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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최세경 / 빛을 품은 무아의 검정, 그 깊이에 대한 탐구

김성호

빛을 품은 무아의 검정, 그 깊이에 대한 탐구 


김성호(미술평론가, Sung-Ho KIM) 

작가 최세경이 이번 개인전에서 내세운 주제는 “현(玄) - 눈을 뜨다”이다. 이 주제는 피상적으로 검정에 대한 조형적 모색을 통해 궁극적으로 ‘눈을 뜨는 어떠한 상태’를 지향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작가는 무엇을 어떻게 함으로써 이러한 주제를 성취하려는 것인가? 출품작을 분석, 해설하면서 자세히 살펴보자. 


최세경, 검을현, Deep, 132×120cm, pencil,graphite on paper, 2022


최세경, 검을현, 세부컷-빛반사


I. 빛을 품은 검정
최세경이 천착하는 검정은 ‘흑색(黑色)’을 직접적으로 가리키기보다는 ‘검을 현(玄)’의 의미를 우리에게 전한다. 즉 그녀는 이번 전시에서 사전적 정의로 ‘검다’는 의미 외에 ‘오묘하다, 심오하다, 신묘하다’는 의미를 지닌 ‘현’의 한자어를 내세움으로써 시각에 반응하는 검은색뿐만 아니라 그것이 품은 ‘심오한 단계의 어떠한 의미’를 찾고자 한다. 
주지하듯이, ‘색(色)’이란 “사물들에 투사된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물리적 현상”이자, “빛의 파장에 대한 눈의 반응”이다. 즉 ‘색’은 눈의 망막에 자리한 원추세포에 도달한 빛이 전기적 신호를 대뇌에 이르게 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에게 인식되는 감각적 반응의 결과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면 색이란 빛에 의한 자극을 눈과 뇌에서 받아들이는 합성된 감각일 뿐, 물체 고유의 물리량이나 성질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검정은 무엇인가? 검정은 일반적으로 삼원색의 감산혼합(減算混合)으로 만들어진 “채도가 없고 명도 차이만 있는 무채색”으로 정의된다. 즉 ‘색상 아닌 색상’인 셈이다. 이러한 검정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까닭에, “광선과 반사가 없는 색”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세경의 작업에서 검정은 흑연이 주성분인 연필(graphite pencil)로 그려서 만든 것이거나, 송진과 같은 식물 기름을 연소시켜 생긴 그을음을 아교로 굳힌 먹(墨)을 통해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안료를 조합한 검정 물감과는 일정 부분 궤를 달리한다. 
특히 연필 속 흑연이 지난한 노동을 통해서 종이 위에 갈린 채 무수히 집적된 검정은 검정 물감과는 확연히 다른 효과를 드러낸다. 우리가 검정에 가까운 짙은 회색을 차콜 그레이(charcoal gray) 혹은 흑연색(graphite color)이라고 부르듯이, 종이 위에 흑연을 문질러 올린 최세경의 검정은 ‘완벽한 검정이 아닌 검정’, 즉 오프 블랙(off-black)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프 블랙이란 거의 검정으로 보일 만큼 어둡지만, 순수한 검정과 약간의 차이가 나는 색이다. 게다가 흑연으로 대별되는 최세경의 오프 블랙은 종이 위에 짓이겨진 채 미세하게 도포된 까닭에, 가시광선을 대부분 흡수하는 검정 물감과 달리, 시점과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을 반사한다. 그것은 탄소로 구성된 흑연 물질로 인해 독특한 금속의 광택 효과를 창출한다. 그래서 화면은 검정이지만 방향과 시점에 따라 어떤 부분은 빛나는 하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품을 보자! 최세경이 이번 전시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 〈검을 현..Deep〉(2022)은 정방형 종이 위에 흑연을 가득 채운 ‘검은 원’ 하나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그녀가 긴 롤지의 중앙에 검은 원을 그렸던 작품 〈현〉(2016)과 같은 듯 다른 작품이다. 2016년도 작품 〈현〉이 둥글둥글한 선묘를 검은 펜을 사용해서 지속해서 쌓아나가면서 중심부를 진하게 만든 ‘검은 원’이었다면, 2022년도 작품 〈검을 현..Deep〉은 흑연이 지나간 흔적을 촘촘히 중첩해 만든 ‘검은 원’이다. 종이 위에 흑연을 밀착시켜 올린 검은 표면은 빛의 방향과 관자의 시점에 따라 반사를 달리하면서 은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금속의 광택 효과를 만든다. 가히 ‘빛을 품은 검정’이라고 할 만하다.


최세경, 97.5×57cm, pencil,graphite on paper, 2023

II. 결의 변주와 흐름 
검은 흑연을 원이나 반원 혹은 사각형과 같은 기본 도형 안에 가득 채운 그녀의 또 다른 작품들 역시 저마다 오프-블랙의 묵직함을 선보이면서도 ‘빛을 품은 검정’이 변주하는 신묘한 미(美)의 세계를 드러낸다. 신묘한 미? 그것은 검정이라는 어둠 속에 숨겨져 있어,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관심을 기울이는 관객에게 비로소 드러나는 흑연이 남긴 ‘결’의 변주에 관한 것이다. 
결(grain)은, “물체의 면과 면 또는 선과 선이 포개진 상태”를 의미하는 복수의 겹(layer)이 ‘규칙적으로 균질화되고 패턴화된 어떠한 바탕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달리 말해, ‘겹이 만든 가시적인 요철(凹凸) 공간이 이룬 일련의 평정 상태’를 지칭한다. 따라서 ‘겹’은 ‘결’을 만드는 전제 조건이 되고, ‘결’은 ‘겹의 상태’가 낳은 결과가 된다. 거친 숨결, 잔잔한 물결의 예와 같이, 요(고랑, 골)와 철(이랑, 마루)이 연접하는 대비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결의 평정 상태는 거칠어지고, 반대의 경우 그것은 잔잔해진다. 이처럼 ‘결’은 골과 마루가 밀치면서 지나간 움직임이라는 사건의 흔적이 된다. 
최세경의 〈결〉 연작에서, ‘결’은 “흐름의 결과물이자 과정의 단면”으로서 흑연으로 된 작품 표면 위에서 미세하게 관찰된다. 때로는 다람쥐의 반복되는 쳇바퀴 운동처럼, 때로는 넘실대는 강물의 흐름처럼, 때로는 운동장 트랙을 반복적으로 질주했던 자전거 바퀴의 흔적처럼, 결은 그렇게 그녀의 검은 화면 위에 다채로운 운동의 사건 흔적을 남기면서 자리한다. 화면 위에 꾹꾹 눌러 얹은 흑연이 만든 골과 마루의 무수한 만남은 결의 상태와 모양을 달리하면서 검정 속에서 쉬이 보이지 않는 결의 미를 화면 위로 길어 올린다. 가히 결의 변주라고 할 만하다. 
최세경의 작품에서 ‘결’은 일련의 흑연으로 된 작품뿐만 아니라 먹을 사용해 마치 물방울 같은 모양으로 ‘터치의 흐름 형태’를 그려나간 〈흐름(FLOW)〉 연작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연작은 둥근 세필에 먹을 찍어 종이 위에 한 땀 한 땀 ‘터치’를 그려나간 작품이다. 여기서 ‘터치’는 점인 듯 점이 아닌 물방울 모양의 무엇으로 형상화된다. 필자는 이러한 터치를 획(劃)으로 해설한다. 한국화에서 ‘획’이란 '점-선-면' 사이의 이동을 수시로 감행하는 변형성과 운동성의 존재로 평가받는다. 즉 획은 개념적으로, 0차원의 점으로부터 1차원의 선, 2차원의 면을 넘나드는 탈경계의 존재이다. 최세경의 작품 속 획은 언제나 ‘ ~에서 ~로 이동하는’ 무엇으로 존재한다. 때로는 ‘점→선의 획’이자, 때로는 ‘선→점의 획’으로서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 속 ‘획’은 서(書, 쓰다)와 화(畵, 그리다) 사이를 오가는 것이자, 양자를 통섭하는 것이며, 운동성의 흔적과 흐름을 만드는 하나의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최세경은 작은 획들의 군집을 통해서 일련의 ‘균질화된 화면’인 결을 만든다. 결은 패턴화된 획과 그러한 획 사이에 자리한 ‘틈’의 공간을 다시 패턴화하면서 생성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틈’이란 주지하듯이 무엇과 무엇 사이의 사이 공간(interspace)이자, 접점(interface)의 공간이다. 그것은 먹물이 입혀지지 않은 결여의 차원에만 거주하지 않는다. 최세경의 〈흐름〉 연작이나 〈흐름-틈〉 연작에서 나타나는 ‘틈’은 획과 획을 잇는 사이 공간이자, 있음과 없음을 모두 아우르는 ‘배경으로서의 공간’이기도 한 까닭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화면 전체를 일렁이게 하는 옵아트 효과를 불러오는 그녀의 작업에서 ‘틈’은 먹물이 칠해지지 않은 결여의 존재에 머물기보다 획과 획 사이의 중간 공간에서 패턴화된 ‘결의 변주와 운동 흐름’을 이끄는 적극적인 매개의 존재로 확장한다고 해설할 수 있겠다.



최세경, FLOW, 132×200, Korean ink on paper


최세경, FLOW, 132×200, Korean ink on paper, 부분컷


III. 검정이 견인하는 무아의 세계 
〈흐름〉, 〈흐름-틈〉 연작을 “집중력과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작업”으로 풀이하는 작가 최세경의 언급은 타당하다. 검정과 하양의 사이 공간을 통해 일련의 패턴과 같은 결을 만들고 그것이 창출하는 운동 흐름을 표현한 이 연작은 결과를 예측한 것이기보다는 우연의 효과를 받아들이고 자연스러운 터치의 흐름 형태를 구현하되, 자신을 망각할 만한 고도의 몰입 상태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최세경이 작가 노트에서 언급한 무아지경이란 “정신이 한곳에 온통 쏠려 스스로를 잊고 있는 경지”를 가리킨다. 여기서 무아(無我)란 불교 철학으로부터 기인한 용어로, 인도 산스크리트로 ‘나(自我)라는 의미의 아트만(ātman)’에 대비되는 ‘아나트만(anātman)’의 번역어이다. 무아로서의 아나트만! 그것은 자기부정의 방식을 통해 ‘자아의 집착’을 멸(滅)하고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자아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최세경의 작업에서 이러한 ‘무아’가 자기부정을 통한 금기, 고행을 전제하는 것이기보다 ‘몰입을 통해 하나의 일에 천착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아지경’과 똑같은 의미를 ‘몰입’으로 소개하고 있는 최근 심리학과 같은 맥을 잇는다. 헝가리계 미국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저작 『몰입: 최적 경험의 심리학(Flow: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2009)에서 “어떤 행위에 깊게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될 때를 뜻하는 용어”로 ‘몰입’을 제시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 몰입을 이머젼(immersion)이 아니라 플로우(flow)로 사용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칙센트미하이가 몰입했을 때의 느낌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설명했듯이, 최세경의 무아지경은 이러한 플로우라는 몰입과 연동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무아의 세계를 담은 그녀의 작품 제목이 ‘흐름(flow)’인 까닭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만하다. 
최세경의 작업에서, 먹물로 작은 획의 연속적 리듬을 만드는 일련의 〈흐름〉 연작뿐 아니라 흑연을 지난한 노동으로 입혀 내는 작품 〈검을 현..Deep〉이나 〈결〉 연작에서도 ‘검정이 견인하는 무아의 세계’는 자리한다. 검정과 하양의 간격을 두고 패턴화된 모습으로 혹은 화면이 빽빽하게 채워진 흑연의 피부를 한 오프 블랙의 모습으로 그 양상을 달리하면서도 ‘무아의 미학’은 최세경의 작업에서 매우 주요한 화두로 자리한다. 



최세경, 흐름(FLOW-002205), 77.5×57.5cm, Korean ink on paper, 2022


최세경, Flow, Korean ink and OHP on paper, 37.5.26cm, 2022


IV. 에필로그  
최세경은 오랫동안 드로잉이 만드는 자유로운 조형 언어를 실험해 왔다. 최근에 그녀는 이러한 드로잉의 어법을 여전히 견지한 채, 원(圓)과 같은 조형의 원형 이미지나 먹이나 흑연과 같은 조형의 기초 질료에 대한 심층적인 질문으로 잠입해 들어가는 중이다. 이전의 자유로운 회화 실험으로부터 일정 부분 벗어나 검정에 관한 반복적 행위에 몰입하는 그녀의 최근 작업은 화가로서 회화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자기 실험에 잠입한 것이라 하겠다. ‘현(玄)으로서의 검정’은 이러한 차원에서 그녀에게 ‘눈을 뜨다’와 같은 자각의 경험을 선사해 준 셈이다. 
물론, 최세경은 최근에 검정으로 된 작업 위에 파란색, 혹은 노란색의 필터를 올려서 화면의 변화를 꾀하는 시도도 선보이면서 근원적인 검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중이다. 2016년 개인전에서 빛의 가산혼합에 의한 어두움과 감산혼합에 의한 검정에 대한 만남을 추구했던 작업이나, 화폭의 설치적 변형을 통해서 시도했던 그간의 조형 실험도 이러한 새로운 해석에 이르는 길을 열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종이의 배면 아래로 침투하는 먹이나 종이의 표면 위에 납작하게 올라선 검정을, 표면을 넘어서는 마티에르를 지닌 검정과 같은 또 다른 방향으로 확장, 연구하는 실험도 개진될 것으로 기대해 볼 만하다.      
우리는 안다. 조형에 대한 이러한 자기 실험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를 말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정적(靜的)인 것에 대한 깊이”에 대한 조형적 성찰은 더더욱 그러하다. ‘검정과 정적인 것의 깊이’를 성찰하면서 자기 것을 찾아 나선 최세경의 작업이 그녀에게는 심각한 고뇌와 지난한 노동 이전에 행복한 시간 놀이가 되고, 관객에게는 감동과 치유 그리고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으로 자리하길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에 부합하는 아래 최세경의 작업에 대한 의미심장한 사유의 일단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내 안에 거대하고 묵직한 것이 있다. 그것은 가끔 없어지길 바라고 또 어느 때는 없어질까 두려워한다. 이것은 덩어리져 있지만, 간혹 움직이며 동요되는 변화가 있다. 이것은 나를 지탱하는 축이며 원천이다. 이것을 컨트롤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것과 대면하는 일은 움직임의 시작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유동적인 흐름은 몰입의 순간이며 치유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20230929)

출전/
김성호, 「빛을 품은 무아의 검정, 그 깊이에 대한 탐구」, 『최세경 - 현(玄), 눈을 뜨다』, 카탈로그, 2023.
(최세경 개인전-현(玄), 눈을 뜨다, 2023. 10. 14~ 10. 27, 예술공간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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