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한국미술 공모전의 양상과 단면(4) 1980년대 3대 공모전의 비교

김달진

국전 폐지 후에 공모전 중에서 순수미술 분야의 3 공모전이라   있는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 미술대전 1978-88 11년간을 비교해 보았다. 공모전 대상 수상작가를 장르별로 살펴보면 동아미술제 6년간 5(서양화 2, 조각 3), 중앙미술대전 11년간 24(한국화 7, 서양화 8, 조각 7), 미술대전 7년간 23(한국화 7, 서양화 7, 판화 2, 조각 7)이다. 주목되는 것은 동아미술제 응모작이 제일 적으면서도 조각부문에서 3명의 대상작가를 배출시켰다. 우연인지 장려책인지는   없다. (1 참조)


 



 이 세 공모전의 대상작가를 출신 대학별로 나누어 보았다.(표2 참조) 전국에 미술대학, 미술학과가 있는 대학이 많지만 도표 안에 들어오는 학교는 8개뿐이었다. 홍익대가 가장 많은데 특히 조각은 독점하다시피 11명을 기록했고, 서울대는 한국화부문에서는 한명도 없고, 동덕여대는 의외로 한국화에 강세를 보여 3명이었다. 지방대학은 계명대에서 유일하게 서양화에서 2명을 배출했다. 


표2 3대 공모전 대상수상작가 출신 학교별 분포 (2명 이상)





공모전의 성격을 좌우하는 심사위원의 구성을 보면(표3 참조), 《동아미술제》는 작가 중심으로 평론가들이 더러 참여했는데 부문별 3-4명, 《중앙미술대전》은 작가와 평론가 2명(4회에서 9회까지) 중심으로 이후 3명까지 늘어난다. 《미술대전》은 부문별 5-14명의 많은 인원이며, 2-4회는 1,2차로 나누어 심사위원을 두었다. 도표를 참고하면 한국화 부문은 안동숙씨가 《동아미술제》와 《미술대전》 양쪽에서 3회, 이구열씨가 《동아미술제》와 《중앙미술대전》 양쪽에서 3회를 역임했다. 《중앙미술대전》의 서양화부는 김윤수 7회, 변종하가 5회씩이나 독점했고, 《미술대전》은 가능한 심사위원의 중복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심사위원의 작품경향, 출신학교, 사제지간, 파벌, 인맥 등이 공모전의 당락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표3 3대 공모전 심사위원 빈도표 (3회 이상)






 그러나 《미술대전》이나 새로운 형상성을 내거는 《동아미술제》, 다양성의 공존을 표방하는 《중앙미술대전》은 어떤 뚜렷한 작품 경향이나 이념의 특성이 없이 조환(1985년 《후소회 공모전》 대상, 1986년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1986년 《미술대전》 대상), 문봉선(1986년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한국화, 1987년 동아미술상-문인화, 1987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1987년 《미술대전》 대상)과 같은 상복 많은 작가도 탄생시켰다. 전체적으로 과거의 《국전》에 비해 수상작가의 문턱이 낮아져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신인, 대학원생, 특히 민전에서는 대학 재학생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수상작가 중에는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작가도 많았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