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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유일 수묵화” 진짜일까

한겨레신문


미술품 감정학자 이동천씨
“1300년대 복제된 독화로사도”
비교작품 없어 검증 어려워
진짜 유일한 고려시대 수묵화일까?
미술품 감정학자인 이동천(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씨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인터넷 경매사 코베이를 통해 입수한 수묵 산수화 1점(그림)을 공개했다. 이씨는 이 그림을 고려말 충숙왕(1294~1339)의 재위 기간인 1350년께 퇴경화사라는 화가가 그린 <독화로사도>라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종이나 비단에 그린 순수 회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그림이며 유일한 고려시대 수묵화가 될 터. 직접 비교할 만한 비슷한 시대의 다른 기준작이 없고 제작·소장 경위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아직 그림의 의미를 단언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이씨가 근거로 설명하는 그림 내용과 형태 등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롭게 살펴볼 만하다.
이 그림은 가로 54.2㎝, 세로 76.5㎝의 크기다. 대개 상하가 길쭉한 조선시대의 그림·족자와 달리 그림이 붙은 족자의 위아래 여유 공간이 좁은 고려시대 특징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고려 공예품 ‘은제도금타출신선무늬향합’에 새겨진 족자 모양과 비슷하다.
이씨는 우선 그림 가운데 부분에 나오는 초가 12채로 이뤄진 마을의 모습에 주목한다. 북송 사신으로 고려에 다녀간 서긍(1091~1153)이 견문록 <고려도경>에서 “열두어 집씩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다”고 묘사한 당시 고려 촌락의 모습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또 전면의 갯벌에 보이는 쇠백로는 이규보(1168~1241)가 온상인의 그림을 보고 쓴 자작시 ‘온상인소축독화로사도’에서 모래톱 가에 홀로 한가로이 서 있는 것으로 묘사한 쇠백로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씨는 이를 근거로 이규보가 본 그림이 <독화로사도>의 원본으로 추정된다는 주장을 폈다.
이씨는 이와 함께 모래톱의 백로, 바위산 아랫마을, 바다 가운데 두 봉우리 등 세 공간이 중첩된 3단 구도가 700~1050년 중국에서 유행한 풍경화의 전형이며, 나무와 바위의 표현은 각각 북송 때 화가 미불(1051~1107)과 문인 소식(1037~1101)의 화풍이라고 분석했다. 퇴경화사가 쓴 화제(그림 제목)와 유하노인이 쓴 그림 속 발문 글씨들도 미불과 소식의 글씨를 배워 쓴 것으로 추정되지만, 고려 후기 이래 유행한 원대 문인 조맹부의 글씨체 영향도 일부 엿보인다고 그는 설명했다.
따라서 이 그림은 8세기 중국에서 유행한 구도를 바탕으로 10~12세기 북송대 문인화풍으로 그려졌으나, 조맹부체가 엿보이는 그림 속 글씨의 연대는 1350년께로 추정된다는 게 이씨의 견해다. 고려에서 조맹부체를 온전히 재현한 가장 이른 기준작을 1346년 성사달(?~1380)이 쓴 ‘연복사종명’으로 본 데 따른 것이다. 그는 이 그림을 이규보가 사망한 1241년 이전에 그린 원본 <독화로사도>를 1350년 무렵 유하노인의 주문을 받아 퇴경화사가 복제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씨는 “지질 연대 측정, 출처 추적 등 후속작업이 학계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지기 바란다”고 희망했다.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감정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씨는 2008년 출간한 <진상>이란 책에서 김홍도, 정선 등 조선시대 그림 대가들의 작품 80%가 가짜라고 주장해 미술사학계에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 한겨레신문 201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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