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파리팡세 : 26. 인생에서 가장 큰 공백

정택영

파리팡세 : 26. 인생에서 가장 큰 공백 

 



 

파리에서 여러 해 동안 생활했다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에펠탑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가보았냐고 종종 물어보면 의외로 가보지 않았다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이유가 미소를 짓게 합니다. 이 질문에 돌아온 대개의 대답은 ‘언젠가는 올라가 보겠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들은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도 탑 꼭대기까지 올라갈 기회는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정사각 철재 빔 사이를 통해 하늘 높이 올라 꼭대기에 이르러 원을 그리며 파리시내의 전경을 내려다 보는 그 기분을 직접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고공에서 아스라이 펼쳐진 지평의 정경을 내려다보는 그 야릇한 쾌감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공백은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 있다고 딕 빅스는 말합니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실제 행해보지 않은 일도 수없이 들은 간접체험에 의해 스스로 세뇌되어 마치 자신이 해본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착각을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 말합니다. 이는 자기모순이란 말과 같습니다. 자신은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지식인이며 문화인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문화인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문화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 봅니다. 문화는 물질적. 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이는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포함합니다. 이에 반해 문명이란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문화를 정신적. 지적인 발전으로, 문명을 물질적. 기술적인 발전으로 여기는 경우가 일반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결국 문명은 한 사회의 ‘물질적인 면’ 등을 이르는 것이며 문화는 그 사회 사람들의 모든 생활양식으로,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모두를 뜻하고 문화는 문명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동양의 경우 18세기 말에 일본이 서구의 선진문물을 수용해 근대화한다는 의미에서 ‘문명개화 文明開化’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한자문화권에서 ‘문명’이란 단어가 도출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랑팔레와 프띠 팔레에서는 일년 내내 좋은 전시를 합니다. 을씨년스럽던 지난 가을 끝 무렵, 그랑팔레 전시장에서 아트 페어가 열렸습니다. 저녁 9시 무렵,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정적이 흐를 것만 같은 시각에 이 아트 페어 전시를 보기 위해 S자 형태를 반복해 줄을 지은 프랑스 관람객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줄을 선 관람객들이 끝이 아니라,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관람객 수는 점점 더 불어나고 있음을 목격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들은 줄을 서서 허비하는 시간을 아깝다고 여기지 않고, 줄을 서는 일에 그리 인색하지 않으며, 조만간 자기 차례가 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터득해 몸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 속에서 줄 서는 법과 그 줄에서 이탈하지 않고 오래 참는 법을 배우며, 인생의 진한 맛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문화culture란 라틴어 cultura에서 온 말로 경작 tillage이나 농업을 뜻하는 말입니다. 곡식과 열매를 얻기 위해 논이나 밭을 경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경작耕作 의 耕은 ‘밭갈 경’으로 제 철에 맞춰 씨앗을 파종하고 싹이 나면 김을 매줘야 하고 잡초를 솎아내야 하며, 틈틈이 흙을 뒤집어 산소와 습기를 공급해 주어야만 튼 싹이 잘 자라게 되고 뙤약볕을 받아 곡식이 여물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주불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재불예술인 축제에는 수백 명의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성원을 이루었습니다. 이 축제는 시간예술에 속하는 시 낭송과 마임이, 대북과 드로잉 퍼포먼스가, 대금연주와 전통무용이, 연극과 마임이, 공간예술에 속하는 조형예술 작품과 비디오 아트의 전시가 중창단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서로 협연을 이루며,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작품들이 교차되고 융합되면서 이루어진 앙상블이었습니다. 이 축제를 통해서 새로움을 향한 대중들의 갈구와 예술인들의 협업으로 서로의 접점을 찾고 멀티플레이어를 요구하는 현대적 의미의 예술형태를 모색하고 실험할 수 있는 뜻 깊은 예술마당이었습니다. 이 축제를 관람하기 위해 좌석을 가득 매운 관객은 거의가 프랑스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호기심과 마음의 경작을 게을리하지 않는 열정이 이 축제의 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진정으로 자신이 아는 것만큼 행동하고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되며 그 간격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로, 마음의 경작이 지속되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한 문화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택영/화가,재불예술인총연합회 회장】

 Paris에서~

 

www.jungtakyoung.com

www.facebook.com/takyoungjung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