 통해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글은 이진희의 작품 세계에 드러나 있는 상징의 의미와 미학적 함의에 대해서 살펴본다.  



전시 전경




II. 상징으로서의 왕관/트로피 - 선물
왕관(王冠)은 “임금이 머리에 쓰는 관”이라고 하는 일차적인 사전적 정의 외에도 “운동 경기나 미인 대회 따위에서, 일인자로 뽑힌 사람에게 명예로 쓰게 하는 관”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이 왕관은 흔히 크라운(Crown)과 같은 말로 사용되지만, 원통 모양의 머리 장식으로 통칭하는 티아라(tiara)로 대체 사용되기도 한다. 티아라는 높이가 높고 길쭉한 로마 교황의 삼중관(三重冠)이나 결혼하는 신부의 웨딩드레스에 맞춰 머리에 장식하는 왕관을 지칭하기도 한다. 또 다른 왕관으로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나 로마 황제가 쓰던 ‘높이가 낮은 띠 모양의 장식’을 가리키는 다이어뎀(diadem)이나 고대 이집트 왕족이 쓰던 원통 모양의 관이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모양의 흰색 왕관인 해젯(hedjet)이 있다. 
왕관을 가리키는 크라운, 티아라, 다이어뎀, 헤젯과 같은 여러 용어가 오늘날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이 용어들은 대개 크라운으로 통칭되면서 “왕위를 상징하는 관” 혹은 “존엄을 나타내거나 고귀한 신분의 표시로 머리에 쓰는 관”이라는 의미를 두루 공유한다. 나아가 마라톤의 승리자에게 월계수 다이어뎀을 주었던 것처럼 “승리자의 권위”라는 의미까지도 함유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트로피와 맞물린 왕관의 형태를 선보이는 작가 이진희의 조형 메시지를 얼추 이해할 수 있겠다. 왕이나 황제가 쓰는 왕관이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메시지를 지닌다면, 승리자가 받게 되는 트로피는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함유한다. 이진희가 작가 노트에서 “지쳐 힘든 현대인에게... 나의 작품을 대신으로 축하와 위로의 트로피를 선물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듯이, 왕관과 트로피가 맞물린 그녀의 조각은 상상으로나마 오늘만큼은 왕이 되는 시간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트로피가 품은 축하와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따라서 ‘왕관/트로피’로 표현할 수 있는 이진희의 작품들은 하나의 상징으로 표상된다. ‘존엄한 최고의 권위를 선사하는 축하의 선물’이 그것이다. 
상징이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물을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기호, 부호”로 풀이된다고 할 때, 여기서 ‘구체적인 사물’은 실재하는 존재를 가리킨다. 그래서 상징이란 눈이나 귀 등으로 직접 지각할 수 없는 의미나 가치와 같은 추상적인 무엇을 어떤 유사성에 근거해서 실재하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동물 혹은 형상으로 규정화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평화의 상징을 비둘기라는 ‘구체적인 실재’로 규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풀어 말하면 비둘기라는 구체적인 실재는 ‘평화라는 추상적 개념’에 대한 상징이 된다. 이러한 상징의 예는 많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고, 초승달은 이슬람교에서 '진리의 시작'을 상징한다. 또한 구급차에 그려져 있는 뱀은 ‘의학과 의술’을 상징하며, 흑색은 악의 상징, 백색은 선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진희의 작업에서 왕관은 ‘최고의 가치와 권위’로 상징되고, 트로피는 ‘축하와 위로의 상’으로 상징된다. 따라서 ‘왕관/트로피’로 부를 만한 이진희의 작품들은 ‘존엄한 최고의 권위를 선사하는 축하의 상과 같은 선물’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표상된다. 줄여 표현하면 ‘최고의 권위를 선사하는 선물’ 더 짧게 말하면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측면에서 말하면 이진희의 왕관과 트로피를 맞물린 형상의 ’왕관/트로피’로 부를 만한 작품들은 상징으로 규정되는 실재하는 사물이 왕관으로부터 트로피로 무게 중심을 이동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 작품명도 ‘트로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왕관은 숨고 트로피가 전면에 나선 셈이다.  
주지하듯이 상징은 다의적인 개념을 함유한다. 트로피는 ‘승리, 상, 선물’과 같은 의미를 지닌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지만 이진희의 작업에서 왕관과 맞물리면서 형상화된 트로피는 ‘선물’과 같은 용어에 모든 의미를 수렴된다. 즉 권위를 상징하는 왕관과 결합한 트로피 형상의 작품은 ”바쁜 생활 속에 자존감을 일어가는 현대인을 위해 자신감과 존중의 왕관을 선물한다“는 이진희의 말처럼 하나의 ‘선물’이라는 의미망에 포섭된다. 관련한 이진희의 작가 노트를 살펴보자.  

“추억의 빛바랜 사진첩 속에 유치원 생일잔치 사진 한 장, 왕관을 쓰고 그날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축하받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지금의 위로가 필요한 나의 모습을 마주한다. 나를 위한 왕관을, 사진 속 그날처럼 축하와 위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로서의 나를 위한 왕관을 조각한다. 작품 속의 왕관은 나이기도 하고 누구이며 우리이다. (중략) 위로와 칭찬을 생각하며 상을 주는 트로피 형태의 왕관으로 변형되었다. 전시를 통해 지쳐 힘든 현대인에게 오늘만큼은 어린 시절 그때처럼  주인공이 되어 나의 작품을 대신으로 축하와 위로의 트로피를 선물하고 싶다.”


(좌) A princess in a strange land- margherita
(우) 원유관- Giuliano


III. 안정과 평안의 트로피 연작 -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이진희의 ‘트로피’ 연작은 왕관과 트로피가 결합한 ‘왕관/트로피’로 해설되고 트로피의 ‘승리, 상, 선물’과 같은 여러 상징 중 ‘선물’이라는 의미를 품은 상징에 방점을 찍는다. 즉 그녀의 최근작은 “트로피의 상징은 선물이다”라는 명제를 가시화한다.    
생각해 볼 것은 왕관은 머리에 쓰는 관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둥그런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트로피는 상을 수여하고 선물을 주고받는 순간 손으로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대개 손잡이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조형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트로피는 실제의 손잡이가 있는 항아리 형상이거나 깃대처럼 기다란 봉이 있는 형상이이거나 크지만, 납작한 두께를 지닌 방패의 형상이거나 인체, 동물과 같은 조형을 품은 조각이더라도 손으로 잡거나 들어 올릴 수 있는 규모와 조형을 필수적으로 지닌다. 
그렇다면 선물이라는 메시지와 상징을 표방하는 이진희의 ‘트로피’ 연작은 조형적으로 어떠한가? 그것이 부조이든, 환조이든, ‘왕관/트로피’로 표현될 만큼 왕관과 결합된 형상인 만큼, 기본적으로는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 둥그런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부조일 경우는 대개 방패처럼 원형의 돌 판의 중앙 혹은 사각형의 돌 판의 한쪽 면에 볼록이나 오목으로 ‘왕관/트로피’가 붙어 있거나 새겨져 있고, 환조일 경우는 대개 기다랗고 둥그런 ‘왕관/트로피’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이진희의 트로피 연작에서 ‘대칭’과 ‘균형’으로 번역되는 시메트리(Symmetry)는 주요한 조형적 특징이다. 
물론 수학자 바일(H. Weyl)이 시메트리 구조를 BC 4세기의 그리스 조각인 ‘기도하는 소년’에서 찾았던 것처럼, 시메트리는 구상 조각의 전통에서도 익숙한 조형 언어이다. 그러나 현대 조각에서 시메트리의 근본적 조형성은 추상에서부터 발원한다. 브랑쿠시(C. Brancusi) 이래 20세기 추상 조각이 드러내었던 균형과 대칭의 양상이 그것이다. 브랑쿠시의 작품이나, 한국 추상 조각의 1세대 김정숙 그리고 문신의 조각에서 드러나듯이, 추상조각의 시메트리는 수직이나 수평의 중심축을 기점으로 좌우 혹은 상하로 대응하는 구조와 배치가 관건이다.
이진희의 시메트리는 조형적으로 조금 다른 차원을 노정한다. 그녀의 트로피 연작은 한 방향에서의 대칭이기보다, 왕관과 트로피를 혼성한 둥그런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세로의 중심축을 기점으로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좌우 대칭을 이룬다. 세로축을 중심으로 회전 운동을 이룬 로테이셔널 시메트리(Rotational Symmetry)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트로피 연작을, 실제로는 회전 운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마치 회전 운동을 하듯이 대칭의 지속을 강화하는 ‘환원적인 잠재적 운동체 조각’이라 부를 만하다. 
잠재적 회전 운동에서 기인한 이진희의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구조는 매우 안정적이다. 수학자 바일은 시메트리의 대표적인 특성을 “여러 부분이 하나의 완전체가 되게 하는 일치의 한 유형(sort of concordance)”으로 꼽는다. 그것은 조화(harmony)와 같은 것이다. 조각에서 시메트리는 관자에게 조화, 안정, 엄숙, 숭고의 감성마저 전한다. 다만 비평적 관점에서, 조각에서의 과도한 시메트리는 유기적인 생명력을 상실하고 경직된 미감을 낳게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하기도 한다. 
조각가 이진희는 로테이셔널 시메트리를 통해서 조형적 균형과 대칭을 극대화하면서도 그것과 상충하는 양상을 일정 부분 장치함으로써 정형 속에 비정형을 담아내려고 시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직된 형식미를 풀고 유연한 변화를 수용하고자 한다. 균형과 대칭에 상충하는 양상? 정형 속의 비정형? 그것은 최소한의 에이시메트리(Asymmetry)로 가능해진다. 비대칭으로 번역되는 에이시메트리는 그녀의 트로피 연작 안에 최소한으로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세로축을 중심으로 360도로 회전한 둥그런 형상이 어느 곳에서나 시메트리를 이루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트로피의 둥그런 형상의 한쪽을 납작하게 만들어 특별한 시점에서만 좌우 대칭이 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좌대를 입방체 형상으로 만들어 대칭 속 비대칭의 요소를 삽입하여 ‘시메트리 속 에이시메트리’를 성취하기도 한다. 
아울러 개별 작품들이 서로 유사하면서도, 길거나 짧은 트로피의 형상, 붉거나 검은 대리석의 색, 그리고 돌의 표면 혹은 돌 속에 상감 기법으로 넣은 비즈의 제각기 다른 모양과 색상 등은 그녀의 트로피 연작을 매우 다양한 유형으로 변주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진희는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안에서 느끼게 되는 조형적 안정과 심리적 평안을 유연하게 흔들면서 개별 작품 하나하나가 마치 여러 다른 감정을 지닌 사람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그녀의 트로피 연작에서는 ‘왕관-트로피-사람’이라는 관계 속의 변주가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 



(좌) Trophy - p , (우) Trophy - E



IV. 현대의 수많은 왕들 - MBTI
이진희의 개인전 주제인,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왕들에 대한 보고서 -트로피’는 그녀의 트로피 연작이 ‘왕관/트로피’의 혼성형 조형으로부터 비롯되었으되 ‘트로피’에 방점을 찍으면서 ‘상, 혹은 선물’이라는 상징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다. 더 나아가 이 트로피가 세상의 ‘수많은 사람’을 은유한 것임을 강조한다. 트로피는 곧 사람의 메타포인 셈이다. 작가 노트 속 “한 작품 한 작품이 다양한 현대인을 표현하고, 개성과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조각되었다”라는 표현이나 “작품 속의 왕관은 나이기도 하고 하나하나는 누구이며 우리이다”라는 표현은 이진희의 트로피 연작이 곧 사람의 메타포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렇다. 이진희가 천착하는 트로피 연작은 ‘왕관-트로피-사람’으로 이어지는 관계망에 천착함으로써 나의 자화상이자 우리 모두의 초상임을 명확히 한다. 어린 시절 왕관을 쓰고 주인공이 되었던 과거의 생일잔치 속의 나의 모습을 모든 이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려는 선물의 의미로 만들어진 초상으로서 말이다. 
‘현대의 수많은 왕들’이란 부제처럼 현대인의 초상은 천차만별이다. 저마다 다른 현대인의 모습은 얼마나 다양한가? 그렇지만 현대인의 모습은 일정 부분 유사한 범주 속에서 특징지어진다. 우리는 경험과학의 귀납적 방법으로 인해 다양한 특성을 유형(type)에 따라 분류하고 분석하여 그 본질을 파악하려는 방식을 ‘유형학 혹은 유형론(typology)’이라고 부른다. 유형론은 다양성을 패턴화하고 공통 지점을 범주화하는 가운데서 만들어진다. 고고학, 미술사, 사진학 등에서 양식 구분과 유사한 작품 형식을 분석하는데 주요한 학문적 자양분을 제공했던 이러한 유형론의 성과는 심리학, 정신분석학, 의학 등 인간학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진희는 트로피 연작에 이러한 유형론을 적용한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융(G. K. Jung)의 저술 『심리적 유형(Psychological Types, 1921)』이 그 원천이다. 융은 이 저술에서 인간 성격을 두 가지 유형(내향성, 외향성)과 네 가지 기능(사고, 감정, 감각, 직관)으로 범주화했다. 융이 진료를 위한 목적으로 만든 이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캐서린 브릭스(Katharine Cook Briggs)와 이자벨 마이어(Isabel Briggs Myers) 모녀가 1962년에 발표한 ‘마이어-브릭스 유형 지표(MBTI)’가 학계에 널리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1980년 마이어가 사망한 후 동료인 플로리다 대학의 교수 맥컬리(Mary McCaulley)가 1998년 업데이트한 세 번째 판이 오늘날 우리에게 16가지 범주화로 알려진 MBTI로 자리 잡아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결론은 무의식 중에 발현되는 심리적 성향이 저마다 모두 다르지만, 일반화된 16가지의 범주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진희는 트로피 연작의 모든 작품명에 〈Trophy - I〉, 〈Trophy - N〉, 〈Trophy - T〉처럼 하이픈이 연결된 MBTI의 속성을 표기함으로써 자신이 만든 개별적 트로피마다 다른 성격을 부여받은 사람에 은유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것은 4가지 쌍의 8개 지표로 나뉘게 된다. 에너지 방향에 따른 외향(E)-내향(I), 인식 기능에 따른 감각(S)-직관(N), 판단 기능에 따른 사고(T)-감정(F) 그리고 생활 양식에 따른 판단(J)-인식(F)의 쌍이 그것이다. 이진희의 작품은 대개 이러한 8개 지표를 표시하는 수준에서 작명되고 있지만, MBTI의 속성은 이 8개 지표와 그것으로 생성되는 다음의 16개의 유형으로 구성된다: 내향적 감각형(ISTJ, ISFJ), 내향적 직관형(INFJ, INTJ), 내향적 사고형(ISTP, INTP), 내향적 감정형(ISFP, INFP), 외향적 감각형(ESTP, ESFP), 외향적 직관형(ENFP, ENTP), 외향적 사고형(ENFJ, ENTJ), 외향적 감정형(ESTJ, ESFJ). 
작가 이진희는 이러한 MBTI의 기본 유형을 자신이 만든 트로피 연작의 개별 작품에 적용함으로써 ‘현대의 수많은 왕들’이라는 이름으로 인격화되고 의인화된 각각의 트로피에 고유화된 심리적 속성을 부여한다. 그녀는 각 작품마다 마련된 QR코드를 통해 관람자가 스마트폰으로 MBTI 정보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흥미와 재미를 선사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트로피의 대리석 몸체의 모양과 색상, 그리고 그 위에 올라선 다양한 장식과 좌대의 조형 언어 등을 살펴보면서 트로피라는 사물에 투사된 다양한 인격과 성격을 가늠해 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관객은 트로피 연작 중 어떤 작품이 외향적인 사람을 닮은 것인지, 감정형 혹은 사고형 속성을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다. 사물에 투사된 자아의 모습을 성찰하는 진지한 명상의 시간은 덤이다. 이러한 까닭일까? 이진희의 트로피 연작을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왕들에 대한 보고서’라고 호명하기에 모자랄 바가 없어 보인다.   



(좌) Trophy - N, (우) Trophy - T

V. 에필로그
이진희의 트로피 연작에는 트로피와 왕관의 혼성적 조형을 위해 시도했던 오랜 연구와 지난한  조각 실험이 켜켜이 쌓여 있다. 트로피의 특징에 부합하는 대리석을 찾고 유려한 둥근 외형과 더불어 때로는 잔잔한 요철의 표면을 때로는 매끈한 대리석 표면을 위해 투여했을 오랜 창작의 시간과 지난한 노동력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돌의 표면 위에 장착된 반짝이는 비즈만큼이나 그녀의 트로피 연작 모두가 이러한 창작의 노동으로 빛을 발한다. 
이진희의 트로피 연작은 왕관과 트로피가 맞물린 ‘왕관/트로피’의 유형으로 선물이라는 의미의 상징을 시각화한다. 이 연작은 시메트리, 더 정확히는 세로의 중심축을 통해 회전하는 이미지로 대칭을 이룬 로테이셔널 시메트리 구조를 통해 안정적인 조형 세계와 더불어 평안의 심리적 세계를 전한다. 이 트로피들은 결국 나와 우리의 자화상이자, 너(당신들), 그(녀)들의 초상이다. 트로피라는 사물에 부여한 상징과 인격을 통해 인간으로 은유한 비유의 전략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왕들에 대한 보고서 -트로피’라는 전시명처럼 이진희의 최근작은 현대를 사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위로와 격려의 선물이다. 고단한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트로피 연작을 통해 왕의 권위를 잠시나마 부여하고 트로피를 선물로 주려는 이진희의 관심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세상은 척박하더라도 그녀가 MBTI를 통해 각기 다른 모든 왕들이 사이좋게 함께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장밋빛 세상을 여전히 꿈꾸고 있는 까닭이다.  ●


출전/
김성호, 「사물에 부여한 상징과 인격 - 이진희의 트로피 연작」, 전시 카탈로그, 『이진희』, 2023
(이진희-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왕들에 대한 보고서 ? The trophy展, 2022. 11. 22~12. 4, 갤러리에이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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