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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김주영 / 의인화 조각이 탐구하는 공생의 스토리텔링

김성호


의인화 조각이 탐구하는 공생의 스토리텔링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재생에서 공생으로 : 골판지 조각이 함유한 전유의 미학 

작가 김주영은 박스로 사용된 골판지를 해체하여 자신의 작업을 위한 재료로 삼는다. 버려진 것들 혹은 버려질 것들을 작업 안으로 가져온 ‘발견된 오브제(Objet trouvé)'는 조각의 볼륨과 매스를 만들기 위해 작가에 의해 해체되고 재조합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것은 작가에 의해 조각적 질료로 선택되고 조각의 표피로 다시 태어난 ‘만들어진 오브제(Objet créé)’이자, ‘전유(專有, appropriation)의 미디엄’인 셈이다. 

전유는 사전적 의미에서 “타인의 것, 생소한 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라는 점에서, “예정되어 있는 곳에 쓰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돌려서 씀”이라는 의미를 지닌 전용(轉用)과 연동된다. 문화연구에서는 어떤 형태의 문화자본을 인수하여 그 문화자본의 원(元) 소유자에게 대항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김주영의 작업이 표상하는 ‘전유의 미디엄’이란 ‘어떤 것을 취하고 그것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원래의 개념과 기능을 전복하는 매체’로 해설된다. 

한편 전유는 종종 포스트 식민주의 혹은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의 언어 사용에 관한 것으로 회자되어 왔다. 에쉬로프트(Bill Ashcroft)와 동료들이 식민 종주국의 언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되받아 쓰기(Writing back)를 통해서 탈식민주의를 실천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나이지리아 작가 아체베(Chinua Achebe)는 식민 종주국의 언어를 사용하되, 아프리카식으로 변용함으로써 탈식민주의 시대의 저항을 실천한 바 있다. 

김주영은 이러한 전유를 조형 예술의 미학적 차원에서 실천한다. 김주영에게서 그것은 담는 용기로서의 골판지 박스를 해체하되, 재활용 골판지의 질료 자체가 지닌 ‘재생’이라는 본성을 차원이 다른 방식으로 제시하는 미디엄이 된다. 소비사회가 낳은 골판지라는 산업 재료를 사용하되, 의인화된 캐릭터로 변용함으로써 전유의 미학을 실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즉 그것은 버려진 산업적 잉여물이 품은 재생의 가능성으로부터 예술적 변용이 품은 공생이라는 화두로 이동한다. 즉 현실 속 버려진 질료를 선택하여 그 질료의 원래 의미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예술 변용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다. 

그녀가 탐구하는 공생(共生, symbiosis)이란 “종류가 다른 생물이 같은 곳에서 살며 서로에게 이익을 주며 함께 사는 일”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부합하게 표면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상정한다. 애초부터 자연은 인간에게 넓은 품으로 공생을 이미 실천하고 있었지만, 인간의 욕망이 말미암은 파국이 자연을 종속 대상이자 피해자로 몰아세웠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간이 대재난의 시대를 맞아 뒤늦게 제안하는 공생이란 다분히 인간에게만 이익이 되는 편리공생(片利共生)이거나 자연의 입장에서는 늘 손해를 보는 편해공생(片害共生)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차원에서 자연과 인간에게 서로 이익이 되는 상리공생(相利共生)은 어쩌면 요원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주영은 상리공생뿐만 아니라 공평과 공정이 편재하는 공생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한쪽이 이익이 되든, 손해를 보든, 자본이 있거나 없든, 개별 인간 주체들이 불공평한 상태일지라도 서로 이익을 나누면서 공존하는 ‘모두의 공생’을 제안한다. ‘모두의 공생’은 에쉬크로프트나 아체베 식으로 식민종주국 혹은 지배 계급에 대한 언어 저항으로서의 ‘전유’를 접고 ‘신은 곧 자연’이라는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의 범자연주의 철학을 계승하는 생태적 포용으로서의 ‘전유’를 실천한다. ‘생태적 포용으로서의 전유’? ‘생태적 전유’란 스피노자에게서 무한한 실체인 ‘능산적 자연(산출하는 자연)’ 안에서 존재하는 각각의 사물 양태인 ‘소산적 자연(산출된 자연)’이 관계하는 세계관을 반영한다. 한편, 그것은 하이데거(M. Heidegger)가 언급한 ‘세계-내-존재(In der Welt-sein)'로서의 인간 존재의 관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김주영이 탐구하는 공생이라는 주제는 자연의 거시계와 미시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 수렴되고 재활용 골판지라는 재료의 예술적 활용 속에서 생태적 전유를 실행한다. 




김주영_사유와 성찰_2022_골판지_혼합재료_40x40x53cm



II. 공생체 : 의인화된 캐릭터의 명명과 호명 

김주영은 ‘공생’에 관한 철학적, 생태적 의미의 스토리텔링을 위해 재활용 골판지로 된 박스를 자르고 찢어 붙이는 방식으로 여러 형상을 만든다. 종이 박스에 사용되는 골판지는 대개 신문 용지, 인쇄용지, 포장지, 잡지, 종이 팩 등을 재활용해서 만든 것이고, 김주영은 이러한 종이 박스를 직접 해체해서 추출한 골판지 조각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재생 예술(recycling art)’이라는 존재론적 위상에 직면한다. 습도에 약하고 영구성이 의문시되는 종이이지만, 칼이나 가위 또한 손에 의한 재단이 용이하고 비교적 내구성이 강하다는 차원에서 박스 골판지를 재활용한 김주영의 작업은 회화, 설치뿐 아니라 조각의 유형으로 실내에 설치된다. 

쓰임의 목적을 다하고 버려진 종이 박스로부터 예술 재료로 구출해 낸 골판지는 김주영의 작품에서 ‘쓸모없음’으로부터 ‘쓸모 있음’의 세계로 전환한다. 그것은 ‘현실적 유용함’이 아닌 ‘예술적 유용함’에 국한된 것이지만, 일련의 종이 박스의 찢어진 골판지, 자투리 종이는 누르스름한 그 자체의 색과 재질감을 적극적으로 작품의 표면 위로 드러낸다. 김주영은 종이 박스 위에 이미 인쇄된 다양한 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때로는 건식의 방식으로 때로는 습식의 방식으로 골판지의 재질을 변형해 가면서 형상을 만든다. 

김주영이 골판지로 만드는 것은 인간으로 대별되는 다양한 캐릭터와 더불어 자연으로 대별되는 여러 동식물 형상과 더불어 이야기가 있는 풍경이다. 나무 펄프에서 태어난 여러 유형의 종이들이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후 다시 골판지 박스로 재생되고 그것이 다시 버려지는 과정에 개입해서 예술적 재료로 되살려낸 김주영의 재생 예술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과 자연의 본성을 드러내기에 족하다. 이처럼 그녀가 골판지로 만든 인간과 동식물의 형상과 그것들이 만드는 연극적 상황 안에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자연이,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가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생태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김주영이 공생의 스토리텔링을 위해 만든 이야기 풍경에는 간혹 인간이 등장하지만 대개 동식물을 ‘의인화된 캐릭터’로 등장시킨 것들이다. “사물, 동식물, 추상적 개념과 같은 인격이 없는 대상에 인격을 부여하여 표현하는 수사법”인 의인화는 대상에 대한 인격화를 통해 대상의 유사성을 보편화하는 전략이자 대상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문학적 전략이 된다. 그러한 까닭에 김주영의 의인화된 캐릭터는 그녀의 작업을 우화적이고 동화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  

그녀는 이러한 캐릭터에 ‘물고기, 여우, 고가치, 물여우’와 같은 특유의 명명(命名)을 시도한다. 네이밍 혹은 ‘이름 짓기’인 명명이란 언제나 그 대상을 지금, 여기에 ‘이름 부르기’로 소환하는 누군가의 호명(呼名)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명명과 호명은 한 쌍이다. 생각해 보자. 철수, 영희와 같은 이름도 그러하지만, 누구의 아내, 엄마, 동생, 선생, 제자, 선배와 같은 명명이란 언제나 주체와 타자의 관계 지형 속에서 호명으로 명명된 존재를 확인한다. 즉 인간의 명명은 언제나 호명을 위해 존재하고, 명명의 의미론은 언제나 ‘사회적 인간’의 존재 의식을 전제하는 담론이 된다. 

그녀가 ‘물고기’로 명명한 작품은 현실이라는 ‘물 밖의 세상’을 모른 채 부모의 도움 속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정신적 성장기의 자화상이고, ‘여우’로 명명한 작품은 그녀가 본받고자 했던 지혜로운 주체상으로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작품 속 물고기는 그 자체로 불안하지만, 공구, 사물, 인간과 결합하면서 이상적 주체인 여우가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시도하는 ‘성장을 꿈꾸는 존재’로 표현된다. 

그런데 그녀가 특이하게 명명한 작품 ‘고가치’나 ‘물여우’는 도대체 무엇인가? 

‘고가치’는 높은 이상(高)과 실행(Go)의 의미를 담은 ‘고’라는 단어와 동행(같이)과 값어치(가치)의 의미를 담은 ‘가치’라는 단어가 합성된 작명으로 어린 시절의 물고기, 미래의 이상적 모델을 상징하는 여우, 자신의 예술 세계를 고민하는 신진 작가로서의 식물이 혼성된 형상이다. 따라서 다른 종들이 하나를 이룬 공생체이자 그녀의 경험적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대가 한데 맞물린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고가치 캐릭터는 머리의 앞면과 뒷면에 모두 눈들이 달려 있는 괴물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작가의 자소상으로 자리한다. 

한편, ‘물여우’로 명명된 작품은 물고기와 여우가 혼성된 캐릭터로 피부와 옷, 모자는 물고기 흔적이 남아있지만, 손과 발, 꼬리와 머리에 달린 귀에 여우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혼성체이자 공생체이다. 특히 물고기와 여우가 뒤섞인 모자 형태는 작가 김주영이 스스로 돌아보는 자소상임과 동시에 위장된 가면으로서의 페르소나로 기능한다. 따라서 ‘물여우’는 자신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자화상이자, 고도의 사회성을 성취한 이상적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고가치나 물여우는 작가의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 의인화된 공생체라고 할 만하다. 




김주영_블루아워-십장생도_2022_oil & acrylic on paper_240x145cm



김주영_블루아워-십장생도_2022_oil & acrylic on paper_240x145cm



III. 공생의 스토리텔링 : 연극성의 이미지텔링과 사회생태학

작가 김주영은 의인화를 꾀한 일련의 캐릭터를 통해서 공생이라는 주제 아래 동화 혹은 우화적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특히 동화적 스토리텔링은 이미지에 텍스트적 진술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까닭에 조각이 중심이 된 시각 예술의 장에서 캐릭터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녀의 작업에 있어 매우 유효하다. 

그녀의 작업에 있어서 이러한 동화적 스토리텔링은 이미지가 전면에 나서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 비주얼 스토리텔링(visual storytelling) 혹은 이미지텔링(image-telling)이라고 할 만하다. 그녀의 작업이 대개 비언어적 메시지를 담은 회화, 조각 혹은 설치적 조각의 조형 언어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텔링은 조형적 도상과 같은 이미지(image)와 심상(心像)으로 번역되는 이미저리(imagery)를 두루 아우르며 이야기를 선보이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이미지텔링은 이미지와 이미저리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련의 캐릭터 군상을, 골판지를 재료로 삼아 조각의 언어로 선보인 작품 〈그만한 가치〉(2021)는 풀, 꽃과 같은 식물 조각은 물론이고 쇠똥구리와 같은 곤충 조각이나 그녀만의 여우 연작 또는 고가치 연작이 한데 모여 설치적 조각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물고기, 여우, 식물이 혼성되어 하나를 이룬 공생체이자 과거, 현재, 미래가 맞물린 작가의 자소상과 함께하는 군집체 조각의 형식을 통해 공생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전한다. 

또 다른 작품 〈공정하다는 착각〉(2022)은 리어커를 끌고 있는 ‘도끼 든 캐릭터’와 리어커를 타고 있는 ‘삼지창을 든 캐릭터’를 선보인다. 인간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피상적으로 공정함을 균등하게 배분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작품 속 인간 공동체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공생을 도모하는 어떠한 공동체 안에서도 있는 자와 없는 자 혹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변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 집단의 권력자는 공익을 조장하고 집단의 구성원은 공익을 위해 희생하는 현실적 상황의 묘사 그리고 그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녹아있는 이 작품을 통해서 김주영은 공생에 관한 이미지텔링을 시도한다, 즉 공생의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문제 제기하는 것이다.

공생의 스토리텔링을 소개하면서도 설치 조각 혹은 군상 조각 형식을 띤 김주영의 이미지텔링은 연극성(theatricality) 담론을 강력하게 환기하게 만든다. 여기서 연극성은 비평가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가 미니멀 아트의 거대한 규모, 하나의 모듈이 여러 개로 확장하는 설치 유형에 대해서 ‘연극성’이라고 비판한 내용과는 다른 지점에서 거론되는 것이다. 달리 말해 김주영 작업에 나타난 연극성은 미술에서의 부정적인 비판이기보다 미술의 형식을 확장하는 상황 조각과 같은 긍정적 메시지를 전한다. 그녀의 조각이 군상 조각 형식의 설치적 조각을 통해 사회적 맥락을 연상케 하는 공생적 삶의 내러티브를 전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연극적 설치는 그녀의 작업이 탐구하는 공생이라는 주제 의식을 생태학(Ecology, Ecologie), 더 나아가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의 관점으로 해설하기에 적합하게 만든다. 그것이 무엇인가? 생태학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지키려는 ‘자연환경 중심주의’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생태학은 ‘자연뿐 아니라 문화의 상호 침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연과 더불어 인간, 인간의 거주지와 같은 문화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것들이 관계하는 다양한 시스템들과 무한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용어의 어원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생태학은 출발부터 이러한 문화의 영역을 함유한다. 생태학은 ‘집, 서식시, 생활 환경’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ïkos)'와 ‘학문, 담론’을 의미하는 로고스(logos)의 합성어로, “살아있는 존재와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즉 생태학은 “인간과 생물물리학적, 사회학적 환경과의 관계”를 처음부터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의 생태미학은 생태적 자연뿐 아니라 사회학적 테마를 연구하는 미학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여기서 김주영의 작업을 풀이하는 사회생태학의 관점은 매우 유효하다. 주지하듯이, 생태학자 캐롤린 머천트(Carolyn Merchant)는 자신의 '근본생태학(Radical ecology)'을 심층생태학(Deep ecology), 정신생태학(Spiritual ecology),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의 세 범주가 함께 연계되는 통섭(consilience)의 생태학으로 살피고 있다. 그녀는 생태학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의 생태학을 '사회생태학' 위에 방점을 찍고 있기는 하나, 세 범주의 생태학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그 생태운동의 지속가능성이 실천되는 것으로 살피고 있다. 

여기서 사회생태학이란 무엇인가? 심층생태학, 정신생태학이 ‘인간의 이성 중심주의’, ‘인간 중심의 환경결정론(anthropocentric environmentalism)’를 거부하면서 생물권 평등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라 할 때, 사회생태학은 그것의 반대 관점에 서는 것이다. 즉 생태학에서 폐기되었던 ‘인간 중심적 접근(homocentric approach)’과 ‘인간 이성’을 다시 회복시키고, 생태의 위기 자체를 ‘자연 생태의 위기’로부터 ‘인간 사회 생태의 위기’로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생태학의 연구 대상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사회생태학은 사회 속의 위계적 질서와 계급적 불균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학문화하는 것이다. 사회생태학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생태적 불균형도 바로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회생태학은 자연 생태뿐 아니라 ‘환경과 사회를 삶의 살아있는 맥락’으로 주요하게 간주하면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탐구한다. 

김주영이 만든 ‘물고기, 여우, 고가치, 물여우’라는 의인화된 캐릭터를 보라. 작가의 자화상, 자소상이자, 다른 개체들이 혼성된 공생체의 모습을 띠고 있는 캐릭터는 이러한 사회생태학의 기본 탐구 대상이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작품 〈그만한 가치〉(2021)나 〈공정하다는 착각〉(2022)과 같은 군상 조각은 오늘날 이러한 현실 속 개별 주체의 존재론과 사회생태학적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평등과 공정의 삶이란 곧 사회생태학이 전 지구상에서 견지하고 있는 생태적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김주영_공정하다는 착각_2022_골판지_오브제_혼합재료_가변설치




김주영_그만한 가치_2021_골판지 외 혼합재료_가변설치



IV. 에필로그 

작가 김주영은 종이 박스를 해체하여 남은 골판지를 작업의 재료로 삼고 재생이라는 전유의 미학을 담아 공생의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나아가 자신의 체험적 삶에서 기인한 ‘물고기, 여우, 고가치, 물여우’와 같은 의인화된 캐릭터를 통해서 공생체의 이미지를 만들고 동화적, 우화적 스토리텔링을 덧씌워 공생의 주제 의식을 탐구한다. 그것은 이미지와 이미저리를 통해서 관객에게 전하는 이미지텔링이다. 그녀는 상황 조각, 또는 연극성의 군상 조각을 통해서 개별 캐릭터가 전하는 메시지를 사회생태학의 관점에서 탐구하면서 공생의 스토리텔링은 선보인다. 그녀가 탐구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이르는 사회생태학적 과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것이 어떠한 모습으로 이어질지 자못 기대가 크다. (20231025)●




출전 /

김성호, 「의인화 조각이 탐구하는 공생의 스토리텔링」, 『김주영-The blue hour』, 카탈로그 서문, 2023. (김주영-The blue hour展, 정수아트센터, 2022. 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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