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한국 현대미술, 해외 진출의 역사

김달진

한국 현대미술, 해외 진출의 역사


                                                                           김달진(김달진미술연구소장)

 

우리미술이 해외에 보여지는 전시회 유형은 크게 국가단위로 참가하는 국제전, 공공기관 단체 화랑 등이 기획한 전시회, 미술단체의 해외전 또는 교류전, 작가단위의 개인전 및 국제전 참가로 나눌 수 있다.

최근 비엔날레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었다. 더구나 해외전이 21세기 문화의 시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은 일반적인 전시형태 중 하나이지만 한국 현대미술이 해외로 소개되기 시작한 시기는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몇 년이 더 경과한 1950년대 중반이었다. 우리 현대미술이 국제전에 진출은 1953년 영국 테이트갤러리에서 열린 무명정치수를 위한 기념비에 김종영이 입선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출품은 1958년 미국 신시내티미술관에서 개최된 제5회 국제현대칼라리도그래피전에 이항성, 유강열, 최덕휴, 이상욱, 김정자, 김흥수가 출품하여 이항성 작품이 소장되었다. 여기서의 국제전의 범위는 대략 여러나라가 참가해 경합을 보이거나, 비교하는 정기적인 전시회를 말한다.

 

그후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는데 1961년 파리비엔날레를 시작으로 63년 상파울로비엔날레, 66년 동경판화비엔날레, 69년 카뉴국제회화제, 71년 인도트리엔날레, 81년 방글라데시비엔날레, 86년 베니스비엔날레, 88년 아시아유럽비엔날레 등이 있다. 그동안 가장 많이 참가한 국제전은 카뉴국제회화제, 상파울로비엔날레, 인도트리엔날레, 방글라데시비엔날레, 파리비엔날레, 베니스비엔날레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베니스비엔날레는 권위있는 세계 최고 비엔날레로 1960년 제6회 현대미술가협회전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건립 기금모금전’으로 열린 후 1986년부터 우리나라가 참여하기 시작하여 1995년 독자적인 한국관이 건립되어 매 회 출품하고 있다.

 

1960 - 70년대 국제전에 대한 시비

1960 - 70년대 국제전의 참가는 주로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했으며 한국 현대미술을 주도했던 작가들이 대부분이며, 작품은 추상계열이었다. 1960-70년대 파리비엔날레, 상파울로비엔날레, 카뉴국제회화제, 인도트리엔날레 출품작가와 69년 국제현대회화비엔날레(이탈리아), 국제청년미술가전(일본), 78년 국제현대미술전(프랑스)을 조사항목에 넣어 출품 및 커미셔너 참가를 빈도표로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박서보 10번, 김창열 심문섭 이우환 하종현 7번, 서승원 윤명로 정영열 조용익 6번, 서세옥 윤형근 정창섭 최만린 최명영 5번씩 14명이 단골작가로 나타났다. 더구나 같은 국제전에도 파리비엔날레는 심문섭(71,73,75), 조용익(61,67,69), 최만린(65,67,71), 카뉴국제회화제는 박서보(69,74,77), 정영열(70,75,77), 상파울로비엔날레는 김창열(65,73,75)이 세번씩도 참가했으니 불만이 나올만도 했던 것이 짐작이 된다. 국제전하면 으례 추상으로 국한되고 “국제전에 참가하려면 먼저 미협 간부가 되라.”는 속언이 생겨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여명의 작가들과 몇몇 커미셔너들이 하나의 국제전에 번갈아 세 번씩도 참가하여 많은 시비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 국제전 선정의 잡음시비는 63년 김환기 미협이사장 시절에 파리․상파울로비엔날레 출품작가를 둘러싸고 이른바 108인 연서 파동이 일어났다. 이는 문교부가 미협에 선정을 위임한 후 국제전 출품작가가 미협 간부들에 의해 편파적으로 선정되었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된 것이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한 해에 불과 몇 건이던 국제전과 해외전이 70년대를 지나 80년대와 90년대에 급격하게 팽창했다. 여기에는 미술계의 자연적인 양적 팽창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경제성장, 해외여행 자유화, 올림픽 이후의 미술시장의 활성화 등 미술 내외적인 요인이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현대미술 해외진출의 평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는 2011년 ‘한국현대미술 해외진출 60년’ 전시를 열며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미술가인 김선정, 김승덕, 김홍희, 박서보, 서성록, 서승원, 송미숙, 오광수, 윤범모, 윤진섭, 이용우, 최열 씨 12명에게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한 전시 가운데 성과가 높았던 전시를 3건을 제시하도록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1975년 일본 도쿄화랑의 ‘한국 5인의 작가 다섯가지의 흰색’전과 1992년 영국 리버풀데이트갤러리에서 ‘자연과 함께’전시가 4표, 1988년 미국 뉴욕아티스트 스페이스의 ‘민중미술-한국의 새로운 문화운동’과 1995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가 3표, 1961년 프랑스 ‘제2회 파리비엔날레’와 1993년 미국 뉴욕 퀸즈미술관의 ‘태평양을 건너서: 오늘의 한국미술’ 전시가 2표를 얻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 5인의 작가 다섯가지 흰색전은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허황, 이동엽이 출품했으며 이 전시이후 단색화가 한국 현대미술의 주류로 유행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고 흰색의 의미를 단지 평면에 드러난 조형적인 면이 아닌 회화사상과 한국적 정서로 이해하고자 한 이유로 선정되었다. 자연과 함께전은 단색화 계열 김창열, 박서보, 윤형근, 이강소, 이우환, 정창섭 6인이 참여한 기획전이었다. 부제가 ‘동양정신의 서구미술에 끼친 영향’으로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 유수의 미술관의 주도하에 대규모 기획전으로 3개월 동안 열려 많은 관심을 끌었다.

 

위의 두 전시에 이어 ‘민중미술-한국의 새로운 문화운동’과 ‘제46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나란히 3표를 받았다. ‘민중미술전’은 1988년 뉴욕에서 한국의 민중미술을 처음 소개한 예로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민중미술 15년 1980-1994’보다 앞서 열린 전시였다. 일반적인 정치적 예술과 구별되는 정체성의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을 표명하기 위해 전시명 또한 발음 그대로 ‘Min Joong Art’로 표기하였으며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화된 미술운동을 서구사회에 소개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 전시와 공동으로 꼽힌 ‘제46회 베니스베인날레 한국관’이 건립된 1995년은 의미가 남다르다. 1895년 4월 제1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시작된 이래 비엔날레의 역사가 100년이 되는 해였으며 동시에 1986년 한국이 처음 참가한 이후 꼭 10년 만에 국가관이 건립된 해다. 한국관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이루어졌고 세계적으로는 25번째 독립국가관이었다. 또한 제46회 베니스비엔날레에 곽훈, 김인겸, 윤형근, 전수천 4명이 출품하여 전수천이 국제심사위원회가 수여하는 특별상을 받아 한국현대미술의 위상을 높인 해로 기억되고 있다.

이어서 ‘제2회 파리비엔날레’와 ‘태평양을 건너서 : 오늘의 한국미술’전시는 각 2표의 지지를 받았다. 35세 이하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열려 청년작가비엔날레로 불리는 ‘제2회 파리비엔날레’는 우리나라가 국가단위로 초청되는 국제전에 처음 참가한 것으로 김창열, 정창섭, 장성순, 조용익 4명을 한국 대표작가로 출품하였다. 1993년 뉴욕의 퀸즈미술관에서 열린 ‘태평양을 건너서 : 오늘의 한국미술’은 코리안 아메리카 그룹인 ‘서로한국문화연구회’의 제안으로 추진된 전시였다. 북미지역에 거주 및 활동하고 있는 한국 교포작가와 국내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처음으로 함께 선보인 기획적으로서 당시 현지에서도 호평을 받아 기억에 남는 전시로 꼽혔다.

 

국제전 성과와 2000년대의 양상

그동안의 국제전 성과로 상파울로비엔날레에서 63년 김환기, 65년 이응로, 73년 김창렬이 명예상을 받았다. 그리고 동경판화비엔날레에서는 66년 김종학, 72년 곽덕준, 79년 이우환 진옥선이 수상했다. 카뉴국제회화제에는 74, 75년 참가작품 국가상을 81년 안병석이 금상을 수상했고, 80년 김홍주, 81년 하동철 최태신, 87년 김용식, 89년 안창홍이 특별상을 각각 수상했다. 인도트리엔날레에서 78년 김홍석이 금상, 91년 서정태가 대상을 수상했는데 방글라데시비엔날레에서도 81년 심경자가 동메달, 83년 이석주 금상, 89년 박영하, 91년 안은숙이 명예상을 받았다. 그리고 국제아시아유럽비엔날레(터키)에서는 92년 윤동천이 금상, 조현재가 은상을 수상한 실적이 있다. 또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95년 전수천, 97년 강익중, 99년 이불이 연속적으로 특별상을 받았다.

1992년 세계적인 권위로 ‘미술올림픽’이라고 불리는 9회 카셀도큐멘타에 한국 국적으로 처음으로 육근병이 초대 출품되었고 개막식 퍼포먼스에도 참여했다. 이후 20년만에 2012년 13회 카셀도큐멘타에 전준호 문경원이 초청받아 공동작업으로 우리 미술 위상을 높혔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국내작가들이 외국의 유수한 국제전에 직접 초대받거나 김승덕, 김유연, 김선정, 이원일, 윤재갑, 서진석, 이대형 등이 기획한 전시들이 외국 미술관에 당당하게 입성하여 한국현대미술이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원일은 2005년 상하이 젠다이미술관 개관전 초빙감독, 2006년 상하이비엔날레 공동감독, 2007년 독일 칼스루에 ZKM 개관 10주년 Thermocline of Art-아시아현대미술제 총감독, 2008년 스페인 세비야비엔날레 공동감독, 2009년 체코 프라하비엔날레 공동큐레이터 등을 통해 국제적인 활동을 해오다 2011년 1월 51세로 타계하여 미술계에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대형은 영국 사치갤러리에서 열린 2009년 Korean Eye Moon Generation, 2010년 Korean Eye Fantastic Ordinary 프로젝트를 이끌며 이름을 높혔다. 여기에는 새로운 성향의 평면, 사진, 미디어, 매체들이 소개되며 한국미술의 다양성과 세대 교체를 보여주었다. 전시국가도 1970년대까지 일본, 타이완, 프랑스, 미국 중심에서 확대되어 독일, 영국, 스페인, 중남미, 중국 등으로 세계 곳곳으로 넓혀졌다.

 

해외 진출, 정책 과제

이제 한국 현대미술 해외진출은 반세기를 훨씬 넘어 질적 양적인 발전을 반영해왔다. 1950-60년대 국제전에 참가할 비용조차 구하지 못했던 시절에서 벗어나 지금은 국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국제교류재단 등이나 문화재단, 기업 등에서 지원하고 있다. 작가들은 스포츠의 국가대표 선수처럼 자부심과 미술의 위상을 높여왔다.

 

90년대 중반이후 우리가 외국에 비엔날레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게 줄어든 대신에 오히려국내에서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인천여성비엔날레, 창원조각비엔날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2013년 평창비엔날레까지 10여개가 넘는 세계에서 비엔날레를 가장 많이 개최하는 ‘비엔날레 왕국’이 되었다. 이는 칭찬이 아니라 조롱인 셈이다. 이 연례적인 비엔날레들은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알맹이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아오고 있다. 이러한 비판 속에서도 대부분 국내 비엔날레들은 남아있는 작품이나 아카이브도 제대로 없이 미술판에서 피로증후군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오늘 날 백남준, 이우환이 한국에 거주했더라면 세계미술사에 남는 작가로 성장하지 못했다. 지금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강익중, 김수자, 김아타, 김영진, 서도호, 양혜규, 육근병, 이불, 이용백, 전수천, 최정화 등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예술이 국력인 시대, 경제력은 예술의 교류 확대를 크게 뒷받침 한다.

 

미술작품은 문화유산이고 하나의 상품이다. 문화전쟁시대 해외전은 실적위주가 아니라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서 열리는 전시회이므로 무슨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평가받을 것인가라는 문제제기가 따른다. 동시대를 사는 국제화된 시점에서 이런 문제점을 신중히 검토하고 실제적인 실행에 임해져야한다. 이제 우리 현대미술이 당당하게 평가받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정책과 효과적인 홍보 전략이 필요하다. 국가적인 차원의 미술문화 정책에서 우리 문화예술의 위상을 위해 첫째 한국현대미술을 제대로 보여 줄 영문 사이트와 책자 발간, 둘째 외국의 미술관, 문화재단 등과 네트워크 강화, 셋째 독창성과 역량을 지닌 작가의 양성, 넷째 세계무대에서 전시기획을 맡을 국제적인 큐레이터 양성 등이 시급한 사안임을 강조한다.

 

- 계간 컨템포러리아트저널   15호   2013년 11월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