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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성 : 예술이 만드는 삶

정택영


'We live with arts and then our life forms us'

한류-웨이브가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까지 퍼지는 가운데 한국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날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봅니다. 네트워킹으로 점점 더 좁아져 가는 지구촌 속에 한국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드높여가는 모습을 불 때, 가슴 뿌듯하다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한국 레스토랑도 한몫을 더하고 있습니다. 많은 프랑스인들이 한류의 바람을 타고 불어온 한국음식 맛에 매료되고 꼬레앙 레스토랑 앞에 줄을 선 모습을 종종 보면서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지난 유월 초, 파리 4구에 위치한 시테 인터네셔널 데자르 Cité international des arts 에서 음악콘서트가 열렸고 이 연주회가 끝날 무렵 피리로 연주한 '아리랑' 가락소리가 파리의 어둠 속으로 조용히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아리랑 가락소리는 가슴속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물론 이날 열린 콘서트는 '삼인조음악가들 Trio à Cordes Pincées de Paris'의 협연과 피아니스트 가브리엘 견윤성 선생과 김민경씨의 피아노 연주로 쇼펭의 Andante Spianato et grande polonaise Nocturne op. 27 n. 2 와 슈베르트의 Imprompyus n.3 곡이 아련하게 울려 퍼진 날이었습니다.


이 연주회에서 더욱 예술적 감흥의 맛을 더한 것은 도미니끄 모리지 씨의 폴 발레리 시낭송이 연주 사이 나지막하게 심금을 울리기도 했고, 무대에 전시된 장 밥티스트 오천룡 화백의 현대회화 작품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과연 음악과 시와 회화가 앙상블을 이룬 다장르 간 협업을 이룬 융합과 통섭의 예술임을 실감케 했습니다.

바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잠시의 휴식을 통한 예술과의 만남은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에 새로운 자양분과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존 루벅 John Lubbock 이 말했듯, '찬란한 태양이 꽃에 색을 칠하듯, 예술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색을 칠해 주는 것입니다. As the sun colors flowers, so does art color life. 

물론 예술이 빵이거나 당장 우리의 욕구와 주머니를 채워주는 물질은 아닙니다.

예술은 어쩌면 그와는 반대로 우리의 현실생활과는 좀 동떨어진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예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예술과 가까운 친구가 되려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예술의 현장에 다가가려는 노력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대개의 대중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사람을 만나 교제를 하고, 사업과 관련된 협상과 로비를 하며, 돈벌이에 급급한 나머지 이를 위해서는 최우선으로 실행을 하고 그 외의 문화예술에 관한 감상과 참여는 아예 계획에도 없거나 있어도 인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삶이 돈으로 전부를 해결해 나갈 수는 없는 것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인격과 심리적 안정, 정신성과 영혼의 문제, 교양, 성품 등의 문제는 돈으로 사고 팔거나 채워 넣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예술이 펼쳐지는 현장에 발길을 옮기는 것에 지극히 인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벤 존슨은 '모든 예술은 '무지'라는 적을 갖고 있다.'고 쓴 고언을 던진 것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예술이 무지와 대항해 나가는 용사'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연주회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은 이국생활에서 가슴에 남은 회한과 고난으로 잉태한 한이 반향된 것이라서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팝과 랩 음악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고여있는 오랜 기억의 샘에 물고를 터놓아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아라랑'이란 무슨 의미가 배어 있는 것인지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아리랑'이란 '아름답다'는 '아리'와 사내 랑郞 두 낱말이 결합해 이루어진 말로 '가슴이 아리도록 좋아하는 '아름다운 낭군과 낭자'를 일컫는 우리 말입니다. 아리송한 그 누구, 아리아리해서 기억에도 가물가물 하면서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아름다운 내 님이라는 우리 말입니다.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마음에 병이 났다는 의미 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특유한 감상이 애절한 사랑의 노래로 넘쳐 흐르는 이 아리랑은 우리의 혼과 정신의 상징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리'란 크고 아름답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어에서 '아리따운'이란 말이 곧 '아리+'~다운'이란 말 속에서 그 뜻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사람들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오늘날의 한국의 발전상을 보며 '한강의 기적'이라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됩니다. 우리 민족의 젖줄인 '한강 '의 원래 이름은 '아리수'였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크고 아름답다'는 물줄기 (水)를 '한강'이라고 이름 지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파리에 나지막이 울려퍼진 아리랑 곡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특유의 정서 속에 고여있는 기억을 회복시켜주면서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하여 바쁜 것이며, 무엇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예술이란 우리의 척박한 삶 속에 단비 같은 그 무엇일 것입니다.

예술이란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노크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에 대답을 해 주는 그 무엇일 것입니다. 예술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며, 우리가 물질로 풍요를 맛볼 때, 고갈되어가는 정신에 자양분을 부어주는 것임을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날, 콘서트가 끝날 무렵, 객석을 둘러보았습니다. 시테 음악당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대부분 프랑스 사람들이었음을 보고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예술이 흐르는 이런 감동의 공간에 한국인들이 가득 차는 그런 생각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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