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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황혜성 / 즉발성과 무위의 심상 추상

김성호

즉발성과 무위의 심상 추상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황혜성은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현재까지 지속해온 추상화 작업을 이번 전시에서 대거 선보인다. 그녀의 추상은 크게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추상 이미지’와  ‘주관적 감성의 추상 이미지’로 대별되지만, 그 추상의 조형 언어는 ‘춤추는 붓’이라는 은유에 어울리게 일관되게 추상표현주의 계열의 이미지에 속한 것이다. 황혜성의 추상 회화가 품은 주제와 미학은 무엇인가? 또한 그녀의 추상 형식은 어떻게 변모해 왔고 앞으로 어떻게 변모해 갈 것인가? 이 글을 통해 황혜성의 전반적인 추상 회화의 세계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살펴보자. 




황혜성_관객이 없는 나의 무대는-92_2925mm×1303mm_Acrylic_on_canvas_1992



황혜성_심연_1622mm×1303mm_Acrylic_on_canvas_2018



II. 비정형의 뜨거운 추상 

황혜성의 추상 회화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유럽의 앵포르멜 사이를 오가는 ‘뜨거운 추상’으로 펼쳐져 왔다. 즉 그녀의 작업은 20세기 미술사에서 인상주의로부터 입체주의, 신조형주의로 이어지는 구조적 추상,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차가운 추상’의 계보를 잇기보다는 인상주의로부터 야수주의, 표현주의, 다다,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를 잇는 흐름 속에서 견인하는 ‘뜨거운 추상’이었다. 

구체적으로 황혜성의 추상은 비정형(非定形), 무정형(無定形)이라는 기치 아래 모든 정형을 부정하고 공간 탐색이나 마티에르 탐구에 천착함으로써 새로운 조형 미학을 창출하려 했던 1950년대 유럽의 앵포르멜 회화와 더불어 낙서와 같은 자유로운 드로잉과 물감의 드리핑을 통해 물성 탐구에 천착했던 1940-50년대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평가해 볼 수 있겠다. 간략히 언급하면, 그녀의 작업은 앵포르멜의 비정형과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로운 표현이 맞물린 ‘비정형의 뜨거운 추상’이라고 할 만하다.

유념할 것은, 황혜성의 추상이 이러한 20세기 미술사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면서도 개인적 체험의 소산에서 비롯된 독자적인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녀의 작가 노트를 보자: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처음 시작은 자연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그들의 숨결과 소리 움직임까지도. 그리고 두 번째로 다가온 (것은) 인간의 사랑과 삶의 이야기, 그 설렘과 떨림, 무심함, 감동, 분노, 만남, 이별, 기쁨, 아픔... 내게 남다른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물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는 감성이 아닐까?” 

작가 노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황혜성의 초기 추상은 ‘자연의 이야기’로부터 기인한 무엇이었다. 황혜성의 첫 추상 회화, 〈관객이 없는 나의 무대는〉(1992)는 마치 숲속 풍경처럼 초록의 분위기를 물씬 품은 것으로 화면 우측에 붉은색 덩어리가 마치 꽃 무더기처럼 자리한 채 한색과 난색이 보색으로 맞부딪히는 이른바 추상 풍경이었다. 즉흥적이고도 활달한 붓질과 더불어 흘리기와 번지기의 효과가 두루 병치된 이 작품은 제목처럼 타자를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세계에 깊이 천착하고자 했던 작가의 당시 창작 의지를 우리에게 엿보게 한다. 가히 ‘관객에게 나를 보이기 위한 전시’보다 ‘작가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돌아보기 위한 창작’이 전제가 되었던 작품이라고 하겠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일련의 자연과 사물로부터 견인한 그녀의 추상 작업이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기하학적 선묘나 프랙탈 이미지와 같은 기하학적 추상을 따르기보다 자연에 내재하는 생성소멸의 순환 질서 혹은 기(氣)와 같은 일련의 유기적인 생성 에너지의 면모를 발견하는데 집중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형이기보다 비정형이며, 차갑기보다 뜨겁다. 그야말로 ‘비정형의 뜨거운 추상’인 것이다. 

이후, 그녀가 천착했던 추상 역시 다르지 않다. ‘자연이라는 외적 대상의 표현 추상’뿐만 아니라 인간 삶 속에서 맞닥뜨렸던 미시적 사건들과 그것으로 인한 ‘희로애락의 내적 감성의 표현 추상’ 역시, ‘비정형의 뜨거운 추상’이었기 때문이다. 








III. 추상 충동의 시각화 – 즉발성의 정념 회화 

황혜성의 ‘비정형의 뜨거운 추상’은 한 마디로 ‘자유로운 추상 충동이 즉흥적인 붓질 위에 몸을 의탁하는 즉발적(卽發的) 추상’이라고 할 만하다. 추상 충동과 즉발적 추상? 그것이 무엇인가? 

이 글이 언급한 ‘추상 충동’이란 미술사학자 보링거(W. Worringer)의 『추상과 감정 이입『Absraktion und Einfuhlung』(1908) 이론에 기댄 것이다. 보링거는 립스(T. Lipps)의 ‘감정 이입(Einfühlung)’과 리글(A. Riegl)의 ‘예술 의욕(kunstwollen)’ 개념을 차용해서 ‘인간과 인간 밖’의 친화 관계에 기인한 ‘감정 이입’과 ‘인간 외부에서 유발하는 인간 내면’의 ‘추상 충동’을 분별하여 설명한다. 

자세히 살펴보자. 립스의 감정 이입 개념은 미적 대상과 자연스럽게 동일화된 상태의 감정의 융합을 이루는 심리 상태인 ‘긍정적인 감정 이입(Die positive Einfühlung)’만을 우위에 두고 그렇지 못한 상태를 ‘부정적 감정 이입(Die negative Einfühlung)’이라고 폄훼했던 것과 달리, 리글의 예술 의욕 개념은 모든 미적 대상에는 그것만의 고유한 심리적 상태가 작동함을 강조하면서 부정적 감정 이입조차 예술 의욕에 의해서 작동한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립스와 리글의 개념을 모두 수용하면서 보링거는 인간 내면에서 작동하는 추상 충동을 제시한다. 물론 그것은 인간 외부의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보링거의 이론에 따르면, 외적 관계로부터 내적 세계에 유발된 추상은 의지의 충동이며 생동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로 재정립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작가 황혜성이 ‘자연이라는 외적 대상에 감정 이입한 채 내면에서 발원한 추상’이나 ‘인간 삶의 맥락으로부터 유발된 희로애락의 내적 감정이 발원한 추상’ 모두 작가가 외적 세계와 대면하고 내적에서 발원시킨 ‘추상 충동’에 기인하고 그것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이 글은 추상 충동이 견인하는 그녀의 추상 회화를 즉발적 추상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필자의 작명 ‘즉발적 추상’이란 ‘즉발성의 방법론으로 도달한 추상화의 형식적 결과’를 가리킨다. ‘즉발성’이란 “그 자리에서 폭발적으로 출발하는 성질”을 의미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감흥”이라는 의미의 ‘즉흥성’의 개념을 극대치로 끌어올린다. 

황혜성에게 있어서, 이러한 즉발성은 회화를 대면하는 주요한 창작 방식과 태도가 된다. 그녀의 작업에서, 즉발성은 마치 서법에서 이야기하는 일필휘지(一筆揮之)와 같은 빠른 속도감과 역동성을 내포하는 창작 방식과 태도를 지향한다. 구체적으로 그녀는 팔레트 없이 캔버스 화면 위에 직접 아크릴 물감을 올린 후 마른 붓으로 일필휘지와 같은 방식으로 물감을 끌고 가면서 신속하게 선 긋기 혹은 드로잉을 마무리한다. 흥취가 가득한 힘 있는 글씨를 단숨에 써 내려가거나 드로잉을 실행할 때, 주저함이나 염려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회화가 견지하는 즉발성은 회화 창작에 있어서 마치 중국의 사혁(謝赫)이 설파한 화론인 육법(六法) 중 기운생동(氣韻生動)과 같은 생생하고도 역동적인 효과를 거두기에 족하다. 쉽게 말해 기(氣) 혹은 파토스(pathos)와 디오니소스(Dionysus)적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회화를 창출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작업은 가히 ‘추상 충동이 만드는 즉발성의 뜨거운 정념 회화’라 부름 직하다. 







IV. 변주하는 선의 추상 – 획의 풍경 

황혜성의 작품에서, 에너지와 정념이 충만한 즉발적 추상을 여는 지점은 선(線)이다. 작가의 진술을 보자: “나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세상의 움직임은 선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그 파동들로 인해 다시금 감동을 느낄 수 있으리라. 굵고 가늘고 강하고 약하고 직선과 곡선의 조합은 빛에 의해 탄생되는 색상을 머금고 다시 태어난다.”

그렇다. 움직이는 세계는 굵고 강하거나 가늘고 약한 선 그리고 직선과 곡선의 만남이 반복되면서 펼쳐진다. 황혜성의 회화에서 선은 일률적인 굵기를 지닌 것으로 전개되기보다 이처럼 다른 속성의 것들이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과정형의 무엇이다. 즉 그녀가 구사하는 선은 물리적으로 1차원의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기보다 아크릴 물감이 수분을 흠뻑 먹거나 털어낸 상태로 0차원의 점과 2차원의 면 그리고 물감의 마티에르로 몸집을 키워 요철의 굴곡을 만든 3차원의 입체적 상태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존재로 드러난다. 

황혜성의 회화에 있어서 선은, 작품 〈아담/이브〉(2016)에서처럼, 하나의 중심에 똬리를 틀고 응축하는 점의 모습으로 수렴되거나 그 중심으로부터 뛰쳐나와 한 색의 몸을 또 다른 색의 몸과 뒤섞으며 질주하다가 한 곳에 물감층을 덜어내거나 쌓아 올리면서 멈추기를 거듭하는 운동성의 존재로 자리한다. 점, 선, 면, 부조적 입체를 오가는 그녀의 ‘선의 추상’은 이러한 차원에서 ‘변주하는 선의 추상’이라고 할 만하다. 마치 그것은 한국화에서 담묵이나 농묵으로 된 몰골(沒骨)의 선과 같은 것으로 드러난다. 작품 〈봄의 노래〉(2015)나 〈못다 핀 꽃들을 위하여〉(2014)에서처럼, 그녀의 선은 수분을 먹어 옅어진 물감층이 캔버스 천의 배면으로 스며들거나 짙은 물감 덩어리를 뭉쳐 안고 캔버스의 피부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변주하는 운동성’의 존재로 드러난다. 

흥미로운 것은 황혜성의 ‘운동하는 선’ 그리고 ‘변주하는 선’의 추상은 한국화 전통의 획(劃)의 개념과 공유한다는 것이다. ‘획’은 공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절(切, 나누다)의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어원에서 보듯이 서(書, 쓰다)와 화(畵, 그리다) 사이를 오가는 운동성의 존재로 부상한다. 그것은 서와 화를 오갈 뿐만 아니라 점, 선, 면, 입체를 통섭한다. 그녀의 작품을 보자. 구체적으로 엷은 난색을 바탕으로 검정, 노랑, 하양이 몸을 뒤섞는 선이 획의 운동을 펼치는 작품 〈황금시대〉(2017), 〈리듬〉(2018) 그리고 엷은 한색을 바탕으로 보색의 선들이 활달한 운동을 펼치는 작품 〈멜로디〉(2017)를 보라! 이 작품에서 자유분방한 ‘획’과 같은 성격의 ‘선’은 초서와 같은 ‘서’와 표현주의와 같은 ‘화’의 영역을 오가는 운동을 반복한다. 또는 밤하늘을 표현한 것처럼 짙푸른 감청색의 넓은 선이 율동하는 배경 위에 별 무리를 표현한 것처럼 밝은 점들이 흩뿌려진 작품 〈혼〉(2018)에서처럼 ‘운동하는 선’ 혹은 ‘변주하는 선’은 면과 입체로 확장하거나 점으로 응축하기도 한다. 

이러한 선의 변주에는 우연성이 개입한다. 작가의 계획과는 다른 우연성이 들어와 완성하는 ‘선의 변주’는 그녀의 추상을 모종의 생명체처럼 꿈틀거리게 한다. 정운(情韻)과 신기(神氣)를 가득 안은 추상은 획의 운동으로 가능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그녀의 추상을 ‘변주하는 선의 추상이 만든 획의 풍경’이라고 할 것이다. 





V. 무위의 심상 추상

최근 황혜성은 획의 풍경이 밀쳐낸 여백을 주목한다. 이 여백은 이전 연작에서 선이 변주하면서 획의 군집 형태로 남겼던 비교적 평평한 색면이 아예 배경으로 전환한 것이자,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무위(無爲)의 존재로 남겨진 것이기도 하다. 

최근작은 창작의 과정 중에 우연히 찾아왔다. 선이 획으로 다시 면으로 운동하던 기존의 작업 방향에서 벗어나 물감이라는 질료 자체를 뒤섞는 마블링 효과에 주목하면서 우연히 발현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작위의 마음을 비움으로써 작가만의 개성이 담긴 추상이 발현된 셈이다. 

그것은 추상이되 자연 풍경을 닮았다. 마치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거나 갯벌 풍경 혹은 심산유곡의 어떤 정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위가 없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풍경이라고 할까? 전혀 손대지 않은, 원래 그러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풍광처럼 떠오른 그녀의 추상 풍경을 무엇으로 명명할 수 있을까? 필자는 물감 질료의 섞임이란 순간을 열어두었지만, 여백을 남겨둔 채 섞임의 순간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은 채 질료 간의 침투를 지켜보면서 작품을 완성해 간 그녀의 최근작을 ‘무위의 심상 추상’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향후 그녀의 작품이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는 필자로서는 알 수 없다. 구체적인 변화의 양상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간의 행보로 보아, 앞으로도 그녀만의 독특한 주관적 개성과 정신적 기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열린 추상 작업을 지속할 것으로 예견한다. 다음의 작가 노트는 우리의 기대를 대신하기에 족해 보인다. 


“특별히 정해진 형태도 아니고 잘 다듬어진 기법도 아니지만, 순수한 감성 표현으로 나를 둘러싸고 이야기하는 그들의 사연을 기록해 나갈 것이다. 이 결과물은 문자, 음악과 같은 나의 소통의 도구이며 살아 숨쉬기에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비좁은 공간에서 작은 몸짓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출전 /

김성호, 「즉발성과 무위의 심상 추상」, 『황혜성-노스텔지어』, 카탈로그 서문, 2023. 

(황혜성-노스텔지어展, 2023. 5. 16~6. 11, 구미새마을운동테마공원 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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