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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구상미술의 어제와 오늘

김달진


우리는 구상(具象)이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림을 가리킨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지 않는 그림을 비구상 또는 추상이라고 말하며 그 반대되는 개념으로 파악한다. ‘구상’이란 용어는 원래 서구에서 전후 추상의 상대적 개념인 ‘피규라시옹(Figuration)'에서 나왔다. 이 글에서는 구상미술을 전래의 아카데믹한 사실주의부터 현대적인 의미의 새로운 형상미술까지 광범위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구상미술 단체의 창립, 구상미술을 살펴볼 수 있었던 기획전을 중심으로 40년간의 연표를 만들어 흐름을 뒤돌아 본다.

1950, 60년대 사실주의

해방이후 구상미술은 국전이 선전제도를 답습하였으므로 일제시대 활약했던 원로급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그 제도 속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인 유경채, 이준, 박상옥, 임직순, 장리석, 이의주, 김창락 등으로 이어지는 작품이 모두 구상작품이었다. 여기에 ‘국전에서 상을 타려면 인물좌상을 그려라’ 라는 유행어가 생겼을 정도였다. 하지만 50년대말 화단을 휩쓸었던 앵포르멜 열기와 60년대 이후 모더니즘의 전개 속에서 구상이 추상으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반국전의 재야작가들이 국전에 추천, 초대작가로 대거 영입되었고 1974년부터는 구상과 비구상으로 봄 가을로 전시회를 분리 운영하는 상황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구상미술 단체를 표방한 것은 1958년 <목우회>를 꼽을 수 있다. 이 <목우회>는 주로 자연주의적인 사실을 지향하는 원로 중견작가들인 이종우 이병규 도상봉 이동훈 조병덕 손응성 임직순 김종하 김형구 심형구 김인승 박득순 박상옥 이종무 최덕휴 박희만 나희균 박광진 등이 창립하였다. 이들은 우리 구상미술을 말할 때는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 이기도 하다. 처음에 서양화가 모임이었으나 조각가도 참여했고 1963년부터 공모전을 개최해 왔다. 초기부터 한국적인 아카데미즘을 계승하고 사실주의 집결체로서 뿌리를 내려 가장 규모가 큰 사실작가들의 단체로 성장했다. 국전 서양화부 심사위원을 독차지하며 영향력을 행세하였다. 69년에는 이마동 김원 등을 제외한 회원이 탈퇴하여 만든 <한국사실작가회>와 분열되었다. 그후 프랑스 르살롱에도 진출하여 수상을 하는 성과를 높였고 공모전에 한국화 문인화부문도 추가하였다.

60년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단체로 67년 <구상전>이 있다. 이 <구상전>은 ‘새로운 의미의 구상을 지향한다’는 이념 아래 모였으며 69년부터 공모전을 개최해 오고 있다. 창립은 추상미술의 범람에 따른 반발로 구상계열의 화풍을 진작시키며 입지를 마련키위해 출발한 집단이었다. 추상미술과 아카데미즘 미술이 한국미술계를 양분하고 있을 즈음 한국적 정서와 자유로운 형식을 추구하려던 작가들이 모였다. <모던아트협회>, <창작미술협회>, <신조형파>에 가담했던 중견들과 신예들로 김영덕 안영일 박영성 박창돈 박석호 박고석 이봉상 최영림 정준용 정건모 홍종명 전상수 신석필 김희제 송경 강우문 박성환 박항섭 정규 등이었다. 이 단체는 종래의 고식적이며 진부한 사실주의 양식의 틀을 벗어나 구상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새로운 화풍을 창출하였으며 자연이나 사물형태, 인간이야기를 왜곡과 변형을 통해 얻은 심상적인 풍경을 화면에 드러냈다. 또한 일찍부터 공모전과 명예회원제 도입으로 단체를 키워가며 한국화가도 참여하고 구상전평론상을 신설하여 김진엽 김영호 이수균 등이 등단했다.

60년대 한국현대미술을 조망해보는 전시로 중앙일보사 주최의 <한국현대동양화전>, <한국현대서양화전>, <한국현대회화전>이 있는데 여기에는 각 10여명씩 초대하여 66년부터 68년까지 3회동안 신세계화랑에서 전시를 가졌다. 1회 한국현대서양화전은 김원 김인승 도상봉 박득순 박상옥 박영선 손응성 윤중식 이마동 이병규 이종무 장리석 등 12명이었다.

1970년대 극사실주의

우리 구상미술에서 70년대 중반에 큰 흐름의 변화가 있었다. 흔히 극사실주의로 말하는 하이퍼리얼리즘으로 1976년경부터 화단에 나타났는데, 이 경향은 1970년 전후 미국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사실적으로 완벽하게 묘사하는 특징을 가졌다. 주관을 배격하고 중립적으로 사진과 같은 극명한 화면을 구성했는데 일명 슈퍼리얼리즘 포토리얼리즘 래디컬리얼리즘으로도 불리었다. 1978년경 때마침 불어닥친 신문사의 민전시대 개막과 더불어 새로운 유행을 부채질하였다. 동아일보사의 <동아미술제>는 ‘새로운 형상성’을 내걸고 1회 대상으로 변종곤의 <1978년 1월28일>을 선정했는데 활주로를 그린 작품이었다. 이 경향은 중앙일보사의 중앙미술대전도 1980년 대상으로 김창영의 <발자국 806>, 81년 대상은 강덕성의 <3개의 빈드럼 통> 외에도 장려상 등을 휩쓸었다.

이 운동에 적극적인 참여한 그룹은 <사실과 현실>, <시각의 메시지>가 있었다. <사실과 현실>은 1978년 홍익대 졸업동기 8명이 모여 82년까지 5회전을 가졌는데 몇명의 변동은 있었지만 8명 선을 유지하였다. <시각의 메시지>는 홍대 출신의 신예 4명이 1981년 창립하여 84년까지 5회전을 가졌는데 동인이 늘어나 해체 무렵에는 10명이 출품했었다. 이 무렵 작품의 면모를 보면 김강용은 시멘트벽돌, 김창영은 모래밭 발자국, 김홍주는 거울 속에 비쳐진 인물, 변종곤은 활주로 타이퍼라이터, 서정찬은 갈라엎은 논바닥, 송윤희는 테이프, 이석주는 벽 일상생활, 정규석은 대문, 나무벽장, 조상현은 공사장, 교통표지판, 영화포스터, 주태석은 철로, 지석철은 소파쿠션, 차대덕은 인물, 한만영은 명화복제를 열심히 그렸다.
그후 80년대 중반에 운동으로 열기가 식고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상 그 자체를 기술적 숙련과 더불어 치밀하게 재현하였지만 감정이 개입되지 않아 유형화되고 생명력을 잃어갔다. 점차 다른 방향으로 변하거나 부분적으로 남겨지고 초현실주의 화풍과 결합되거나 오브제를 끌어들였다.

70년대 구상계열 미술단체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1970년 우리들의 활동이 훗날 민족 문화발전에 기여되도록 노력할 것을 내세우며 중견작가 10명이 <청파전>, 대구에서는 서양화가 조각가들이 <이상회>, 1971년은 부산에서 원로 중진작가 16명이 <후기전>, 1974년 <한국신미술회>가 각각 창립하였다. 한국신미술회는 한국사실화가회와 청파전 회원이 합류하여 만들었으며 한때 막강한 회원들이 모였고 86년부터 신미술회로 개칭하였다. 1975년 전남지역 작가들이 <전우회>, 76년 낙동강유역에 거주하는 부산 경주 대구작가 17명이 <영남사실작가회>, 77년 홍익대출신 구상조각가들이 모여 <한국구상조각회>를 창립하여 회원이 확대되고 공모전을 실시하며 구상계열 최대 조각단체로 성장하며 조각평론상을 제정하였다. 78년 <상형전>은 한국신미술회 탈퇴회원과 여류화가들이 모여 출발하여 일본 아세아미술교우회와 합동전을 가졌고, 광주에서 <무등회>가 출발하였다. 이 무등회는 이곳 출신작가들 모임으로 서울 전주 부산에서 거주하는 작가들까지 출품하였다. 79년 대구에서 국적없는 걸작보다 한국의 유화를 추구하겠다는 취지로 <한유회>, 대전에서는 <이신회>가 창립하여 84년에 <대전구상작가회>로 개칭하였다.

1980년대 민중미술

80년대 한국미술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던 민중미술의 힘은 대단하였다. 그중 <현실과 발언>은 기존의 미술이 유한층의 속물적인 취향에 아첨하고 있거나 고답적인 관념의 유희를 고집함으로써 이웃의 현실로부터 소외되고 심지어는 자신의 내면적 진실조차 제대로 발견해내지 못해왔던 것을 반성했다. 오늘의 시대와 사회속에서 미술의 참되고 적극적인 기능과 참신하고도 굳건한 조형이념을 형성하기 위한 공동의 작업과 이론화를 도모하자는 목표로 출발하였다. 따가운 시비와 오해의 시선을 겪으면서도 제몫을 지킨 힘있는 동인으로 도시와 시각, 행복의 모습, 6.25 등 주제전도 가졌고 80년대 새로운 미술운동의 리더로 평가받았다. 중앙대 출신을 주축으로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 전>은 임술년(1982년)이란 시간성과 우리나라의 총면적수치의 장소성을 포함한 즉 ‘지금, 여기서’라는 발언으로 출발하였다. 창립회원은 박흥순 송창 이명복 이종구 전준엽 천광호 황재형 7명 이었다. 그들의 시각은 시대의 노출된 현실이거나 감추어진 진실을 형상화하기에 노력하였다. 한편 일군의 작가들은 한강미술관을 중심으로 인간을 다루는 형상미술을 운동차원으로 이끌었다.

80년대 구상미술단체의 면모를 살펴보면 1980년 광주지역의 젊은작가들이 모인 <남맥전>, 전주지역의 <비자화전>이 있다. 81년 <제작전>은 구상전회원 일부가 탈퇴하여 만들었고 82년에 서울대 출신 젊은작가 8명이 <‘82현대회화>로 출발하였다. 이들은 현대과학이 미술의 방향을 혼란시킨채 회화와 입체조형 행위 기술 등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함으로써 개념의 혼란을 가져왔으며 이러한 시대에 서로의 개별성을 존중하고 스스로 자명한 회화언어를 찾아내겠다는 취지로 3년 동안만 활동하다 해체하였다. 또 82년에 서울에서 자란 작가들이 <서울아카데미회>, 전국적인 규모 <선과 색>, 83년에 <서울신형상전>이 있다. 84년 <이형회>는 상형전 탈퇴회원을 주축으로 비구상 외 어떤 구상분야도 함께 참여할 것을 내걸었다. 86년에 서울대 홍익대 출신 서양화가 조각가들이 <현.상(PRESENT. IMAGE)>를 창립했고, 서울갤러리 개관1주년기념 서양화300호전 출품작가들이 <신작전>, 제3미술관 기획으로 열렸던 <청년구상작가전>이 각각 단체로 뭉쳤다. 88년에 <’88회화제>는 처음 구상작가들이 모여 기획전 형태로 출발하였지만 지역과 학연을 초월한 전국적인 규모로 연례적인 전시회를 가지며 금년에는 결성 11주년을 맞아 160여명이 출품한 <대한민국‘98화화제>를 서울에 이어 대전, 충주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이들은 스스로 구상미술에 무게를 싣고 다변화된 현대미술속에서도 자기 역할을 다짐한다. 같은 88년 구상 중진작가가 모여 <시현전>, 인물화에 관심을 가진 작가들이 구자승을 중심으로 <한국인물작가회>도 활동을 시작했고 <경남구상작가회>도 있다.
조각 부문에서도 단순한 인체 모델링을 떠나 삶의 이야기를 담으려는 기획전으로 86년 <삶과 상징으로서의 조각전>, 87년 <인간과 형상조각전> 등이 있었다. 87년 출발한 <소조각회>는 주제전을 가지며 다져나갔다.

80년대 구상미술을 볼 수 있었던 주요 기획전으로 80년 문예진흥원의 <지방미술단체연합전:구상>, 81년 계간미술이 선정한 <새구상회화 11인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양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자연전> 등이 있었다. 87년 호암갤러리의 <한국인물화전>은 유화에 나타난 한국인의 모습이란 부제로 54명이 출품하였고, 89년 금호미술관이 개관전으로 준비한 <80년대형상미술전>은 서양화 한국화 조각 판화 4부로 나누어 짜임새 있는 전시회를 치렀다.

1990년대의 다양한 경향
90년대 들어 구상미술의 현황을 점검한 현대백화점 현대아트갤러리의 <구상회화의 재조명전>은 뜻있는 기획전으로 5부로 나누어 이어졌다. 92년 5월 <자연, 그 새로운 해석>에 11명, 7월 <구상미술의 오늘, 꿈과 현실의 대결>에 50명, 10월 <풍자화, 그 해석과 비판의 소리>에 12명, 93년 2월 <인물화, 삶의 표정>에 15명, 94 1월 <실내정경, 그 친화적 세계의 접근>에 13명이 초대되었다.
예술의 전당 미술관은 94년 음악과 무용을 주제로 한 작품을 모은 <음악과 무용의 미술전>과 서울풍경이 시대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 <서울풍경의 변천전>, 96년 한국 누드화의 역사를 정리한 <한국누드미술80년전>은 대형 전시회였다. 작년에 창립한 <센추리아트전>은 김형근을 중심으로 6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12명이 모였다. 전통적인 사실주의 조형개념을 바탕으로 우리의 감각에 의한 새로운 해석의 현대적인 리얼리즘 추구를 목표로 내세웠다.

해방이후 반세기 동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미술이 우리 미술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50년대 말 앵포르멜, 60년대 해프닝, 70년대 이벤트, 80년대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 90년대 테크놀로지로 이어졌다. 그리고 감상한다는 기본적인 도식을 떠난 미술은 시대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예상치 않았던 미술이 나타났다. 새로운 매체, 새로운 방법, 새로운 주장 속에서 구상미술의 폭은 좁아지고 폄하되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진부하게 그리고 있느냐는 주장이 그것이다. 아직도 구상과 비구상은 대립되기도 하며 한국미술협회이사장 선출에서도 그룹별로 후보에 선거운동을 보낸다. 국전폐지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구상 비구상을 합쳐 운영해오다 다시 93년부터 비구상-봄, 구상-가을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한국미협 서양화분과도 1분과-비구상, 2분과-구상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대중과의 소통도 단절되고 하나의 형식 운동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들어 추상의 선호도가 점차 줄어들고 그 세력도 약해졌다. 구상미술은 다양한 주제와 정신으로 새로운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 월간미술 1994년 10월호는 특집으로 ‘구상미술을 다시 본다’ 로 폭넓게 조명하였고 96년 창간한 ‘아트코리아’는 구상미술의 대변지를 자청했다. 세상이 변한다해도 미술본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구상미술은 영원한 것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한국구상미술연표

1958 5. -1회 신기회전(동화화랑)
11. -1회 목우회전(중앙공보관)
이종우 도상봉 김인승 박득순 손응성 이종무 등
1961 9. -1회 앙가주망전(국립도서관)
김태 박근자 안재후 최경한 황용엽 등
1966 3. -1회 한국현대서양화전(신세계화랑)
1967 9. -1회 구상전(신문회관)
김영덕 박석호 정건모 박창돈 박고석 최영림 홍종명 등
1969 12. -1회 한국사실작가회전(신세계화랑)
이종우 이병규 박득순 김인승 박영선 손응성 장리석 김창락 이의주 김숙진 10명
1970 4. -1회 이상회전(대구 공화화랑)
6. -1회 청파전(신문회관)
김호걸 박석환 박연도 박희만 송기성 등
1971 5. -1회 후기전(부산 미국문화센터)
양달석 한상돈 송혜수 김종식 임호 김윤민 등 16명
1974 6. -1회 한국신미술회전(미술회관)
김숙진 김창락 박득순 박영선 손응성 이종우 장두건 등 23명
1976 5. -1회 영남사실작가회전(부산 미국문화센터)
우신출 강우문 손일봉 양달석 이득찬 이의주 허용 등
1977 1. -1회 한국구상조각회전(미술회관)
강관욱 고정수 김경옥 김창희 김혜원 문혜자 등
12. -1회 심상회전(대구백화점화랑)
1978 3. -1회 사실과 현실전(미술회관)
김강용 서정찬 송윤희 주태석 지석철 등
-전후세대의 사실회화란(미술회관)
문영태 송가문 이석주 이재권 조상현
4. - 형상‘78전(미술회관)
김홍주 박동인 박현규 이두식 이석주 지석철 차대덕 한만영 등
5. -1회 상형전(미술회관)
주경 이종무 조병덕 한홍택 장두건 강우문 등 24명
12. -1회 무등회전(광주 전일미술관)
강연균 박동인 박복규 배동환 진원장 최쌍중 최영훈 황영성 등
1979 11. -동양화가 눈으로 본 한국의 자연전(국립현대미술관)
- 1회 한유회전(대구 이목화랑)
손일봉 강우문 김종복 허용 남충모 5명
12. -한국미술 오늘의 방법전Ⅱ:구상(미술회관)
1980 4. -40대작가 20인전(동덕미술관)
11. -1회 현실과 발언전(동산방화랑)
김정헌 신경호 오윤 민정기 백수남 임옥상 손장섭 노원희 등
12. -지방미술단체연합전:구상(미술회관)
1981 5. - 1회 시각의 메시지전(그로리치화랑)
고영훈 이석주 이승하 조상현 4명
- 1회 제작전(관훈미술관)
김영덕 김종휘 김충선 박창돈 오세영 정건모 차우희 등
6. -새구상회화 11인 초대전(롯데미술관)
권순철 김정헌 노원희 민정기 여운 오윤 오해창 이상국 이청운 임옥상 진경우
11. -서양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자연전(국립현대미술관)
- 구상작가200호전(신세계미술관)
1982 2. -‘82현대회화전(미술회관)
김용식 김종학 서용선 임철순 황용진 등
10.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전(덕수미술관)
박흥순 이종구 전준엽 황재형 등
11. -1회 선과 색전(관훈미술관)
강정영 김일해 박용인 차일만 최쌍중 등 19명
12. -1회 ’82 인간전(관훈미술관)
정문규 황용엽 강희덕 안창홍 윤석남 이태호 등
-1회 서울아카데미회전(아랍문화회관)
김인화 박용인 손순영 음영일 전호 최광선 등 32명
1983 3. -1회 서울신형상전(아랍미술관)
김명식 김학배 신제남 이계송 장순업 최창혁 등 50여명
1984 4. -한국인체조각전(호암미술관)
4. -1회 이형회전(아랍문화회관)
고화흠 김상진 김수익 박복규 윤석원 장두건 허계 등 29명
9. -1회 갑자전(백악미술관)
김영철 박창돈 윤장열 전태영 등 10명
1985 10. -현존시각전(부산 사인화랑)
김응기 김황문 송주섭 안창홍 정진윤 등
1986 2. -1회 인간시대전(한강미술관)
이흥덕 장명규 최경태 이섭 홍순모 박정애 등
4. - 서양화300호전(서울갤러리)
구자승 김일해 송룡 이태길 정승주 차일만 등 19명
- 1회 청년구상작가전(경복궁역전시장)
6. -1회 현.상전(관훈미술관)
강희덕 고영훈 김종학 박권수 임영선 조덕현 한운성 등 27명
7. -삶과 그 상징으로서의 조각전(아르꼬스모미술관)
강대철 강희덕 김영원 이일호 이종빈 홍순모 등
1987 3. -한국인물화전(호암갤러리)
6. -1회 소조각회:얼굴(예총화랑)
유경원 유인 민성래 오상욱 오상일 조상필 등
7. -80년대 형상미술대표작전(한강미술관)
김보중 신학철 여운 이청운 임옥상 장경호 황재형 황주리 등
1988 9. - ‘88 회화제(롯데미술관)
추진위원 강길원 김수익 박용인 송진세 안호범 최광선 포함 51명
- 한국의 여인전(현대백화점 미술관)
강우문 권옥연 김종하 박영성 한봉호 황유엽 등 12명
11. - 1회 시현전(백악미술관)
강환섭 김영덕 김영환 김충선 유시원 등 10명
- 1회 한국인물작가회전(서울갤러리)
구자승 노광 이원희 이호중 장리규 등 20명
1989 3. -자화상전(신세계미술관)
권옥연 김숙진 김형근 오승우 임직순 홍종명 등 33명
5. -80년대형상미술전(금호미술관)
1990 12. -한국구상미술의 현장전(현대백화점 미술관)
권준 김명식 신양섭 이청운 장순업 최쌍중 등 14명
1991 3. -구상미술 오늘의 상황전(롯데미술관)
강건호 김경열 김수익 박용인 이호중 최광선 등 47명
4. -1991 세기말인상전(신세계미술관)
권순철 서용선 오원배 오치균 김와곤 5명
12. -구상미술의 오늘, 그 변용의 양상전(현대백화점 미술관)
김광우 김와곤 이석주 이일호 이호철 조원강 등 서양화 조각
1992 4. -구상미술의 현재전(정송갤러리)
박석호 김상유 김종복 정건모 성백주 김한 등
5. - SEOUL L.A 형상과 표현전(동방플라자미술관)
-구상회화의 재조명전 1부(현대아트갤러리)
1994 2. -민중미술 15년전(국립현대미술관)
-음악과 무용의 미술전(예술의 전당 미술관)
9. -서울풍경의 변천전(예술의 전당 미술관)
1995 6. -한국 100개의 자화상전(서울미술관)
1996 2. -영혼을 담는 그릇 : 누드50인전(공평아트센터)
10. -도시와 미술전(서울시립미술관)
12. -한국누드미술80년전(예술의 전당 미술관)
1997 10. -대한민국구상미술단체연합전(예술의 전당 미술관)
목우회, 상형전, 신미술회, 한국구상조각가회 4개 단체
-한국구상회화15인전(신세계현대아트)
11. -1회 센추리아트전(갤러리상)
강경규 김경열 김형근 손수광 이강하 이호중 등 12명
1998 6. -대한민국 ‘98회화제(서울시립미술관 600년기념관)
7. -사실과 사실표현전(부산시립미술관)
김남진 이태호 정진윤 최석운 최활영 등
8. -‘98 부산구상회화제(부산 문화회관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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