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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유진구 / 투영과 반영의 합주로 빚은 멀티플 웨이브

김성호




투영과 반영의 합주로 빚은 멀티플 웨이브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유진구는 여러 조형 실험을 거쳐 1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자개를 통한 평면과 입체의 조형 실험을 거듭해 오고 있다. 물속을 유영하는 금붕어나 잉어의 율동미 가득한 형상을 탐구하던 〈침향무(沈香舞)〉 연작, 도담삼봉을 비롯해 오륙도 등 강물이나 바다 위의 섬의 풍경을 담아온 〈Land of Silence〉 연작, 회전하는 문양을 품은 하늘을 추상화한 〈순환의 공간〉 연작, 원형 패널 위에 빛의 파장을 탐구한 〈빛으로부터〉 연작, 마치 보석과 같은 형상의 다면체 추상 조각을 탐구한 〈합(合)〉 연작 그리고 강물이나 바닷물의 표면에 천착한 최근의 〈Wave〉 연작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해 온 조형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미세한 자개 모듈을 다양한 방식으로 정교하게 화면에 붙여 온 유진구의 조형 실험이 이룬 성과는 무엇인가? 또한 그가 이전 작업부터 지금까지 천착해 오고 있는 여러 연작이 함유한 공통된 조형 미학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글은 그의 최근작을 중심으로 여러 연작에 나타난 다양한 작품 세계를 면밀하게 살펴본다.  







II. 전통의 현대화 - 자개의 회화적, 조각적 변용 
유진구의 작업에 있어서 자개는 다른 작가의 작업과 차별화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료가 된다. 오늘날 다원주의 미술의 시대에 이르러, 매체를 통해 조형 작업이 지닌 본질적 미학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자개는 그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주요한 매체이자 그의 작업이 품은 미학을 가늠하는 잣대이다. 즉 전통적 공예의 주요 재료 중 하나인 자개를 회화와 조각에 도입한 그의 실험은, 자개라는 매체를 공예의 뿌리로부터 출발시켰음에도 종국에 공예의 장식적 속성을 탈주하고 순수미술의 실험적 질료로 변용하게 만든다. 가히 ‘자개의 회화적 변용’ 혹은 ‘자개의 조각적 변용’이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회화적, 조각적 변용을 선보인 첫 실험은 〈침향무〉 연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연작에 사용된 작품명은 1968년 가야금의 대가 황병기(黃秉冀)가 작곡한 가야금 합주곡 이름을 빌려온 것이다. 이 창작곡은 아시아의 정서, 특히 인도의 불교 정신을 계승하면서 외래문화와 전통, 감각과 관능미를 법열 세계로 승화한 신라의 불교미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 곡은 인도 전통의 향(香)인 ‘침향 속에서 신라인이 추는 춤’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조선시대의 전통과 확연히 다르게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의 음계와 선율을 바탕으로 삼아 창작된 새로운 조현(調絃)의 세계를 선보인다. 
모두 3장으로 구성된 침향무는 빠르기와 장단이 자주 바뀐다. 이 곡의 “끝부분에는 낮은 현을 문질러서 내는 트레몰로(tremolo)가 연주되는데 이 소리가 점점 커져서 마지막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서서히 사라져 간다. 트레몰로가 멀리 사라지고 지난날을 회상하듯 아르페지오가 조용히 세 번을 울리면서 마무리된다.” 침향무에는 조선조 전통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많은 기술적 방식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양손으로 줄을 뜯기, 다섯 번째 손가락부터 시작하여 줄을 퉁기기, 두 개의 줄을 동시에 연주하기, 줄을 비벼서 소리내기 등의 새로운 복합적 연주 기술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 곡은 가야금의 원류적 전통을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고 전통적 연주 기법을 새로운 차원으로 현대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유진구는, 황병기가 실천했던 ‘침향무’의 정신을, 자신의 자개 작업 속에서 발현시키고자 부단한 실험을 거듭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러한 ‘전통의 현대화’라는 화두가 심층에 똬리를 틀고 모든 작업의 면면에 드러나도록 만든다. 그것이 무엇인가? 
첫째, 그의 작업에 드러난 전통의 현대화는 공예 전통의 재료인 자개를 현대의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전이하는 실험과 관계한다. 즉 자개 재료가 지닌 공예적 실용성과 장식성을 탈각하고 재료 자체가 지닌 질료적 속성으로 깊이 침투해서 그것이 발현하는 회화적, 조각적 변용과 미학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회화적, 조각적 변용이라니? 그것은 “공예품 제작용이나 장신구용 재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가공한 조개껍데기” 혹은 “금조개 껍데기를 썰어 낸 조각. 빛깔이 아름다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잘게 썰어 가구를 장식하는 데 쓴다”고 규정한 ‘자개’에 관한 사전적 정의를 처음부터 벗어나는 일과 관계한다. 그러니까 회화적, 조각적 변용이란 ‘자개’의 존재를 ‘왕족이나 양반이 거처하는 공간에 놓일 여타 가구에 장식하는 재료’라는 전통적인 정의에서 벗어나게 하고 오늘날 회화나 조각과 같은 순수미술의 영역에서 비실용과 비장식을 지향하는 것과 관계한다. .
둘째, 가구의 표면 위에 부분마다 자개를 올리는 전통적 공예의 조형 방식을 벗고 패널 위에 그림을 그린 후 그 위에 전면 회화처럼 멀티플 아트(multiple art)를 실천하는 그만의 조형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자개를 통해 회화의 표면을 신비롭게 덧입히는 일련의 유리 효과를 창출하도록 만들거나, 자개의 군집 자체가 또 다른 회화나 조각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침향무〉 연작에서 그는 물고기가 유영하는 풍경을 아크릴 물감으로 세밀하게 그린 회화 위에 원패를 얇게 저민 자개 박판 즉 반투명한 ‘판자개’들을 무수히 군집하는 멀티플의 형식으로 올려붙여 군집된 자개의 표면이 마치 ‘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면’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셋째, 반투명한 판자개의 군집 자체를 패널 위에 또 다른 회화의 양상으로 부착하는 다양한 조형 방식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수평 혹은 수직과 같은 일률적 패턴의 방식, 동심원 모양으로 패턴 이미지를 확장하는 방식, 지그재그로 기하학적 추상 패턴을 만드는 방식 등 패널 위에 판자개 군집체를 붙이는 다양한 조형 언어에 따라 그가 만든 반투명한 판자개 군집체는 단순한 유리 효과를 넘어서 또 다른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또한 그는 구상 회화 옆에 추상적 도상을 그리고 그 위에 종류가 다른 자개 모듈을 다양한 방식으로 얹어서 최종적으로 패널 위에 구상과 추상이 혼재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판자개가 부착되는 패널의 부조나 환조의 조각적 볼륨으로 만들어 회화적 변용을 조각적 변용으로까지 확장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투영과 반영의 문제의식과 연동하여 순차대로 살펴본다. 




III. 투영과 반영 - 빛을 품은 표면
유진구의 작업에 나타난 ‘자개의 회화적, 조각적 변용’은 비단 〈침향무〉 연작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러한 실험적 양상은 그의 모든 연작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패널의 표면을 요철의 모양으로 깎은 후 푸르거나 붉은색으로 밑바탕 작업을 해서 석양의 노을이 물든 바다나 강물의 흐름을 표현한 〈침향무〉의 후속 연작이나 그것으로부터 한 단계 발전적인 조형을 모색한 최근의 〈Wave〉 연작이 그러하고, 강물이나 바다 위의 돌섬의 풍경을 환상적인 재현의 언어로 표현한 〈Land of Silence〉 연작 또한 그러하다. 유진구의 판자개 모듈들은 제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 그리고 다른 유형으로 패널 위에 올라선다. 그것은 〈순환의 공간〉 연작에서 보듯이 동심원이나 세모, 네모의 구조를 띤 채, 때로는 기하학적 추상으로 때로는 초현실적 구상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원형 패널 위에 단계적 빛의 파장을 탐구한 〈빛으로부터〉 연작 또한 이러한 기하학적 추상과 더불어 마치 눈동자의 형상처럼 아이콘 형식으로 된 구상이 맞물리기도 한다. 
세공된 보석의 형상,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물질의 결정체처럼 날카로운 절단면을 지닌 부조적 패널이나 환조의 조각으로 된 〈합(合)〉 연작은 또한 어떠한가? 이 작품은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작품의 표면이 달리 보이게 함으로써 합성수지 위에 붙인 판자개 모듈의 반영 효과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또한 물결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 패널 위에 영롱한 채색을 한 후 반투명의 판자개를 덧붙인 〈Wave〉 연작은 여타의 풍경을 제외하고 강물이나 바닷물 표면에 일렁이는 윤슬과 같은 효과에 주목함으로써 반투명 판자개 모듈이 함유한 투영과 반영의 효과를 잘 드러낸다. 특히 〈Wave〉 연작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인 윤슬이 실제 그의 작품 위에 구현된 것과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윤진구의 작업에서 강조되고 있는 판자개 모듈의 위와 같은 투영과 반영의 효과는 무엇 때문에 가능한가? 
첫째, 전통 공예의 자개장에 사용된 자개처럼 굵은 두께의 본패(本貝)를 사용하기보다 얇은 두께로 가공한 판자개를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표면이 반투명의 속성을 지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속성을 강화하기 위해 패널이나 수지 위에 색을 입히거나 형상을 그리고 그 위에 판자개를 부착함으로써 자개 밑의 이미지가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만들었다. 즉 패각(貝殼)이 구성하는 탄산칼슘의 무색투명한 결정으로 인해 그의 작업은 표면 위로 비추는 빛을 통해 마치 프리즘을 관통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따라서 그의 작업을 은유적으로 말해 ‘투영의 빛을 품은 표면’이라고 부를 만하다. 
둘째, 산지별, 색상별, 형태별로 다른 자개를 연작의 특성에 따라 달리 사용함으로써 판자개가 지닌 반영의 속성을 다양하게 변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복패(abarone shell)는 물론이고, 홍패(winged pearl shell), 수돌패(trocas shell), 소라패(green snail shell), 진주패(mop shell) 등을 작품 특성에 따라 각기 달리 사용함으로써 판자개 표면이 품은 빛의 효과를 다채롭게 만든다. 따라서 각기 다른 패각의 박막(薄膜)이 지니는 영롱한 색들의 효과가 그의 작품을 마치 신인상주의의 점묘화나 옵티컬 아트의 화면처럼 반사되는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그의 작업을 ‘반영의 빛을 품은 표면’으로 달리 불러볼 만하다.  
셋째, 판자개가 부착되는 표면을 요철이 있는 고(高)부조나 삼차원의 조각으로 만들어 빛의 투영과 반영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다면체가 있는 부조나 방위각이 다른 조각의 표면에 투사되는 빛은 각각의 표면을 각기 다른 양태로 가시화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고부조나 삼차원의 조각은 백색의 가시광선을 작품의 표면 위로 불러와 신비하고도 영롱한 다색광으로 다시 산란시키는 빛의 스펙트럼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유진구의 ‘빛을 품은 표면’을 만드는 반영과 투영이란 ‘얇은 두께로 가공한 판자개, 연작의 특성에 따라 달리 사용한 여러 종류의 판자개, 그리고 고부조나 삼차원의 조각처럼 조각적 볼륨과 맞물린 판자개의 특성’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IV. 멀티플 웨이브 – 물활(物活)의 창조적 노동
필자가 보기에, 최근 유진구의 작품이 드러내는 반영과 투영의 효과는 〈Wave〉 연작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물결의 흐름’을 표현할 때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그 물결의 흐름은 얇은 두께의 무수한 판자개가 고부조의 표면 위에서 맞닥뜨리면서 드러내는 ‘멀티플 웨이브’인 셈이다.  
그런데, 웨이브, 즉 물결이란 원래 멀티플의 양상이 아니던가? 그렇다. 우리가 흔히 ‘물결’이라고 통칭하는 영어 웨이브는 ‘결(grain)의 효과가 수면 위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가리킨다. 결은 ‘나무, 돌, 물, 피부, 마음 등 어떤 성품이나 조직의 상태가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잔잔하거나 거친 나뭇결, 물결, 피부결, 마음결처럼 일정하고 균일한 상태나 무늬를 상상하면 되겠다. 
이 ‘결’은 외형적으로는 요철(凹凸)의 상태가 균일하게 반복, 증식하는 멀티플의 존재이자, 물리적으로는 골의 깊이와 마루의 높이가 균일한 상태로 반복하는 멀티플의 존재이다. 우리는 골과 마루가 멀티플의 양상으로 반복, 증식하는 상황에서 ‘파장(波長, wavelength)’에 주목한다. 파장은 한 골과 다음 골을 잇는 길이이자, 한 마루와 다음 마루를 잇는 넓이가 된다. 이 파장이 반복하는 ‘멀티플 웨이브’는 외형적으로 수평적 확장만을 꾀하고 있는 듯이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마루와 골을 만드는 수직적인 확장이 일련의 패턴을 보인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수평적 운동과 수직적 운동이 맞물리는, 즉 파장이 반복, 증식하는 이러한 멀티플 웨이브를 우리는 또 다른 말로 파동(波動, wave)이라고 부른다. 물결, 빛, 소리가 만드는 파동을 영어로 웨이브로 표현하는 것을 상기할 때, 유진구의 작업에서 발견하는 결의 상태, 즉 멀티플 웨이브는 이 파동과 다를 바 없다. ‘파동’은 빛, 소리, 전자가 공기, 진공, 물, 사물과 같은 다양한 매질을 거쳐 전달될 때 진동하는 움직임이자, “어떤 한 곳의 에너지가 흔들림을 통해 다른 곳으로 전달되어 나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골과 마루를 멀티플 양상으로 만들면서 운동을 지속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파장은 파동이라는 움직임을 정지된 형상으로 포착한 것인 까닭에, 움직이지 않는 유진구의 작업은 외형적으로는 파장이지만 그 본질은 운동성을 내포한 파동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Wave〉 연작을 보라. 골과 마루를 물결 모양으로 파서 만든 유진구의 나무 패널은 판자개가 올라서기 이전부터 외형은 파장의 형상이되 그 본질적 미학은 파동의 운동성을 함유한다. 이 파장의 형상 위에 표면을 만들기 위해 올려붙인 무수한 판자개는 그 반투명의 재질로 인해 반영과 투영의 효과를 드러냄으로써 부동성의 파장으로부터 운동성의 파동을 선보인다. 물론 그것은 키네틱아트와 같은 ‘실제적 운동(mouvement réel)’을 드러내지 않지만 마치 옵아트와 같은 ‘잠재적 운동(mouvement virtuel)’을 드러내면서 우리의 망막에 호소한다. 작품은 실제로 움직이지 않지만, 요철의 고부조 효과에 덧붙인 무수한 판자개가 투영과 반영의 색광 현상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함으로써 물결의 움직임을 ‘생동력 있는 존재’로 훌륭하게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순환의 공간〉 연작에 표현된 작은 등대가 있는 풍경을 보자. 윤슬이 가득한 수평의 바다와 청연(晴煙)의 분위기를 한껏 담은 채 회오리치고 있는 동심원의 하늘이 조화를 이룬 이 작품은 관자의 이동에 따라 각기 다른 색상의 화면이 지속해서 영롱한 변주를 거듭한다. 원형의 나무 패널 위에 동심원이 반복되는 〈빛으로부터 연작〉 또한 그러데이션을 드러내는 판자개의 화려한 시각적 마술 효과가 펼쳐진다. 물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침향무〉 후속 연작이나 〈Wave〉 연작은 말할 것도 없고 보석의 결정체 같은 형상의 고부조와 입방체의 환조가 어우러진 〈합〉 연작에서는 관자의 이동에 따라 이러한 잠재적 운동성은 더욱더 극대화된다. 
필자는 빛을 작품에 견인해서 잠재적 운동을 무한 변주하는 유진구의 작업을 “모든 물질에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자연관”인 물활론(物活論, hylozoism)에 기대어 ‘물활의 창조적 노동’으로 부르기로 한다. 
패류(貝類)의 주검을 얇게 잘라 판자개를 만들고 그것을 나무 패널에 무수하게 붙여 나가며 사물에 ‘빛의 영혼’을 불어넣은 그의 작업은 물활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지난한 노동의 수고스러움을 매일 같이 감내해야만 한다. 핀셋으로 얇고 미세한 판자개를 들어 일일이 화면을 채워나가는 방식은 쉬운 일이 아니리라. 창작의 기쁨을 찾기 위해 시작한 노동이건만 그 일에는 힘들고 힘든 노동을 필히 수반한다. 가히 죽은 질료에 생명을 불어넣는 ‘지난한 창조적 노동’이라고 할 만하다.  





V. 에필로그 
유진구는 오랫동안 전통적 공에의 재료인 ‘자개’를 회화적 변용과 조각적 변용을 거치면서 순수미술의 영역에서 전통의 현대화를 탐구해 오고 있다. 얇은 판자개를 나무 패널이나 수지 위에 무수히 붙여 나가는 방식의 고된 창작을 통해서 그는 판자개의 재료 자체가 지닌 투영과 반영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실험을 거듭한다. 그 실험은 대개 파동이라는 움직임을 전제하는 빛의 작용을 광학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가히 ‘투영과 반영의 합주로 빚은 멀티플 웨이브’라고 할 만하다. 
한편, 유진구의 작업은 은유적으로 말해 ‘고된 노동을 통해 이룬 물활의 세계’라고 할 것이다. 그가, 관자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하는 작품 속 잠재적 운동의 효과를 통해 관객에게 영롱하고도 신비한 그만의 예술 세계를 선보이면서 죽은 사물에 생명력을 덧입히는 까닭이다.  ●

출전 /
김성호, 「투영과 반영의 합주로 빚은 멀티플 웨이브」, 『유진구』, 카탈로그 서문, 2023.
(유진구, 2023. 5. 3~15, 인사아트프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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